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 4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만화읽기 . 만화비평 2024.6.10.

까칠읽기 17


《인월 4》

 김혜린

 대원씨아이

 2018.11.30.



《인월》을 넉걸음까지 읽으며 돌아본다. 돌고도는 실타래 사이에서 만나고 갈라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에 어떻게 멍울과 생채기를 담는지 들려주는 얼거리인데, 고려하고 조선 사이를 바탕으로 그린다지만, 뜬금없는 한자말이 너무 잦다. ‘전력누수’나 ‘손익계산’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지난날 썼겠는가? 글바치에 벼슬아치가 자주 나온다고 하더라도, 불교말을 일부러 넣는다고 하더라도, 쓸데없구나 싶도록 한자말을 자주 쓴다. 한자를 자주 써야 예스럽지 않다. 오랜 우리말이나 사투리는 하나도 살릴 줄 모르면서 한자로만 씌우는 말씨는 그리 안 와닿는다. 바닷마을 사람으나 들마을 사람이라면 어떤 말을 쓸까? 그저 수수하게, 그저 들빛과 바닷빛으로 말결을 가다듬는 쪽이 줄거리를 살리는 길일 텐데 싶다.


“글로 남은 지난날”은 다 한문에다가 글바치와 벼슬아치와 임금 삶이었을 테지만, 우리는 오늘날 새롭게 글과 그림을 여미어서 “바닷사람과 들사람 하루”를 그릴 수 있다. 김혜린 님쯤이라면, 이제는 높자리나 우두머리가 아닌 낮자리나 논밭지기 둘레에서 피어나는 들꽃사랑을 그릴 만하다고 본다. 칼부림을 하는 피냄새가 아닌, 숲을 동무하고 별빛을 이웃하는 수수한 사람들이 도란도란 아기를 낳아 돌보는 맑고 밝은 사랑을 글그림으로 담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박연 님이 빚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하고, 김동화 님이 빚은 《황토빛 이야기》를 빼고는, 수수한 아이어른이 빚는 맑고 밝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그림꽃이 거의 안 보인다. 이제 우리가 바라볼 곳을 바꿀 때라고 느낀다. 《인월》 뒷자락을 더 읽을는지 말는지 망설인다. 몇 해쯤 더 지켜보려고 한다.


ㅅㄴㄹ


“놈들, 하나라도 더 죽일 거다.” “죽이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하긴 환호작약, 남이 벤 모가지까지 훔쳐가려고 가승을 떠는 놈들도 있지만. 너, 나무관세음 그거 자주 중얼거리지? 아귀나찰인 척 허세 떨지 말라구.” (20쪽)


“난 고향마을과 소릉원 지키며 살 거다. 벼슬아치들 밑닦개 따위. 아, 내 생각 내 팔자가 그렇다는 거고. 능소 네 팔자는 또 다르지. 너는 아마도 부처님의 군병이니까.” (183쪽)


+


《인월 4》(김혜린, 대원씨아이, 2018)


하긴 환호작약, 남이 벤 모가지까지 훔쳐가려고 가승을 떠는 놈들도 있지만

→ 하긴 신나서, 남이 벤 모가지까지 훔쳐가려고 날뛰는 놈도 있지만

→ 하긴 깔깔대며, 남이 벤 모가지까지 훔쳐가려고 들끓는 놈도 있지만

20쪽


아귀나찰인 척 허세 떨지 말라구

→ 각다귀인 척 거드름 말라구

→ 망나니인 척 떠벌리지 말라구

→ 부라퀴인 척 나발대지 말라구

20쪽


그동안 밀고 당기느라 전력누수가

→ 그동안 밀고 당기느라 힘빠져서

→ 그동안 밀고 당기느라 힘잃어서

26쪽


그야말로 사치스럽고 후안무치한 잡생각이다

→ 그야말로 꼴값에 뻔뻔하고 부질없다

→ 그야말로 배부르고 창피하고 덧없다

→ 그야말로 흔전만전 건방지고 못났다

36쪽


포획한 적의 군마가 1600여 필이 넘었고

→ 저쪽 싸움말을 1600마리가 넘게 잡고

→ 저들 쌈말을 1600마리가 넘게 붙잡고

54쪽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 참으로 놀랍군

→ 듣던 대로이군

→ 그래, 대단하군

56쪽


만약 심심해서 손익계산으로 접근해 봐도 이건 피차가 좋은 거래지

→ 심심해서 돈을 따져 봐도 서로 이바지하지

→ 심심해서 어림해 봐도 서로 쏠쏠하지

186쪽


수수백년 그 구절에 사람들 마음이 움직이는 건 다들 각자 그럴 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겠지

