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얹은 책



  아이가 무릎에 그림책을 얹는다. 밝은 봄꽃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을 넘긴다. 일곱 살 아이는 옷이든 다른 무엇이든 꽃 무늬가 들어가면 무척 좋아한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음, 나 저 새, 꽃새라고 할래.” 하고 말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새는 하늘을 나는 꽃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다.


  무릎에 책을 얹고 이야기를 읽는 아이는 책아이라 할 텐데, 책에서 꽃내음을 맡으니, 책아이는 꽃아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꽃 같은 말을 속삭이면서 꽃말이 피어나고, 꽃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꽃노래가 퍼지며, 꽃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꽃웃음이 흐드러진다.


  책을 마주하는 꽃다운 넋이 곱다. 책을 만지는 꽃다운 손길이 예쁘다. 책을 읽는 꽃다운 눈빛이 맑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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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앞을 지나가다가



  단골책방 앞을 지나가다가 아무래도 인사를 하고 가야겠다 싶어 작은아이를 안고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던 길이기에 책 한 권 살필 수 없다. 나 혼자 더러 서울마실을 하며 책방에 들르기는 했으나 아이까지 데리고 서울마실을 하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 아이 얼굴을 보여 드린다.


  네 살 작은아이는 제 아버지가 스물한 해를 단골로 드나든 책방 아주머니 얼굴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을까.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며 다시 책방마실을 하면 그때에 마음속에 책방 아주머니 얼굴을 새길 수 있을까.


  책방 한 곳을 스무 해 남짓 단골로 드나들 수 있는 삶이란 어떤 즐거움이요 재미이자 보람일까 하고 헤아려 본다. 앞으로 이곳은 서른 해 단골이 될 테고, 머잖아 마흔 해 단골이 될 수 있겠지. 4347.4.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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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책이 한 자리에

 


  여러 가지 책이 한 자리에 모인다. 온갖 책이 한 데에 있다. 책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사람 손길을 타고 태어나지만, 이 다른 책들은 한 곳에 곱게 모인다.


  책방은 다 다른 책을 그러모아 다 다른 책손한테 빛을 골고루 나누어 준다. 다 다른 책이 모이는 모임터이면서, 다 다른 사람이 빛을 만나도록 하는 만남터인 책방이다. 이런 책이 있고 저런 책이 있다. 들에 이런 풀과 저런 꽃이 피듯이, 책방에 이 책과 저 책이 있다. 숲에 이런 나무와 저런 나무가 자라듯이, 책방에 이 책 저 책 얼크러지면서 무지개빛이 환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책마다 담았을까. 얼마나 다른 고장에서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책마다 실었을까. 여러 가지 책이 골고루 모이기에 책방에 싱그러운 바람이 분다. 온갖 책이 두루 꽂히기에 책방에 밝은 햇살이 드리운다.


  책빛은 삶빛 된다. 삶빛은 사랑빛 된다. 사랑빛은 숨빛 된다. 숨빛은 이야기빛 된다. 이야기빛은 사람들 마음을 돌고 돌아 온누리에 꿈빛으로 퍼진다. 4347.4.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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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4-08 12:02   좋아요 0 | URL
보는 제 눈이 즐겁습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ㅋㅋ

숲노래 2014-04-08 12:42   좋아요 0 | URL
알록달록 책빛이 참 곱지요~
 

책을 바라보며

 


  내 앞에 있는 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삭혀서 이 책들을 썼을까 생각한다. 기나긴 해에 걸쳐 얻은 슬기를 책에 살포시 얹었겠지. 혼자 붙잡지 않는 숱한 이야기를 책에 가만히 풀었겠지. 함께 나누면서 다 같이 즐겁게 살아갈 길을 밝히려는 사랑을 책에 조곤조곤 쏟았겠지.


  책을 쓰는 사람이 아름답다. 책을 엮는 사람이 아름답다. 책을 다루는 사람이 아름답다. 책을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 책을 말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서로서로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바라면서 책으로 만난다.


  마음을 열기에 책을 읽는다. 내 마음을 열기에 내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마음을 열기에 책을 쓴다. 내 마음을 열기에 내 이웃한테 사랑과 꿈을 베풀 수 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책이 태어나고, 마음과 마음이 어깨동무하는 사이 온누리에 이야기밭이 푸르다. 4347.4.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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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그마니

 


  살그마니 책을 한 권 장만한다. 책값은 그리 비싸지 않다. 아니, 싸다면 싸지만 싸지 않다면 싸지 않다. 아무튼, 즐겁게 읽은 책이기에 기쁘게 새로 장만한다. 나는 같은 책을 두 권 건사하고 싶지 않으나, 즐겁게 읽은 책은 가끔 한두 권 더 장만한다. 왜냐하면, 즐겁게 읽은 책은 나 혼자만 가슴에 품기에 너무 아깝다고 할까 애틋하다고 할까, 아무래도 이웃과 나누기 힘들기 때문이다. 새책방에서 언제나 구경하거나 장만할 수 있는 책은 굳이 두어 권 건사할 까닭이 없다. 새책방에서 사라진 아름다운 책이기에 틈틈이 더 장만하려고 한다. 틈틈이 장만하고 나서 살그마니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서 부친다. 택배로 부치면 이튿날에 바로 날아가지만, 일부러 소포로 부친다. 요즈음은 소포가 날아가자면 꽤 여러 날 걸리지만, 살그마니 장만한 책을 살그마니 부쳐서 살그마니 받도록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지난주에 만화책 하나를 살그마니 장만했다. 지난달에 즐겁게 읽은 만화책인데, 판이 끊어진 책을 헌책방에서 만났다. 왜 이 만화책이 이렇게 빨리 판이 끊어졌나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달에 뜻밖에 다시 한 권 만났다. 그동안 ‘이런 만화책이 있는가 없는가 모르는 채’ 살았는데, 한 달 사이에 두 권을 만났으니 놀랍다.


  한 권은 서재도서관에 둔다. 한 권은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웃님한테 부치기로 한다. 언제나 맑은 마음이 되고, 늘 밝은 생각을 살찌우면서, 이 책 하나에서 고운 넋을 받아들여 활짝 피우는 꽃웃음으로 지내는 길에 길동무가 되면 좋으리라 꿈꾼다. 오늘 우체국에 가서 부친 책은 다음주에 닿겠지. 아무쪼록 반갑게 소포꾸러미를 받으시기를 빈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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