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신나는 새싹 15
길상효 글, 안병현 그림 / 씨드북(주)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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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8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한테 골목이란

―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길상효 글

 안병현 그림

 씨드북 펴냄, 2015.9.18. 11000원



  내 어릴 적을 떠올리면, 그무렵에는 누구나 목소리로 서로 부르며 살았습니다. 대문을 두드린다든지 단추를 눌러서 사람을 부르지 않았어요. 목소리를 높여서 서로서로 불렀어요. 놀자고 할 적에도 소리를 내어 부르고, 심부름을 할 적에도 소리를 내어 부릅니다.


  이 집에 누군가 있으면 이 집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 집에 아무도 없으면 이웃집에서 고개를 내밀면서 ‘그 집에 아무도 없는데’ 하고 알려줍니다. 손전화가 없고 집전화가 없어도 몸소 찾아가서 만났고,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웃집이 건너건너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오늘날에는 집 주소를 놓고 무슨무슨 길이라거나 번지 숫자가 빼곡하지만, 목소리로 이웃집을 부르던 지난날에는 주소나 번지 숫자가 아니라 ‘집에 사는 사람’ 이름으로 서로 알았습니다. 아무개네 집이 어딘가 하고 찾았지, 몇 번지 몇 통 몇 반으로 집을 찾지 않았어요. 그리고, 감나무가 있는 집이라든지, 대문이 무슨 빛깔인 집이라든지, 집마다 다른 모습과 숨결을 살펴서 서로 알음알음했습니다.



골목은 누구의 것도 아니에요.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어요. 그런데도 눈이 오거나 가랑잎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집 앞 골목을 쓸어요. (5쪽)



  길상효 님이 글을 쓰고, 안병현 님이 그림을 빚은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씨드북,2015)는 오늘날 어린이한테 골목마을이 어떤 삶터인가를 들려주려고 하는 그림책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골목이나 골목마을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더구나 무척 많은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자랍니다. 통계청 자료를 살피면 2005년에 41.7퍼센트가 아파트에서 살고, 2010년에 47.1퍼센트가 아파트에서 산다고 해요. 2015년 통계는 2016년에 나올 텐데 50퍼센트를 웃돌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50퍼센트가 넘는다 하더라도 아파트와 비슷하다고 할 만한 건물에서 사는 사람이 무척 많지요. 다세대 주택에 사는 사람도 많고요. 골목마을에도 2층이나 3층짜리 낮은 집이 꽤 있습니다만, 이 그림책에서 다루는 골목마을 같은 골목집에서 사는 사람은 무척 적어요. 더욱이 골목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줄어듭니다.




골목을 지나가면 많은 이야기가 들려와요. 귀가 어두운 어느 집 할아버지가 크게 켜 놓으신 텔레비전 뉴스 소리도 들리고. (10쪽)



  골목마을에서 사는 사람은 골목마실을 따로 다니지 않습니다. 골목길을 늘 지나다니기는 하되 굳이 이 골목이나 저 골목을 빙글빙글 돌면서 다니지 않아요. 골목마을에서 살지 않는 사람이 골목마실을 다니기 마련이고, 이들은 이 골목과 저 골목 사이에서 흐르는 곱고 따순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아무래도 아파트와 골목집은 사뭇 다르기 때문일 텐데, 아파트는 이웃집이 어떠한 숨결인지 알기 어렵고, 알 수 없기도 합니다. 골목집은 담벼락이 있어도 까치발을 하면 들여다보이기도 할 뿐 아니라, 골목길을 따라서 골목밭이 있기도 하고,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는 골목집보다 높이 솟아서 어디에서나 잘 보입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골목 밖 사람’은 골목길을 거닐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봅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정갈하게 보듬는 골목길을 거니는 동안 수수한 이야기를 느끼고, 수수한 살림을 마주하며, 수수한 사랑이 어떻게 마을을 가꾸는가를 바라볼 만합니다.




골목은 그냥 지나만 다녀도 놀이터가 돼요. 언제 어디서 친구들이 나타날지 몰라요. 꺾인 모퉁이 뒤에서 갑자기 ‘왁!’ 하고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어요. (14쪽)



  그림책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는 아직 아파트 바람이 휭휭 불기 앞서까지 골목마을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조촐한 재미와 기쁨을 새록새록 보여주려고 합니다.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을 보여주고, 골목 한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어우러지는 이웃들을 보여줍니다. 허물이 없는 삶을 보여주고, 도란도란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보여주지요.


