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의 언어 -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읽고 쓰는 삶
메리케이 윌머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돌베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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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1.

까칠읽기 8


《서평의 언어》

 메리케이 윌머스

 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2.6.30.



《서평의 언어》(메리케이 윌머스/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2)를 읽었다. “○○의 언어”는 무늬만 한글인 일본말씨이다. 우리는 니콘·캐논 같은 데에서 내놓는 찰칵이를 쓸 뿐, 우리 손으로 찰칵이를 내놓지는 못 하지만, “서평의 언어”라는 일본말이 아닌 “서평하는 말”이나 “책을 말하다”나 “책말”이나 “책을 읽는 말”이나 “책읽는 낱말”처럼 우리말을 쓸 수 있다. 애써 한글로 옮긴 글자락이되,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너무 춤춘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안 쓸까? 우리는 왜 우리말씨를 안 살필까? 일본이 바다에 더럼물(오염수)을 버리는 바보짓이 얼마나 사나운 줄 안다면, 미처 가다듬지 못 한 글결로 꾸러미를 여밀 적에 ‘생각을 짓는 길’하고 동떨어진 줄 느낄 만하지 않은가. 요새 다들 이런 일본말씨에 옮김말씨를 쓴다고도 여기는데, 이런 마음이라면 일본이나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바다에 더럼물을 함부로 버리는 짓도 매한가지이다.


22쪽에 나오는 “내가 화가 나면 아이는 식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위기에 처한 아이는 화가 났다”를 돌아본다. 어떤 엄마아빠가 이런 말을 쓰겠는가? “내가 성을 내면 아이는 굶고, 굶는 아이도 성이 난다”처럼 우리말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빌 뿐이다.


ㅅㄴㄹ


내가 화가 나면 아이는 식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위기에 처한 아이는 화가 났다. (22쪽)


이 책에는 “손이 깨끗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책을 만지지 마시오”, “책을 절대 바닥에 떨어뜨리지 마시오” 같은, 독학자를 위한 ‘책 사용 시 주의 사항’이 실려 있다. (한때 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존중받았단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다) (60쪽)


칭찬은 서평가들에게 무엇보다 어려운 과업이다. (100쪽)


#HumanRelationsandOtherDifficulties #Essays #MaryKayWilmers


+


원하는 만큼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 바라는 만큼 모임을 못 하다가

→ 뜻하는 만큼 모이지 못 하다가

7쪽


지금보다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 요새보다 더 고갱이를 차지하였다

→ 요즘보다 더 큰몫을 차지하였다

→ 오늘날보다 더 기둥이었다

→ 오늘보다 더 알짬이었다

8쪽


그는 글쓰기에 지난한 노력과 에너지를 쏟았으며

→ 그는 글쓰기에 고되게 힘을 쏟았으며

→ 그는 고단할 만큼 글을 썼으며

→ 그는 고되도록 글을 썼으며

9쪽


단순히 책 한 권을 요약했다기보다 세상 전체를 통찰하는 것이리라

→ 그저 책 하나를 간추렸다기보다 온누리를 아울렀다

→ 그냥 책 한 자락을 추렸다기보다 온넋을 헤아렸다

11쪽


대상에 양가적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없었더라면

13


출산이란 이처럼 축하받고 싶은 소망이 상식을 압도해 버리는 함정으로 가득한 일이다

19


설상가상인 것은 좋은 어머니처럼 행동한다 해도 결코 충분치 않다는 점인데

20


발기부전에 대해 가진 공포에 그토록 공감했던 적이 없었다

21


내가 화가 나면 아이는 식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위기에 처한 아이는 화가 났다

