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곰 형제와 여우 - 헝가리 민화
블라디미르 투르코프 지음, 배은경 옮김, 에우게니 M. 라쵸프 그림 / 한림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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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야기밥’을 한귀로 흘리니

― 아기 곰 형제와 여우

 블라디미르 투르코프 글

 에우게니 M. 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5.10.20. 9500원



  어머니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입니다. 아버지도 아이한테 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이에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이를 따스히 품에 안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살림살이가 아름답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물려주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물려주지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새롭게 어른이 되어 새롭게 태어날 아이들한테 새로운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오래된 헝가리 옛이야기에 어여쁜 그림 옷을 새롭게 입힌 《아기 곰 형제와 여우》(한림출판사,2015)를 읽으면서 이야기밥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그림을 넣은 에우게니 라쵸프 님은 《장갑》이라는 그림책에도 멋스러운 그림을 넣었는데, 《아기 곰 형제와 여우》에 나오는 곰하고 여우가 입은 옷을 살피면 빛깔하고 무늬가 무척 고와요. 어쩜 이렇게 고운 빛깔하고 무늬로 옷을 지었을까요. 이러한 옷 한 벌을 짓기까지 얼마나 품을 많이 들였을까요.



아기 곰들은 엄마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랐어요. 아기 곰 형제는 이제 엄마 품에서 벗어나 세상을 자유롭게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곰들은 엄마를 오랫동안 설득하고 또 설득했어요. 엄마 곰은 어린 형제에게 항상 같이 행동하고, 서로 도우며, 싸우지 말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5쪽)



  그런데, 고운 옷을 받아서 입은 아기 곰 두 마리는 그리 사이좋지 못한 듯합니다. 어미 곰은 두 아기 곰한테 ‘같이 다니’고 ‘서로 도우’며 ‘싸우지 말기’를 바라는 말을 자꾸자꾸 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두 아기 곰이 여느 때에 늘 따로 다닐 뿐 아니라, 서로 안 도우며, 이내 툭탁거리기 때문일 테지요.


  어미 곰하고 아기 곰 사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어미 곰은 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기 곰을 가르치려 합니다. 아기 곰은 어미 곰한테서 늘 이야기를 듣지만 아무래도 으레 한귀로 흘리는 듯합니다. 아기 곰 두 마리는 어미 곰 품을 떠나서 ‘넓은 바깥누리’를 누비고 싶다 말한다는데 두 아기 곰이 씩씩하며 야무지게 ‘넓은 바깥누리’를 누빌 만한 때가 오면 마땅히 먼 마실을 보내겠지요. 그러니까, 어미 곰이 보기에 아기 곰은 아직 ‘길을 나설 때’가 아니라 할 만합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채 바깥누리로 나간다고 해서 잘 지내거나 잘 배우리라고는 느끼기 어려우리라 여기는 듯합니다.


  그래도 아기 곰들은 어미 곰한테 졸랐을 테지요. 어머니 이야기를 으레 한귀로 흘리던 이 아기 곰들은 ‘바깥누리로 길을 나서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잘 될 줄’ 잘못 알고서 그저 졸라댔을 테지요.




조금 더 걸어가니 오솔길에 동그란 치즈 덩어리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것 같았어요. 함께 좋아하던 곰 형제는 곧 다투기 시작했어요. “내가 먼저 봤으니까 내 치즈야!” (7쪽)



  어버이가 물려주는 이야기밥을 잘 받아서 먹으며 마음을 살찌우는 아이들은 차근차근 철이 듭니다. 어버이가 물려주는 이야기밥은 ‘교훈’이나 ‘훈계’가 아닙니다. ‘삶’이요 ‘살림’입니다.