  가만히 보면, 골목집은 햇볕을 골고루 나누어 받습니다. 햇볕을 더 잘 받는 집은 따로 없습니다. 올망졸망 담벼락을 맞대고 이어지는 작은 집들은 해가 흐르는 결에 따라 찬찬히 따스한 손길을 받습니다. 작은 집이 서로 모여서 시끄러운 소리가 골목마을로 스며들지 못하고, 작은 집이 나란히 붙은 터라 한겨울에도 한결 따스한 기운이 감돕니다.




나를 등지고 반대쪽으로 뛰어가던 친구가 어느새 내 앞에서 뛰고 있기도 해요. 꺾이고 갈라지는 골목에는 숨을 곳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숨바꼭질은 매일 해도 재미있어요. (17쪽)



  집과 집 사이에 난 길을 골목이라고 합니다. 길게 맞붙은 집 사이로 흐르는 길이 골목입니다. 이 골목은 이 집 것도 저 집 것도 아닙니다. 함께 나누어 쓰는 길이고, 함께 걷는 길입니다. 함께 오가는 길이요, 함께 누리는 길이에요.


  골목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골목을 쓸고 치웁니다. 함께 누리는 삶자리이니까요. 골목마을에서는 누구나 이웃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언니 오빠 누나 동생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마을은 들과 숲과 냇물을 함께 누리는 삶자리이고, 골목마을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삶자리입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나누고, 큰 것은 큰 것대로 나눕니다. 웃음은 웃음대로 나누며, 눈물은 눈물대로 나누어요.


  그림책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이웃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면서, 바로 우리 누구나 서로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면서 오순도순 삶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알려주려고 하지 싶습니다. 어깨를 겯는 동무가 되고, 손을 맞잡는 이웃이 되어, 우리 삶터를 우리 사랑으로 곱게 가꾸자는 꿈을 넌지시 들려주려고 하지 싶습니다. 4348.1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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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4
존 버닝햄 글.그림 / 보림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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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9



놀면서 심부름을 즐기는 아이들

― 장바구니

 존 버닝햄 글·그림

 김원석 옮김

 보림 펴냄, 1996.7.10. 9000원



  밤에 별을 보려고 마당에 나옵니다. 아이들은 모두 새근새근 잡니다. 아이들이 잠든 이 밤은 나한테 아주 홀가분한 한때입니다. 아버지도 호젓하게 별바라기를 하거나 달춤을 추고 싶단 말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마당에 서서 달도 별도 함께 바라보면서 별자리를 그리고 미리내를 헤아리다가 대문을 열고 고샅에 서 봅니다. 요즈음은 시골에도 곳곳에 전등불을 밝히느라, 전등불 없는 곳을 찾자면 좀 걸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밤눈이 밝고, 전등불이 없어도 밤길을 잘 다닙니다만, 이렇게 밤새 전등불을 켜면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이나 남새도 밤새 못 쉬지요.


  불빛이 없는 곳을 찾아서 고샅을 걷는데, 이웃집 개가 컹컹 짖습니다. 고양이라도 지나가는 줄 알았을까요. 개 한 마리가 짖으니 저 건너편 창고 앞에 있는 개도 짖습니다. 그리고 마을 안쪽에 있는 개도 짖습니다. 밤에 고요히 별바라기를 하려고 나오는데 너희가 짖으면 시끄럽잖니, 하고 생각하면서 마을을 벗어나도 개는 컹컹 소리를 자꾸 냅니다. 이래서야 호젓함도 고요함도 즐거움도 없구나 싶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대문을 닫고 마당에 서서 별바라기를 하는데도 이웃집 개는 컹컹 소리를 그치지 않습니다. 한동안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별을 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스티븐은 아기에게 줄 달걀 여섯 개, 바나나 다섯 개, 사과 네 개, 오렌지 세 개, 자기가 먹을 도넛 두 개랑 과자 한 봉지를 샀어요. 그러고 나서 스티븐이 가게에서 나오는데 곰이 있지 뭐예요. (5쪽)



  존 버닝햄 님이 빚은 그림책 《장바구니》(보림,1996)를 읽습니다. 단출한 심부름을 하는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그리 어렵지 않은 심부름을 합니다.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바쁘고, 여기에다가 온갖 집안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나’는 스스럼없이 심부름을 하러 다녀오기로 합니다.


