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과 눈물샘

 


  이 책은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저 책은 눈물샘이 솟습니다.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책을 읽습니다. 울면서 이야기밭에 씨앗을 심는 책을 읽습니다. 웃음이 피어나기에 책입니다. 눈물이 샘솟기에 책입니다. 웃음은 웃는 이야기요, 눈물은 우는 이야기입니다. 꽃은 싱그럽게 피어나서 누렇게 시듭니다. 풀은 짙푸르게 노래하다가 살며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웃음과 눈물이 갈마듭니다. 살아가면서 노래와 잠이 갈마듭니다. 살아가는 동안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눕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고 꿈을 꿉니다. 마음으로 스미는 책은 생각을 가꾸고 기운을 북돋우며 삶을 살찌웁니다.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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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선물 받기

 


  월요일 새벽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시골집을 비웠다. 월요일 새벽 다섯 시 반에 시골집을 떠난 뒤, 금요일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야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바지런히 청소를 하고 몸을 씻은 뒤 몇 점 빨래를 한다. 그동안 집으로 온 소포꾸러미를 살핀다. 아이들이 먼저 상자를 끌러 여기저기로 흩어 놓았다. 책과 함께 스티커라든지 과자를 꾸려 보내 주신 분들이 있다. 시골집을 비운 닷새 동안 이웃 세 분이 책선물을 보내 주었다. 이 선물꾸러미는 언제 닿았을까. 이 선물꾸러미는 이웃님이 언제 보내 주었을까.


  밤이 늦어 불을 끄고 아이들을 재운다. 새로 밝은 아침에 아이들한테 새밥을 지어서 먹이려고 부엌일로 부산하다. 마당으로 내려가서 매화꽃 흐드러진 모습은 사진으로 찍으면서, 선물받은 책은 미처 사진으로 못 찍는다. 밥이 끓고 국이 끓는다. 무를 썰고 당근을 썬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먹인 뒤 선물받은 책을 돌아보자고 생각한다.


  밥을 푸고 국을 뜬다. 밥상에 한 가지씩 차곡차곡 놓는다. 미리 삶아서 식힌 달걀을 한 알씩 내놓는다. 아이들이 달걀껍질 벗기는 모습을 보고는 그릇 하나 들고 마당으로 내려온다. 옆밭에 마을고양이 세 마리가 나란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한다. 마을고양이 옆에 쪼그려앉아서 갈퀴덩굴과 갓잎과 유채잎을 뜯는다. 고양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풀을 다 뜯고 장미 잎망울을 들여다본다. 동백꽃 빨간 꽃봉오리를 들여다본다. 시골바람을 살풋 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봄풀을 헹구어 송송 썬 뒤 하얀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린다.


  책꾸러미를 선물로 보내는 마음은 어떤 빛일까 그려 본다. 동백꽃 붉은 빛깔과 같을까. 곧 터질 장미꽃 잎망울 같은 무늬일까. 매화꽃에 이어 터지려는 복숭아꽃과 같은 결일까. 유채잎이나 갓잎처럼 짙푸른 봄내음일까. 한창 밥을 차리는데 우체국 아재가 부른다. 또 누군가한테서 책선물이 왔다. 나도 이웃님한테 책을 선물로 곧잘 보내는데, 이주에는 오로지 선물로만 네 차례 받네. 토요일과 일요일 지나 월요일이 찾아오면 나도 이것저것 꾸려서 선물꾸러미를 부쳐야겠다.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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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 이웃 보슬비 님과 순오기

책선물

즐겁게 잘 받았어요.

이따가 재미난 사진을 따로 더 올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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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22 23:2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마실다녀오셔서 잘 받으셨는지 궁금했었는데, 잘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숲노래 2014-03-22 23:42   좋아요 0 | URL
이번 마실은 길동무이자 길잡이 구실을 하느라, 여러모로 기운을 많이 쓰다 보니, 아직 다리에 힘이 돌지 않아요 ^^;; 그럭저럭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몸이 많이 무겁다 싶어 이 글을 쓰고 낮에 드러누웠더니 도무지 못 일어나겠더라구요 @.@

너른 바다를 노래하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일요일에 기운을 더 추슬러야겠어요~ 고맙다는 인사를 새롭게 더 올립니다~
 

책넋을 읽는다

 