→ 오랜날 이 글월에 사람들 마음이 움직이니, 다 그럴 만한 얘기가 있기 때문이겠지

→ 두고두고 이 대목에 사람들 마음이 움직이니, 다 그럴 만한 뜻이 있기 때문이겠지

18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 곤충 탐구 수첩 - 어느 날 내가 주운 것은 곤충학자의 수첩이었다
마루야마 무네토시 지음, 주에키 타로 그림, 김항율 옮김, 에그박사 감수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8.

까칠읽기 13


《사계절 곤충 탐구 수첩》

 마루야마 무네토시 글

 주에키 타로 그림

 김항율 옮김

 동양북스

 2020.7.15.



《사계절 곤충 탐구 수첩》(마루야마 무네토시·주에키 타로/김항율 옮김, 동양북스, 2020)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제나 벌레 곁에서” 보내는 살림을 들려주는 꾸러미이다. ‘벌레 한살이’를 지켜보기는 하되, 오롯이 ‘생물학자 자리’에 머무른다. 이 꾸러미는 아이가 어른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얼거리로 담았다. 앞서 다른 어른이 갈무리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배우기만 한다.


흔히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이끈다”고 여기지만, “아이가 어른을 가르치고 이끈다”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낀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어른을 가르치면서 이끌려고 태어난다. 어른을 가르치면서 이끌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새롭게 어른 자리에 서면,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새로 태어난 아이”한테서 배운다.


아이는 다른 어른처럼 ‘학자·전문가’로 안 산다. 아이는 언제나 무당벌레말을 하고 하늘소말을 하고 매미말을 한다. 아이는 나비말을 하고 개미말을 하고 거미말을 한다. 이리하여 ‘학자·전문가’로서는 바라보지 못 하거나 느끼지 못 하는 대목을 아이한테서 배우게 마련이다.


나무도 말을 한다. 돌과 모래도 말을 한다. 잠자리와 새도 말을 한다. 그런데 《사계절 곤충 탐구 수첩》에 나오는 아이는 어느 벌레하고도 말을 안 나눌 뿐 아니라, 말을 나누려는 마음부터 없다.


더 들여다본다면, “사계절 곤충 탐구 수첩” 같은 이름이 썩 맞갖지 않다. 어린이한테 쓸 만한 말이 아니다. 무늬는 한글이어도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이다. 철마다 벌레를 지켜보는데, 벌레하고 한해살림을 그리는데, 어린이 눈높이에서 말과 숲과 들살림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생물 + 학’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기를 빈다. ‘숨결 + 곁’이라는 살림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丸山宗利 #じゅえき太?

