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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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2.1.

까칠읽기 53


《랩걸》

 호프 자런

 김희정 옮김

 알마

 2017.2.16.



《랩걸》(호프 자런/김희정 옮김, 알마, 2017)은 어떤 책일까? 2025년이면 어느덧 여덟 해가 지났으니, 이제 까칠글을 쓸 때라고 느낀다. 영어 “Lab Girl”을 그냥 한글로만 적으면 뭔 책인지 어떻게 알까? 지난 2017년에 책이름부터 영 엉망이라고 둘레에 말했더니 ‘줄거리’를 읽으라고 핀잔을 하더라. 그래서 줄거리를 읽으면서 ‘옮김말’이 너무 얄궂다고 말했더니 ‘줄거리에 담은 여성과학자 목소리’를 읽으라고 나무라더라.


나는 ‘여성과학자 목소리’가 아닌 ‘과학자 목소리’하고 ‘여성 목소리’를 따로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둘레에 《나무 위의 여자》(줄리아 버터플라이 힐)나 《나무 위 나의 인생》(마거릿 D.로우먼) 같은 책을 아느냐고, 이 두 가지 책에 나오듯 ‘과학과 삶과 사랑과 숲’을 나란히 짚는 얼거리라면 반갑게 읽겠다고 대꾸했는데, 이 두 가지 책을 챙겨서 읽은 사람을 아직 못 본다. 그래서 《소설 복합오염》(아리요시 사와코)하고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라는 책도 좀 챙겨서 읽어 보라고 얘기하는데,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장만해서 읽는 분도 거의(또는 아예) 못 본다.


《랩걸》은 ‘과학자 엄마’로서 헤매고 고단한 길을 다루는 듯싶으면서도 막상 ‘혼자’ 나아간 발자국에서 맴돈다. 《나무 위 나의 인생》을 쓴 ‘과학자 엄마’는 ‘바보스런 짝꿍’과 ‘바보스런 나라와 대학교와 지식인’을 바꾸려고 용을 쓰다가 그만두기로 하고서, 스스로 조용히 숲으로 갔다. ‘실험실 아닌 숲’에서 ‘과학’과 ‘아이’를 나란히 품으려고 했다.


《랩걸》은 나쁘거나 모자란 책이라고 느끼지 않으나, 어쩐지 목소리만 너무 앞서갔을 뿐 아니라, 풀꽃나무를 ‘사람하고 똑같이 목숨이 있는 이웃’으로는 여기지 않는 마음이 내내 흐른다. 풀꽃나무를 ‘과학실험도구’로 여긴달까. 이런 눈길과 손길이라면 ‘멍청한 남자 과학자’하고 무엇이 다른가? 《슬픈 미나마타》를 쓴 ‘아줌마 소설가’는 ‘할머니 소설가’로 살다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과학은 언제나 부엌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풀꽃나무와 들숲바다와 서울(도시)이 언제나 푸르게 하나인 빛’일 노릇이라는 손길을 펼쳤다고 느낀다.


‘부엌 곁’이란 무엇을 가리킬까? ‘부엌데기’로 살라는 뜻이 아니다. 한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부엌지기’로 어울릴 노릇이라는 뜻이다. 집이라는 보금자리를 이루는 바탕은 부엌이다. 부엌을 누가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서 집살림이 다르다. 부엌일을 안 한다면, 돌이도 순이도 그저 멍청하다. ‘부엌일을 하는 소설가’에 ‘부엌일을 노래하는 과학자’에 ‘부엌일을 사랑하는 대통령’이지 않고서는 온누리가 아름다울 수 없다.


《랩걸》은 책이름부터 엉망이었지만, 몸글이 그야말로 엉망이다. 왜 이렇게 옮겨야 했을까? 왜 우리말씨로 가다듬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군더더기와 알쏭달쏭한 대목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울거리는가? 어느새 우리나라 사람들은 ‘걸’이나 ‘보이’라는 영어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못 밝히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는가? 나는 이제 밥을 지으러 가야겠다.


