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일기 - 산의 시간을 그리다
김근희.이담 지음 / 궁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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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24.

까칠읽기 27


《설악산 일기》

 김근희·이담

 궁리

 2022.5.10.



부산으로 일하러 온 길에 들른 두 군데 마을책집에 《설악산 일기》(김근희·이담, 궁리, 2022)가 있다. 두툼하고 무겁고 38000원 값이 붙은 이 책을 살까 하고 집어서 편다. 고개를 한참 갸우뚱한다. 두 곳에서 읽다가 내려놓았고, 왜 이렇게 아쉬운지 돌아본다.


풀과 꽃과 나무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그릴 수 있다. 요새는 찰칵찰칵 찍고 나서 그림칸(화실)에서 꼼꼼하게 빛깔을 덧입혀 그리는 분이 많은 줄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려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풀을 본 그곳에 앉아서 풀을 그리면 될 텐데. 꽃을 만난 이곳에 서서 꽃을 그리면 되는데.


나무 곁에 선 자리에서 나무를 쓰다듬고 안다가 살그머니 타고 놀면 된다. 그림을 그리기 앞서 나무하고 사귈 노릇이다. 나무는 저랑 볼을 맞대고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이웃을 기다린다. 나무는 꾼(전문가)을 바라지 않는다. 나무는 꾼(화가·예술가·작가)이 싫다. 나무는 어린이가 반갑다. 나무는 어린이 곁에서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그립다.


풀꽃나무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푸른뜰(식물원)에 가서도 그릴 수 있다. 풀꽃나무는 누구나 “우리 집 꽃밭”에서도 그릴 수 있다. 이 책은 《설악산 일기》라고 하는데, 풀도 꽃도 나무도 “설악산 어느 켠에 깃들어서 여러 동무풀과 동무꽃과 동무나무 사이에서 활짝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숨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그릴 바라면 굳이 설악산을 오르내리면서 땀을 뺄 까닭이 있을까?


더구나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들다”고 할 만큼 고단하게 멧길을 오르내려야 할 까닭이 없다. 힘들면 쉬고, 힘들면 그만 오르고, 힘들면 그만두어야 한다. 억지를 쓰려니 엉망이 된다. 어거지를 부리니 엉뚱하게 샛길로 빠진다. 예술이나 창작이나 문화나 운동을 해야 하지 않는다.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펼 일이다.


어린이가 어떻게 그림을 누리거나 즐기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린이는 늘 풀이랑 동무하면서 풀 곁에서 그림을 슥슥 빚는다. 어린이는 먼발치에서 사진을 보고서 그림으로 옮기지 않는다. 어린이는 온마음으로 사랑을 담은 손길을 놀려서 꽃과 나무를 그림으로 담는다. 어린이는 도감도 예술품도 작품도 “안 만든”다.


적잖은 도감과 예술품과 작품은 ‘죽은그림’이라고 느낀다. 사랑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면 숨빛이 죽는다. 사랑을 담으려 할 적에는 투박하건 수수하건 언제나 반짝이면서 아름다워서 ‘그림’이다. 꿈을 그리듯 마음으로 다가서야 비로소 ‘그림’이다.


ㅅㄴㄹ


돌 틈에 서 있는 풀들이 낄낄대는 것 같다.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드니?’

→ 돌틈에서 풀이 낄낄대는 듯하다.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드니?’

→ 돌틈에서 자라는 풀이 낄낄대네. ‘겨우 그만큼 걷고 힘드니?’

21쪽


산속에 들어와 보니, 인간은 풀보다 약한 존재 같다

→ 멧골에 들어와 보니, 사람은 풀보다 여린 듯하다

→ 멧숲에 깃드니, 사람은 풀보다 여리구나

21쪽


잎의 넓이가 좁아서 알아보기 쉽다

→ 잎이 좁아서 알아보기 쉽다

29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잠자리 떼들이 있었다

→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에 잠자리떼가 끝없다

→ 빽빽한 숲에 잠자리떼가 엄청나다

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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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언어
김겨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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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6.20.

까칠읽기 25


《겨울의 언어》

 김겨울

 웅진지식하우스

 2023.11.10.