  그런데, ‘내’가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온갖 짐승이 나옵니다. 온갖 짐승은 내 장바구니에 담긴 것을 하나씩 달라고 으르렁거립니다. 내 장바구니에 있는 것을 안 주면 나를 괴롭힌다고 하는군요.


  이런. 나한테 으르렁거리는 온갖 짐승을 만나니, 나는 차츰 골이 납니다. 자꾸 짜증이 납니다. 처음에는 좀 부드럽게 말하지만, 나중에는 아주 지겨워서 거친 말을 내뱉습니다. 얼른 심부름을 마치고 ‘내 놀이’를 하고 싶다는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바나나 내놔. 안 주면, 머리카락을 잡아당길 거야.” “내가 바나나를 개집 위로 던지면, 넌 시끄러우니까 저 사나운 개가 깰 테고, 그러면 잡지도 못할걸.” “내가 시끄럽다고?” 원숭이가 말했어요. (11쪽)





  아이들은 심부름을 싫어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심부름을 대단히 즐거워 합니다. 아이 나름대로 무언가 거들 수 있어서 기뻐하고, 아이 힘으로 살림에 한손을 보탤 수 있어서 반깁니다.


  그림책 《장바구니》에 나오는 온갖 짐승은 ‘무엇’을 넌지시 빗대었을까요? 마을 개구쟁이일까요? 아니면, 마을에 있는 ‘짓궂은 형들’일까요? 온갖 짐승들은 심부름을 하지도 않고, ‘심부름하는 나’를 도울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내’ 곁에서 ‘나를 괴롭히는 재미’로 엉겨붙으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적에도 내가 심부름을 하는 길에 ‘좀 있다가 집으로 가고, 같이 놀자’고 붙잡는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맡긴 심부름을 깜빡 잊고 놀이에 흠뻑 빠지는 일이 곧잘 있었습니다.



스티븐은 장바구니를 들고 서둘러 집으로 갔어요. 스티븐이 집에 다다랐을 때 문 앞에 엄마가 있었어요. (29쪽)




  그림책 《장바구니》에 나오는 아이는 온갖 짐승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느라 바쁩니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뭔 그런 심부름을 하는데 왜 이리 늦느냐고 나무랍니다.


  아이는 이제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애써 심부름을 마쳤는데, 저를 괴롭히는 온갖 짐승을 물리치며 집으로 씩씩하게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나한테 들려주는 말은 칭찬조차 아닌 나무람입니다. 힘들게 심부름을 했는데 따사로운 말을 못 듣습니다.


  이래서야 다음에 또 심부름을 할 마음이 들까요? 아마 다음에 다시 심부름을 해야 하더라도 웃는 낯으로 기쁘게 하기는 어렵겠지요. 살림을 거드는 일이란 지겹거나 재미없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그림책 《장바구니》에는 ‘심부름을 하는 사내 아이’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내 아이가 아닌 ‘아이 아버지’가 심부름을 한다면 어떨까요? 남자 어른은 집안일을 얼마나 잘 거들까요? 남자 어른은 장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기꺼이 심부름을 할는지요?


  가벼운 심부름 하나를 놓고 기나긴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놓는 《장바구니》를 가만히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어머니 아버지 심부름을 할 적마다 늘 즐겁게 했습니다. 집부터 가게까지 신나게 달리기를 하곤 했습니다. 어릴 적에 심부름을 마치면 어머니는 늘 ‘고마워’ 하고 말씀하셨고, 오늘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살림을 돕거나 심부름을 해 주면 ‘고마워’라든지 ‘고맙습니다’ 하고 똑똑히 말합니다. 참말 고마운 일이니까요.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는데 무척 오래 걸리더라도 언제나 즐겁게 노느라 오래 걸릴 뿐이니,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상냥하게 바라보고 고마이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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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사샤 폴리아포바 그림, 신선영 옮김 / 달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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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7