→ 내가 성을 내면 아이는 굶고, 굶는 아이도 성이 난다

→ 내가 이글거리면 아이는 쫄쫄 굶고, 아이도 이글거린다

→ 내가 짜증내면 아이는 굶어야 하고, 아이도 짜증난다

22쪽


여든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 여든넷에 떠났으니

→ 여든넷에 이 땅을 떠났으니

25쪽


과한 표현을 쓰면서도

→ 부풀리면서도

→ 추켜세우면서도

28


부고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취미마저도 등한시해 온 듯한데, 이 또한 아비규환 때문일지 모르겠다

33


대체로 어떤 업이 가진 광휘를 한층 더 빛내주기 위해 쓰인다

38


배럿의 지휘 아래

→ 배럿이 이끌어

→ 배럿이 꾸려서

53


초판 복각본을 발행했다

59


사건은 특정 단어, 특히 도덕과 예의범절에 관한 단어의 의미가 세월이 흐르면서 꾸준한 사용을 통해 고착화된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59


편찬자의 즐거움은 어디에나 묻어 있다

→ 엮은이는 어디서나 즐거웠다

→ 엮은 내내 즐거운 듯하다

67쪽


이런 의견들 가운데 딱히 시류에 맞는 것은 없었고

70


잠깐 부끄럽고 말 수준이 아니라 영원한 고갈을 불러일읔는 종류의 빈곤함을 지닌 졸작이다

86


위 인용문 속 괄호는

→ 이 글에서 묶음은

→ 여기에서 묶음칸은

90


혼란에 빠진 작가가 핍진성을 부정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91


칭찬의 어휘는 한정되어 있기에 같은 표현이 주야장천 등장하지만

100

101


동료들이 큰 자각 없이 사용하는 클리셰를 피하고자 선택하는 표현들 역시 금세 또 하나의 클리셰가 된다

101


정부를 두는 것은 말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이들은 할 수 있으나

→ 딴님을 두려면 말을 두듯, 돈있는 이는 할 수 있으나

→ 뒷님을 두자면 말을 두듯, 돈이 있으면 할 수 있으나

203


그들이 원하는 사회적 성공이라면 물론 오로지 돈으로만 거머쥘 수 있는 종류의 성공이고

209


명성은 순식간에 쏟아지듯 밀려왔다

→ 이름값은 확 생겼다

→ 이름은 갑자기 치솟았다

38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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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 제네릭 로맨스 2 - S코믹스 S코믹스
마유즈키 준 지음, 김현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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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만화책 2024.5.19.

까칠읽기 6


《구룡 제네릭 로맨스 2》

 마유즈키 준

 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21.10.6.



《구룡 제네릭 로맨스 2》(마유즈키 준/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21)을 읽은 지 한참 지났다. 첫걸음을 읽으면서 굳이 두걸음을 읽어야 할까 여겼으나, 두걸음을 읽었고, 석걸음부터는 애써 더 읽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못 그린 줄거리는 아니라고 본다만, 이제 사라진 홍콩 ‘구룡성’을 그리고픈 마음에 기대어 얼기설기 짜맞추는 틀이 썩 와닿지 않았다. 그림님은 개미굴에서 살아 보았을까? 꼭 살아 보았어야 그림으로 담아야 하지 않을 테고, 살아 보았더라도 누구나 다르게 바라보고 담아내겠지. 큰소리뿐 아니라 작은소리마저 위밑옆에서 끝없이 스미는 다닥집은 ‘만화하고 다르’다. 어쩌면 구룡성 같은 다닥집살이야말로 ‘만화 같다’고 할 수 있겠지.


ㅅㄴㄹ


#九龍ジェネリックロマンス #眉月じゅん


가게 개척은 당신 혼자 마음대로

→ 가게찾기는 그대 혼자 마음대로

→ 가게둟기는 너 혼자 마음대로

8


섣불리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납득이 되지

→ 섣불리 곧이 말하지 않을 만하지

→ 섣불리 속내를 말하지 않을 만하지

51


자연스럽게 레이코가 각성하는 걸 기다리는 편이 좋지

→ 부드럽게 레이코가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 가만히 레이코가 눈뜨기를 기다려야지

51


그럼 나안으로만 검사하겠습니다

→ 그럼 맨눈으로만 보겠습니다

87


안티에이징은 여러 코스가 있네

→ 안늙기는 여러 길이 있네

→ 젊음길은 여러 갈래가 있네

→ 

14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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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매뉴얼
예신형 지음 / 부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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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4.

