기정진 철학사상 연구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총서 106
박학래 지음 /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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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 2024.9.26.

읽었습니다 324



  조선 무렵을 살던 사람은 ‘기정진’일까요, ‘奇正鎭’일까요? 기정진이라는 분은 ‘철학·사상’을 했을까요, ‘哲學·思想’을 했을까요? 1973년도 1953년도 아닌 2003년에 나온 《奇正鎭 哲學思想 硏究》는 책이름뿐 아니라 몸글도 온통 한자를 발라 놓습니다. 옛사람은 암글(훈민정음)이 아닌 수글(한문)로 이녁 마음을 밝혔을 테니, 2003년에도 순 한자로 발라서 책을 써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둘레에 읽히려는 마음이라면, 오늘말을 헤아려서 ‘우리말’로 풀어내고, ‘삶말·살림말’로 추스르고, ‘생각말’로 빛나도록 가다듬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글’이 아닌 ‘논문’을 쓰느라 군더더기 한자와 덧없는 일본말씨·옮김말씨를 그냥 붙잡기 일쑤입니다. 마음을 담은 말을 그려낸 글입니다. 이제부터는 부디 이 나라 사람으로서 한말·한글·한넋을 되새기는 길을 배움터에서 제대로 펼 수 있기를 빌 뿐입니다.


《奇正鎭 哲學思想 硏究》(박학래,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2003.10.3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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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인권 수업 -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 너는 나다 - 십대 7
박혜영 외 지음 / 보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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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9.24.

까칠읽기 42


《청소년을 위한 인권 수업》

 박혜영과 네 사람

 보리

 2023.11.13.



《청소년을 위한 인권 수업》(박혜영과 네 사람, 보리, 2023)을 곰곰이 읽었다. 요즈음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사람빛’하고 ‘살림빛’을 들려주는 자리가 부쩍 늘었지 싶다. 그런데 모든 책과 이야기(강의)가 너무 똑같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모두 다르지만, 책쓴이나 이야기꾼(강사)은 늘 쳇바퀴를 도는구나 싶은 말잔치에서 멈춘다고 느낀다.


이미 우리나라 배움불굿(입시지옥)부터 막짓(인권침해)이다. 배움불굿에 따라서 줄세우기(학력차별)를 하니 고스란히 막짓이다. 배움터가 아닌 줄세움터인 이 나라를 뿌리부터 파헤치지 않을 적에는 빈말잔치로 머물게 마련이다. 또한 무엇이든 “서울로!”를 외치면서 ‘서울바라기’가 더 깊어가는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말한다고 하면서 이 대목을 아예 안 짚는다.


‘장애인 인권’은 왜 서울에서만 따지려고 할까? ‘장애인 이동권’을 시골에서 외친 적이 있기나 할까? 시골 할매할배는 ‘장애인보다 더 느리게 기어다닌’다. 그런데 시골 할매할배는 여든 살이건 아흔 살이건 버스삯을 꼬박꼬박 치른다. 시골버스뿐인가. 모두 서울로 쏠린 나라일 뿐 아니라, 언론도 문화예술도 서울로 몰렸다.


‘인권 수업’이라고 하지만, ‘서울이 온나라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얼거리’를 못 들여다본다면, 무슨 말을 들려줄 수 있는지 아리송하다. 시골살이를 바라는 젊은이가 밑돈(보조금)을 다 받지 않는다. 돈과 땅이 있어야 밑돈을 받는다. 시골길(귀촌)을 가는 젊은이뿐 아니라, ‘시골에서 나고자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버이한테 돈과 땅이 없으면 아무런 밑돈이 없다. ‘농약 뿌리는 드론’만 다뤄도 시골에서 한몫을 잡지만, 풀죽임물과 비닐과 농기계를 안 쓰고서 ‘살림짓기(자연농)’를 하려는 사람은 밑돈조차 못 받지만, 손가락질과 따돌림에 시달린다.