《겨울의 언어》(김겨울, 웅진지식하우스, 2023)를 어느 〈알라딘 중고샵〉에 갔다가 만났다. 한켠에 수북히 쌓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이 어떻게 새책집 아닌 헌책집(중고샵) 한켠에 무더기로 쌓일 수 있는지 아리송한데, 이 책 곁에는 또다른 날개책(베스트셀러)이 나란히 수북하다. 얼핏 보아도,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읽어 보아도, 틀림없이 새책 맞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이렇게 무더기로 쌓아서 누가 읽거나 사들이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어느 길을 거쳐서 날개책이 새것으로 〈알라딘 중고샵〉 한켠에 잔뜩 들어와서 쌓일 수 있을까?


쇳덩이(자가용) 없이 걸어서 여러 고장을 마실하는 뚜벅이한테는 큰고장에 곧잘 연 〈알라딘 중고샵〉이 쉼터이다. 이곳에 들러서 손전화에 밥을 먹이고, 무릎셈틀을 켜서 마감글을 띄우기도 하고, 갓 나온 책이건 여러 해 묵은 책이건 둘러보다가 장만하기도 하고, 그냥 서서읽기를 하다가 얌전히 제자리에 꽂기도 한다.


이미 손을 거친 책이기에 헌책이요 손길책일 텐데, 아직 손을 안 거친 말끔한 책이라면 알림책(보도자료)일까? 그러나 알림책도 아니다. 다만, 궁금하게 여기지는 말자. 그저 고맙게 ‘따끈책’을 느긋이 앉아서 읽자.


한참 읽고서 덮는다. 앉아서 다 읽었으니 굳이 안 사기로 한다. 글쓴이는 허우적길을 걸었다고 밝히는 듯싶지만, 사람마다 허우적질이 다 다르기는 할 테지만, 애써 허우적날이라고 이름을 붙이는구나 싶은, 그냥그냥 보낸 하루에 여러모로 꾸밈말을 보태었다고 느낀다. 예쁘게 보이려고 꾸미는 글이 아닌, 말 그대로 허우적허우적 덤범덤벙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고 울고, 이러다가 다시 일어선 하루를 수수하게 털어놓는 글을 썼다면, 기꺼이 온돈을 치르고 샀으리라.


요새는 시골에서조차 마늘밭이나 취밭에서 일하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얼굴을 곱게 물들이더라. 마늘밭이나 취밭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일순이(여성노동자)를 보기는 매우 어렵다. 아니, 난 아직 못 봤다. 2011년부터 전남 고흥에서 사는 동안, 젊은 시골순이를 여태 못 봤다. 거의 베트남이나 필리핀 젊은순이인데, 하나같이 곱게 꽃가루를 바르고서, 챙이 긴 갓에 수건을 잔뜩 두르고서 일한다.


나는 쇳덩이를 안 몰기에, 늘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리거나, 시골버스를 탄다. 시골버스를 타는 젊은돌이도 젊은순이도 아예 없다. 서울이나 큰고장이라면 좀 다르겠지. 큰고장에서는 쇳덩이를 안 몰더라도 2∼5분마다 버스나 전철이 다니잖은가. 시골에서는 으레 2∼3시간을 기다리고서 버스를 겨우 탄다. 그러니까 2∼3시간을 기다리느니 그냥 걸어가는 쪽이 한결 빠르다고 여길 수 있다.


허우적대는 삶이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적 허둥지둥 헤매는 삶을 거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하루일 뿐이다. 멋스러이 글을 꾸미려고 할수록 오히려 글멋이 없다. 맛깔나게 글을 만들려고 할수록 외려 글맛이 없다. 겨울빛이 없어 보이는 겨울글은 밍밍했다.


ㅅㄴㄹ


겨울의 언어는 겨울을 부르는 언어일까

→ 겨울말은 겨울을 찾는 말일까

→ 겨울말은 겨울을 끌어당길까

6


이전까지의 책에서 나는 매번 나의 삶과 글을 도구로 삼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 이제까지 낸 책으로 늘 내 삶과 글을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7


그것이 책을 쓰는 저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 책을 쓸 적에는 이만큼 해야 한다고 보았다

