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사샤 폴리아포바 그림, 신선영 옮김 / 달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7



실컷 뛰놀며 자란 아이가 씩씩하다

― 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사샤 폴리아코바 그림

 신선영 옮김

 달리 펴냄, 2007.7.30. 9000원



  작은아이는 졸리면 어느새 내 무릎으로 다가와서 기대거나 누우려 합니다. 큰아이도 졸릴 적에 이렇게 하고 싶으나, 이제 동생이 있기에 선뜻 내 무릎으로 다가와서 기대거나 눕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를 잠자리에 누이면 “나도 동생처럼 안아서 눕혀 줘.” 하고 말하곤 합니다. 때로는 업어서 잠자리에 누여 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제 어버이를 믿기 때문에 졸린 몸을 맡깁니다. 제 어버이가 저희를 따스한 이부자리에 누여 주리라 믿기 때문에 느긋하게 잠이 듭니다. 제 어버이가 이불을 여미어 주고, 토닥토닥 달래면서 자장노래를 불러 주리라 믿으니, 밤마다 고이 꿈나라로 갑니다.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 통 잠을 안 잤어요. 밤이면 지붕들 위로 기어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어요.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우우!” 하며 알은체도 했어요. (2쪽)



  필립 레셰르메이에 님이 글을 쓰고, 사샤 폴리아코바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내가 늑대였을 때》(달리,2007)를 빙그레 웃으면서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가 사회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빗대어 그렸다’고도 하는데, 어느 모로 보면 참말 그렇겠네 싶으면서도, 달리 보면 아이가 아이다움을 잃거나 잊는 모습을 그렸구나 싶기도 합니다.


  퍽 어린 아이는 밤에 잠을 자기보다는 밤에 말똥말똥 깨어서 놀려고 해요. 퍽 어린 아이는 밤에 잠을 안 자려 한 탓에 아침이랑 낮에 깊이 잠들기 일쑤예요. 낮이나 밤을 따로 가릴 줄 모르기에 이 아이들은 언제라도 실컷 놀고 싶지요. 밤마다 까르르 웃고 노는 아이를 키운 어버이라면, 이 그림책 첫머리에 나오는 ‘밤에 울부지는 늑대’ 모습에 허허 하고 웃음이 나오거나 아이고 하며 웃음이 나오거나 그저 빙긋빙긋 웃음이 나올 테지요.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 달빛 없는 밤이면 할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럴 때면 나는 공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렸어요. 정말로 마음이 우울하고 쓸쓸했어요. (6∼7쪽)



  갓 태어난 아기는 임금님하고 똑같다고 할 만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알뜰살뜰 모시지요. 아프랴 추우랴 더우랴 살피면서 알뜰히 모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뿐 아니라, 무척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알뜰살뜰 챙기고 사랑하면서 모셔요.


  힘이 여린 사람을 돌보는 몫은 바로 튼튼하거나 힘이 센 사람이 누리는 삶입니다. 힘이 여리니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힘이 있으니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지요.


  어느 어버이도 아이한테 밥을 지으라 시키지 않아요. 어느 어버이도 아이더러 옷을 짓거나 집을 지으라고 윽박지르지 않아요. 참말 아이들은 실컷 놀아야 합니다. 일찍 글을 떼거나 공부를 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일찍 책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마음껏 놀고 신나게 뒹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참다 못한 사람들이 진저리를 치며 소리쳤어요. “저 늑대 녀석은 남들 깨어 있을 땐 자고, 세상 조용할 땐 떠들어대고, 아주 제멋대로야. 저 녀석 때문에 미칠 지경이야, 없애 버려야겠어!” (14쪽)



  그림책 《내가 늑대였을 때》에 나오는 늑대는 차츰 늑대 노릇을 하기 어렵습니다. 둘레에서 늑대를 내쫓으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늑대는 어느덧 털이 빠지고 날카로운 손톱이나 송곳니도 사라집니다. 차츰차츰 ‘사람 꼴’로 바뀝니다. 사람 꼴로 바뀌다가 그예 사람이 되더니, 이제는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림책 마지막 쪽을 펼치고는 후유 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삶을 여덟 해를 보낸 어버이로 헤아리자니, 나는 우리 아이들이건 이웃 아이들이건 ‘더 오래 늑대다운 삶’을 누리면서 놀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나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적어도 열 살까지는, 또 열한두 살까지도 실컷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를 알거나 배우더라도, 글을 알거나 책을 읽더라도,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아이들이 ‘들사람 넋’을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열다섯 살이 되어도 구슬땀을 흘리면서 들길을 달리면서 놀 줄 아는 푸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무 살이 되어도 기쁘게 노래하면서 마음껏 춤줄 줄 아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흉내내는 노래나 춤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스러운 몸짓과 목소리로 곱게 노래하고 춤줄 줄 아는 신나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언젠가부터 내 털이 조금씩 짧아졌어요. 이빨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어요. 주둥이는 오그라들었어요. 내가 거리로 나가도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집에서는, 내 손톱 때문에 마루에 흠집 나는 일이 없어졌어요. 내가 만지는 것마다 찢어지지도 않았고요. 나는 지붕 위에서 하던 달빛 목욕도, 으르렁대고 울부짖던 것도 그만두었어요. (20∼21쪽)



  십일월이 되어도 마당에서 맨발로 노는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실컷 뛰놀며 자란 아이가 씩씩하게 자랄 테지요. 지난해 겨울에도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어내고 나면 십이월이나 일월에도 신나게 물놀이를 하던 우리 집 아이들은 올 십이월에도 똑같이 물놀이를 하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던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 고우면서 착한 넋이 되리라 느껴요.


  시험공부만 하던 아이가 되지 말고, 동무를 아끼고 동생을 돌볼 줄 알면서 숲바람을 마시며 자란 아이일 적에, 공무원이 되든 교수나 지식인이 되든 아름다운 꿈으로 정책이나 학문을 밝힐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바람맛을 알고, 햇살맛을 알며, 풀맛이랑 흙맛을 아는 아이로 뒹굴며 놀다가 천천히 푸름이를 거쳐서 어른이 될 적에, 이웃을 사랑하고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숨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8.1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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