  아직 어른이 아닌 아기인 두 마리 곰이니 “같이 다니라”고 이릅니다. 두 아기 곰은 아직 힘이 여리거나 모자라니까 “서로 도우라”고 이르지요. 아직 철이 덜 들고 힘도 모자란 아기 곰인 만큼 “싸우지 말아라” 하고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도와도 힘이 모자랄 판에 싸우는 데에 힘을 빼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테니까요.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는데?” “치즈는 하나인데 우리는 둘이니까 그렇지.” “내가 도와줄게. 잘 나눌 수 있어.” 교활한 여우가 말했어요. (10쪽)



  그림책 《아기 곰 형제와 여우》에 깃든 옛이야기는 어떻게 흐를까요? 한겨레 옛이야기에도 이와 비슷한 줄거리가 있습니다. 두 형제가 서로 돕지 않고 제 밥그릇을 더 챙기려고 다투면서 벌어지는 바보스러운 일을 넌지시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있지요. 아마 이런 옛이야기는 어느 겨레에나 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형제 사이뿐 아니라 이웃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때에 즐겁고, 동무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때에 기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그마한 힘이라 하더라도 손에 손을 맞잡고 어깨를 겯을 적에 커다라면서 단단한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아기 곰은 길에서 문득 본 치즈 덩어리를 보고는 이내 어머니 말씀을 잊고 다투기부터 합니다. 길에 떨어진 치즈 덩어리라면 ‘치즈 덩어리를 잃은 임자’가 따로 있을 텐데, 이 치즈 덩어리를 잃은 임자를 찾을 생각은 안 하고, 누가 먼저 이 치즈 덩어리를 차지해서 냠냠냠 먹느냐 하고 다툽니다.


  어미 곰은 아기 곰한테 ‘길에 떨어진 치즈 덩어리’를 그냥 차지해서 먹으라고 이야기했을까요? 틀림없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내 것’이 아닌데 함부로 차지하지 말라고, 이 치즈 덩어리를 잃고 슬퍼할 임자를 찾으라고 이야기했을 테지요.




그렇게 여우는 치즈를 베어 먹고 또 베어 먹었지만 매번 치즈 덩어리 크기는 달랐어요. 여우는 먹고 또 먹으며 치즈 크기를 비교했어요. 마침내 커다랗던 치즈 덩어리는 아주 작은 치즈 두 조각이 되고 말았죠. (13쪽)



  그림책에 나오는 여우는 꾀바릅니다. 여우는 두 아기 곰이 하는 바보스러운 짓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른’으로서 한 가지를 깨우쳐 줍니다. 너희 둘이 그렇게 다투기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할 뿐 아니라, 둘 사이가 그저 나빠지기만 한다는 대목을 깨우쳐 주지요. 적어도 너희 둘이 치즈 덩어리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생각이라도 했다면 서로 새로 기운을 낼 수 있다는 대목을 깨우쳐 주어요. 다만, 꾀바른 여우는 거저로 이렇게 깨우쳐 주지 않습니다. 커다란 치즈 덩어리가 작은 조각이 되도록 냠냠냠 가로채어 먹으면서 깨우쳐 줍니다.


  아기 곰은 ‘비싼값’을 치르고서야 뒤늦게 한 가지를 배우는 셈입니다. 아니, 아기 곰은 그동안 어미 곰이 들려준 이야기를 흘려버렸기에 쓴맛을 보는 셈입니다. 아기 곰이 여느 때에 어미 곰 이야기를 귀여겨들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요. 아기 곰이 여느 때에 어미 곰 말씀을 고운 사랑으로 여겨서 마음밭에 씨앗으로 심었다면 이런 아픔은 없었겠지요.


  이야기밥은 마음을 살찌웁니다. 이야기밥은 마음을 북돋우는 고운 씨앗이 됩니다. 마음자리에 즐거운 이야기 씨앗을 심어서 날마다 알뜰살뜰 가꾸기에 앞으로 새로운 꿈이 자랄 수 있습니다. 온누리 아이들아, 너희를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돌보며 사랑으로 가르치는 어머니 마음밥을 부디 마음에 기쁘게 새기렴. 4348.12.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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