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라는 곳


  책방이라는 곳은 푸른 숨결이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빛나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방이라는 곳은 숲에서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던 나무들이 종이로 다시 태어나면서 깃드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방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빚은 사랑이 고운 노래가 되어 흐르는 곳이라고 느낀다.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책꽂이 앞에 책탑을 쌓는다. 나즈막한 책꽂이 위쪽에 책을 하나둘 얹으니 어느새 책더미가 된다. 꽂힌 책을 살피고 쌓인 책을 헤아린다. 빽빽한 책꽂이를 들여다보고 높다란 책탑을 바라본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어떤 책이 있을까.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이 어떤 책마다 싱그럽게 숨쉴까.

  책방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 새로운 누리가 열린다. 책방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서 새로운 마음이 된다. 4347.5.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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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곳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전철에서건 버스에서건 목욕탕에서건 잠자리에서건 책을 못 읽을 까닭이 없다. 나는 밥과 국을 끓이는 틈에도 책을 살짝 읽곤 한다. 밥물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하고 설거지도 하는 북새통에 손에 물기 마를 겨를이 거의 없지만,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다 보면 꼭 2∼3분쯤 일손이 빈다. 이동안 기지개를 켜든 부엌 바닥을 쓸든 밥상을 행주로 닦든 하는데, 아주 짧은 겨를이지만 마음을 모아 책을 쥐면 제법 재미나게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책을 읽는 곳은 대수롭지 않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면 즐겁게 읽는다. 책을 읽는 곳을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면 된다. 덜컹거리는 길을 짐칸에 실려 달리더라도 빙그레 웃음짓는 얼굴로 책을 손에 쥐면 삶터가 확 달라진다. 어둡고 시끄럽다는 지하철에서도 스스로 빙긋 웃으면서 책을 손에 쥐면 지하철 바람이 확 바뀐다.


  한편, 따사로우면서 조용한 숲이나 시골마을에서 책을 펼치면 ‘책을 읽는 곳’에 따라 몸과 마음이 어떻게 나아지는가를 새롭게 깨닫는다. 나 스스로 마음을 잘 기울이면 어느 곳에서 책을 읽더라도 즐거운 빛이 흐르도록 하는데,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아름다운 빛과 사랑스러운 기운이 내 몸과 마음에 새삼스레 젖어들곤 한다.


  우리 집 아이가 만화책을 펼치건 그림책을 넘기건, 마루나 방에서뿐 아니라 마당에서 햇볕과 바람과 풀내음과 나무노래와 새소리와 개구리 노래잔치를 함께 누리기를 바라곤 한다. 아이와 함께 나도 아이 곁에서 이 모두를 나란히 누린다. 책을 이렇게 읽으면 참 다르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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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닿는 책내음



  손에 닿는 책내음을 맡는다. 갓 나온 책은 빳빳한 종이결에다가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네 하는 느낌을 받는다. 꽤 예전에 나온 책은 그동안 내려앉은 먼지에다가 종이결이 찬찬히 삭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헌책은 책먼지가 많다며 내키지 않다 말하는 이들이 많으나, 새책에도 책먼지가 많다. 배본소에서 책을 나르는 일꾼은 입가리개와 실장갑과 앞치마를 갖춘 매무새로 새책을 만지는데, 한두 시간 일하다가 숨을 돌리려 바깥으로 나오면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다. 배본소는 늘 ‘새책이 내뿜는 뽀얀 책먼지’로 하얗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먼지가 나오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숲에서 나무를 베어 종이를 얻는 사람들은 책을 만들면서 먼지를 함께 내놓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먼지가 있을밖에 없을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먼지가 늘 있을밖에 없는가.


  돌이켜보면 흙으로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은 먼지를 일으키지 않았다. 흙집에는 흙이 있을 뿐이었다. 문명을 세우고 문화를 누리는 사회에서 먼지가 나오고 쓰레기가 불거진다. 온갖 기계와 시설이 들어서는 곳에서 먼지와 쓰레기가 태어난다. 흙에서는 먼지도 쓰레기도 태어나지 않는다. 흙에서는 흙이 태어나 흙이 더 정갈하며 기름지고 고소하게 거듭난다.


  손에 닿는 책내음을 마신다. 부디 이 책에는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이 깃들어, 이 책내음을 마시는 아이도 어른도 서로 아름다이 아끼고 즐겁게 놀며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는 빛을 얻기를 바란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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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적에는



  책을 고를 적에는 내 눈길이 닿아 마음으로 들어오는 책을 집어든다. 내 손길을 닿은 책 가운데 내 마음속으로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는 책을 펼친다. 내 마음길이 닿은 책을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이 책을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사하며 즐기다가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지 생각한다. 먼저 내 눈에 뜨여야 하고, 다음으로 내 손이 닿아야 하며, 이윽고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마침내 우리 아이한테 곱게 이을 수 있다 싶으면 기쁘게 주머니를 연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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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글쓰기, 몽실 언니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 깃든 책을 읽고 나면 저절로 연필을 손에 쥔다. 이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가슴속으로 삭혀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어느 책은 책을 덮자마자 글이 터져서 곧바로 느낌글을 쓴다. 어느 책은 책을 덮고 몇 해가 흐르고 흐른 뒤에 비로소 글이 열려서 찬찬히 느낌글을 쓴다. 열 차례 넘게 되읽고 나서야 글이 트일 때가 있다. 꼭 한 번을 읽을 뿐이지만 여러 가지 느낌글을 쓰고 싶은 책이 있다.


  오늘 《몽실 언니》 느낌글을 쓰면서 온갖 생각이 뒤엉킨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이 동화책을 나는 1994년에 처음 알아보았고 2014년에 비로소 느낌글을 쓴다. 스무 해만에 쓴 느낌글이다. 스무 해 동안 이 책 하나를 놓고 이 생각과 저 생각이 갈마들었다. 1984년에 이 동화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을 오래도록 떠올렸고, 1994년에 이 책을 손에 쥐다가 내려놓고 군대에 끌려가던 일이 떠올랐으며, 2014년에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란도란 피우는 꽃넋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린다.


  처음 《몽실 언니》를 만나던 때에는 갓 스무 살 언저리였나. 열 살 때에 만나지 못한 《몽실 언니》인데, 느낌글을 쓴 마흔 살에 돌아보니, 동화책에 나오는 ‘몽실이’ 나이가 여러모로 애틋하다. 어린 몽실이는 우리 집 큰아이와 비슷한 나이요, 아줌마가 되어 동생 난남이한테 다녀오는 마지막 대목은 오늘 나와 비슷한 나이이다. 동화책에 나온 몽실이는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리며 살아갈까. 동화책을 손에 쥔 나는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 오늘과 같이 살아올까.


  작은아이는 오늘 내 무릎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곯아떨어지기에 자는 채로 쉬를 누인 다음 자리에 살며시 눕혔다. 큰아이는 내가 내민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스스로 쉬를 누고 물을 마신 뒤 자리에 누워서 내가 이불을 덮어 주기를 기다린다. 혼자서 이불을 덮을 수 있지만 내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더니 “아버지, 노래 불러 주세요.” 하면서 웃는다. 얘, 잘 녀석이 무슨 노래람, 하면서도 큰아이 곁에 누워서 한참 노래를 부른다. 한참 노래를 부르는 사이 큰아이는 어느새 곯아떨어진다. 이불깃을 여미고는 조용히 일어난다. 우리 아이들도 몽실이처럼 앞으로 씩씩하게 저희 삶길을 걸어가리라.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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