까칠읽기 5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메뉴얼》

 예신형

 부키

 2019.4.22.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메뉴얼》(예신형, 부키, 2019)이라는 책은 이름부터 눈을 끈다. 덥석 집어서 읽는다. 그런데 첫 대목부터 쓸쓸하다. 글쓴이는 “아빠가 자전거를 찾아올” 테니 “딸은 그저 타려고 하면 된다”고 말한다. 첫머리부터 잘못 꿰는구나. 자전거는 아빠(남성) 혼자 찾아올 살림이 아니다. 저잣마실을 갈 적에 엄마(여성)처럼 꼼꼼하게 이모저모 살피고 따지고 견주면서 헤아려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덥석 살 자전거가 아니다. 몇 날 며칠뿐 아니라, 달포나 한두 해에 걸쳐서 “어떤 자전거를 살까?” 하고 함께 알아볼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전거를 빌려서 타기”부터 할 일이고, 빌려서 타 보는 동안에 “아이 몸과 마음에 맞는 자전거를 바로 아이부터 스스로 알아야 하고, 곁에서 어버이도 나란히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이 책은 ‘사서 쓰기(소비)’에서 그쳤다. 아무래도 글쓴이와 딸아이와 곁님은 ‘서울(도시)’에서만 살아갈 듯하니, ‘착하고 슬기로운 도시 소비자’라는 길을 살피는구나 싶은데, ‘도시 소비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눈으로 볼 노릇이라고 느낀다. 이 책에 한 줄로조차 안 나오지만, 자동차를 장만하려면 ‘자동차 기본정비’도 익힐 노릇이다. 옷을 장만하려면 ‘옷 빨래와 손질’도 익혀야 하지 않나? 빨래틀(세탁기)을 장만해 놓고서 ‘빨래틀 돌리기’뿐 아니라, ‘세탁기 기본정비·청소’를 안 익힌다면 어찌 되겠는가? ‘배롱빛 바지’를 사서 입다가 찢어지면 버리나? 바느질을 익혀서 찢긴 데를 기워야 하겠지? 그러니까, “자전거 타기”에 반드시 뒤따를 여럿 가운데 하나로 “자전거 손질(정비)과 닦기(청소)”가 있는데, 이 책에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전거 손질과 닦기”는 아예 못 쳐다본다. 글쓴이는 자전거를 새로 샀는지 궁금한데, 모든 새 자전거에는 “자전거 길잡이책”이 딸려 나온다. 5만 원짜리이든 100만 원이나 1000만 원짜리이든 “자전거 회사에서 짜맞추어 파는 모든 자전거”에는 “자전거 길잡이책”이 붙어서 나오고, 이 길잡이책을 읽으면 누구나 집에서 가볍게 손질하는 길을 비롯해서, 안장과 손잡이 높이 맞추기라든지, 기본 교통 법규·지식과 안전장구 이야기도 꽤 꼼꼼하게 나온다. 이밖에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철철 넘치지만, 더 말하지는 않기로 한다. 부디 글쓴이가 스스로 깨닫기를 빈다. 자전거는 딸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들아이한테도 어떻게 타야 ‘사람다운지’ 짚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페달을 마구 밟아” 주면 된다고 9쪽에 적는데, 발판을 마구 밟으면 자전거는 비틀거리다가 콱 넘어지거나 자빠지거나 다른 자전거를 처박고 만다. 자전거를 제대로 타려면, 발판을 부드럽고 가볍게 밀고 당겨야 한다. 삿대를 젓듯 천천히 바람을 타면서 슬슬 밟기에 자전거가 바람을 부드러이 가르면서 알맞고 아름답게 나아간다.


