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사진책도서관 2014.12.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저녁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사진책 《기억의 정원》을 놓고 찬찬히 느낌글을 썼고, 이 느낌글을 내 누리집에 올리는 한편, 사진잡지 《포토닷》에 실었다. 이 글을 읽으신 육영혜 님 아버님한테서 전화를 받는다.


  육영혜 님은 나보다 몇 살 밑이다. 그저 나이가 나보다 몇 살 밑일 뿐이다. 육영혜 님 아버님은 얼추 내 아버지하고 비슷하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우리 아버지는 오늘 어떤 삶을 지으면서 하루를 누리실까.


  시골자락에서 가꾸는 사진책도서관은 앞으로 어떤 구실을 맡을 수 있을 때에 한결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울까 하고 돌아본다. 나는 이 도서관을 처음 열면서 ‘책만 있는 도서관’으로는 갈 뜻이 아니었다. ‘사진책만 갖추는 도서관’이 될 뜻은 없다. ‘책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어서 나누는 숲’이 ‘도서관 얼거리와 모습’으로 드러나도록 할 뜻이다.


  새해에 우리 도서관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 하고 생각하는데, 저녁에 받은 전화 한 통은 내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앞으로 지을 숲을 생각한다. 앞으로 이룰 숲집을 그린다. 앞으로 사랑할 이야기를 떠올린다. ㅎㄲㅅㄱ















http://blog.aladin.co.kr/hbooks/7197347 ('기억의 정원' 느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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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새로운 첫걸음 (사진책도서관 2014.12.2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2014년이 저물고 2015년이 다가온다. 2015년에 선보일 ‘도서관 소식지’와 ‘도서관 1인잡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2015년에는 ‘도서관 학교’로 꾸려서 큰아이와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로 꾸미기도 할 테고, 2015년에는 드디어 이 폐교를 먼저 빌린 사람들 계약기간이 끝나니 교육청한테 우리가 빌리겠다고 나설 수 있다.


  언제나 새로운 첫걸음이라고 느낀다. 오늘 읽는 책은 어제와 다른 책이 되니 새로운 첫걸음이고, 오늘 쓰는 글은 어제와 다른 글이 되니 새로운 첫걸음이다. 아이와 마주하는 하루도 언제나 새롭고, 아이와 주고받는 말마디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먹는 밥 한 그릇도 언제나 새롭다.


  하늘빛이 새롭다. 나무가 자라는 결도 새롭다. 우리 집을 찾아오고 우리 도서관 둘레에 내려앉는 멧새도 새롭다. 다만, 우리가 도서관으로 쓰는 폐교 자리에 있던 제법 큰 나무가 거의 다 베어 넘어지거나 사라진 탓에 멧새 노랫소리도 아주 많이 사라진다. 조그마한 멧새가 깃들 나무와 풀숲이 없으니 새가 찾아오기 어렵다.


  쓸쓸한 땅을 바라본다. 마을 할매나 할배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도 길가 빈터에 쓰레기를 몰래 버린다. 쓰레기라는 것이 생긴 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나타난다. 어떡하겠는가. 돈을 들여서 물건을 사서 쓰다가 낡았는데, 태워 버리기에 마땅하지 않거나, 길을 가다가 쓰레기 버릴 데를 마땅히 찾지 못하니 아무 데나 버릴밖에.


  앞으로 아이들과 할 일도 많고, 앞으로 심을 나무도 많다. 앞으로 건사해야 할 새로운 책도 많을 테지만, 앞으로 우리가 이 시골에서 즐겁게 살아가며 기쁘게 써서 새롭게 엮을 책도 많을 테지. 묵은 앙금은 살뜰히 털어서 내려놓자. 새로운 꿈을 지으면서 새해를 맞이하자.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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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배우기 (사진책도서관 2014.12.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고 느낀다. 참말 그렇다. 스스로 살고 싶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아파트이든 골목집이든 시골집이든 다세대주택이든 관사이든 어디이든, 저마다 스스로 살고 싶은 곳이 보금자리가 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고 싶은 곳에서 꿈을 꾸고 사랑을 짓는다. 더 나은 보금자리는 없고, 덜떨어지는 삶터는 없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꿈을 꾸면서 사랑을 지으면 된다.


  누군가는 서울로 가서 산다. 누군가는 서울이라는 데가 천만이 넘는 사람이 바글거려서 싫다 하지만 그냥 서울에서 산다. 누군가는 서울이라는 데가 사람이 많아서 좋다고 여긴다. 누군가는 아무튼 서울에 있어야 무엇이 되든 된다고 여긴다. 서울에 이토록 사람이 많이 몰리는 까닭은, ‘아무튼 서울에 있어야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면 왜 시골에는 사람이 적을까? 시골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적기 때문이고, ‘아무튼 시골에 있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이지 싶다.


  나는 한동안 ‘어디에서 살든 스스로 마음을 슬기롭게 다스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지옥이나 천국은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스스로 즐겁게 살 수 있으면 어디이든 즐거운 보금자리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아직 그대로 있다고 느낀다. 다만, 어디에서 살든 마음을 가누기 마련이지만, ‘어디에서 사느냐’ 하는 대목이 사람한테는 몹시 크구나 하고 새롭게 배운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무엇을 늘 보면서 생각할까? 도시 한복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무엇을 늘 보면서 생각할까? 좁고 퀴퀴한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무엇을 늘 보면서 생각할까? 싸우는 어른들과 안 웃고 노래 안 하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무엇을 늘 보면서 생각할까?