7


명시적이지는 않아도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메시지가 있기를 바랐고

→ 뚜렷하지는 않아도 한 가지 이야기가 책에 흐르기를 바랐고

→ 환하지는 않아도 한 가지 줄거리를 책에 담기를 바랐고

7


눈 위로 흐른 얼음물이

→ 눈에 흐른 얼음물이

13


그럼에도 겨울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모순된 성정이다

→ 그런데도 겨울을 반기면 엇갈린 듯하다

→ 그런데도 겨울을 즐기면 어긋난 듯하다

15


겨울과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 겨울과 함께살기란 이렇다

→ 겨울하고는 이렇게 함께산다

16


과년한 김겨울은 취업도 결혼도 거부한 채 혼자서 뭘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 무르익은 김겨울은 일도 짝짓기도 등진 채 혼자서 뭘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린다

→ 나이가 찬 김겨울은 일도 짝맺기도 안 하고 혼자 뭘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린다

19


허우적의 역사는 창피할 정도로 누적되었다

→ 허우적댄 나날은 창피할 만큼 쌓였다

→ 허우적거린 날은 창피하도록 늘었다

20


이따금씩 시집을 선물 받아 읽고

→ 이따금 노래책을 받아 읽고

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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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침몰 7
코마츠 사쿄 지음, 잇시키 토키히코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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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까칠읽기 21


《일본침몰 7》

 코마츠 사쿄 글

 잇시키 토키히코 그림

 오경화 옮김

 학산문화사

 2007.10.25.



《일본침몰》을 읽은 지 한참 지났다. 불벼락을 맞은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웅성거리면서 미치거나 날뛰거나 넋나가는지를 밝히면서, 제자리를 다독이고 다스리면서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터뜨리는가를 나란히 들려주는 얼거리라고 느낀다.


불벼락을 맞을 적에 나라(정부)가 어떤 민낯인지를 여러모로 보여주는데, 불벼락을 안 맞은 때에도 나라는 이와 비슷하게 굴러간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 민낯을 모르기도 하고, 보기도 쉽잖고, 보더라도 시큰둥하거나, 보거나 알았어도 하루하루 바빠서 지나치곤 한다.


일본사람이 그린 일본살이를 담은 《일본침몰》일 텐데, 벼락판이건 ‘안 벼락판’이건 다를 일은 없다. 여느 때에 지내는 하루가 벼락판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여느 때에 무엇을 그리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 벼락을 일으키거나 사랑을 펴게 마련이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여느 때부터 늘 불수렁이다. 스스로 꿈을 사랑으로 그리는 길로 보금자리를 일군다면, 언제나 꽃길이고 하늘길이고 숲길이고 사랑길이다. 이 그림꽃은 무슨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까? 불벼락이 칠 적에 이렇게 앞뒤가 바뀐다고 말하고 싶을는지 모르지만, 불벼락이 아직 없더라도 “무너질 나라”는 이미 무너져 가고, “피어날 보금자리”는 천천히 피어난다.


ㅅㄴㄹ


“분하지만 다른 남자의 얘기로라도, 네 웃는 낯을 보고 싶었어. 온 일본 천지가 경직된 얼굴로 가득 찼으니.” (20쪽)


“당의 중요회합을, 꼭 이런 지방도시의 비좁은 호텔 방에서 해야 됐나?” (21쪽)


‘어쩌자고 혼자 살아남은 거야, 난.’ (105쪽)


“즉, 그것은 핵폭탄의 소유와 그것의 실제 사용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137쪽)


#日本沈? (1973) (2006∼2008)

#小松左京 #一色登希彦


+


《일본침몰 7》(코마츠 사쿄·잇시키 토키히코/오경화 옮김, 학산문화사, 2007)


공복(公僕)으로선 해선 안 되는

→ 나라일꾼으로선 해선 안 되는

→ 벼슬꾼으로선 해선 안 되는

1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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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음, 이영란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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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까칠읽기 20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알에이치코리아

 2020.7.15.



  얼굴을 알리고 이름값을 높인 사람이 ‘날씨’가 걱정이라고 말하면서 ‘숲’을 품자고 외치고 ‘풀밥’을 어떻게 먹을는지 헤아려야 한다고 들려주는 《두 번째 지구는 없다》(타일러 라쉬, 알에이치코리아, 2020)는 나쁘지 않다. 다만, 왜 날씨가 비틀리고, 왜 숲이 망가지고, 왜 고기밥이 널리 퍼졌는지를 어떤 눈으로 짚는지에 따라 줄거리는 확 다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별에서 가장 허울스럽고 헛되게 돈을 쏟아붓는 데는 ‘싸움판’이다. 싸움판 가운데 첫째는 총칼이다. 둘째는 나라(정부)이다. 셋째는 배움터(학교)이다. 넷째는 돌봄터(병원)이다. 다섯째는 일터(기업)이다. 이 다섯 곳은 얼핏 달라 보여도 뒤에서 숨은 사슬로 이은 한덩이인데, 여기에 솜씨(과학·기술)를 얹은 여섯고리는 “돈 먹는 수렁”이다. 타일러 라쉬 님은 이 여섯 가지 가운데 무엇을 짚었을까? 글쎄, 여섯 가지를 뺀 채 ‘듣기에 달콤한 목소리’만 이래저래 여러 값(숫자·통계)을 앞세워서 엮었구나 싶다.