ㅍㄹㄴ


늦은 저녁이 되면 나는 아빠와 함께 실험실로 향했다. 건물들은 텅 비어 있었지만 모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32쪽)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을 기다린다. (50쪽)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366쪽)


#LabGirl #HopeJahren


+


사실 그 격차는 주로 식물로 인해 생겨난다

→ 이 틈은 거의 푸나무 때문이다

→ 푸나무가 많아서 이렇게 벌어진다

9


작업대 위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반짝이는 은색 노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고

→ 놀이마루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반짝이는 구멍이 나란히 있고

→ 놀이채에는 믿기 어렵도록 반짝이는 대롱이 줄짓고

18


내 실험실은 교회와 같다

→ 내 일터는 절집과 같다

→ 내 일칸은 절이다

36


시간은 나, 내 나무에 대한 나의 눈, 그리고 내 나무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한 나의 눈을 변화시켰다

→ 나, 내가 나무를 보는 눈, 나무가 스스로 보는 눈을 느끼는 내가 하루하루 바뀐다

→ 나, 내가 나무를 살피는 눈, 나무가 저를 보는 눈을 살피는 내가 나날이 바뀐다

49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을 기다린다

→ 씨앗은 싹트기 앞서 적어도 한 해쯤 기다린다

→ 씨앗은 적어도 한 해쯤 기다리고서 싹튼다 

50


씨앗 안의 배아는 자라기 시작하면 일단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던 자세를 곧게 펴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형태를 정식으로 띠기 시작한다

→ 씨눈은 자라는 동안에 가만히 몸을 펴고, 오래도록 기다린 모습이 된다

→ 씨눈은 자라는 사이에 곧게 몸을 펴고서 오래오래 기다리던 꼴로 간다

51


작업대로 돌아가 필요한 물건들을 작업대 앞쪽에 일렬로 나란히 세운다

→ 일판으로 돌아가 자리에 여러 가지를 나란히 세운다

→ 일채로 돌아가 자리에 이모저모 줄줄이 세운다

67


휴식을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나는 몸을 사리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 잘 쉬고 나서 이제 몸을 사리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 푹 쉬고 난 뒤에는 몸을 사리지 말자고 생각하고

72


식물이 처음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새 이파리는 새로운 개념이다

→ 푸나무가 내놓는 잎은 그야말로 새롭다

→ 풀과 나무에 돋는 잎은 참으로 새롭다

96


씨는 닻을 내리자마자 우선순위를 바꿔, 모든 에너지를 위로 뻗어올라가는 데에 집중한다

→ 씨는 닻을 내리면 일머리를 바꿔, 온힘을 줄기에 쏟는다

→ 씨는 닻을 내리자마자 하늘로 뻗어가려고 한다

→ 씨는 싹트자마자 하늘로 뻗는다

→ 씨는 싹트자마자 하늘을 바라본다

96


목재는 강하고, 가볍고, 유연하고, 무독성이며, 날씨의 변화에 강하다

→ 나무는 단단하고 가볍고 부드럽고 깨끗하며, 날씨에도 너끈하다

→ 나무는 튼튼하고 가볍고 보드랍고 정갈하며, 날씨에도 멀쩡하다

115


DNA 염기 서열 분석을 해보면 두 나무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발견할 수가 없다

→ 밑씨 사슬줄을 살펴보면 두 나무는 하나도 안 다르다

→ 씨톨 사슬끈을 들여다보면 두 나무는 다른 데가 없다

134


버드나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 버드나무는 그저 사랑스럽다

→ 버드나무를 이내 사랑한다

→ 누구나 버드나무를 사랑한다

134


덩굴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살아간다. 숲 위쪽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덩굴 씨들은 싹은 쉽게 틔우지만

→ 덩굴은 그때그때 살아간다. 숲에서 비처럼 쏟아내는 씨앗은 쉽게 싹트지만

180


덩굴 식물들이 사악하거나 해로운 존재는 아니다. 다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야심찰 뿐이다