뻔한 줄거리로 뻔한 말만 하지 않기를 빈다. ‘인권 강사·변호사·작가’들 스스로 먼저 서울을 떠나서 시골이나 작은마을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들부터 스스로 걸어다니고 두바퀴(자전거)를 달리면서 ‘삶따돌림(일상에서 벌어지는 인권차별)’을 겪고 느끼고 알아야, 이 나라 푸름이한테 말다운 말 한 마디를 섞을 만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보행자 지옥 + 운전자 천국’이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걷거나 버스·전철을 탄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늘 부대끼는 ‘보행자 지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력·인권 차별’인 줄 한마디조차 할 수 없거나 모른다면, 이런 책이 무슨 보람이 있으려나.


ㅅㄴㄹ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에요. 노동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버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온전하게 사용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18쪽)


국가가 폭력을 휘두른다니, 상상하기 쉽지 않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폭력은 대개 개인과 개인 혹은 집단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124쪽)


+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

→ 갓 들어온 분한테

→ 새내기한테

4쪽


바로 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바로 말을 못 하기 일쑤입니다

→ 바로 대꾸를 못 합니다

4쪽


우리 청년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 우리 젊은이가 부러워할 만합니다

→ 우리 젊은이가 틀림없이 부러워할 만합니다

4쪽


자기가 살아가는 공간에서라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라도 사람빛을 지키려고 애써야 합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부터 살림빛을 돌보려고 힘써야 합니다

7쪽


워낙에 최저임금을 주는 곳이 많아져서

→ 워낙에 밑일삯을 주는 곳이 늘어서

→ 워낙에 밑삯을 주는 곳이 늘어나서

15쪽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에요

→ 이 글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쓴 글이에요

18쪽


가상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인권 이야기를 마치고

→ 셈틀로 일하는 사람들 일살림빛 이야기를 마치고

→ 누리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일살림길 이야기를 마치고

2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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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수업 교양 100그램 2
변영주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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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9.19.

까칠읽기 41


《창작수업》

 변영주

 창비

 2018.9.17.



《창작수업》을 읽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 책으로 묶은 글(말)을 편 사람이 참말로 〈낮은 목소리〉를 찍은 그분이 맞는지 아리송했다. 내가 〈낮은 목소리〉를 잘못 보았나 하고 한참 갸웃갸웃하다가, 변영주 씨가 김훈 글을 좋아한다고 꽤 길게 늘어놓은 대목을 읽고서 무릎을 친다. 이분은 우두머리(영웅)를 좋아하는구나!


변영주 씨는 스스로 ‘게으르다’고 밝힌다. 그럴 만하다. ‘좋다’고 여기는 쪽만 바라보면서 ‘안 좋다’고 여기는 쪽은 그저 ‘나쁘다’고 쳐내기에 바쁜 눈길과 몸짓인 탓이다.


둘레에서 ‘영화감독’한테 “좋은 영화 추천해 주셔요!” 하고 물어볼 적에는, “영화감독 아무개 씨 눈길로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변영주 씨는 뜬금없이 “재미없는 작품들을 보고 견디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명작을 찾아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91쪽)”고 읊는다. 그야말로 게으른 대꾸이다. 어느 작품이 왜 재미없는지 차근차근 짚으면서, 영화감독 변영주 씨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여긴 작품을 말하면 된다. 이런 눈길과 마음길과 말길을 듣고자 변영주 씨한테 ‘영화 묻기’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나한테 “좋은 책 추천해 주셔요!” 하고 묻는다면, 먼저 거꾸로 “님이 좋다고 여기는 책부터 말씀해 주셔요.” 하고 여쭙는다. 묻는 님이 좋아한다고 여기는 책을 차근차근 듣고 나서, 그 책에서 어느 대목이 아쉽거나 얄궂거나 모자라거나 허술한가를 하나하나 짚고, 이런 뒤에 ‘그러한 갈래를 좋아하는 이웃’이 ‘눈길을 새롭게 틔우면서 마음길을 스스로 가다듬는 길에 이바지할 책’을 셋이나 다섯쯤 꼽아서 이야기한다.


이런 뒤에 이웃님한테 꼭 한말씀을 보탠다. 나는 ‘아름책’과 ‘아름영화’와 ‘아름만화’를 언제까지나 되읽을 마음이기 때문에, 책도 영화도 만화도 ‘아름답다’고 여기면 적어도 100벌은 다시보기를 한다고 들려준다. 하루에 1벌씩 다시보기를 하지는 않는다.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에 걸쳐서 꾸준히 다시보기를 한다. 이웃님 스스로 “온해(100년)를 살아가는 길에 해마다 1벌씩 100벌을 다시보기를 할 만하다 싶은 책과 영화와 만화”라면 한두 가지만 곁에 두어도 넉넉하다고 본다.