  총칼을 만들고 거느리느라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가. 총칼로 죽이고 죽는 동안 온누리는 얼마나 망가지는가. ‘스텔스 전투기’뿐 아니라 ‘그냥 전투기’ 하나에 돈을 얼마나 들이는가. ‘핵폭탄’뿐 아니라 ‘그냥 미사일’ 하나에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가.


  널뛰는 날씨를 걱정할 수 있으나, 온누리 싸움판을 등지거나 아예 말을 안 한다면, ‘비공식 국방비와 군사무기연구개발비’를 들추지 않는다면, ‘군사무기 탓에 사라지는 들숲바다가 얼마나 아픈지’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멀쩡한 젊은이를 싸울아비로 돌리면서 넋을 망가뜨릴 적에 얼마나 끔찍한 뒷일이 생기는지’를 모른다면, ‘환경책’이 아니라 ‘허울말’에서 맴돌고 만다.


  이 별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 이바지하는 나라(정부)가 몇이나 될까. 왜 벼슬자리(공무원)가 그토록 많아야 할까. 배움터를 다닐수록 숲을 등지는데, 사람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닐수록 집안일을 잊고 시골을 잃는데, 무엇을 가르치거나 들려주는 배움터인가.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돌봄님(의사)이니, 돌봄터(병원)가 따로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풀 한 포기가 바로 돌봄물(약)이니, 숲사람으로 살아가면 모든 ‘병의학 커넥션’을 걷어낼 수 있다. 다섯째하고 여섯째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살펴서 어떤 고름과 수렁으로 이 별을 어지럽히는지 찾아낼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Tyler Rasch


나는 버몬트의 숲, 자연 속에서 자랐다

→ 나는 버몬트숲에서 자랐다

6


계절의 냄새도 알고, 계절에 따라 비 내릴 때 여향이 다른 것도 알고

→ 철냄새도 알고, 철에 따라 빗빛이 다른 줄도 알고

6


좋은 흙과 안 좋은 흙의 차이를 냄새로 안다

→ 기름진 흙과 죽은 흙을 냄새로 가린다

6


그걸 모르는 삶은 너무 슬픈 것 같다

→ 이를 모르는 삶은 너무 슬프다

→ 이를 모른다면 삶이 참 슬프다

6


자연이 나의 기본설정을 만들어 주었다

→ 나는 숲으로 밑거름을 이루었다

→ 내 바탕은 숲이다

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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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걸어 촛불을 만났다 - 최민희의 언론개혁 여정
최민희 지음, 김유진 인터뷰어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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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16


《쉼 없이 걸어 촛불을 만났다》

 김유진·최민희

 21세기북스

 2020.3.11.



《쉼 없이 걸어 촛불을 만났다》(김유진·최민희, 21세기북스, 2020)를 굳이 사서 읽어 보았다. 굳이 사서 읽었기에, 최민희 씨를 비롯한 여러 ‘운동권 언더서클 권력’이 무엇인지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를 나왔다면, 돈이 많았다면, 소위 중앙 정치에 인맥이 빵빵했다면, 하다못해 학생운동이라도 했다면 인맥이 있었을 텐데. 이 중에 단 하나라도 가졌으면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97쪽)



“하다못해 학생운동이라도 했다면”이란 무슨 소리인가? 노무현 씨는 고등학교만 마쳤는데 무슨 ‘(대)학생운동’을 할 수 있는가? 서울대는커녕 대학교를 안 다닌 사람더러 “서울대를 나왔다면”이나 “학생운동이라도 했다면”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최민희 씨를 비롯한 ‘언더서클 운동권 권력’은 처음부터 ‘고졸·가난·비운동권’을 쳐다볼 마음도 눈도 없다는 뜻이다. 이들 스스로 귀띔이나 도움말이나 쓴소리를 꾸준히 하면서 함께 나아갈 마음이 있다면, 언제나 사뭇 달랐으리라.



