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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4.
까칠읽기 29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문학동네
2018.11.23.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문학동네, 2018)는 틀림없이 ‘뚜벅이’ 이야기일 텐데, 어쩐지 뚜벅뚜벅 발소리는 안 나는 듯하다. 꽤 걷는다고 밝히기는 하는데, “걸어다니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다”는 줄거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쓴이가 “걷는 사람”이라고 안 밝히는 자리에서 으레 풀어내거나 흘러나올 만한 줄거리만 가득하다.
책을 다 읽고서 돌아본다. 이 책은 “하정우, 나(내 연기생활)를 말한다”쯤으로 붙여야 어울린다. 그냥 ‘하정우’라는 분이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고 밝히는 얼거리요 줄거리이다. 사람들 앞에서 꽃돌이(남자 배우)로 지내온 길을 ‘한 발짝씩 뗐다’는 뜻으로 본다면, 이 책이름이 아주 틀리지는 않으나, 군데군데 “많이 걸어다녔다”고 드러내는 글자락은 오히려 ‘자랑’ 같다.
글쓴이 스스로 밝히기로는, 머리말부터 ‘자랑할 생각 없’이 썼다고 하지만, “이렇게 돈 잘 벌고 이름값 있는 사람”이 잘 걸어다닌다면서 오히려 자랑하는 얼개로 흘렀다고 느낀다. 이미 여러 곳에 얼굴을 내밀거나 팔면서 “하고픈 말을 많이 할” 텐데, 따로 책을 쓴다고 할 적에는 “내가 나로서 천천히 걸으면서 둘레를 다시 바라보고 마음속을 새롭게 들여다본 삶”을 그저 발바닥으로 옮길 일이었으리라 본다. ‘국토대장정’을 어떻게 했을까? “국토대장정을 했다”라고만 하고, 막상 하루하루 어떻게 걸었다든지 걸으며 어떠했다든지 같은 이야기는 아예 없다. 집하고 일터 사이가 꽤 멀지만 자주 걷는다는데, 자주 걷는다면서 하루하루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지 같은 이야기는 없다. 뭔가?
“자랑할 마음이 없다”고 밝히는 말이 ‘자랑’인 줄 눈치채지 못 했다면, 부디 알아채기를 빈다. 그저 걸으면 된다. 걷는 사람은 떠들지 않는다. 그냥 걸어다니면 된다. 걸어다니는 하루를 누가 자랑하는가? 두바퀴를 느긋이 타는 사람도 그저 두바퀴를 달릴 뿐이다. 자랑하려고 걷거나 두바퀴를 탄다면, 이 삶이란 얼마나 안쓰럽고 딱한가? “난 이만큼이나 걷는다구!” 하고 밝히려고 걷는다면, 그야말로 왜 걸어다니는 셈일까? 마치 “난 국산품을 사랑하기에 제네시스를 탄다구!” 하고 밝히는 분들하고 매한가지이다.
저잣마실을 걸어서 다니려나? 책집마실을 걸어서 하려나? 이웃마실을 걸어서 다니려나? 글쎄, 하정우 님이 “걷는 사람”이기는 하다고 느끼지만, ‘왜’ 걷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걷는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려고 걸어왔다면, 이제는 “그냥 걸어다니는 수수한 이웃 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빌 뿐이다.
ㅅㄴㄹ
내가 이동거리를 말할 때 쓰는 단위는 ‘편도 몇 보’가 되었다
→ 나는 길을 ‘가는데 몇 걸음’처럼 말한다
→ 나는 다닐 때 ‘가는길 몇 발’처럼 말한다
7쪽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나는 이 책으로 누구를 가르치거나 내 삶길을 자랑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 나는 이 책을 쓰며 누구를 가르치거나 내 삶결을 자랑할 뜻이 아예 없다
10쪽
무대에서 슈트를 입고 멋쩍은 웃음을 짓던 나는 얼마 후 등산화를 꿰어신고 길을 나섰다
→ 마루에서 차려입고 멋쩍게 웃던 나는 얼마 뒤 멧신을 꿰고 길을 나섰다
→ 위에서 빼입고 멋쩍게 웃던 나는 얼마 있다가 멧길신을 꿰고 길을 나섰다
21쪽
수많은 소동과 사건 끝에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 숱한 너울과 골치 끝에 나라걷기를 마치고
→ 온갖 물결과 벼락 끝에 가로질렀고
→ 갖은 사달과 불굿 끝에 나라마실을 마치고
22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 나는 길에서 늘 즐거웠고, 자주 웃었다
→ 나는 걸으며 언제나 즐거웠고, 자주 웃었다
25
과체중인 사람에겐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치는 활동인 것이다
→ 무거운 사람은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친다
→ 큰사람은 걷기도 그만큼 힘에 부친다
46
시간상으로는 루트1과 비교했을 때
→ 짬으로 길1과 견줄 때
→ 길1보다 얼마나 걸리는지 잴 때
→ 길1하고 얼마나 다른지 따질 때
63
바게트 같은 빵도 사오면 한 번에 다 먹어치우기 어려우므로 바로 썰어서 냉동보관한다
→ 막대빵도 사오면 하루에 다 먹어치우기 어려우므로 바로 썰어서 얼린다
134
침대에 누워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 본다
157
바빠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못하고 각자 책을 읽었다
→ 바빠서 따로 못 만나고 저마다 책을 읽었다
→ 바빠서 만나지 못하고 다들 책을 읽었다
209
한글의 장음과 단음까지도 가려듣는다
→ 한글을 긴소리 짧소리까지 가려듣는다
28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