우리는 아름책과 아름영화와 아름만화를 곁에 두려고 숱한 책과 영화와 만화를 마주하는 삶이지 않을까? 아름님을 만나려고 숱한 사람을 스치거나 만나지 않을까? 그러니까 《창작수업》은 어쩐지 ‘짓는길’을 배우는 이한테는 모자라고 허술하다. 어느 대중강연 하나를 슬쩍 옮겼을 뿐, 무엇을 왜 지으면서 스스로 어떻게 눈과 귀와 마음과 넋을 틔울 만한가 하는 대목은 한 가지조차 못 담은 꾸러미라고 느낀다.


ㅅㄴㄹ


저는 게을렀던 거예요. 제가 국악을 싫어한다고 말했을 때는 ‘대표적으로 국악이라고 하는 걸 들었을 때 기분이 별로 안 좋았기에 그냥 싫다’였는데, 계속해서 국악을 듣다 보니 국악을 왜 싫다고 했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됐고, 감정을 처음부터 동요시키지 않는 것들은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지요. (59쪽)


제게 청춘은 세상에 복무함으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인데, 아버지의 청춘은 ‘아, 다행이다. 나 대신 저놈이 죽었네’ 하던 시절인 거예요. 그 순간 아버지를 알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날 밤에 잠든 아버지를 깨워서 나는 이제 아버지를 알 것 같다고 말했어요. (67쪽)


저는 수십 수백편의 그저 그런 작품들을 보고 그중에서 한두 개를 발견한 건데 그걸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고 억울하지요. 저는 여러분도 재미없는 작품들을 보고 견디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명작을 찾아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91쪽)


+


《창작수업》(변영주, 창비, 2018)


우리는 한때 모두 같은 전선에 선 동지였는데

→ 우리는 한때 모두 같은 길에 선 동무였는데

→ 우리는 한때 모두 같이 싸우던 벗이었는데

5쪽


내가 변절했다며 각자의 그 작디작은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내가 꺾었다며 저마다 작디작은 날개를 흔드는 듯합니다

→ 내가 돌아섰다며 다들 작디작은 이름을 흔드는 듯합니다

→ 내가 등돌렸다며 모두 작디작은 천을 흔드는 듯합니다

5쪽


결국 우리가 교집합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 끝내 우리가 한우물로 키울 한 가지 일은

→ 그래서 우리가 나란히 키울 한 가지는

→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키울 하나는

5쪽


많은 사람들이 그 결기와 태도의 주어라고 할 수 있는 나를 스스로 해석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 숱한 사람들이 결과 매무새에 임자라고 할 수 있는 나를 스스로 풀어내기 어려워합니다

→ 사람들이 마음과 몸짓을 세우는 나를 스스로 읽어내기 어려워합니다

6쪽


세상을 좀더 바르게, 좋게 만들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 나라를 좀더 바르게, 잘 가꾸려고, 너른 이웃이 즐겁도록 애쓰는 사람이

→ 삶터를 좀더 바르게, 제대로 지으려고, 누구나 기쁘도록 땀흘리는 사람이

11쪽


다시 본래의 독립영화 개념으로 돌아가서

→ 다시 작은그림 얘기를 하자면

→ 혼그림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17쪽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의 핵심은 그거예요

→ 저는 바로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 제가 여쭈려는 얘기는 이렇습니다

→ 저는 이런 얘기를 여쭙습니다

33


내용은 신선한데 형식은 고리타분하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 줄거리는 맑은데 얼개는 고리타분하다? 그럴 수는 없어요

→ 속은 새로운데 얼거리는 고리타분하다? 그럴 일은 없어요

33


언제나 대의명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 언제나 목소리가 크다고 여기지요

→ 언제나 뜻이 대수롭다고 여기지요

43


내 아이는 특별하지 않아요

→ 이 아이는 다르지 않아요

→ 울 아이는 유난하지 않아요

48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 이순신 어른이 맨주먹일 무렵부터

→ 이순신 님이 감투를 벗을 무렵부터

54


저는 정말로 그런 질투가 많아요

→ 저는 참말로 그렇게 시샘해요

→ 저는 참 그처럼 샘을 내요

5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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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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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까칠읽기 40


《날씨와 얼굴》

 이슬아

 위고

 2023.2.20.