실컷 뛰놀며 자란 아이가 씩씩하다

― 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사샤 폴리아코바 그림

 신선영 옮김

 달리 펴냄, 2007.7.30. 9000원



  작은아이는 졸리면 어느새 내 무릎으로 다가와서 기대거나 누우려 합니다. 큰아이도 졸릴 적에 이렇게 하고 싶으나, 이제 동생이 있기에 선뜻 내 무릎으로 다가와서 기대거나 눕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를 잠자리에 누이면 “나도 동생처럼 안아서 눕혀 줘.” 하고 말하곤 합니다. 때로는 업어서 잠자리에 누여 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제 어버이를 믿기 때문에 졸린 몸을 맡깁니다. 제 어버이가 저희를 따스한 이부자리에 누여 주리라 믿기 때문에 느긋하게 잠이 듭니다. 제 어버이가 이불을 여미어 주고, 토닥토닥 달래면서 자장노래를 불러 주리라 믿으니, 밤마다 고이 꿈나라로 갑니다.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 통 잠을 안 잤어요. 밤이면 지붕들 위로 기어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어요.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우우!” 하며 알은체도 했어요. (2쪽)



  필립 레셰르메이에 님이 글을 쓰고, 사샤 폴리아코바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내가 늑대였을 때》(달리,2007)를 빙그레 웃으면서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가 사회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빗대어 그렸다’고도 하는데, 어느 모로 보면 참말 그렇겠네 싶으면서도, 달리 보면 아이가 아이다움을 잃거나 잊는 모습을 그렸구나 싶기도 합니다.


  퍽 어린 아이는 밤에 잠을 자기보다는 밤에 말똥말똥 깨어서 놀려고 해요. 퍽 어린 아이는 밤에 잠을 안 자려 한 탓에 아침이랑 낮에 깊이 잠들기 일쑤예요. 낮이나 밤을 따로 가릴 줄 모르기에 이 아이들은 언제라도 실컷 놀고 싶지요. 밤마다 까르르 웃고 노는 아이를 키운 어버이라면, 이 그림책 첫머리에 나오는 ‘밤에 울부지는 늑대’ 모습에 허허 하고 웃음이 나오거나 아이고 하며 웃음이 나오거나 그저 빙긋빙긋 웃음이 나올 테지요.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 달빛 없는 밤이면 할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럴 때면 나는 공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렸어요. 정말로 마음이 우울하고 쓸쓸했어요. (6∼7쪽)



  갓 태어난 아기는 임금님하고 똑같다고 할 만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알뜰살뜰 모시지요. 아프랴 추우랴 더우랴 살피면서 알뜰히 모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뿐 아니라, 무척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알뜰살뜰 챙기고 사랑하면서 모셔요.


  힘이 여린 사람을 돌보는 몫은 바로 튼튼하거나 힘이 센 사람이 누리는 삶입니다. 힘이 여리니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힘이 있으니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지요.


  어느 어버이도 아이한테 밥을 지으라 시키지 않아요. 어느 어버이도 아이더러 옷을 짓거나 집을 지으라고 윽박지르지 않아요. 참말 아이들은 실컷 놀아야 합니다. 일찍 글을 떼거나 공부를 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일찍 책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마음껏 놀고 신나게 뒹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참다 못한 사람들이 진저리를 치며 소리쳤어요. “저 늑대 녀석은 남들 깨어 있을 땐 자고, 세상 조용할 땐 떠들어대고, 아주 제멋대로야. 저 녀석 때문에 미칠 지경이야, 없애 버려야겠어!” (14쪽)



  그림책 《내가 늑대였을 때》에 나오는 늑대는 차츰 늑대 노릇을 하기 어렵습니다. 둘레에서 늑대를 내쫓으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늑대는 어느덧 털이 빠지고 날카로운 손톱이나 송곳니도 사라집니다. 차츰차츰 ‘사람 꼴’로 바뀝니다. 사람 꼴로 바뀌다가 그예 사람이 되더니, 이제는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림책 마지막 쪽을 펼치고는 후유 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삶을 여덟 해를 보낸 어버이로 헤아리자니, 나는 우리 아이들이건 이웃 아이들이건 ‘더 오래 늑대다운 삶’을 누리면서 놀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나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적어도 열 살까지는, 또 열한두 살까지도 실컷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를 알거나 배우더라도, 글을 알거나 책을 읽더라도,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아이들이 ‘들사람 넋’을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열다섯 살이 되어도 구슬땀을 흘리면서 들길을 달리면서 놀 줄 아는 푸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무 살이 되어도 기쁘게 노래하면서 마음껏 춤줄 줄 아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흉내내는 노래나 춤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스러운 몸짓과 목소리로 곱게 노래하고 춤줄 줄 아는 신나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언젠가부터 내 털이 조금씩 짧아졌어요. 이빨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어요. 주둥이는 오그라들었어요. 내가 거리로 나가도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집에서는, 내 손톱 때문에 마루에 흠집 나는 일이 없어졌어요. 내가 만지는 것마다 찢어지지도 않았고요. 나는 지붕 위에서 하던 달빛 목욕도, 으르렁대고 울부짖던 것도 그만두었어요. (20∼21쪽)



