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하는 소년 콩닥콩닥 7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크레이그 팜랜즈 글 / 책과콩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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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4



뜨개질하고 살림하는 사내가 아름다워라

― 뜨개질하는 소년

 크레이그 팜랜즈 글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2015.8.20. 11000원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림을 지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문득 이 대목을 돌아봅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 나이로 넘어설 문턱에서 이 대목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어떤 어른으로서 어떤 살림을 지을 적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거나 짚어 주는 둘레 이웃이나 어른은 찾아보기 어려웠구나 싶습니다. 한집에서 지내는 곁님을 빼고는 이러한 대목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사람이 몹시 드물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둘레에서 이러한 대목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사람이 드물기에 나 스스로 이 대목을 잊거나 놓쳐도 되지는 않을 테지요.


  사내가 집안일을 왜 하거나 배우려 하느냐는 소리를 익히 들으면서 자란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집에 가시내가 있는데 왜 마흔 넘은 사내가 집안일을 하느냐는 소리를 아직도 들으면서 두 아이를 건사합니다. 한해넘이를 앞두고 문득 생각에 잠깁니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소리라면 귀여겨들을 노릇이고, 삶을 슬기롭게 마주하도록 이끄는 소리가 아니라면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노릇이지 싶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지을 살림을 생각할 노릇이고, 앞으로 이 보금자리를 차근차근 곱게 가눌 길을 살필 노릇이지 싶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맨날 데굴데굴 구르고,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어요. 하지만 라피는 시끄러운 소리나 거친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혼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함께 있어 줄 선생님을 찾아다니곤 했어요.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요. (5쪽)



  크레이그 팜랜즈 님이 글을 쓰고, 마가렛 체임벌린 님이 그림을 그린 《뜨개질하는 소년》(책과콩나무,2015)을 아이들하고 거듭거듭 재미있게 읽습니다.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니, 얼마나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내가 뜨개질을 하기에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하지는 않습니다. 가시내가 뜨개질을 할 적에도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을 뿐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삶을 짓는 길을 생각하며, 이 길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교사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따순 눈길로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사랑을 받으면서 기쁘게 뜨개질을 하지요.




“선생님, 뭐하세요?” 라피가 묻자, 선생님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어요. “동생한테 줄 목도리를 뜨고 있단다.” “와, 예쁘다! 선생님, 뜨개질 하는 거 어려워요?”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가르쳐 줄까?” “네, 네! 가르쳐 주세요!” (7쪽)



  학교에서 공차기를 안 하는 ‘라피’라는 아이는 으레 놀림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라피는 일부러 애써 공차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피는 알록달록하거나 울긋불긋한 빛깔하고 무늬가 깃든 옷을 입고 싶습니다. 애써 거무죽죽하거나 시커먼 옷을 입고 싶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치마는 가시내만 입을 옷이 아닙니다. 사내도 입고 싶으면 얼마든지 입을 만합니다. 발을 하나씩 꿰기에 바지이고, 허리에 두르기에 치마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그림책에 나오는 라피라는 아이가 치마를 두르지는 않습니다.


  뜨개질하는 아이는 뜨개질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노래하기를 즐기고,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며, 뜨개질하기를 새로 익혀서 언제나 신이 나서 이 삶을 누릴 뿐입니다.


  라피는 학교에서 ‘가시내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어머니한테 고스란히 옮깁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는 ‘아이(라피)가 얼마나 자랑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훌륭한 아이(아들)’인가 하는 대목을 부드럽게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 말을 듣고 한결 씩씩하게 기운을 내고, 더욱 즐겁게 잠자리에 든 뒤에,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의젓하고 당찬 몸짓이 됩니다.




“엄마? 내가 이상하고 특이한 거예요? 나는 왜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뜨개질하는 걸 좋아할까요? 엄마는 내가, 여자애 같아요?” “아니. 엄마는 네가 아주 라피 같은데.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남자애들은 맨날 축구 얘기만 해요. 엄마, 나 정말 여자애 같은 거 아니죠?” “여자애라니? 라피, 좋아하는 게 다른 애들이랑 다를 뿐이지. 넌 엄마 아빠의 훌륭한 아들이야. 엄마 아빠는 네가 아주 자랑스럽단다.” (16∼17쪽)



  나는 곧잘 바느질을 합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바느질을 하면 두 아이가 “뭔데? 뭔데?” 하면서 곁에 달라붙습니다. 한참 바느질을 구경하다가 저희도 바느질을 해 보겠노라 엉겨붙기도 합니다. 절구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몸짓쯤은 큰아이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다면서, 큰아이는 씩씩한 살림순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보여주거나 살림을 가르치는 하루일까요?


  아이들은 어버이 손길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어른 눈길을 바라봅니다. 삶을 보여줄 어버이 손길을 기다리고, 사랑을 가르칠 어른 눈길을 바라보지요. 오직 뜨개질뿐만 아니라, 삽질도 호미질도 낫질도 톱질도 망치질도 기다립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아이들 스스로 손을 놀려서 살림을 짓는 길을 배우고 싶습니다.




라피는 학교에 도착하자 오도넬 선생님에게 달려갔어요. “선생님,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선생님은 천천히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어머나, 망토잖아! 네가 지었니? 라피, 정말 놀랍구나.” (26쪽)


라피 생일에 엄마는 특별한 상표를 선물해 주었어요. 라피가 뜨개질과 바느질을 끝낼 때마다 달 수 있는 라미만의 상표였지요. ‘디자이너 라피’ (31쪽)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버지한테 목도리를 손수 떠서 선물합니다. 치렁치렁 길게 늘어지는 멋진 목도리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멋지고 훌륭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 아이한테 걸맞는 선물을 해 주기로 합니다. 아이가 뜨개질을 마치면, 이 뜨개옷에 붙일 ‘이름표(상표)’를 마련해 주어요. ‘디자이너 라피’라는 이름을 넣어서.


  온누리에 오직 한 벌뿐인 옷을 짓는 아이인 셈입니다. 온누리에 오직 이 보금자리에서만 감도는 따순 사랑을 받아서 자라는 아이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온누리 모든 집안에서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사랑이 즐겁게 자라서 마음껏 넘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살림이 되리라 느껴요.


  뜨개질하는 아저씨가 예쁩니다. 집안일하는 아버지가 곱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함께 살림을 돌보고 삶을 짓는 하루가 될 때에 이곳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4348.12.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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