  아는 사람이 너무 없더라. 이 나라에서는 어떤 풀과 나무도 제 목숨대로 못 산다. 과일밭에서 피눈물이며 피고름을 짜내어서 사람한테 열매를 바치는 능금나무나 배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나 복숭아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짓밟히고 괴로운지 눈여겨보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너무 어렵다. 이 나라 과일밭에서는 과일나무가 고작 열 해를 살 동 말 동하는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무는 즈믄해(1000년)쯤 거뜬히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우리나라 과일밭에서는 고작 열 해를 살까 말까 아슬아슬하다면, 과일밭에서 무슨 짓을 한다는 뜻일까? 쇠줄(철사)로 줄기랑 가지를 잡아당겨서 바닥에 박거나 동여맨다. 하나같이 짜리몽땅한 과일나무로 피눈물과 피고름을 짜내라고 들볶으면서, 거름이 아닌 죽음재(화학비료)를 뿌리고, 풀죽임물(농약)까지 끝없이 뿌려대는 판이라, 나무가 열 해나 살아남는다는 대목이 오히려 놀랍다고 할 만하다.


  더구나 적잖은 과일밭은 아예 비닐이나 유리로 덮어씌운다. 새가 쫄 수 없게 가린다는데, 비닐집이나 유리집에 갇혀서 쇠사슬과 쇠줄에 묶인 나무는 해도 바람도 비도 없이 피눈물과 피고름을 짜낼 뿐이다.


  닭과 돼지와 소만 좁은 가두리에서 시달리다가 끔찍하게 죽지 않는다. 모든 과일도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과일뿐인가?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콩은 어떤가? 오늘날 우리나라 논밭은 ‘씨바꿈(품종개량·유전자조작)’을 해댄 낟알인 터라, 그저 낟알만 굵고 잔뜩 내놓도록 시달린다. 이뿐인가? 논도 밭도 끝없이 뿌려대는 풀죽임물과 죽음재 탓에 시들시들하다. 더구나 ‘흙’조차 없는 ‘스마트팜’에서 해바람비마저 없이 억지로 몸뚱이만 키우고 반들반들 푸릇푸릇 ‘남새 흉내’를 내야 하기까지 한다.


  더 들여다보자. 해를 못 쬐고서 전깃불빛을 받아야 하는 스마트팜에서 거두는 풀(채소)이 사람한테 이바지하겠는가? 더구나 샘물도 냇물도 빗물도 아닌 꼭짓물(수돗물)을 머금어야 하는 풀과 낟알과 열매인데, 풀꽃나무한테는 들볶음질(고문)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크고 튼튼하지!” 같은 말도 엉터리이지만, “풀밥(채식·비건)이 좋고 고기밥(육식)은 나쁘다!” 같은 말도 뜬금없다. 사람이 고기로 삼는 짐승은 ‘풀’을 즐긴다. 사람은 ‘고기 먹는 짐승’은 안 먹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왜 고양이를 고기로 안 삼았겠는가? 고양이는 오직 고기짐승인 탓이다. 예부터 ‘고기로 삼는 개’는 ‘고기’가 아닌 ‘된장국에 만 밥’을 사람하고 나란히 먹으면서 살았다. 예부터 ‘고기로 삼는 돼지’도 ‘고깃기운’이 없는 밥을 사람하고 똑같이 누렸다.


  《날씨와 얼굴》은 경향신문에 실은 글을 모았다고 한다. 애써서 쓴 글이라고는 느끼지만, 풀도 꽃도 나무도, 뭇짐승과 뭇숨결도, 또 벌레와 새도, 해와 바람과 비와 흙도, 거의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안 들여다본 채, 목소리만 외곬로 높인다고 느낀다.