ㅅㄴㄹ


아빠가 자전거를 구해 올게. 너는 ‘자전거 타기’만 시작하면 돼

→ 아빠가 두바퀴를 찾아올게. 너는 ‘두바퀴 타기’만 하면 돼

→ 아빠가 두바퀴를 사올게. 너는 ‘두바퀴 타기’만 해보면 돼

8


출발시킨 뒤에, 다른 발을 맞은편 페달에 얹고 마구 밟아 주면 돼

→ 굴린 뒤에, 다른 발을 맞은쪽 발판에 얹고 부드럽게 밟으면 돼

9


그건 확실히 정상이 아니지

→ 참말로 엉터리이지

→ 아주 얄궂지

→ 몹시 어긋났지

11


배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딱 붙는 핑크색 바지라니

→ 배 나온 아저씨가 딱 붙는 배롱빛 바지라니

19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여자다움이라는 허상을 좇아

→ 막상 있지도 않는 순이다움이라는 허깨비를 좇아

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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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 - 냄새의 언어로 나무를 알아가기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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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3.

까칠읽기 4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24.4.24.



나무 내음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깊이 스며 있다

→ 나무 내음은 우리 삶에 스민다

→ 우리 삶은 나무 내음이 깊다

8쪽

: ‘스미다’는 ‘깊이’ 있다는 뜻이다. 깊이 들어가기에 ‘스미다’이니, “깊이 스며”는 겹말이고, “스며 있다”는 옮김말씨이다. ‘우리의’에서 ‘-의’는 군더더기이다. ‘일상생활’은 일본말이다.



과수원과 숲의 냄새를 우리 집에 가져다준다

→ 과일밭과 숲냄새를 우리 집에 퍼뜨린다

8쪽

: 냄새는 ‘퍼지’거나 ‘퍼뜨린’다. 과일밭과 숲에서 냄새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얄궂은 옮김말씨이다.



코를 킁킁거리며 우리의 사촌인 나무와의 감각적 관계 속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라

→ 코를 킁킁거리며 우리와 이웃인 나무와 만나자

→ 코를 킁킁거리며 우리 이웃인 나무를 만나자

9쪽

“나무와의 감각적 관계 속으로 +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라”를 돌아본다. 나무와 만날 적에는 느껴(감각)야겠지. “느끼는 사이를 이루도록 여행 준비”를 하자고 글멋을 부릴 수 있겠지. 그런데 “코를 킁킁거리며”라는 말에 이미 “감각적 관계 속”이라는 뜻이 스민다. “코를 킁킁거리”면서 “우리 이웃”인 “나무를 만나자”고 하면 된다.



향기 분자 수십 가지, 어쩌면 수백 가지의 찰나적 인상을 묘사하기 위해 형용사와 비유가 동원되지만

→ 향기알 가지가지, 어쩌면 온갖 가지로 이 한때를 그림씨로 담아내고 빗대지만

→ 향기씨앗 갖가지, 어쩌면 숱하게 이 댓바람을 그려내고 견주지만

15쪽

: 옮긴이는 ‘내음’과 ‘향기’를 섞어서 쓴다. 우리말은 ‘내·내음·냄새’이고, 맡기에 즐거운 내음을 ‘향긋하다’로 나타낸다. 우리말 ‘향긋하다’하고 한자말 ‘향기’는 소리 ‘향’이 같지만, 뿌리는 다르다. 나무 한 그루를 알아가려고 하듯이, 우리말 한 마디를 알아보려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문득문득 어느 한때를 알맞게 그리고 빗대어 볼 만하다.