  책마다 글쓴이 넋이 곱게 빛난다. 책 하나 손에 쥐면서 알뜰살뜰 밝게 드리우는 넋을 읽는다. 책을 쓰는 손길은 삶을 다스리며 즐기는 웃음이고, 책을 읽는 눈길은 삶을 가꾸며 누리는 노래이다. 네 웃음이 나한테 젖어들어 노래가 된다. 내 노래가 너한테 찾아가며 웃음이 된다. 책을 쓰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을 꿈꾼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쓰는 사람을 사랑한다. 꿈을 지으며 책이 태어난다. 사랑을 나누며 이야기꽃이 핀다. 4347.3.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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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순이



  아이들과 함께 책방에 간다. 아이들은 부산하게 골마루를 돌아다니면서 논다. 책방에 막 들어오는 손님 한 분이 “난 책방에 있는 아이들이 가장 예쁘더라.” 하고 말하면서 웃는다.


  책순이는 책방 골마루를 휘젓듯이 달리면서 놀다가도 제 눈에 뜨이는 예쁜 책이 있으면 덥석 집고는 걸상을 찾아 살며시 앉고는 조잘조잘 스스로 읽으면서 논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걸상에 그림책을 올려놓는다. 다시 골마루를 달리면서 논다. 책방지기는 아이가 골마루에서 뛰놀아도 말리지 않는다. 고마운 노릇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아이들은 책방에서든 마당에서든 들에서든 바다에서든 뛰어논다. 마당에서는 마당순이가 되고, 들에서는 들순이가 되며 바다에서는 바다순이가 된다. 어릴 적에는 몸이 무럭무럭 자라듯이 몸을 쓰며 놀고, 이윽고 마음을 차곡차곡 다스리도록 마음을 쓸 적에는 골마루를 달리며 놀기보다는 책을 펼쳐 마음으로 날갯짓을 하며 놀기를 즐긴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즐겁다. 아니, 그때까지는 몸밥을 먹고, 그때부터는 마음밥을 먹는다. 아니, 몸밥은 새롭게 마음밥이요, 마음밥은 새삼스레 몸밥일 테지.


  책방순이야, 책방에서 네 생각날개를 훨훨 펼치렴. 4347.3.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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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얼마나 멋진가

 


  아침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며 《몽실 언니》를 읽는다. 어제 고흥을 떠나 인천으로 오는 길에 시외버스에서 마흔 쪽쯤 읽었고, 인천 버스역에서 내려 인천 지하철로 갈아타는 길에 열 쪽쯤 읽었다. 아이들과 마실하는 길에 조금씩 읽으며 눈시울을 적신다. 동화책 《몽실 언니》에 나오는 몽실이 이야기는 꼭 일곱 살 적이던 때부터 흐른다. 우리 집 큰아이가 올해에 일곱 살이다. 참말 일곱 살 아이가 자라는 결을 아름답게 그렸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읽는 《몽실 언니》는 1994년에 처음 장만했다. 그 뒤로 수없이 되읽었으니 이 한 권을 얼마나 알뜰히 즐긴 셈일까. 책은 값이 몇 천 원이든 몇 만 원이든 한 번 장만하면 언제까지나 되읽는다. 한 번 읽고 버리지 않는다. 한 번 읽고 덮는다면, 이 책을 헌책방에 내놓아 다른 이웃이 읽도록 할 수 있다. 헌책방이 있으니 얼마나 즐겁고 고마운가. 내가 읽은 책을 이웃한테 베풀 수 있고, 이웃이 베푸는 책을 눅은 값으로 장만해서 두고두고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가슴을 토닥이며 생각한다. 책이란 얼마나 멋진가. 얼마 안 되는 값인데, 요 얼마 안 되는 값으로 눈물샘을 적시고 웃음꽃을 터뜨린다. 가없이 너른 길로 뻗는 생각날개를 펼치도록 돕는다. 마음속에 무지개가 뜨도록 이끈다. 사랑씨앗을 가슴에 심는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 즐겁다. 내 고운 이웃들이 베푸는 알뜰한 마음밥을 늘 먹을 수 있어 고맙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 기쁘다. 내 고운 이웃들한테 살뜰한 마음밥을 정갈하게 차려서 내밀 수 있어 재미나다. 책 한 줄 읽으며 웃는다. 책 한 줄 쓰며 노래한다. 책 한 줄 넘기며 가슴이 부푼다. 책 한 줄 새로 쓰면서 빙그레 춤노래 샘솟는다. 4347.3.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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