→ 덩굴은 나쁘지 않다. 다만 꿈이 클 뿐이다

→ 덩굴은 안 나쁘다. 다만 다부질 뿐이다

181


낮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인턴 신분인 그녀는 영장류 구역에 배치된다. 캐런의 임무는 원숭이 생식기에 소염제 크림을 바르는 일이었다. 그걸 너무 계속해서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날마다 약을 발라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 낮고도 낮은 돌봄배움이인 캐런은 사람붙이 자리에서 일한다. 캐런은 잔나비 샅에 흰꽃물을 바른다. 그 짓을 자주 해서 마구 다루다 보니 날마다 꽃물을 발라야 한단다

200


유칼립투스들 사이를 지나갈 때면 톡 쏘고 매콤하면서도 약간 비누향 비슷한 냄새에 휩싸인다

→ 아름나무 사이를 지나갈 때면 톡 쏘면서 살짝 비누냄새가 난다

→ 아름나무 사이로 지나가면 매콤하면서 가볍게 비누내음이 난다

238


초짜 교수였던 시절 몇 년 동안 내내 반복해서 학문적 냉소라는 두터운 벽에 부딪히면서 어리둥절해하던 내가 결국 깨달은 것은 이 일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충분한 수의 학자들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학회 참석과 서신 교환, 그리고 엄청난 양의 지적 자기반성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 풋내기이던 몇 해 동안 싸늘하고 두꺼운 담벼락에 부딪히며 어리둥절했다. 이동안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숱한 글바치한테 내가 일할 만한 사람인 줄 보여줘야 했는데, 끝없이 모임을 들락거리고 글월을 쓰고, 자꾸자꾸 나를 돌아보아야 했다

244쪽


또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 또다시 한참 말이 없다

→ 또 한동안 조용하다

250쪽


나는 급정차를 하고, 이 순해 보이는 동네에서 도대체 누가 야구 방망이로

→ 나는 얼른 멈추고, 이 착해 보이는 마을 어느 누가 방망이로

→ 나는 바로 세우고, 이 얌전해 보이는 곳 어느 누가 방망이로

346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 나와 아들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알아내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는 아직 배운다

→ 나와 아들은 너무 다르다. 아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 나는 아직까지 길을 배운다

→ 나와 아들은 다르다. 아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아직도 길을 찾고 배운다

→ 나와 아들은 다르다. 아들과 살아가는 길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는 오늘도 아이하고 삶을 배운다

366


식물을 다루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풀꽃을 다루다 보면 처음과 끝을 가르기가 어렵다

→ 풀꽃나무를 다루면 처음과 끝을 나누기가 어렵다

384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반으로 갈라놔도 뿌리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 웬만한 푸나무는 쩍 갈라놔도 뿌리는 몇 해를 더 살 수 있다

384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녹색’이라는 단어는 ‘자란다’라는 동사와 어원을 같이한다

→ 온누리 어디를 가나 ‘풀빛’이라는 낱말은 ‘자란다’라는 움직씨와 말밑이 같다

→ 모든 나라에서 ‘푸르다’하고 ‘자라다’는 말밑이 같다

→ 어느 나라이든 ‘푸르다’랑 ‘자라다’는 말뿌리가 같다

400


감사의 말

→ 고마움

→ 고마워

→ 고맙다

405쪽


이 책을 쓴 것은 내 평생 가장 즐거운 일이었고,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돕고 지원해준 분들께 감사한다

→ 이 책을 쓰며 대단히 즐거웠다.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우신 분 모두 고맙다

→ 이 책을 쓰면서 몹시 즐거웠다.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우신 분한테 절을 올린다

405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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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 희망엄마 인순이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인순이 지음 / 명진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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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2025.1.29.