  풀을 먹기를 바란다면서 왜 ‘풀밥’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한자말 ‘채식’조차도 쓰기 싫어서 ‘비건’을 써야 할까? 그런데 왜 억지스런 한자말 ‘모부(母父)’에 매달리는가?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다. 잘 알아야 한다.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다. 그러면 한자는 중국말이나 일본말인가? 아니다. 한자는 ‘그놈말(권력자 언어)’이다. 한자는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우두머리와 벼슬아치와 나리(양반)라고 일컫는 무리가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쥐어짠 ‘그놈말·힘말(권력용어)·싸움말(전쟁용어)’일 뿐이다.


  “우리말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제대로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쓸 말이 아니”라는 뜻이고, “우리하고 동떨어진 말”이라는 뜻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는 ‘우리’가 쓸 말이 아니고, 서로서로 사랑으로 만나서 보금자리를 이룰 ‘우리’가 쓸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그놈말·힘말(권력용어)·싸움말(전쟁용어)’인 한자로 적을 적에는 ‘부모(父母)’처럼 ‘아버지 + 어머니’일 텐데, 사이좋게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수수한 순이돌이가 주고받던 말로는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엄빠(엄마아빠)’처럼 언제나 엄마를 앞에 놓는다. 우리는 ‘어버이·어버이날’처럼 언제나 어머니(순이·여성)를 앞세운다.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 ‘가시버시’도 순이(여성)를 앞세운다.


  무엇을 먹든 대수롭지는 않다. 어떤 눈길과 마음과 삶으로 먹느냐가 대수롭다. 풀밥은 먹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이 없이 미움(혐오)만 가득하다면, 게다가 이 나라 흙길(농업)이 풀꽃나무를 마구 괴롭히고 짓밟으면서 피눈물을 짜내는 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온풀밥이건 아름풀밥이건 허울스러울 뿐이다.


  글쓰기를 하려면 우리말부터 익힐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도록 ‘엄마누리(모계사회)’였고, 이 엄마누리를 깬 ‘그놈들(권력자)’이 말도 글도 마음도 삶터도 마을도 망가뜨리면서 굴레를 씌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놈들’에서 ‘그놈’은 ‘돌이(남성)’만 있지 않다. 힘을 거머쥐려는 무리가 그저 모두 ‘그놈’일 뿐이다.


  수수한 ‘풀’이라는 낱말이 왜 ‘풀’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낱말이 왜 ‘나무’와 ‘숲’인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으니 휩쓸리고, 생각을 안 하니 서로 미워하며, 생각을 접으니 그만 외곬에 사로잡힌다.


  이 나라가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모든 민낯을 볼 노릇이다. 고기밥을 놓고서 여러모로 넘치는 굴레를 짚으려 한다면, 풀밥을 놓고도 온갖 수렁이 가득한 줄 나란히 짚으면서, 모든 굴레와 수렁을 싹 걷어낼 노릇이다.


  옳거나 바르다고 여길 길만 바라보지 말자. 아름길과 사랑길과 살림길과 숲길을 바라보자. 무엇보다도 이제는 좀 서울에서 떠나자. 서울에서 맴돌며 쳇바퀴를 돌기 때문에 글결에도 말결에도 ‘서울힘(서울권력)’이 너무나도 넘친다. 부디 우리 스스로 전라도 시골로 삶터를 옮기고, 경상도 시골로 삶자리를 옮기자. 경상도가 꼴통이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경상도 시골로 씩씩하게 삶자리를 옮겨서, 경상도 시골을 새롭게 일구자. 전라도가 꼰대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전라도 시골로 즐겁게 삶터를 옮겨서, 전라도 시골을 새롭게 가꾸자.


  서울에 깃들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면서 목소리만 내는 글은 덧없다. 오늘날 이 나라 구석구석이 어떻게 찌들고 물들고 앓는지를 지켜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쓰레질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서 글만 쓰려고 한다면, 새로 자라나고 태어날 아이들한테 참말로 창피한 일이다.


