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얼마나 멋진가

 


  아침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며 《몽실 언니》를 읽는다. 어제 고흥을 떠나 인천으로 오는 길에 시외버스에서 마흔 쪽쯤 읽었고, 인천 버스역에서 내려 인천 지하철로 갈아타는 길에 열 쪽쯤 읽었다. 아이들과 마실하는 길에 조금씩 읽으며 눈시울을 적신다. 동화책 《몽실 언니》에 나오는 몽실이 이야기는 꼭 일곱 살 적이던 때부터 흐른다. 우리 집 큰아이가 올해에 일곱 살이다. 참말 일곱 살 아이가 자라는 결을 아름답게 그렸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읽는 《몽실 언니》는 1994년에 처음 장만했다. 그 뒤로 수없이 되읽었으니 이 한 권을 얼마나 알뜰히 즐긴 셈일까. 책은 값이 몇 천 원이든 몇 만 원이든 한 번 장만하면 언제까지나 되읽는다. 한 번 읽고 버리지 않는다. 한 번 읽고 덮는다면, 이 책을 헌책방에 내놓아 다른 이웃이 읽도록 할 수 있다. 헌책방이 있으니 얼마나 즐겁고 고마운가. 내가 읽은 책을 이웃한테 베풀 수 있고, 이웃이 베푸는 책을 눅은 값으로 장만해서 두고두고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가슴을 토닥이며 생각한다. 책이란 얼마나 멋진가. 얼마 안 되는 값인데, 요 얼마 안 되는 값으로 눈물샘을 적시고 웃음꽃을 터뜨린다. 가없이 너른 길로 뻗는 생각날개를 펼치도록 돕는다. 마음속에 무지개가 뜨도록 이끈다. 사랑씨앗을 가슴에 심는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 즐겁다. 내 고운 이웃들이 베푸는 알뜰한 마음밥을 늘 먹을 수 있어 고맙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 기쁘다. 내 고운 이웃들한테 살뜰한 마음밥을 정갈하게 차려서 내밀 수 있어 재미나다. 책 한 줄 읽으며 웃는다. 책 한 줄 쓰며 노래한다. 책 한 줄 넘기며 가슴이 부푼다. 책 한 줄 새로 쓰면서 빙그레 춤노래 샘솟는다. 4347.3.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