읽었습니다 331



  아쉽다고 더 들여다볼 수 있으나, 더 살펴보더라도 이다음에 다시 보면 으레 또 아쉬운 데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오늘 펴는 자리가 그야말로 빈틈없을 수 있는데, 오늘은 마음에 차더라도 뒷날 돌아보면 꼭 어느 곳이 조금 모자랐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날그날 빈틈없이 마친다면 굳이 이튿날 새로 아침을 맞이할 까닭이 없어요. 언제나 일을 덜 마치기에 밤에 느긋이 쉬고서 새벽을 마주하는구나 싶습니다. 《딸에게》를 읽어 보았습니다. 딸한테 남기고픈 말을 그러모았을 텐데, 왠지 ‘이야기’보다는 ‘겉옷’ 같습니다. 딸이건 아들이건 안 사랑하는 어버이가 없을 텐데,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굳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두 나라 시민권’을 얻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돈과 이름과 힘이 있으면 슬그머니 미국으로 갈 테지요. 그런데 참말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미국이 아니라 이 나라 시골이나 들숲메에 깃들어서 “아이가 들숲바람과 멧숨결을 품으며 태어나는 보금자리”를 같이 누릴 일이지 싶습니다. 아이는 어디에서 태어나든 어버이가 곁에서 품으면 됩니다. 미국을 오가며 낳을 목돈이 있다면, 이미 시골집 한 채를 장만하고도 남습니다.


《딸에게》(인순이, 명진출판, 2013.1.20.)


ㅅㄴㄹ


당일 나는 부산으로 내려갔어

→ 그날 나는 부산으로 갔어

22쪽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서운함이 앞서 울컥 눈물이

→ 그 일을 알고 나서 서운해서 울컥 눈물이

25쪽


참 많이 고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너를 낳았다. 원정출산이라고 비난받으리라는 걱정보다 딸을 보호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컸다

→ 참 많이 걱정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너를 낳았다. 먼낳이라고 손가락질받으리라는 걱정보다 딸을 애틋이 지키고 싶었다

30쪽


사랑의 아이러니, 또는 사랑의 어려움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이 때문에 사랑이 엇갈리고 어려운가 싶다

→ 이 때문에 사랑이 얄궂고 어려운가 싶다

95쪽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 누구를 믿는 일이란 무엇일까

→ 남을 어떻게 믿을까

→ 이웃을 어떻게 믿을까

→ 믿는 마음은 무엇일까

13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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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박근혜 지음 / 가로세로연구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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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1.

까칠읽기 52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유영하 엮음

 가로세로연구소

 2021.12.31.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1000원에 사서 읽었다. 이 책을 400원에 파는 분도 있으나, 그래도 1000원은 치러야 할 듯싶어서, 1000원에 파는 헌책집을 만날 때까지 네 해를 기다렸다. 사슬살이(수형생활)를 하던 무렵 사람들한테 받은 글월에 짤막하게 덧글을 남기는 얼거리로 여민 책이다. 박근혜 씨한테 글월을 띄운 분은 하나같이 ‘갇히지 말아야 할 분이 갇혀서 슬프다’고 적는다. 박근혜 씨는 ‘걱정 마시’라고 덧글을 남긴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책을 내도 된다. 어떤 글이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수 없다. 다만, 언제나 한 가지 잣대는 있다. 누구나 어떤 글이나 책을 여미어 내놓을 수 있되, 엉성하거나 어설피 짚은 눈길로 바라보는 줄거리라면, 나무한테 잘못을 빌어야지 싶다.


하나 더 든다면, 잘잘못을 떠나서 핑계와 탓과 타령을 하는 글이나 책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이웃을 헐뜯거나 할퀴거나 깎는 책도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는 47쪽에 “요즘 ‘문빠 탈출은 지능순대로’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하고 띄운 글월을 고스란히 실으면서 비아냥질을 한다. “문빠 탈출은 지능순대로”라고 한다면 “박빠 탈출은 지능순대로”로 똑같이 대꾸할 만하다. 이렇게 서로 할퀴고 싸우는 짓을 누가 여태 일삼아 왔는지 돌아볼 노릇이다. 문빠만 이 짓을 했는지, 박빠는 이 짓을 얼마나 일삼는지, 서로 뉘우치고서 새길을 걸어야 하지 싶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누구는 왼길을 걸을 수 있고, 누구는 오른길을 걸을 수 있다. 어느 길을 걷든 둘 모두 옳다. 그르거나 틀린 길은 없다. 그런데 하나는 알아야 한다. 사람은 외다리로는 못 걷는다. 외다리라면 지팡이를 짚어야 걷는다. 그러니까, 지팡이를 짚든, 두 다리로 걷든, 왼오른이 나란해야 걸을 수 있다. 왼날개만 있는 새도, 오른날개만 있는 새도 못 난다. 그러나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라는 책은 첫줄부터 끝줄까지 내내 비아냥에 비꼼질에 손가락질에 할큄질에 쌈박질을 부추긴다.