  십일월이 되어도 마당에서 맨발로 노는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실컷 뛰놀며 자란 아이가 씩씩하게 자랄 테지요. 지난해 겨울에도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어내고 나면 십이월이나 일월에도 신나게 물놀이를 하던 우리 집 아이들은 올 십이월에도 똑같이 물놀이를 하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던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 고우면서 착한 넋이 되리라 느껴요.


  시험공부만 하던 아이가 되지 말고, 동무를 아끼고 동생을 돌볼 줄 알면서 숲바람을 마시며 자란 아이일 적에, 공무원이 되든 교수나 지식인이 되든 아름다운 꿈으로 정책이나 학문을 밝힐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바람맛을 알고, 햇살맛을 알며, 풀맛이랑 흙맛을 아는 아이로 뒹굴며 놀다가 천천히 푸름이를 거쳐서 어른이 될 적에, 이웃을 사랑하고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숨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8.1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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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게리 루빈스타인 지음, 노경실 옮김 / 두레아이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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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6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는 없다

―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게리 루빈스타인 글

 마크 펫 그림

 노경실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 2014.4.30. 12000원



  고단하거나 졸릴 적에 애써 참으며 설거지를 하다가는 그만 손에서 접시나 그릇이 미끄러져서 개수대로 쿵 떨어집니다. 자칫하면 애먼 접시나 그릇이 깨집니다. 밥을 지을 적에 늘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되어 노래하는 숨결일 때에 맛난 밥을 지어요. 다 먹은 그릇하고 접시를 치울 적에도 언제나 홀가분한 몸하고 마음이 되어 노래하면서 수세미를 쥐지 않는다면 날마다 접시를 깨고 맙니다.


  어른하고 대면 조그마한 손이랑 발인 아이들이 개구지게 놀다가 소꿉을 떨어뜨립니다. 세발자전거를 둘이 올라타면서 오랫동안 놀았는데, 낡은 세발자전거는 이제 두 아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앞바퀴가 폭삭 주저앉습니다. 아이들이 마당하고 고샅에서 마음껏 달리면서 놀다가 그만 자빠지거나 엎어집니다. 소매도 무릎도 흔히 구멍이 납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대신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라고 부릅니다. 베아트리체가 실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7쪽)



  마크 펫 님하고 게리 루빈스타인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두레아이들,2014)를 읽습니다. 도무지 잘못이라고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아이는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요. 아이는 잘못이라고는 모르니까요. 어른들이 아이를 바라보며 “너 잘못했어!” 하고 말하니까 아이는 멀뚱멀뚱 어른들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아, 이렇게 하면 싫어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넘어진들 잘못이 아닙니다. 힘이 여린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린들 잘못이 아닙니다. 한창 말을 익히거나 글을 배우는 아이가 소리가 샌다든지 글씨를 틀리게 쓴들 잘못이 아닙니다. 참말로 아이한테서 잘못이라고 할 만한 대목이 없습니다.




누나와 달리 레니는 실수투성이며, 엉뚱한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크레파스를 먹거나 통조림 콩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거든요. 두 발 대신 두 손으로 춤을 추거나, 두 손 대신 두 발로 피아노를 치기도 합니다. 레니는 실수하는 걸 겁내지 않거든요. (8쪽)



  우리 어른한테는 잘못이 있을까요? 우리 어른은 어떤 잘못을 저지를까요? 아이를 큰소리로 나무란다든지, 아이한테 회초리를 드는 일은 잘못일까요 아닐까요. 아이가 한 일이 아닌데 아이를 몰아세운다든지,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섣불리 아이를 꾸짖는다면, 이런 몸짓은 잘못일까요 아닐까요.


  잘과 잘못을 나누는 눈길은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눈길입니다.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눈길은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눈길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눈길은 온누리를 두 가지 틀로 잘라서 옭아매는 눈길입니다.