ㅅㄴㄹ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다

→ 얼굴이 있는 우리는 모두 휘몰아치는 벼락날씨를 겪어야 한다

→ 얼굴이 있는 우리는 모두 몰아치는 막날씨를 받아들여야 한다

7쪽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의 얼굴 또한 마주할 것이다

→ 사람뿐 아니라 사람 아닌 이웃얼굴도 마주한다

→ 사람얼굴과 짐승얼굴도 마주한다

7쪽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 때문에, 이 책은 쓰여졌다

→ 마음에 걸리는 얼굴 때문에 이 책을 썼다

→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 있어서 이 책을 쓴다

7쪽


분명 어떤 얼굴들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다

→ 틀림없이 어떤 얼굴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 참말로 어떤 얼굴은 잘 다루지 않는다

7쪽


나는 비밀 병기를 장전해주는 심정으로 미래 세대와의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 나는 속힘을 채워 주는 마음으로 아이들하고 글쓰기를 익힌다

→ 나는 속빛을 챙겨 주려고 푸름이하고 글쓰기 자리를 연다

13쪽


나에게 비거니즘은 어떤 착취에 더 이상 일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동물과 인간이 관계 맺어온 방식을 개선하고 싶다는 의지다

→ 나는 온풀밥을 다짐하며 더는 어떻게도 빼앗지 않으면서, 짐승과 사람이 맺은 길을 바꾸고 싶다

→ 나는 온풀살이를 하며 더는 아무것도 들볶지 않으면서, 짐승과 사람이 맺은 얼거리를 고치고 싶다

16쪽


고기 먹기를 일단 멈춘 동지로서 당신을 기다리겠다

→ 고기를 이제 그만 먹는 그대를 기다린다

→ 아무튼 고기를 멈춘 이웃인 그대를 기다린다

19쪽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꼭 서로한테서 배울 수 있다

→ 우리는 늘 서로 가르칠 수 있다

19쪽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

→ 돼지 하나. 소 하나. 닭 하나

→ 돼지. 소. 닭

43쪽


‘모부’라는 단어에도 힘을 싣고 싶다

→ ‘어버이’라는 말을 힘껏 쓰고 싶다

→ ‘엄빠’라는 낱말을 힘차게 쓰고 싶다

45쪽


누군가의 목숨을 나란히 생각할 때 우리가 쓰는 말도 새로워진다

→ 이웃 목숨을 나란히 살피면 우리가 쓰는 말도 다르다

→ 이웃을 나란히 헤아리면 우리가 쓰는 말부터 바꾼다

46쪽


내일이 올 것임을 안다

→ 다음날은 온다

→ 새날이 올 줄 안다

→ 새 하루가 온다

63쪽


열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대에 맞게 변주하고 전개했다

→ 열 가지 이야기를 오늘날에 맞게 추스르고 들려준다

→ 열 갈래 이야기를 요즈음에 맞게 가다듬고 내놓는다

77쪽


‘기다린다’라는 동사를 빼고 그의 도서 일대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 ‘기다린다’라는 움씨를 빼고서 그이 책삶을 말할 수 있을까

→ ‘기다린다’라는 말을 빼고서 그이 책읽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93쪽


생애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다양한 자리에 서게 한다

→ 우리는 삶에 따라 이토록 온갖 자리에 선다

→ 우리는 발걸음에 따라 이토록 여러 자리에 선다

116쪽


우리는 모두 어떤 사회적 신분 안에 있다

→ 우리는 모두 어떤 자리에 있다

→ 우리는 모두 어떤 높낮이에 선다

116쪽


사실 이 땅의 모든 소는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 고기 혹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품종개량되고 사육되고 좁은 축사 안에 갇혀 살다가 도살된다. 어떤 소도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한다

→ 이 땅에서 모든 소는 아슬판이다. 고기나 소젖을 내놓아야 하기에 씨를 바꾸고,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가 죽는다. 어떤 소도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한다

16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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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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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9.

까칠읽기 39


《어떤 동사의 멸종》

 한승태

 시대의창

 2024.6.17.



《어떤 동사의 멸종》(한승태, 시대의창, 2024)을 읽는 내내 《하얀 구름 외길》(조지 오웰/권자인 옮김, 행림각, 1990)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어떤 동사의 멸종》은 어쩐지 ‘조지 오웰’스러운 글이기를 바란 듯싶다. 다만, 아무리 보아도 ‘조지 오웰을 한글판으로 옮긴 일본말씨’스럽다.