제가 《말》 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민중을 배반했다고 비판했죠. 지금 들으면 그게 왜 배반이야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코스가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최고의 가치는 “민중 속으로”. 민중 속으로 들어가려면 외모나 말투까지 민중처럼 돼야 하니까 화장은 말할 것도 없고 로션 같은 것도 바르면 안 된다는 게 우리의 문화였어요. (29쪽)



최민희 씨는 아직도 “민중 속으로”를 외치는 듯하다. 그런데 누가 “민중 속으로”를 외치겠는가? 우리말도 아닌 ‘러시아말’인 ‘v narod’는, 이분들이 처음부터 ‘사람(민중)’ 사이에 없었다는 뜻이요, ‘사람 곁’이라든지, 스스로 ‘사람’이라는 자리에 설 마음이나 뜻부터 없다는 얼거리이다. 스스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사람이라면 누가 “민중 속으로”를 외치겠는가?



그 다음에는 염색공장에 갔죠. 염색공장은 너무 힘들었어요. 딱 하루 일했는데 코피가 터져요. 천을 물에 담갔다가 올려서 말리고, 다시 물에 담그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라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어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 거기서도 실패했습니다. 몇 군데서 실패를 하다 보니 공장에 다시 들어가는 게 무서웠어요. (31쪽)



‘학생운동 최민희 씨’는 다른 운동권하고 똑같이 ‘공장 노동자 체험’을 해보려 하지만 고작 하루 일하고서 달아났다고 밝힌다. 다른 곳에서도 매한가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민중)’들은 최민희 씨가 달아나는 이런 일을 늘 할 뿐 아니라, 온집안이 다 한다. 너무 힘들어서 달아났다는 말은 배부른 핑계이다. 사람(민중)들은 안 힘들겠는가? 다들 힘들어 죽을 판이지만 온집안을 먹여살리는 일거리이니, 이 고되고 벅찬 일을 끝까지 짊어지면서 싸우며 살았다.



시민단체는 재야 운동이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이끌어왔던 시대에서 시민의 삶을 바꾸는 운동, 참여민주주의 등을 표방하면서 안착했어요. 민언련도, 시민언론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잖아요. 그 지향은 맞았어요. 문제는 시민운동이 상층부 엘리트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거죠. 그렇다고 시민들과 유리됐다고 말하면 안 되고요,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 같은 단체들은 회원이 2∼3만이나 됐으니까. (93쪽)



이미 처음부터 사람(민중) 곁에는 있지 않은 채 물밑(언더서클)에서 사회과학책을 몇 읽은 눈으로 ‘시민단체·참여민주주의·시민언론’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발걸음이니, 이분들이 쓰는 말은 사람(민중) 곁에 없다. ㅈㅈㄷ을 나무랄 줄은 알지만,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가 잘못하거나 샛길로 빠질 적에는 나무랄 줄 모르는, 이른바 ‘내로남불’에 빠지고 만다. 잘못은 누가 하든 잘못이고, 잘한 일은 누가 하든 잘한 일이다.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가 안 다루거나 안 짚거나 안 쓰는 이야기를 곧잘 ㅈㅈㄷ이 써서 알리거나 북돋우곤 한다. 그렇다고 ㅈㅈㄷ이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말썽은 똑같이 말썽인데, 잣대를 어느 쪽에만 들이댈 적에는 스스로 눈에 들보를 씌우는 셈이다. 최민희 씨는 여러 시민단체가 “시민들과 유리됐다고 말하면 안 되고요,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 같은 단체들은 회원이 2∼3만이나 됐으니까(93쪽)” 하고 말하는데, 그러면 ㅈㅈㄷ 구독자는 따로따로 200만이 넘으니까 이들 ㅈㅈㄷ이 “사람(민중)과 동떨어졌다고 말하면 안 된다” 하고 똑같이 말해야 하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도 더러 〈한겨레〉를 읽지만, 숱한 가난한 사람은 으레 〈조선일보〉를 읽는다. 〈조선일보〉를 읽는 숱한 가난한 사람은 ‘사람(민중)’일까 아닐까?



