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아저씨 손 아저씨 우리 그림책 1
권정생 지음, 김용철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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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2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돕는구나

― 길 아저씨 손 아저씨

 권정생 글

 김용철 그림

 국민서관 펴냄, 2006.2.20. 1만 원



  한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손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한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한손을 내밀 줄 모르는 사람은 ‘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손을 내밀 줄 모르는 사람은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누가 도울까요? 돈이 있는 사람이 이웃을 돕지 않아요.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사람이 이웃을 돕습니다. 이웃을 누가 아낄까요? 집안이 넉넉한 사람이라든지 집이 커다란 사람이 이웃을 아끼지 않아요. 마음이 너그럽거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일 때에 이웃을 돕습니다.




윗마을 길 아저씨는 두 다리가 불편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서만 살았대요. 부모님이 계실 때는 잘 보살펴 주셔서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지요. (5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김용철 님이 그림을 붙인 《길 아저씨 손 아저씨》(국민서관,2006)를 읽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두 아저씨가 이루는 삶을 지켜봅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할 두 아저씨가 서로 돕는 모습을 그림책으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런데 길 아저씨가 손 아저씨한테 아무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두 아저씨한테는 저마다 ‘발’이 있고 ‘눈’이 있어요. 그리고 ‘손’이 있습니다. 여기에 ‘마음’이 있어요.


  두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집 바깥으로는 거의 나다니지 못한 채 집에서만 머물렀다고 해요. 두 아저씨네 어버이는 두 아저씨를 어릴 적부터 알뜰히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아저씨네 어버이는 그만 먼저 돌아가셨지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어버이는 아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요.




손 아저씨가 커다란 대추나무 집에 구걸하러 갔을 때 그 집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에그, 딱하기도 하지. 하지만 윗마을 길 총각한테 비하면 괜찮은 편이야. 길 총각은 두 다리를 못 쓰니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만 있다는구먼.” (15쪽)



  어버이를 잃은 뒤 두 아저씨는 이제 빌어서 먹어야 합니다. 앞을 못 보는 아저씨도 다리가 없는 아저씨도 이도 저도 못하면서 남한테 손을 내밀어 겨우 끼니만 때우지요. 손수 부칠 땅도 모르거나 없는 터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모르지요.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니 나무를 하지도 못하고 방에 불을 지피지도 못할 테지요.


  그런데 두 아저씨는 이웃 할머니가 다리를 놓아서 만납니다. 할머니가 다리를 놓았다기보다 ‘손 아저씨’가 동냥을 할 적에 이웃 할머니가 ‘길 아저씨’ 이야기를 했고, 손 아저씨는 길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이 번쩍 뜨이듯이 새 길이 열렸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나.” “걱정 말게나. 다행히 나는 앞을 못 보지만 이렇게 두 어깨가 튼튼하니까 내가 자네를 업고 다니겠네.” 길 아저씨는 금세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20쪽)



  두 아저씨는 여태 아무것도 없는 빈몸인 줄 알았으나, 둘이 한자리에서 만나며 비로소 두 아저씨한테는 서로 저마다 ‘새로운 것’이 있는 줄 깨닫습니다. 두 아저씨는 서로서로 하나씩 있는 새로운 것을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살리기로 합니다. 두 아저씨는 이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따스한 사랑을 고이 살려서 앞으로 씩씩하게 살자고 다짐합니다.


  참말 두 아저씨는 어버이가 따스히 돌보고 사랑으로 보살폈기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요. 참말 두 아저씨는 ‘먼저 떠난 어버이’가 알뜰히 돌보고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었기에 ‘어버이 뒤를 좇아 죽으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서 이렇게 서로 돕는 길을 걸을 수 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는 점점 솜씨가 늘어 온갖 물건을 만들었어요. 집 안에서 지게도 다듬고, 바소쿠리와 봉태기도 만들고, 멍석도 짜고, 깨끗한 돗자리도 엮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도 이제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어요. (29∼30쪽)




  서로 아끼고 돕는 두 아저씨를 바라보는 이웃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두 아저씨네 이웃은 두 아저씨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푸근해지거나 애틋해지겠지요. 어쩜 저리 서로 아끼면서 착하게 사느냐 싶어서 한마을 살붙이로 더욱 살뜰히 마주할 만하겠지요.


  이러는 동안 두 아저씨는 이웃집 일손을 살짝 거들기도 합니다. 두 아저씨가 서로 눈이 되고 발이 된 터라, 두 아저씨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거들 만한 일거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새끼를 꼴 수 있고, 바구니를 짤 수 있습니다. 멀리 움직이거나 들에 나가거나 멧골에 오르는 일은 못하더라도, 집안 마당에서 할 만한 일거리가 있어요.


  두 아저씨는 저마다 손을 놀려 이래저래 온갖 살림살이를 지을 수 있을 적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두 아저씨는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삶을 지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보람찼을까요? 이런 두 아저씨 몸짓과 마음결을 지켜본 이웃 아낙은 두 아저씨한테 시집가기로 했다 하고, 두 아저씨는 저마다 마음 고운 짝을 만나서 한결 재미나며 아름답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길 아저씨 손 아저씨》는 이 그림책 바탕을 이루는 글을 쓴 권정생 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 늘 드러누워 지내듯이 살며 다른 바깥일을 할 수 없던 나날이라 하더라도, 서로 마음으로 돕고 아끼는 벗님하고 이웃님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힘껏 살아내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다른 재주도 힘도 솜씨도 없지만, 몸져누운 자리에서 한 줄 두 줄 온마음을 쏟아서 쓴 글이 이렇게 고운 이야기책으로 거듭났어요.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돕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니 서로 아낍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서로 사랑합니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기에 아름답습니다. 내 밥그릇을 챙기려 할 적에는 서로 안 돕고 서로 안 아끼며 서로 안 사랑합니다. 함께 누리는 삶자리를 헤아리려 하기에 서로 돕고 서로 아끼며 서로 사랑하지요.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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