조지 오웰이라는 분은 ‘밑바닥 일자리’에 스스럼없이 녹아들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살아낸 하루를 글로 옮겼다. 조지 오웰 님이 쓴 영어가 ‘어렵’거나 ‘먹물스럽’지 않았으리라. 글을 못 배운 사람이라면 조지 오웰 님이 쓴 글을 아예 못 읽을 수밖에 없지만, ‘조지 오웰이 쓴 글을 말로 들려주’면, ‘글을 모르는 누구라도 다 알아들을’ 만했으리라.


이와 달리 《어떤 동사의 멸종》은 ‘글을 모르는 일꾼’이 읽어내기에 대단히 빡빡하고 어렵고 뒤숭숭하다. 조지 오웰 님은 글멋을 부리거나 겉멋글을 쓰려고 밑바닥 이웃하고 함께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승태 씨는 ‘글로 멋을 부리는 길’로 나아가려고 이런저런 곁일(알바)을 했구나.


“어떤 동사의 멸종”은 무슨 뜻일까? 책이름도 이렇게 겉멋을 부려야 할까? 일본말씨하고 옮김말씨를 뒤섞은 책이름처럼,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온통 글치레로 넘실거린다. ‘일을 했’으나 ‘일하는 말씨’가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서 몸을 기울였지만, 막상 ‘일말’이 아니다.


“사라지는 일”을 하면서 바라본 “사라지는 말”일 텐데, 돈을 버는 일자리에 앞서 집안일부터 해야 할 텐데 싶다. 집에서 밥살림을 차근차근 하고 나서야 ‘밥하는 일자리’를 맡아야 하지 않을까? 부엌칼질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안 하려고 하니 안 할 뿐이다. 어린이가 기나긴 해에 걸쳐서 어버이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알뜰하고 다부진 살림꾼으로 거듭나듯, ‘먹물글’이 아닌 ‘땀글’과 ‘일글’과 ‘살림글’을 쓸 수 있기를 빈다. 틀림없이 땀을 옴팡 쏟는 일을 했다지만, 글자락에 땀이 묻어나지는 않고, 먹물만 묻어난다. 글쓴이는 이곳저곳에서 땀을 잔뜩 쏟았구나 싶으나, 정작 땀빛을 이슬빛으로 풀어내는 빗방울빛으로 살리는 길을 아예 눈감거나 귀닫은 듯싶다.


《토지》를 남긴 박경리 님은 밭짓기를 그렇게 즐기셨지만, 막상 밭일을 하는 할매나 할배가 쓰는 시골말이나 흙말을 글에는 아예 안 썼다. 글을 몰라도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누고 삶을 일구는 수수한 사람들이 어떤 삶말과 살림말과 사랑말과 숲말을 지피는가를 눈여겨보거나 귀담아듣지 않을 적에는, 누구라도 글치레라는 굴레에 갇힌다. 더구나 36쪽 글줄은 뭔가? 돌고래가 어떤 바다이웃인지 참말로 몰라서 이런 허튼글을 쓰는가?


ㅅㄴㄹ


첨단 기술에는 사이드미러와 비슷한 성질이 있다

→ 눈부신 길은 옆거울과 비슷하다

→ 높은곳은 옆거을과 비슷하다

8


대신 나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겨 보려고 한다

→ 나는 사라져가는 일을 남겨 보려고 한다

→ 나는 사라져가는 일을 옮겨 보려고 한다

→ 나는 사라져가는 일을 적어 보려고 한다

10쪽


국민연금 개시연령인 65세 정도까지가 대다수인데

→ 나라꽃돈 받는나이인 65살쯤까지가 흔한데

20


돌고래와 비등비등한 두뇌의 한계로 괴로워하는 영혼들 앞에서 지적 능력을 과시하던 철없던 젊은이는

→ 머리가 안 돌아서 괴로워하는 넋 앞에서 똑똑하다고 자랑하는 철없는 젊은이는

36


이곳의 드레스 코드는 ‘이거 어제 입었던 건지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인 듯싶었다