그동안 집회의 주도 세력이 누구였던가 되돌아보면 정치인, 학생, 조직활동가 등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집회의 주도 세력이 이번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시민으로 바뀐 것, 이런 점은 과거 조직운동을 했던 활동가들에게는 낯설고 불쾌한 지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촛불집회 연장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기 힘들었어요. “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이 집회에 결합하지 않지?” 의아한 생각을 가졌는데, 냉정하게 표현하면 촛불집회의 헤게모니가 바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338쪽)



‘촛불집회의 헤게모니가 바뀌’기 때문에 촛불모임에 안 나온다는 ‘조직운동 활동가’는 얼마나 안쓰러운가. 그런데 ‘조직운동 활동가’는 촛불모임에만 안 나오지 않았다. 이들 ‘조직운동 활동가’는 ‘밀양송전탑 집회’에는 나왔되 ‘밀양성폭행 청소년’을 나무라는 일에는 팔짱을 꼈고, ‘다른 고장 송전탄 집회’에는 거의 얼굴을 안 내밀거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러 시민단체와 녹색당과 정의당도 똑같다. 이들은 ‘밀양송전탑’이나 ‘제주공항·제주해군기지’나 ‘세월호’에는 이름을 얹지만, 다른 웬만한 크고작은 말썽거리에는 코빼기조차 안 비치고 이름도 안 얹는다. 윤석열 때에 첫삽을 떴고, 문재인 때에 밑밥을 다진 ‘초고압직류송전 해저고속도로’가 있는데, 이 삽질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지 건드리거나 짚는 ‘진보·좌파·녹색’을 아직 못 봤다.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기 일쑤이다. 전남과 경남과 충남 바다에 ‘해상 풍력·태양광’을 잔뜩 때려박느라 몇 백 조를 썼는지 알 길조차 없는데, 시골에서는 전기를 쓸 일이 없으니까, 전남 바다부터 인천 앞바다까지 ‘초고압직류송전선’을 바다밑으로 깔아서 서울로 잇는 삽질을 2024년 봄부터 첫삽을 떴다. 최민희 씨는 이런 일을 알까? 알면서 입씻이를 할까? 그냥 모를까?


그대들이 힘(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나쁠 일이란 없다. 그러나 좋을 일도 없다고 느낀다. “민중 속으로”를 외치고 싶다면, 1억 원이 넘는 돈이나 집이 있는 모든 사람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시·도지사나 군수를 할 수 없는 틀을 세우기를 바란다. 제대로 나랏일을 할 뜻이라면, 1억 원이 넘는 모든 돈과 집은 나라에 바치고서, ‘최저시급 월급’만 받으면서 일하기를 바란다. ‘운전기사 딸린 자가용’을 모두 없애고서 오직 ‘자전거’만 타거나 걸어서 움직이기를 바란다. 걸어다니지 않으면서 무슨 ‘민중’을 만나겠는가.


책이름은 《쉼 없이 걸어 촛불을 만났다》로 붙였지만, 최민희 씨나 ‘언더서클 운동권 권력’은 다들 ‘운전기사 낀 자가용’을 거느리는 벼슬자리를 얻어서 떵떵거리는, 오히려 뒤바뀐 민낯이라고 느낀다.


학생운동을 할 적에는 ‘공장체험’을 하러 그렇게 다니던 분들이 벼슬(정치권력)을 쥘 적에는 하나같이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만 맴돈다. 전남 보성이나 경북 영양 같은, 아주 조그마한 군으로 ‘내려가’서 군수 선거에 나선다든지, 지자체 군의원이나 도의원부터 일한다든지, 이렇게 발바닥으로 애쓰려고 뛰어다니는 ‘운동권’이 있다면, 그리고 ‘농부체험’이라도 하려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보름씩 틈을 내어 돌아다니는 ‘운동권’이 있다면, 그대들이 하는 말이 ‘내로남불’이 아닐 수 있겠지.


+


조국 일가를 융단폭격한 정도가

→ 조국 집안을 박살낸 짓이

→ 조국네를 짓이긴 꼴이

14쪽


본격적으로 언더서클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던 때라 시대적 맥락을 가지고 광주를 정리하기에는 버거웠어요

→ 아직 물밑모임을 하지 않던 때라 광주를 한줄기로 추스르기에는 버거웠어요

→ 아직 뒷동아리를 하지 않던 때라 광주를 곧게 알기에는 버거웠어요

2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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