#丸山宗利じゅえき太?の秘昆?手帳


+


야행성이라서 밤에 가로등 주변을 찾아보면 되는 거였구나

→ 낮눈이라서 밤에 거리불 둘레를 찾아보면 되는구나

→ 낮길이라서 밤에 길불 언저리를 찾아보면 되는구나

6


진한 청색이 더욱 화려해 보인다

→ 짙파랑이 더욱 눈부시다

→ 파랑이 짙어 더욱 빛난다

19


길가의 꽃에 붙어 있던 벌레

→ 길꽃에 붙은 벌레

21


나무쑥갓 위에 앉아 있던 녀석은

→ 나무쑥갓에 앉은 녀석은

21


이제 완연한 봄날이다

→ 이제 봄날이다

→ 바야흐로 봄날이다

24쪽


양배추 같은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식물의 잎과

→ 애벌레 먹이가 되는 동글배추 같은 풀잎과

25


산호랑나비가 옆집 정원에 심겨 있는 파슬리 주변을 날고 있었다

→ 멧범나비가 옆집 뜰에 심은 파슬리 둘레를 난다

28


어미의 사체를 먹으면서 성충으로 자라겠지

→ 어미 주검을 먹으면서 어른벌레로 자라겠지

33


나중에 괭이밥을 보게 되면

→ 나중에 괭이밥을 보면

39


이런 환경이라면 풍뎅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이 커졌다

→ 이런 곳이라면 풍뎅이를 볼 수 있을 듯하여 설렌다

→ 이런 데라면 풍뎅이를 볼 수 있을 듯하여 두근거린다

50


1주일가량 지나서 처음으로 탈피를 하면 2령 애벌레가 된다

→ 이레쯤 지나서 처음으로 허물벗기를 하면 2곬 애벌레이다

→ 이레쯤 지나서 처음으로 허물을 벗으면 2살 애벌레이다

→ 이레쯤 지나서 첫 허물벗기를 하면 2길 애벌레이다

→ 이레쯤 지나서 첫 허물을 벗으면 2벌 애벌레이다

54


몇 그루에서 나무진(수액)이 흐르고 있는 것을 확인

→ 몇 그루에서 나무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다

59


나방을 잡는 데 사용할 라이트 트랩(light trap)을 만들어 주었다

→ 나방을 잡을 때 쓸 빛덫을 꾸려 주었다

→ 나방을 잡는 빛살덫을 엮어 주었다

60

등화채집


물방개도 보고 싶어졌다

→ 물방개도 보고 싶다

69


사육상자 안에 넣어 두면 날개를 다치게 되거든

→ 키움집에 넣어 두면 날개를 다치거든

→ 돌봄집에 넣어 두면 날개를 다치거든

8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노보노 23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정은서 옮김 / 거북이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2024.6.5.

까칠읽기 12


《보노보노 23》

 이가라시 미키오

 서미경 옮김

 서울문화사

 2004.11.20.



《보노보노 23》(이가라시 미키오/서미경 옮김, 서울문화사, 2004)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설 즈음 처음 만났고, 그무렵 일본글을 배우면서 이 그림꽃하고 〈이웃집 토토로〉를 함께 보았다. 일본 그림꽃을 함께 읽으면 일본말을 익히기 쉽다고 했는데, 《보노보노》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말글이 일본말을 익히는 글에 이바지할는지 잘 모르겠다. 《보노보노》는 늘 쌈박질에 괴롭힘질이 춤추는 말씨요, 〈이웃집 토토로〉는 얼핏 따사롭게 보이는 시골마을 모습이지만 막상 일본이 일으켜서 와르르 무너진 이웃나라 시골과 삶터를 등진 얼거리이다. 《보노보노》나 나쁜책이라고는 안 느낀다. 그러나 어린이한테는 안 어울리고, 적잖은 어른한테도 거북할 만하다.


어린이한테 어울리면서 어른한테도 삶을 일깨우면서 살림길을 들려주는 알맞춤한 그림꽃이라면 《도라에몽》하고 《우주소년 아톰》이겠지. 여느 삶자리에서 오가는 일본말을 눈여겨보고 싶다면 《이 세상의 한 구석에》가 어울릴 만하다고 본다.


익살이나 우스개라고 눙친다지만, 툭하면 나오는 발길질이나 사납말로 어떻게 동무로 지낼 수 있을까? ‘때리는 놈’ 자리가 아닌 ‘맞는 쪽’에 선다면, 이런 줄거리를 짤 수 있을까? 얼핏 숲과 바다를 곁에 두는 터전을 그리는 듯싶으나, 굴레 같은 사람살이를 그대로 옮긴 《보노보노》라고 느낀다.


ㅅㄴㄹ


#ぼのぼの #五十嵐三喜夫


계속 이 바위산에서 살고 있어

→ 내내 이 바윗골에서 살아

→ 늘 이 바윗메에서 살아

22쪽


삐뽀 씨의 결혼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계셔

→ 삐뽀 씨가 짝을 맺어서 안 좋아하셔

→ 삐뽀 씨네 꽃살림을 못마땅해 하셔

110쪽


삐뽀 내외를 만나러 갈 거야

→ 삐뽀네를 만나러 갈 테야

→ 삐뽀 집안을 만나러 가

12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장판 오르페우스의 창 18
이케다 리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3.

까칠읽기 11


《오르페우스의 창 18》

 이케다 리에코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9.15.