→ 이곳 옷차림은 ‘어제 입은 줄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인 듯싶다

→ 이곳은 ‘어제 입은 줄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 하는 차림새 같다

43쪽


갑자기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와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 갑자기 떠올라 온몸이 부들부들한다

→ 갑자기 생각나 온몸을 떤다

→ 갑자기 되살아나 온몸이 타오르고 떤다

63


결코 자신의 문제일 수 없는 일을 자기 일처럼 대하길 요구하는 사람의 딜레마가

→ 내 일일 수 없는데 내 일처럼 여기길 바라니 엇갈리고

→ 내가 풀 수 없는데 내가 풀기를 바라니 힘들고

→ 내 짐이 아닌데 내가 지기를 바라니 막다르고

102쪽


밥벌이의 수단으로 친절을 사용해야 하는 일자리의 모든 것이 이 한 마디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 밥벌이를 하려면 착해야 한다는 뜻이 이 한 마디에 담겼다

→ 밥벌이를 하려면 사근사근해야 하는 얼개를 이 한 마디에 담았다

102쪽


물이 샌다. 줄줄 샌다. 누수漏水

→ 물이 샌다. 줄줄 샌다

133


묵언 수행 중이거나 수다쟁이거나

→ 말이 없거나 수다쟁이거나

→ 조용하거나 수다쟁이거나

141


상차 작업에 익숙해지면 고구려인 못지않은 축성의 대가가 될 것 같았다

→ 짐싣기가 익숙하면 고구려사람 못지않게 담을 잘 쌓을 듯했다

152


육체적으로도 하차보다 수월하지 않다

→ 내릴 때보다 수월하지 않다

→ 내리는 힘보다 수월하지 않다

152


하차 작업은 위에 있는 짐을 내려놓는 동작이 많지만

→ 내릴 적에는 위쪽 짐을 내려놓는 몸짓이지만

152


다른 평범한 일들이 에둘러 암시하고 마는 것

→ 다른 수수한 일로 에두르는 길

→ 다른 작은 일로 에두르는 길

160


필자에겐 이쑤시개만 한 면봉이 존재의 근원까지 박살 낼 수 있는 몽둥이처럼 보인 적이 있다

→ 이쑤시개만 한 솜막대가 나를 박살낼 수 있는 몽둥이처럼 보인 적이 있다

→ 이쑤시개만 한 솜대가 목숨을 박살낼 수 있는 몽둥이처럼 보인 적이 있다

181


1인분씩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 한그릇씩 하지 않기 때문에

193


사수가 없어서 아쉬운 점은, 좋게 말해도 예측 불가인 나 자신의 불, 칼 다루는 솜씨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감독이 없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 길잡이가 없으니, 불이나 칼을 못 다루는 나를 돌볼 사람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 앞사람이 없으니, 불과 칼을 엉성히 다루는 나를 지켜볼 사람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204


이제는 홀과 주방 사이의 비무장지대마저 사라져버렸다

→ 이제는 마루와 부엌 사이에 고요터마저 사라져버렸다

→ 이제는 마루와 부엌 사이에 아늑터마저 사라져버렸다

204


홀 직원의 분노에 찬 십자포화를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 짜증난 마루일꾼이 퍼붓는 말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 마루지기가 활활 쏘아대는 말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204쪽


음식 쓰레기 처리 문제는 실제로 물리적 전투를 불러일으킬 뻔했다

→ 밥쓰레기를 누가 버리느냐 때문에 싸울 뻔했다

→ 밥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주먹이 오갈 뻔했다

224


오랫동안 주방에서 함께 일하면 가족이 되거나 원수가 된다

→ 오랫동안 부엌에서 함께 일하면 한집안이거나 미워한다

225


웍을 불 쪽으로 살짝 기울여서는 불맛까지 입히는 것이 여지없는 고수의 솜씨였다

→ 우묵이를 불 쪽으로 살짝 기울여서는 불맛까지 입히니 대단하다

230


하지만 이 작업이 시종일관 형벌이기만 한 건 아니다

→ 그러나 이 일이 늘 힘들기만 하지는 않다

→ 그런데 이 일이 내내 고되지는 않다

302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지점에 서게 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그곳을 생각하게끔 북돋아야 한다

→ 사람들이 그곳을 바라보게끔 이끌어야 한다

38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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