박근혜 씨, 이녁은 ‘옛 대통령’일는지 모르나, 이제는 그냥 아줌마이다. 문재인 씨도 그냥 아저씨이다. 누가 더 ‘잘못을 안 뉘우치는지’ 도토리키재기를 해본들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박씨한테는 “그리운 아버지”일 수 있고, 어느 분한테는 “일거리를 내려준 고마운 분”일 수 있는데,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두들겨패고 짓밟고 억누르고 가두고 막말을 일삼은 ‘독재자’에 ‘친일매국노’이기도 하다. 박씨 아버지가 독재자이기 때문에 나쁜놈이라는 소리를 하려는 뜻이 아니다. 이녁 아버지가 어떤 짓을 끔찍하고 모질고 사납게 일삼았는지, 이 민낯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서 ‘팬클럽 회장’ 노릇을 한다면, 박빠하고 문빠가 뭐가 다른가?


박씨는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걸릴 적에 이 영화가 ‘거짓 선동’을 한다고 외치면서 ‘상영 가처분금지’를 걸었지만, 나라(법)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렇겠는가? 이녁 아버지가 일삼은 ‘독재 + 친일부역’은 버젓이 남은 민낯이기 때문이다. 이녁 아버지가 일삼고 저지른 짓을 박씨가 모두 짊어져야 할 까닭은 없으나, “그리운 아버지”라고 외치기만 하면서 ‘팬클럽 회장’ 노릇을 앞으로도 이어가려 한다면, 박씨 스스로 걱정하는 ‘국론 분열’을 외려 부추기는 셈이다. 바로 이녁이 쓰는 글과 읊는 말이 고스란히 ‘쪼갬질 + 쌈박질’로 치닫는 줄 언제쯤 알아차리려는지?


ㅅㄴㄹ


탄핵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동은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 생명이 길지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한 줄기 빛조차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내동댕이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저를 지지하고 믿어주시는 국민이 계시기에 잘 이겨낼 것입니다. (33쪽/박근혜)


요즘 ‘문빠 탈출은 지능순대로’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대통령께서 이루신 4년간의 치적은 일부러 알리려 하지 않아도 청년 실업률 하락과 같은 저들의 실정 때문에 자연히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47족/서울 서초구 서초동 홍○○)


남의 편지를 받으면서 새삼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라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58쪽/박근혜)


올바른 역사교육만이 나라를 분열시키지 않고 국민에게 진실을 찾는 힘을 길러 준다고 믿습니다. (82쪽/박근혜)


만약 법의 공정함으로 김무성, 김성태, 유승민, 문재인, 박지원, 이해찬, 박원순, 임종석, 홍석현 등등, 정말 언급하기도 역겨운 범죄자들을 법대로 심판했다면 그들이 어찌 감히 얼굴을 들고 활보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이토록 커다란 재앙적 피해를 양산할 수 있었겠습니까. (135쪽/천안 동남구 용곡동 윤○○)


+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유영하 엮음, 가로세로연구소, 2021)


정해진 결론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잡아둔 대로 가는 눈가림이라고 여겼습니다

→ 미리 세운 대로 꾸민다고 느꼈습니다

36쪽


따스함과 평온함도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 따스하고 아늑하다고 느낍니다

→ 따스하고 푸근하기도 합니다

39쪽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사심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운 것이 없다면 당당하게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멋대로 밥그릇을 채우지 않았다면 꿋꿋하게 가시밭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함부로 돈에 눈멀지 않았다면 의젓하게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51쪽


님의 편지를 받으면서 새삼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라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 님한테서 글을 받으며 새삼 아버지 일이 떠올리 한때나마 즐거웠습니다