  접시는 깰 수 있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 수 있고, 큰소리로 왁왁거릴 수 있고, 밥을 태울 수 있고, 골을 부릴 수 있고, 책을 찢을 수 있고, 주머니에 구멍 난 줄 모르다가 돈을 흘릴 수 있고, 놀다가 시간 가는 줄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하고 놀이는 언제나 다르면서 새로운 삶입니다. 이른바 경험이라고 합니다. 이 경험을 했다고 좋다고 여길 수 있고, 저 경험을 했으니 나쁘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좋고 싫음을 떠나서 차분히 바라볼 수 있으면 마음도 새로울 수 있어요.




음악이 멈췄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어쩔 줄을 몰랐어요. 울어 버릴까? 무대 뒤로 숨어 버릴까? 사람들도 많이 놀라 숨죽이고 무대를 쳐다보았습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가 실수를 하다니! (23∼24쪽)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면서 배웁니다. 어른도 밥을 짓다가 그만 부엌칼에 손가락을 베면서 밥짓기를 새삼스레 더 배우기도 합니다. 어른도 낫질을 하다가 그만 낫날에 손가락을 베면서 풀베기나 나락베기를 새삼스레 더 배우기도 해요.


  그릇을 떨어뜨려 깨는 사이에 한 가지를 배웁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놀다가 그만 툭탁거리는 사이에 스스로 한 가지를 배웁니다. 낮잠을 안 자고 밤잠도 건너뛰면서 놀려고 하는 아이들은 문득 코피가 터지면서 새삼스레 한 가지를 배웁니다. 가을이 저물며 겨울 문턱에 다다를 즈음 바람결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새롭게 한 가지를 배워요. 추운 날 굳이 얇게 옷을 입겠노라 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찬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두꺼운 옷을 입든 여러 벌을 껴입든 하면서 배웁니다.




베아트리체는 (햄스터) 험버트를 올려다보고, 험버트는 베아트리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흠뻑 젖은 험버트의 털에 찢어진 풍선 조각들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베아트리체가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낄낄거리며 웃다가 결국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25쪽)



  그림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문득문득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면서 배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데, 어떤 일을 했을 적에 꼭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어요. 그저 겪어 보는 일입니다. 처음으로 겪는 일이고, 갑작스레 겪는 일이에요.


  그러니,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거나 치르든 차분하게 바라보면서 따스하게 안아 줄 수 있어야 슬기롭게 배워요. 어른들도 어떤 일을 겪거나 치르든 차분하게 마주하면서 포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사랑스럽게 배워요.


  때때로 어떤 어른들은 자꾸 바보짓을 일삼기도 하는데, 게다가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아무것도 못 배우는구나 싶기도 하는데, 이런 어른들은 아직 사랑을 모르기에 바보짓을 하리라 느껴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고, 바보스러운 어른이 이녁을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모르기에 자꾸 바보짓을 할 테지요.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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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꿈꾸는 작은 씨앗 14
길상효 글, 조은정 그림 / 씨드북(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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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9



숲과 시골에서 태어난 빛깔말

―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길상효 글

 조은정 그림

 씨드북 펴냄, 2015.8.30. 11000원



  나는 어머니한테서 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한테서 말을 배웠습니다. 여기에 우리 형도 나한테 말을 가르쳐 주었어요. 내가 쓰는 말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형한테서 하나하나 물려받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곁님한테서 말을 물려받습니다. 나와 곁님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서 저마다 예전에 물려받은 말을 차곡차곡 물려줍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러한 결대로 흘렀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스승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반가운 님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에게 첫 이름을 지어 주신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께 (앞머리)




  길상효 님이 글을 쓰고, 조은정 님이 그림을 빚은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씨드북,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시골 할머니한테 찾아가는 도시 가시내(아이)가 시골 할머니한테서 빛깔말을 하나씩 배우는 얼거리로 한겨레 빛깔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양, 노랑, 푸름, 빨강, 검정, 이 다섯 가지 빛깔이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서 들려줍니다.



“할매 어렸을 적엔 하도 배고 고파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전부 하얀 떡가루면 얼매나 좋을까 하고는 입 벌려서 받아 먹고 그랬데이.” (4쪽)




  ‘해맑은’ 웃음이나 ‘해맑은’ 목소리는 무척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해맑은 웃음은 더욱 보기 좋고, 해맑은 목소리는 더욱 듣기 좋습니다. ‘해맑다’와 함께 ‘해밝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두 낱말은 “하얗고 맑다”나 “하얗고 밝다”를 뜻할 텐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얗다’는 바로 하늘에 뜬 ‘해’와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해맑은 웃음이란 “해처럼 맑은 웃음”이요, 해맑은 목소리는 “해처럼 맑은 목소리”입니다.