친구들과 유쾌하게 어울리던 기억을 소환한다

→ 동무와 즐겁게 어울리던 일이 떠오른다

16쪽

: ‘소환’은 일본말이라고 여길 만하다. 일본말이기에 안 써야 할 까닭은 없다. 그저 이 글월에서는 어릴 적에 동무하고 즐겁게 어울리던 일을 ‘떠오른다’나 ‘떠올린다’로 적을 적에 ‘어울릴’ 뿐이다.



이 연결은 또한 생태적이고 역사적이다

→ 이 또한 숲빛으로 오래 이어왔다

→ 이 또한 푸르게 여태 이어왔다

18쪽

: 일본말씨인 ‘-적’을 붙이고 싶다면 어쩔 길이 없지만,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리자는 책이라면, 좀 푸른말과 푸른길을 생각해야지 싶다.



여름의 온기가 찾아오면

→ 여름이면

→ 여름에 더우면

→ 여름이 오면

23쪽

: 더운 철이라서 ‘여름’이다. 일본말씨에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차라리 “여름의 열기”가 맞을 텐데, 이 자리에서는 “여름이 오면”이나 “여름이면”으로 적으면 된다.



미국피나무의 향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벌을 비롯한 곤충을 위한 것이다

→ 미국피나무는 사람이 아니라 벌과 풀벌레한테 향긋하다

→ 미국피나무는 사람보다는 벌과 풀벌레한테 향긋하다

27쪽

: 어느 나무이건 사람한테도 이바지하고 벌한테도 이바지한다. 꼭 누구를 콕 집어서 이바지하는 나무이지 않다.



인도와 교외 주택 사이의 좁고 긴 풀밭에서 신선한 목재 칩 더미 앞에 무릎을 꿇는다

→ 거님길과 모퉁이집 사이 좁고 긴 풀밭에 있는 나무조각더미 곁에서 무릎을 꿇는다

31쪽

: 일본말 ‘인도’는 ‘거님길’로 바로잡아야 알맞다고 퍽 예전부터 숱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손질했다.



세 그루가 더 벌목되었다

→ 세 그루가 더 잘렸다

→ 세 그루를 더 베었다

32쪽

: 나무 자리에서 보면 ‘잘리다’이다. 사람 자리에서 보면 ‘베다’이다. ‘-되다’는 잘못 쓰는 옮김말씨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생태적으로 더 협소한 토대 위에 지어져야 한다

→ 이제 더 줄어든 풀숲에서 지어야 한다

→ 이제 더 졸아든 풀빛으로 지어야 한다

35쪽

: 풀숲이 줄어든다. 푸른 터전이 사라진다. 무엇을 지을 적에는 ‘터전’에서 짓는다. “터전 위”에서 안 짓는다. “협소한 토대 위에”는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섞인 슬픈말씨이다.



전 세계의 나무들이 우리 삶에서 어우러진다는 사실을 우리의 코와 혀에 일깨운다

→ 온누리 나무가 우리 삶에서 어우러지는 줄 코와 혀로 느낀다

47쪽

: 말짜임이 어긋난다. 이 글은 ‘사실을’을 임자말로 삼는데, ‘나무가’로 임자말을 바로잡아야 알맞다. “사실을 … 일깨운다” 같은 옮김말씨를 “나무가 …을 하는 줄 (사람이) 느낀다”로 손보아야, 이 글 앞뒤 이야기하고 어울린다.



나무들이 하늘로 뿜어내는 거대한 날숨은 비의 단초가 된다

→ 나무가 하늘로 날숨을 잔뜩 뿜어내기에 비구름이 모인다

67쪽

: 우리말씨로는 ‘-들’을 안 붙이기 일쑤이다. “비가 온다”라 한다. “비들이 온다”라 안 한다. “나무가 우거진 숲”일 뿐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라 안 한다. “잎이 푸르다”일 뿐, “잎들이 푸르다”가 아니다. “-의 단초가 된다”는 일본말씨하고 옮김말씨가 섞였다.