→ 님이 쓴 글월을 받으며 새삼 아버지가 떠올라 한동안이나마 기뻤습니다

58쪽


올바른 역사교육만이 나라를 분열시키지 않고 국민에게 진실을 찾는 힘을 길러 준다고 믿습니다

→ 뿌리를 올바로 가르쳐야 나라가 갈리지 않고 사람들이 참빛을 찾는 힘을 기른다고 믿습니다

→ 우리 발자국을 올바로 가르쳐야 나라가 나뉘지 않고 누구나 참답게 눈뜬다고 믿습니다

82쪽


흔히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합니다

→ 흔히들 삶은 덧없다고 합니다

→ 흔히들 이 길은 봄꿈이라고 합니다

10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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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고전의세계 리커버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외 옮김 / 책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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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책읽기 / 책넋 2025.1.8.

읽었습니다 329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몸짓으로 마음을 나눕니다. 서로 소리를 들려주고 들으면서 마음을 읽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나타내고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말이 발돋움하고, 이 마음을 두고두고 새기려는 뜻으로 글이 태어납니다.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은 ‘글로 담아낸 말’ 이야기입니다. “말은 어떻게 태어났나?” 하고 스스로 묻고 풀어내는 얼거리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루소는 이 책을 ‘글말’로 썼나요, 아니면 ‘입말’로 썼나요? 틀에 갇혀버린 ‘글’로 ‘말’을 다루려 했다면 엉성할 텐데, ‘마음을 담은 말’을 옮긴 글결은 너무 딱딱합니다. 동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웃말을 옮길 수 있을까요? 아이 곁에서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결로 글을 쓸 수 있는가요? 지난날 ‘수글(수클)’로 담아내는 얼거리가 아니라,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을 펴던 수수한 사람들이 일군 ‘암글(암클)’을 바라볼 때라야, 우리도 스스로 우리말빛을 헤아리면서 우리말밑을 알아봅니다.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장 자크 루소/주경복·고봉만 옮김, 책세상, 2002.8.5.)


#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 #JeanJacquesRousseau


ㅅㄴㄹ


우리가 옮겨내려는 말을 정념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생각으로 바꿔볼 필요가 있다

→ 우리가 옮겨내려는 말을 마음이 우리한테 밝히려는 생각으로 바꿔 보아야 한다

31


조응하는 혀와 입천장의 움직임은 주의를 기울여 연습해야 한다

→ 맞물리는 입하늘 움직임은 마음을 기울여서 내야 한다

→ 맞닿는  입하늘은 찬찬히 움직여서 소리내야 한다

35


이러한 말소리의 조합에 박자와 음량의 조합을 더해 보라

→ 이러한 말소리를 엮고 가락과 소리도 여미어 보라

35


더 다양한 음절을 가지게 될 것이다

→ 말마디가 더 늘어난다

→ 낱내가 고루 늘어난다

35


자연 상태의 목소리는 조음되지 않기 때문에 낱말들도 그다지 많이 조어되지 않을 것이다

→ 들빛 목소리는 가다듬지 않았기 때문에 낱말도 그다지 많이 짓지 않는다

→ 숲빛 목소리는 매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낱말도 그다지 많이 엮지 않는다

36


입을 더 음직여 보는 습관을 가졌더라면 훨씬 더 많은 모음을 발견했으리라고 의심치 않는다

→ 입을 더 움직여 버릇했더라면 홀소리를 훨씬 더 찾았으리라고 본다

46


발음기관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 목소리에 길들여진다

→ 소릿길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목소리에 길든다

→ 입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목소리에 길든다

46


그들은 서로 알파벳을 차용했으며

→ 그들은 서로 글씨를 빌렸으며

→ 그들은 서로 글을 돌려썼으며

46


글로 쓰듯이 말을 하면 말하면서 읽도록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글로 쓰듯이 말을 하면, 말하면서 읽는 셈이다

47


만일 글로 씌어졌다면 《일리아스》는 훨씬 덜 음유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음유시인들은 인기가 많지 않았을 것이며

