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남성성 #젠더 #퀴어 #동물 #AI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기획, 김엘리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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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3.

까칠읽기 2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김엘리와 여섯 사람·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서해문집

 2024.1.5.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었다. 여러 고장 마을책집을 다니다가 눈에 띄어서 반갑게 집어들었으나, 한숨을 내쉬면서 제자리에 놓았다. 석 벌째 되읽을 즈음에는 잊어버릴까 했으나, 넉 벌째 되읽고서는 좀 잔소리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이를테면, ‘시골’에 안 살아 보고서 시골을 다루는 글을 ‘연구 논문’으로 냈다면 어떤 셈일는지 생각해 보자. 요즈음에는 ‘농민 기본소득’을 말하는 분이 제법 있고, 책으로도 나오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땅(논밭)’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농민 기본소득’은 그저 구름떡이다. 그림떡조차 아닌 구름떡이다. 나는 2011년부터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이 두멧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땅 없이 빌려서 논밭을 부친 할매 할배’를 제대로 살피지 못 했다. 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스스로 참 모르고 살았네 싶어 창피했다. 마을 할매나 할배 스스로 “난 머슴이었어. 종이었지.” 하고 읊으면서 사발로 불술(소주)을 들이켜는 어른을 으레 만났다. 시골살이를 하겠다면서 깃드는 여러 이웃과 젊은이도 비슷하다. 목돈을 쥐고서 시골로 오는 분은 드물다. 집도 빌리고 땅도 빌려서 ‘시골지기’로 살려는 분이 많다. 그렇다면, 집도 땅도 없이 ‘주민등록’만 시골인 ‘귀촌자’는 무엇일까? 이들 ‘귀촌 농부’는 ‘소작인’과 마찬가지라서 ‘무직자·실업자’에 든다. ‘농민’으로 들지 못 한다. 틀림없이 땅을 부치지만 ‘빌려짓기’를 하는 이들은 ‘농민’ 통계에 안 잡히고, 아주 마땅히 ‘농민 기본소득’ 울타리에 못 들어간다. 땅있는 분들은 너른땅을 쪼개기롤 해서 ‘서울로 떠난 딸아들’이나 여러 피붙이한테 나누어 돌리면, 이들은 너른땅 하나로 ‘농민 기본소득’을 몇 곱으로 받는다. 땅 없는 어버이 품에서 태어난 시골 어린이도 매한가지이다. ‘농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과 얼거리로 뜯어고쳐야, 오랜 나날 머슴·종으로 고달팠던 흙지기 어르신한테 이바지하고, 시골살이를 하는 젊은이를 돕고, 시골에서 나고자란 아이들이 시골에 뿌리를 내리는 길에 밑받침을 이룬다.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돌아보자. 글쓴이가 굳이 싸움터(군대)를 다녀와야 싸움터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다. 또한, 싸움터를 누구나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있지도 않다. 얼결에 싸움터에 끌려갔어도 ‘노닥자리(땡 보직)’에서 지낼 수 있다. 곰곰이 보면 ‘군대 땡 보직’이 꽤 많다. ‘땅개(육군 소총수)’로 뒹구는 젊은 사내가 수두룩하지만, 여러모로 보면 오히려 적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땅개로 구른 슬픈 사내’를 20대·30대·40대·50대·60대·70대, 이렇게 나이에 따라서 두루 만나고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면, 이 책은 얼거리도 줄거리도 사뭇 다르리라. 아무리 글감을 훌륭히 잡더라도, 책상맡에서 글자락만 붙들고서 싸움터와 싸울아비 삶길을 적으려고 한다면, 샛길로 빠지거나 ‘저놈은 군대를 모르는 채 썼네’ 하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런 보기 하나를 들 수 있다. 나는 1995년 11월 6일에 강원도 양구군 동면 멧골짝(대암산·도솔산·대우산)으로 들어가서 늘 맨눈으로 금강산을 바라볼 뿐 아니라 펀치볼을 발밑에 두고서 한겨울에는 -47℃라는 온도계 숫자를 읽으면서 “압록강이나 중강진 북녘 또래는 얼마나 추울까?”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달랬는데, 도솔산 막사는 “365일 가운데 해가 드는 날이 7일”뿐이던 곳이라, 한 해 내내 마른옷을 입은 적이 없고, 눈이 내리면 사람이 쓸어낼 수 없어서 장갑차가 눈더미를 밀어내 주는데,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군부재자투표’를 ‘각티슈 상자’에 넣어서 했고, 나는 군생활 내내 김치를 먹은 적이 없다. ‘최하급부대’에는 김치도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도 ‘부식’으로 아예 안 왔다. 김치는 구경도 못 했으나 양배추는 멧더미처럼 받았고, 우리 부대 취사병은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김치 흉내’를 냈다. 이런 곳에서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살아남아서 밖으로 나왔는데, 내가 머물던 막사는 1998년 3월에 닫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혹’한 막사라서 ‘정권이 바뀌기 앞서 얼른 없애(증거인멸)’기로 했다더라.