백미러에 매달린

→ 뒷거울에 매달린

71쪽

: 일본말 ‘백미러’를 섣불리 쓰지 말자. 이미 ‘뒷거울’로 고쳐써야 알맞다고 서른 해쯤 앞서부터 둘레에서 이야기한다.



…… …… 손볼 곳이 수두룩하다. 두 손을 들었다. 나무하고 풀하고 꽃이 사람 곁에서 어떻게 푸르게 우거지는지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기를 빈다. 어느 나무도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어느 풀도 일본말씨를 안 쓴다. 어느 꽃도 옮김말씨를 안 섞는다. 이웃말은 이웃말결대로 살피면서, 우리말은 우리말결대로 살리는 손길로 나아갈 적에 비로소 나무내음도 풀내음도 꽃내음도 온누리를 포근하게 어루만지리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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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지음 / 정은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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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3.

까칠읽기 3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정은문고

 2024.3.25.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박순주, 정은문고, 2024)를 부산 어느 마을책집에서 읽었다. 처음에는 사려고 집었다가, 서서 다 읽고는 얌전히 내려놓았다. 몇 가지를 짚어 본다. 먼저 ‘고서점’은 일본말이다. 우리말은 ‘헌책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헌책방’이 올림말로 나온다. ‘헌책집’이라는 낱말은 이곳을 오래 드나들던 책손하고, 이곳을 오래 꾸린 책집지기가 썼다. 나는 1992년부터 헌책집을 드나들었는데, 이른바 일제강점기부터 헌책집을 드나든 할배라든지, 서른 해 남짓 헌책집을 꾸린 어르신은 ‘입말’로 ‘책집’이나 ‘책가게’라는 이름을 쓰셨다. 그리고 이분들은 ‘헌책집·헌책가게’처럼 ‘헌-’을 앞에 붙여서 쓰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수수하게 ‘책집·책가게’라고만 했다. 다만, 나는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표준국어대사전 올림말’인 ‘헌책방’이라는 낱말만 썼다가, 한참 뒤에 이르러서야 ‘헌책집’이라는 입말로 바로잡았고, ‘손길책집·손빛책집’처럼 새롭게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미 헌책집지기를 그만두거나 돌아가신 숱한 어르신한테서 “예까지 와서 책을 사는 분들은 그냥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아니야. 다들 한가닥 하는 지식인이거나 학자 분이시지. 그런데 이분들이 책을 살 때면 왜 이렇게 값을 후려치려고 하는지 몰라. 그래서 우리 집(책집)도 간판에 한자로 ‘고서점’이라고 적었어. ‘헌책’이나 ‘헌책집’이라고만 하면 어쩐지 무시하더라고. ‘헌책’이라고 하면 값싸게 50원이나 100원짜리 책이라고 여기고, ‘고서’라고 하면 10만 원이나 100만 원 책값을 불러도 안 비싸다고 여기더라고.” 같은 말을 익히 들었다.


나는 가난한 책벌레라서 일본마실은 엄두도 못 냈다. 아니 ‘책값을 안 쓰’면 일본마실이야 어렵잖이 할 수 있었다. 날마다 우리나라 온갖 책집을 여러 군데 들러서 책값을 써대니, 날개를 타고서 이웃나라로 마실할 짬이란 아예 없었다. 이러다가 2001년부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과 자료조사부장 두 가지를 맡아서 했는데, 일터에서 ‘일본 출장’을 딱 한 판 보내 주었다. 출장을 보내 준다기보다는, 일터지기(출판사 대표)가 일본으로 ‘책을 사러 다녀오’는 길에 짐꾼 노릇이었다. 요새는 날개에 짐을 마음껏 못 싣지만, 2001년에는 ‘스스로 짊어질 수 있으면 200킬로그램’이 넘어도 짐으로 부칠 수 있었고, 돈을 더 안 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2001년에 도쿄 간다 책골목으로 ‘짐꾼으로 출장’을 다녀올 적에 200킬로그램이 넘는 책꾸러미를 혼자 이고 지고 날라서 나리타나루로 갔고, 김포나루에 내려서 우리 일터까지 옮겼다. 이 짐꾼 노릇으로 쌔빠지는 줄 알았지만, 처음으로 일본책집을 돌아보았고, 간다(진보초) 책골목이 어떠한 책빛인지를 비로소 알아보고는 “사장님, 해마다 짐꾼으로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었지만, 이듬해부터 ‘공항 수하물 요금’이 바뀌어서 더 일본마실을 못 했다. 왜냐하면 2001년 9월에 미국에서 터진 어느 일 탓에, ‘공항 수하물 규정’이 까다롭게 바뀌었고 ‘무게 제한’이 생겼다.