→ 글로 썼다면 《일리아스》를 훨씬 덜 노래했을 테고, 노래꽃님을 그리 반기지 않았을 테며

→ 글로 썼다면 《일리아스》를 훨씬 덜 읊었을 테고, 노래꽃지기는 그리 사랑받지 않았을 테며

51쪽


어떤 민족이 글을 많이 읽고 배울수록 그 민족의 방언은 점차 사라진다

→ 글을 많이 읽고 배우는 겨레일수록 겨레말은 어느새 사라진다

→ 글을 많이 읽고 배우는 사람들일수록 사투리는 차츰 사라진다

52


우리는 무인도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잊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 우리는 외딴섬 사람들이 말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본다

73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함께 일하며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세대가 흐른 뒤에는 그들의 최오의 언어를 거의 보존하지 못 한다

73


전쟁과 정복은 인간 사냥일 뿐이다

→ 싸움과 밟기는 사람사냥일 뿐이다

7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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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우리문학사 재인식 민족문학사연구소연구총서 3
민족문화사연구소 남북한문학사연구반 엮음 / 소명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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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 2025.1.3.

읽었습니다 328



  《북한의 우리문학사 인식》이라는 책은 높녘에서 우리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룬다기보다는 ‘마녘이 높녘을 보는 눈’을 다룬다고 해야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얼핏 보면 ‘높녘에서는 고려나 조선이나 일제강점기를 이렇게 본다’고 다루는 얼개이지만, 하나하나 보면 ‘높녘이 보는 눈길은 틀리거나 어긋났다’고 짚더군요. 왜 높녘 글바치는 고려를 고려로 안 보고 조선을 조선으로 안 보느냐며 나무라는 말이 가득한데, ‘높녘을 나무라는 틀’을 높녘한테도 똑같이 맞추어야 하지 싶습니다. 이 눈길이 맞고 저 눈금은 틀리다고 가를 까닭이 없습니다. 높녘에서는 글 한 줄을 삐끗하면 그대로 골로 갑니다. 높녘 글바치가 왜 글을 오직 글로 못 읽고 못 말하겠습니까. 높녘 우두머리 입맛에 안 맞으면 바로 목아지가 날아가는걸요. 그렇다면 마녘인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글 한 자락을 다 다른 삶에 따라서 다 다르게 읽을 적에 “그래, 넌 시골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숲살림을 지으니까, 넌 그렇게 읽을 만하고, 네 눈길도 맞아.”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밭이 있을까요? “그래, 넌 서울에서 자가용을 모는 삶이니까, 넌 그렇게 읽을 만하고, 네 눈길 그대로 잘 읽었어.” 하고 이야기하는 마음밭만 흘러넘치지는 않나요? “북한의 우리문학사 인식”이라는 책이름부터 그냥 일본말씨입니다. 무늬만 한글입니다. 이제는 글(문학)도 글빗(비평)도 ‘무늬한글’이 아닌 ‘우리말글’로 풀어내는 글바치가 나타나기를 빕니다.


《북한의 우리문학사 인식》(민족문학사연구소, 창작과비평사, 1991.7.20.)

- 북한의 우리문학사 재인식, 소명출판, 2014.12.20.


문학연구가 학문중심주의나 연구자의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고 당대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 또 고전문학 속에서 민중적 영웅이나 애국자의 전형을 찾고 그것을 민중이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고쳐 널리 유포하는 것 등은 매우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연구의 성과가 소수의 연구자들에게 독점되고 있는 남한학계에 많은 점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화가 표기나 문체의 평이함이 아닌, 문학이 현실과 관계할 때 개입되는 많은 매개항의 무시와 등치되어서는 곤란할 터이다. (106쪽)


때문에 그 평가는 각 시기 역사발전 단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이런 점들에 대한 고려 없이 불교나 유교를 부정 일변도로만 취급한다면, 이는 현재의 이념적 요구를 가지고 과거의 역사를 재단하는 비역사주의적인 오류로 귀결될 수도 있다. (192쪽)


다산의 진면목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경직된 이념에 의해 작가의 작품을 재단하는 것은 북한 문학사의 설득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고, 북한 문학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25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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