  가을이 되어 나락이 누렇게 익습니다. 누런 들판을 바라보며 금빛 물결이 출렁인다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를 먹여살리는 가을 들판 ‘나락알(나락 열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샛노란’ 빛깔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잘 익은 나락(벼) 열매를 두고 ‘누렇다’ 같은 빛깔말을 씁니다만, 아직 기계나 낫으로 베지 않고 논에 뿌리를 둔 “잘 익은 나락 열매”를 보면 ‘노란’ 빛깔이에요. ‘노랗다’는 바람에 한들거리는 나락 열매 빛깔이요, ‘누렇다’는 알뜰히 베어 햇볕에 살뜰히 말릴 적에 나락 열매가 차츰 달라지는 빛깔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런디, 나는 왜 푸른 것을 푸르다고 하는 줄 아나? 풀이 푸르니께 푸르다고 하는 기다.” (13쪽)




  아이랑 어버이는 언제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이 말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빛깔 하나를 알려줄 적마다 빛깔하고 얽힌 말마디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듯이 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에는 누구나 시골에서 살며 온갖 빛깔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대목을 온몸으로 알고 온마음으로 헤아렸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며 빛깔말을 잊거나 몰라요. 말이 태어난 뿌리를 모르기에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면서 갖가지 영어가 퍼지니, 하양도 노랑도 풀빛도 빨강도 까망도 밀립니다. 말이 태어난 뿌리를 어른들도 가르치지 못하고 아이들도 궁금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엉터리로 쓰면서 우리 넋을 글 한 줄에 슬기롭게 못 담기 일쑤입니다.



할머니는 시골집 뒷산에 묻히셨어요. 풀과 나무가 우거진 푸른 뒷산에요. 여기 서면 할머니 집 마당이 내려다보여요. 해가 쨍쨍한 날 빨랫줄에 널어놓은 하얀 이불 홑청이 사각사각 잘도 마르던 곳이에요. (20쪽)




  ‘푸르다’는 ‘풀’이라고 하는 숨결에서 비롯한 빛깔말입니다. 그러면 풀이란 무엇일까요? 땅에서 씨앗이 깨어나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올려 꽃을 피우는 숨결이 바로 ‘풀’입니다. 풀 가운데 저절로 돋으면서 사람이 먹으려고 뜯거나 캐거나 훑으면 ‘나물’이고, 사람이 밭을 따로 일구어 씨앗을 손수 심어서 얻으면 ‘남새’입니다. 나물과 남새를 아울러 ‘푸성귀’라 하지요. 그러니, 밭은 모두 ‘남새밭’입니다. 들이나 산에서 캐는 “먹는 풀”은 들나물이나 멧나물이에요. 요새는 ‘푸르다·풀’하고 얽힌 말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에 ‘야채·채소’ 같은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을 함부로 섞어서 잘못 쓰기도 합니다.


  새까만 열매를 맺는 ‘까마중’을 보면 ‘검다·까맣다·깜깜하다·캄캄하다’처럼 갈리는 빛깔말을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구름을 보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온갖 빛깔로 피어나는 들꽃을 보고, 또 알록달록 고운 나무 열매를 보면, 빛깔을 이루는 낱말은 언제나 숲하고 시골에서 태어나 숲하고 시골에서 싱그러이 자라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을에 가을빛을 느끼고, 겨울에 겨울빛을 느끼지요. 봄에 봄빛이 새롭고, 여름에 여름빛이 눈부십니다. 크레파스에 있는 빛깔이 아니라, 우리 둘레에 있는 빛깔입니다. 눈을 들어 둘레를 살필 때에 알아차리는 빛깔이고, 우리를 둘러싼 삶터를 넉넉히 품으면서 새로 배우는 빛깔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해 하리라 느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여느 살림집에서 가스불을 켜면 파란 불꽃이 일거든요. 나무를 태우는 빛깔일 때에 ‘붉다’를 알려줄 텐데, 도시에서는 장작불을 보여주기에는 만만하지 않겠지요. 그때에는 이 그림책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를 넌지시 펼쳐서 아이하고 빛깔말을 새롭게 바라보고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8.10.2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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