이러다가 2018년에 드디어 목돈을 스스로 모아서 두걸음째 간다 책골목을 누릴 수 있었고, 열여덟 해가 흘렀어도 한결같이 빛나는 책숨을 고루 느끼면서 “우리나라는 서울 청계천도 부산 보수동도 인천 배다리도 대전 원동도 청주 중앙시장도 광주 계림동도 대구 대구시청도 전주 홍지서림 둘레도, 나라뿐 아니라 지자체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하나도 안 살렸구나” 하고 느꼈다. 그러나 나라하고 지자체가 도와야 살아나지 않는다. 일본하고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 책 곁에 어떻게 서느냐 하는 품새부터 다르다. 일본 책집지기 곁에는 ‘수수한 책벗’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 책집지기 곁에는 ‘수수한 책벗’이 너무 적다. 우리나라에서 ‘책 좀 읽는다’는 분들치고서 ‘그분이 살아가고 일하는 마을에 있는 작은 헌책집을 한 달에 하루라도 드나들면서 책빛을 품는 분’이 드물어도 너무 드물다. 한 달에 하루는커녕 몇 해에 한 걸음조차 안 하는 ‘책 좀 읽는다’는 분이 넘친다.


생각해 보자. 도서관에 놓인 책이 헌책집에 꽂힌 책보다 먼지가 많이 쌓이고 손때를 더 많이 타서 지저분한 줄 몇 사람이나 눈치를 챌까? 헌책집지기는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책을 닦고 먼지를 턴’다. 이따금 ‘책먼지를 안 닦고 안 터는 헌책집지기’가 있다. 책먼지를 굳이 안 닦고 안 터는 헌책집지기는 “그냥 사람들이 더 싸게 사가기를 바라서 그냥 둬요.” 하시더라. 우리나라 도서관지기는 “책을 닦고 손질하기”를 하는 일에 어느 만큼 품을 들일까? 아예 안 하지는 않으리라만, 헌책집지기처럼 품을 들이는 곳을 아직 못 봤다. 헌책집에는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이 드나든다. 그래서 정갈하게 닦고 손질한 책은 이내 사라진다. 도서관에는 ‘책을 빌려 읽으러’ 오는 사람이 북적인다. 그래서 그야말로 손때를 많이 타고, 학교도서관을 보면 ‘책이 아닌 넝마’가 뒹굴기 일쑤이다.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너무 겉만 훑었다고 느꼈다. 겉훑기인 책을 굳이 사야 할 까닭이 없었다. 빛꽃(사진)도 아쉽다. 책집지기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얼거리에 치우친 나머지, 막상 다 다른 책집마다 어떻게 다 다른 책을 건사해서 다 다른 책손을 맞이하는가 하는 대목을, ‘글쓴이 스스로 느끼고 읽고 알아보면서 담아내지 못 했’다.


