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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공주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41
배빗 콜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8
‘나이가 꽉 차’도 시집가기 싫은 공주
― 내 멋대로 공주
배빗 콜 글·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5.17. 9000원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어른도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가 아니고, 일만 해야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삶을 즐겁게 누릴 아이요 어른이고, 삶을 사랑스레 가꿀 아이요 어른입니다.
아이는 나이에 맞추어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글을 떼거나 어떤 학교를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어느 나이에 이르러 어떤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아이한테는 ‘꽉 찬 나이’가 없습니다.
이는 어른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몇 살 나이가 되었으니 이런 일을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어느 나이에 이르면 무엇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가씨로 지내는 게 좋았거든요. 하지만 공주가 워낙 예쁘고 부자여서 모든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죠. (2∼3쪽)
배빗 콜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비룡소,2005)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내 멋대로’라고 하는 공주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괴물이라고 여길 만한 짐승을 귀염둥이로 곁에 둡니다. 언제나 귀염둥이 짐승(괴물)을 돌보고, 드넓은 꽃밭을 가꾸면서 하루를 누려요.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나이가 꽉 찼기에 혼인을 한다든지 시집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공주 이름 그대로 ‘마음껏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는 왕비가 말했어요. “너도 이제 나이가 꽉 찼으니 짐승들하고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남편감이나 찾아라!” (6쪽)
어버이가 왕이나 왕비라고 해서 아이한테 꼭 ‘왕국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굳이 왕국을 물려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왕국뿐 아니라 커다란 회사도 이와 같다고 할 만해요. 어버이가 어떤 내로라하는 대단한 회사를 세운 대표나 회장이나 사장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구태여 그런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로서는 아이를 ‘후계자’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아이로서는 아이 나름대로 아이 삶을 즐겁고 씩씩하면서 알차게 가꾸는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기에 아이도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운동선수이기에 아이도 운동선수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이기에 아이도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교사이기에 아이도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이 스스로 가장 즐겁거나 기쁜 삶을 찾아서 꿈을 키울 노릇입니다.
아무도 공주가 시킨 일을 해내지 못했어요. 왕자들은 모두 쑥스러워하며 성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됐겠지?” 내 멋대로 공주는 킥킥 웃으며 말했죠. 공주는 이제야 마음이 푹 놓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뺀질이 왕자가 짜잔 나타난 거예요! (20∼21쪽)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에 나오는 내 멋대로 공주는 ‘아무튼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기’로 합니다. 그래서 공주한테 찾아온 수많은 왕자한테 이것저것 시켜 봅니다. 공주가 시키는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남편감’으로 받아들이겠노라 하고 밝힙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찾아온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하나도 못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공주는 공주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일을 왕자들한테 시키는데, 수많은 왕자 가운데 ‘내 멋대로 공주가 여느 때에 즐겁게 하는 일(놀이)’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공주한테 찾아온 왕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공주 겉모습’이나 ‘공주 재산’을 바라보면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공주하고 사이좋게 놀거나 어울리면서 ‘먼저 동무가 되려는 마음’인 사람이 없어요.
생각해 보셔요. 사이좋은 동무로 함께 놀고 꿈꾸고 사랑하려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공주와 왕자’라고 하는 ‘후계자로 짝짓기’만 해야 한다면, 공주는 살아가는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왕자한테도 이런 삶은 보람이나 뜻이 없을 테고요.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왕좌에 앉는 일이란 웃음도 노래도 이야기도 흐르기 어렵습니다.
뺀질이 왕자는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에게 마법의 뽀뽀를 했고 ……. (26∼27쪽)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데, 마지막으로 뺀질이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모두 거뜬히 해냅니다. 이러면서 뺀질이 왕자는 생각합니다.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군”
자, 이제 뺀질이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뺀질이 왕자는 수많은 ‘경쟁자’를 신나게 물리치고 내 멋대로 공주하고 짝이 될까요? 공주를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닌 ‘공주가 시키는 일쯤이야 대수롭지도 않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공주하고 어떤 삶을 누리려 하는 생각일까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한테 뽀뽀를 합니다. 그러나 그냥 뽀뽀가 아닌 ‘마법 뽀뽀’입니다. 왕자는 ‘마법 뽀뽀’인 줄 모르는 채 ‘다른 모든 경쟁자를 물리쳐서 으뜸이 되었다는 자랑’만 생각합니다. 즐거운 삶을 짓는 놀이를 꿈꾸는 공주는 마지막 장난으로 ‘마법 뽀뽀’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만한 뺀질이 왕자가 될는지, 아니면 ‘저런 공주하고는 못 살겠다’고 외칠는지,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