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읽은 시집

 


  ㅂ시인이 2005년에 내놓은 시집을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인천으로 오는 시외버스에서 읽는다. 읽으면서 가만히 떠올리니 예전에 읽은 생각이 얼핏설핏 떠오른다. 그런데, 얼핏설핏 떠오르기만 할 뿐 이 시집을 읽으며 그때 어떤 마음이 피어났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인천에 있는 형네 집에 닿아 저녁을 쉬고 새벽에 일어난다. ㅂ시인이 2005년에 내놓은 시집은 지난 2013년 유월에 읽고 느낌글을 썼다. 옳거니, 맞구나. 그러면 그때에는 ㅂ시인 어느 시를 즐겁게 읽었나 헤아려 본다. 네 꼭지를 즐거이 읽었다. 그러나 내가 쓴 느낌글에 옮긴 ㅂ시인 시 네 꼭지를 다시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 시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시외버스에서 읽은 시집을 꺼내어 훌훌 넘긴다. 이번에 새로 읽으며 마음에 닿은 대목을 살핀다. 이번에는 시 두 꼭지만 마음에 닿았다. 이번에 마음에 닿은 시와 지난해에 마음에 닿은 시가 다르다.


  시집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이다. 나도 지난해와 올해에는 같은 사람이다. 그러면, 내 마음속이나 마음밭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내 넋이나 얼은 어떻게 거듭났는가. 지난해에 쓴 느낌글은 어떤 내가 썼을까. 오늘 내가 읽은 ㅂ시인 시집은 어떤 빛으로 다가왔는가.


  밤 열두 시까지 잠을 미루고 놀기에 바쁘던 두 아이는 아침 일곱 시가 넘어도 일어날 줄 모른다. 밤새 쉬조차 누지 않는다. 아이들은 큰아버지네에 놀러와서 이렇게 늦도록 놀 수 있었기에 좋았을까? 좋았겠지. 아이들 웃음과 눈빛과 노래만으로도 넉넉히 알 만하다. 일곱 살 큰아이가 어제 열 차례도 넘게 같은 말을 했다. “큰아버지네 집은 왜 이렇게 멀어?” 4347.3.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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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책보다

 


  더 많은 책보다 더 즐거운 책을. 더 많은 책보다 더 사랑스러운 책을. 더 많은 책보다 더 아름다운 책을. 더 많은 책보다 더 따뜻한 책을. 더 많은 책보다 더 슬기로운 책을. 더 많은 책보다 더 알찬 책을.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도 좋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한 그루 있는 들도 좋다. 온갖 나무가 서로 곱게 어우러진 나무밭도 좋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자라는 나무가 있는 시골집 마당도 좋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꿈꾸는 삶이란, 나 스스로 바라면서 사랑하려는 삶이라고 느낀다.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책이란, 나 스스로 하루를 알뜰살뜰 가꾸면서 빛내는 길에 동무가 되는 책이라고 느낀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값진 선물을 받지 않았다. 오직 하나 사랑을 받았을 뿐이다. 나는 내 아이한테 값진 선물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 사랑을 줄 뿐이다.


  값진 책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퍽 비싸다 싶은 값으로 사고팔리는 책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그런데, 내 눈길은 값진 책한테 가지 않는다. 내 손길은 값진 책으로 뻗지 않는다. 내 눈길은 사랑스러운 책한테 간다. 내 손길은 아름다운 책으로 뻗는다. 이레쯤 있으면 우리 집 뒤꼍에 매화꽃이 피려나. 매화나무 꽃망울이 터질듯 말듯 부풀어오른다. 살짝 만지니 보들보들 폭신폭신 따스하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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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3-04 08:13   좋아요 0 | URL
사랑스러운 책,, 따스한 책,,아름다운 책을 만나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요~아침에 읽는 이 글이 너무 좋고 정겹네요^^

숲노래 2014-03-04 08:48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읽으신 글이 착한시경 님 마음에
아름다운 빛을 베풀었다면
저로서는 아주 고마우면서 즐겁습니다 ^^

책읽는노력가 2014-03-04 18:57   좋아요 0 | URL
좋은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보수동 사진이 반갑네요 ///ㅅ///

숲노래 2014-03-04 21:55   좋아요 0 | URL
보수동 책방들이
따사로이 사랑받으면서
예쁜 책들에 깃든 넋이
널리 퍼지면 좋겠어요/
 

번역, 직역, 의역, 오역, 번역투, 창작

 


  작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알아채지 못하면 번역이 엉터리가 되겠지요. 왜냐하면, ‘직역’은 직역일 뿐 번역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문장을 ‘의역’으로만 옮기면, 이때에는 번역이 아닌 창작이 됩니다. 작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가 아닌 번역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로 바뀌어요. 직역이 되든 의역이 되든 둘 모두 ‘오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고 느낍니다. 번역은 번역이 되도록 할 일입니다. 직역도 의역도 아닌 번역을 해야지요.