나는 1998년부터 오늘날까지도 ‘책집 빛꽃(사진)’을 찍는다. 나는 가고 또 가고 자꾸 가는 책집에서 늘 새롭게 찍는다. 여러 헌책집에서 그곳 하나를 찍은 사진만 이미 1만이 넘어가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그 헌책집을 다시 찾아가면 또 새롭게 찍을 빛(모습)을 느껴서 다시 찰칵찰칵 담는다.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책을 너무 서둘러서 내려 한 티가 흐른다. 글도 빛꽃도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오래오래 단골로 드나드는 마음으로 여미고 담을 적에는 확 다르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다 다르게 책집마실을 해보자. 철마다 다르게 빛살을 느끼고 책을 만난다. 아침에 가 보고 낮에 가 보고 저녁에 가 보자. 때마다 다르게 빛발을 알아채고 책을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 책집 한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닐곱 시간쯤 가만히 머물면서 책을 읽어 보자. 이렇게 예닐곱 시간쯤 어느 책집에 머물면서 “이 책집에 깃든 책을 샅샅이 읽어” 가 본다면, 이동안 “아, 이곳을 빛꽃으로 담을 적에는 어떤 결을 살피면 되겠구나” 하고 다 다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아이를 빛꽃으로 담을 적에도 매한가지이다. 아이는 하루 내내 끝없이 노래하고 춤추면서 다 다른 빛이다. 아이를 찰칵찰칵 찍을 적에는, “아이 하루”만으로도 두툼한 사진책 한 자락이 태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헌책집뿐 아니라 일본 헌책집을 놓고서도 똑같다. 더구나 간다 책골목 아닌가? 2024년에는 간다 책집이 몇 곳인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2001년에 책숲마실을 하던 무렵에는 헌책집이 161군데였고, 2018년에 책숲마실을 하던 때에는 150군데 즈음이었다. 적게 잡아도 100은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이 많은 헌책집 가운데 몇 군데 이야기를 담아내려 했는가? 100이 훌쩍 넘는 헌책집이 다 다르게 모이면서도 다 다른 하나로 어울리는 책빛을 어느 만큼 느긋하게 지켜보고 살펴보면서 얹으려고 했는가?


이리하여 나는 이 책에 ‘별 하나’조차 아깝다고 느낀다. 왜 이렇게 책을 서둘러서 냅니까? 왜 이렇게 헌책집을 겉훑기만 하고서 섣불리 글과 빛꽃으로 담습니까? 내가 헌책집을 1992년부터 다니면서 헌책집지기와 이웃 책손한테서 배운 숱한 살림 가운데 하나를 옮기면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젊은이!” “네?” “젊은이는 여기 단골인가?” “단골이요? 턱도 없지요. 이제 겨우 열 해쯤 다녔을 뿐인데요.” “그래? 그렇지. 그러면 누가 책집 단골일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으니 어르신이 가르쳐 주십시오.” “자, 보라고. 날마다 여기를 드나들어도 책을 안 사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은 단골일까?” “음,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자, 그러면 여기에 가끔 와서 책을 한 트럭씩 사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은 단골일까?” “아, 그런 사람은 단골이 아니지요.” “어느 책집을 놓고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말이야, 적어도 스무 해에 걸쳐서 꾸준히, 그러니까 이레에 하루씩은 찾아와서 그 책집에서 2000권은 사서 읽어야 해. 그리고 제대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러면, 그 책집을 서른 해에 걸쳐서 꾸준히 드나들면서 그곳에서 사읽은 책이 3000권이 넘어야 해.” “아, 그럴 만하겠네요. 저는 이곳에서 산 책은 이미 3000권이 넘기는 했지만, 아직 스무 해쯤 더 다녀야 비로소 단골일 수 있겠네요.”


ㅅㄴㄹ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왔을 때가 기억난다. 오래된 습한 공기에 섞인 쾨쾨한 종이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 아직도 생생하다 …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임을 후각에서부터 상기시키는 그 특별한 냄새 말이다. (11쪽)


레트로한 분위기에 반해 젊은이들을 비롯해 남녀노소가 찾아온다. (33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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