《오르페우스의 창 18》을 오랜만에 되읽었다. 1975년부터 1981년 사이에 나온 그림꽃을 돌아본다. 내가 태어난 해에 나온 이 그림꽃은 알게 모르게 몰래책(해적판)이 으레 나왔고, 나는 대여섯 살 즈음 몰래책으로 처음 보았을 텐데, 그때에는 ‘러시아사람 이름’이 너무 헷갈려서 줄거리부터 종잡지 못 했고,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쩐지 읽기 버거웠다. 차츰 자라는 동안 문득문득 되읽으면서도 ‘안 쉽네’ 하고 느끼다가, 여러모로 온누리 발자취를 천천히 익히는 동안 ‘왜 이렇게 그렸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웃나라에서는 1975년 무렵에 이렇게 줄거리를 잡고서 이야기를 펴야 했으리라 본다. 우리나라로서도 캄캄한 사슬나라를 풀어내려는 마음을 북돋우는 이런 그림꽃이 있어야 했겠지. 그러나 ‘볼셰비키’나 ‘민중’이라고 말해 본들, 《오르페우스의 창》 또는 《올훼스의 창》은 ‘배고프지도 가난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던 윗님’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그치는 줄거리이다.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드리우면서 언제나 날개옷을 차려입는 이들이 다투는 자리를 그릴 뿐, 지난날 수수하게 흙을 일구며 조그마한 흙집에서 살던 시골사람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브나로드 운동”이 있었는데 얼마나 웃긴가? 스스로 사람들(민중) 사이에 있지도 않으니 이런 말을 외칠 뿐 아니라, 사람들 곁에 여태 다가가지 않고서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한다는 몸짓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람들 사이에 곁에 있고 싶다면 외치지 말자. 그저 어깨동무하면서 두런두런 마을집과 골목집에서 살림을 지으면서 아이를 돌보면서 살아가면 넉넉하다. 총칼을 앞세워야 갈아엎지(혁명) 않는다.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는 시골집 마당에서 나무를 아이하고 함께 심는 손길이 바로 온누리를 갈아엎는(혁명) 씨앗이다.


ㅅㄴㄹ


“네 아들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그들은 또 과연 어떤 역사를 만들어 줄까.” (203쪽)


#池田理代子 #オルフェウスの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작하는 사전
문학3 엮음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31.

까칠읽기 10


《시작하는 사전》

 문학3 엮음

 창비

 2020.12.4.



  《시작詩作하는 사전》을 여민 뜻은 훌륭하다고 느끼지만, 알맹이는 뜻밖에 너무 허술해서 놀랐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글을 쓰면 다 다르게 이야기를 담아내야 맞는데, 이 책에 실린 글은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싶더라.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에,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말해야 맞다. 그래서 예전에는 고장마다 사투리가 달랐고, 고을마다 또 사투리가 달랐고, 마을마다 다시 사투리가 달랐으며, 집집마다 사투리가 달랐는데, 한집에서 엄마아빠랑 아이들 사투리가 새삼스레 달랐다.


  전라북도 사람과 전라남도 사람이 같은 사투리를 쓰겠는가? 터무니없다. 대구사람과 부산사람이 같은 사투리를 쓸까? 말도 안 된다. 인천 남구와 중구와 동구와 북구와 서구 사람이 같은 인천말을 쓸까? 아니다. 인천 남구 숭의동과 용현동과 주안동과 도화동도 인천말이 다른데, 도화1동과 도화2동과 도화3동도 말씨가 다르다.


  왜 사투리는 이렇게 다를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모든 마을이 다르고, 모든 골목이 다르며, 모든 들숲바다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작詩作하는 사전》은 왜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쓴 글 같을까?


  요사이는 ‘글바치(문인·작가)’가 거의 서울에 몰려서 산다. 그리고 웬만한 글바치는 ‘잿집(아파트)’에 산다. 서울 아닌 곳에 살아도 ‘서울바라기’를 하고, ‘서울로(in Seoul)’를 꿈꾼다. 이러다 보니, 오늘날에는 서울글바치도 부산글바치도 글이 비슷하거나 같다. 오늘날에는 광주글바치도 대전글바치도 글이 닮거나 같다.


  모처럼 뜻깊에 “노래를 짓는 꾸러미”를 엮기로 했다면 ‘한 사람’ 같은 글이 아니라, ‘다 다른 목소리와 숨결과 살림과 사랑’을 담아내야 어울릴 텐데, 엮은이도 글쓴이도 이 대목을 놓치거나 볼 마음이 없거나 대수롭잖게 넘겼다고 느낀다. 안타깝고 안쓰럽고 아프다.


ㅅㄴㄹ


나뭇가지 : 하늘에 피어난 산호珊瑚. (37쪽)


노래 : 잊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 (45쪽)


아침 :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공간을 후비고 다니는 사람이 된다. (129쪽)


예배禮拜 : 눈을 뜨면 사라지는 믿음. (1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