  번역을 하려면 무엇보다 제 나라 말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어를 잘 안다 하더라도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면, 번역가는 영어로 된 책을 잘 읽고 헤아렸어도 이 책을 한국말로 읽을 독자한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합니다. 외국말과 함께 한국말을 잘 알아야지요. 게다가 외국말만 잘 알아서는 안 되고 외국 문화를 나란히 알아야 하며, 한국 문화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골고루 헤아리면서 짚을 수 있는 눈길과 마음결일 때에 비로소 번역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외국말을 전공해서 번역하는 사람이 꽤 많기는 해도, 막상 한국말을 함께 슬기롭게 익혀서 번역하는 번역가는 뜻밖에 퍽 적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쓰는 ‘비유’를 번역가가 공부하지 않으면, 번역이 엉터리가 될 테지요. 작가가 쓰는 말투를 살리지 않고 번역가가 쓰는 말투를 쓴다면, 이때에도 번역이 아닌 의역이 되어요. 상품 해설서를 한국말로 적는 일이 아니라면,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번역한다면, 마땅히 작가를 잘 알아야 하고 작가가 살아온 터전을 살펴야 하며 작가가 태어난 나라가 어떤 문화요 사회인가를 차근차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흔히 떠도는 서평을 헤아려 봅니다. 서평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품 해설서와 같은 서평을 하면, 이러한 서평은 책과 작가를 제대로 읽어서 말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수많은 서평은 상품 해설서에서 맴돌지 않느냐 싶습니다. 작가 한 사람이 책을 낸 뜻, 작가 한 사람이 살아온 길, 작가 한 사람이 이녁 보금자리에서 가꾸는 빛 들을 골고루 짚으며 헤아릴 때에 비로소 ‘상품 해설서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번역투가 나타나는 까닭은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면서 상품 해설서와 같은 번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올바로 배우고 슬기롭게 가다듬는 이라면 번역투로 번역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번역을 하겠지요.


  창작을 하는 사람도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익혀야 합니다. 독자한테 ‘상품 해설’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나라 이웃인 독자(한국사람)가 즐겁게 알아듣고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사랑스레 삭힐 수 있도록 한국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제대로 읽을 때에 제대로 씁니다. 제대로 쓸 때에 제대로 읽습니다. 제대로 볼 적에 제대로 살아갑니다. 제대로 살아갈 적에 제대로 봅니다. 언제나 함께 맞물리면서 이루는 삶이고 넋이며 빛입니다. 삶과 넋과 빛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태어나는 책입니다. 4347.3.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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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루는 탑

 


  아름다운 책은 한 권만 책상맡에 놓아도 책상맡이 환하다. 아름다운 책 두 권을 놓고 세 권을 놓다가 네 권 다섯 권을 놓으면, 이러다가 책으로 탑을 쌓으면 새삼스레 아름다운 빛이 흐르곤 한다.


  책은 속에 담은 이야기로 아름답기 마련이다. 속에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걸맞게 겉을 꾸민 예쁜 책들은 차근차근 모아서 탑으로 쌓을 적에도 아름답다. 겉만 멋들어지게 꾸민대서 아름다운 빛이 흐르지 않는다.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하면서 가꾼 손길이 깃들 적에 아름다운 빛이 흐른다.


  책으로 태어나자면 숲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숲을 푸르게 빛내던 나무를 베어서 사람들 마음을 푸르게 밝히는 책을 빚는다. 푸른 숨결이 책에 깃들고, 푸른 넋이 책에서 다시 태어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빛과 숨결과 넋을 읽는다. 책을 손에 쥘 적에 숲내음과 숲노래와 숲빛을 받아먹는다. 숲에 우거진 나무를 살그마니 옮기면서 책으로 이루는 탑이 된다. 4347.3.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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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글 하나로 살아나는 책읽기

 


  2013년 11월에 나온 사진책이 있다. 이 사진책을 책상맡에 한참 둔 끝에 2014년 1월에 느낌글을 썼고, 2014년 3월에 나오는 사진잡지에 사진비평으로 느낌글을 실었다. 십일월과 십이월, 여기에 일월과 이월까지 더한 넉 달이 있기에 느낌글이 태어난 셈이다.


  어느 책은 책방에서 장만한 그날 곧장 다 읽어내어 느낌글까지 새삼스레 쓰곤 한다. 어느 책은 장만한 지 여러 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느낌글을 쓰곤 한다. 어느 책은 처음 장만한 뒤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난 뒤 드디어 마음으로 읽혀 느낌길을 쓰곤 한다.


  모든 책은 읽는 때가 있다. 모든 글은 쓰는 때가 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내 책상맡에 놓은 책이 마음으로 스며들 때를 조용히 기다린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 책상맡에서 쓰고픈 글이 샘솟을 때를 천천히 기다린다.


  배고플 때에 밥을 차려서 먹듯이, 마음이 바랄 적에 책을 읽는다. 배고플 때를 헤아려 흙을 일구어 씨앗을 심어 돌보듯이, 마음이 따사롭게 부풀 수 있게끔 아름다운 책을 미리 장만해서 집안에 둔다. 책읽기는 밥먹기와 같다면, 책을 장만하는 일은 씨앗심기와 같다. 책읽기는 삶읽기와 같다면, 책을 장만하는 일은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려는 손길과 같다. 그리고, 책읽기와 삶읽기는 ‘책을 즐겁게 읽고 난 느낌’을 글로 갈무리하면서 새롭게 살아난다. 느낌글을 쓰면서 책 하나를 새삼스레 헤아리고, 느낌글을 마무리짓고 나서 오늘까지 가꾼 내 삶을 새롭게 깨닫는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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