우리나라 싸움터는 이등병 적에는 누구나 피해자로 구르다가 상병을 거치면서 오히려 가해자로 뒤바뀌는 슬픈 굴레이다. 왜 이런 굴레일는지, 이 모진 굴레를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안 살피거나 너무 얕게 건드리고서 넘어간다면, 또 이 바보스럽고 안타까운 굴레에 시달린 사람들 마음을 다독이면서 새길로 풀어내려는 이야기를 짜지 않는다면, 군대를 다룬 연구 논문은 하나같이 허방다리일 수밖에 없다. 내가 있던 군부대에는 〈우정의 무대〉를 찍으러 안 왔다. 너무 깊고 멀 뿐 아니라, 웬만한 ‘비무장지대 지오피’는 촬영금지이다. 군대를 마친 뒤에 여러 또래한테서 〈우정의 무대〉 증언을 술자리에서 겨우 들었다. 〈우정의 무대〉를 찍은 여러 또래는, 땡볕이 내리쬐는 연병장에 양반다리로 꼼짝없이 앉아서 새벽부터 밤까지 화장실조차 못 가면서 “웃는 얼굴로 손뼉을 크게 치는 흉내(연극)”를 해대야 하는 짓에 시달리느라, “야, 차라리 완전군장을 하고 일주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말고 걸으라고 할 때가 낫더라. 〈우정의 무대〉 녹화가 군생활에서 가장 힘들었어!” 하고 들려주었다. 민소매에 깡똥바지나 짧은치마 차림인 ‘걸그룹’이 나올 적에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하는 척하지 않으면 끝없이 다시 찍어야 했단다. 그러니까, 방송사는 ‘젊은 군인’을 얼간이로 뒤집어씌우면서 온나라 사람들을 속여먹은 셈이다.


‘군인·군대’라고만 하면, 어떤 일이고 곳인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낱말책에서 뜻풀이를 살핀들 두 갈래를 하나도 알 길이 없다. ‘군인’이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려서 나라를 지키는 몫을 맡는 사람”이라 해야 맞고, ‘군대’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리는 솜씨를 익힌 사람을 모아서 나라를 지킨다고 여기는 곳”이라 해야 맞다. 이른바 모든 ‘군대 훈련’은 “더 쉽고 빠르게 많이 사람을 잘 죽이는 솜씨”를 길들이는 짓이다. ‘군대 : 합법 살인 지대’요, ‘군인 : 합법 살인자’인 얼개이다. 이 얼개를 안 읽거나, 이 밑뜻을 몸으로 겪은 바 없다면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처럼 책상머리에서 붓대만 굴리는 먼나라 수다만 어렵게 꼬아서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싸움터(군대)를 보면, 숱한 ‘돈·이름·힘’이 없는 밑바닥 사내가 총알받이로 구른다. ‘돈·이름·힘’이 있는 놈은 운전병을 비롯해서 한갓진 자리를 맡는다. ‘군인·군대’는 ‘평화’하고 한참 동떨어졌다만, ‘군인·군대’가 터럭만큼이라도 ‘평화’에 이바지한다면, 순이(여성)는 운전병이나 정훈병이나 취사병이나 의무병이나 서무병을 맡을 수 있겠지. 군수공장이나 정비공장에서 순이도 일할 수 있다. 다만, ‘군인·군대’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려서 나라를 지킨다”는 줄거리가 깊은 곳인 터라, 우리 삶터에 조금도 알맞거나 아름답지 않다. 날마다 “사람 죽이는 솜씨”를 ‘훈련’이라는 허울로 길들이는데, 이런 군대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숱한 돌이(남성)가 넋나가지 않고서 어떻게 버틸까? 붕뜬 말만 길게 늘어놓으면, 오히려 순이돌이가 서로 싸우는 불씨가 될 뿐이다. 우리부터 스스로 순이돌이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평화’를 참답게 풀고 맺는 길을 찾을 노릇이고, “사람 죽이는 솜씨”에 길들면서 몸과 마음이 다치고 젊은날을 헛되이 버려야 한 딱한 ‘돈·이름·힘’이 없는 작은이를 보듬는 길을 열 때라야, 비로소 이 나라와 온누리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틔운다. 부디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빈다. 군대 이야기는 ‘기록’이 아닌 ‘증언’으로 엮어야 맞다고 본다. 왜 그렇겠는가? 군대 민낯과 속낯은 ‘증언’ 아니고는 찾아볼 길이 없도록 깡그리 숨기고 감추고 가리면서 사람들 눈코귀입을 틀어막는걸.


ㅅㄴㄹ


[표준국어대사전]

군인(軍人) :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 육해공군의 장교, 부사관, 병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융병·융사

군대(軍隊) : 일정한 규율과 질서를 가지고 조직된 군인의 집단 ≒ 군·사도


[숲노래 낱말책]

군인 :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려서 나라를 지키는 몫을 맡는 사람 (합법 살인자)

군대 :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리는 솜씨를 익힌 사람을 모아서 나라를 지킨다고 여기는 곳 (합법 살인 지대)



군대에 가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곱씹어진다

→ 싸움터에 가는 순이와 나란사랑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곱씹는다

→ 싸움터에 가는 순이와 무지개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곱씹는다

4쪽


국민의 군대이지만 국민은 군대에 관해 안전하게 말하지 못했다

→ 우리 싸움밭이지만 우리는 싸움밭을 느긋하게 말하지 못했다

→ 우리 싸움터이지만 우리는 싸움터를 근심없이 말하지 못했다

4쪽


군인들을 위한 유흥거리로서의 엔터테인먼트

→ 싸울아비를 달래는 놀거리

→ 총칼바치를 다독이는 놀잇감

2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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