  어디에서 살든 스스로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마음바탕이 달라진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마음바탕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추스를 수도 있는데, 마음껏 뛰놀며 자랄 어릴 적에 어떤 삶터와 터전과 보금자리를 일구느냐에 따라 아이들 마음바탕은 사뭇 달라진다. 그리고, 어른도 마음바탕이 사뭇 달라진다.


  아름답다는 책만 읽는대서 생각이 달라지거나 거듭나지 않는다. 아름답다는 책은 어디에서 읽든 아름답기는 매한가지일 테지만, 숲에서 읽을 적과 시골에서 읽을 적과 고속버스에서 읽을 적과 공장에서 읽을 적과 감옥에서 읽을 적과 아파트에서 읽을 적은 늘 다르다. 고속버스에서 아름답다는 책을 읽은 뒤에 무엇을 하는가? 공장이나 회사나 아파트에서 아름답다는 책을 읽은 뒤에 무엇을 하는가? 감옥에서 아름답다는 책을 읽은 뒤에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책만 읽는가, 아니면 삶을 짓는가? 우리는 책만 읽고 끝낸 뒤 다른 책을 또 찾아서 읽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책을 읽고 덮은 뒤 새롭게 되새기면서 삶을 새롭게 짓는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가?


  시골에서 살며 흙을 만지거나 가꿀 수 있으니 즐겁기도 하지만, 흙을 제대로 못 만지거나 살뜰히 못 가꾸더라도, 늘 흙을 바라보고 흙내음을 맡을 수 있다. 내가 심은 나무도 있으나 다른 사람이 심은 나무도 있다. 새와 벌레와 나비는 언제나 찾아와서 노래를 베푼다. 내가 손수 지은 삶에서 태어나는 이야기가 있는 한편, 나한테 사랑스레 다가와서 노래하는 숨결이 있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것이란 바로 오늘 내가 이곳에서 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물려받으면서 기뻐할 것이란 바로 오늘 내가 이곳에서 새롭게 짓고 가꾸면서 기뻐하는 것이다. 도서관이든 땅이든 숲이든, 어버이로서 먼저 스스로 누리고 짓고 가꾸는 삶이 있어야 한다. 별빛과 겨울 찬바람을 느끼면서 이 모두를 아이들과 누리면서 찬찬히 물려주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헤아린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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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엽서, 초상권, 사진 (사진책도서관 2014.12.1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읍내 우체국에 가서 ‘새로 나온 우편엽서’가 있느냐고 물으니, 읍내 우체국에서는 ‘우편엽서’를 아예 안 다룬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에서 펴내는 《우표》 12월호가 있어서 살피니, 이쁘장한 새를 그려 넣은 우편엽서가 새로 나왔지만, 시골 읍내 우체국에서조차 엽서는 장만할 수 없는 셈이다. 시골에서는 우편엽서도 인터넷으로 사야 할까? 아니면 다른 도시로 가서 사야 할까? 도서관 지킴이한테 우편엽서로 새해인사를 띄우자고 생각했지만 안 되겠구나 싶다.


  누군가 우리 집 큰아이와 곁님 동생(나한테는 처남)을 몰래 찍어서 어느 공모전에 내어 상을 받았다고 한다. 한동안 이 대목을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 이웃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나서 뒤늦게 알았다. ‘미성년자 초상권 침해’ 작품 사진을 보여준 이웃은 이 사진에 깃든 두 사람이 우리 집 큰아이와 곁님 동생인 줄 몰랐단다. 그저 사진이 좋다면서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진은 내가 2009년 9월 26일에 찍은 사진하고도 거의 똑같다.


  곰곰이 생각한다. 자그마치 다섯 해가 지난 뒤 몰래 공모전에 내면 초상권이 사라질까? 다른 사진 공모전에 내가 ‘우리 아이와 처남’을 찍은 사진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ㄱ이라는 도서관에서 꾀한 사진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사진은 ‘내가 우리 아이와 처남을 사진으로 담은 다음 다른 볼일을 보느라 바쁘게 자리를 비운’ 틈에 몰래 찍은 사진이다. 나 몰래 사진을 찍은 그분은 왜 우리 처남한테, 그리고 처남 곁에 있던 장모님과 곁님한테 허락을 받을 생각을 안 했을까? ‘멋있어 보이는 모습’이라면 허락을 안 받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대도 될까? ‘책 문화를 널리 퍼뜨리려는 좋은 뜻’이라면 초상권을 함부로 짓밟으면서 공모전에 넣어도 되고, 이런 사진에 상을 주어도 될까?


  책을 찍는 사진, 책을 읽는 사람을 찍는 사진, 책방을 찍는 사진, 책이 있는 사진, 그러니까 ‘책 사진’이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아니, 어쩐지 슬프다. 아니, 슬프다기보다 쓸쓸하다. 아니, 쓸쓸하다기보다 기운이 빠진다.


  사진 한 장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 사진 한 장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사진 한 장은 어떻게 나누면서 읽어야 하는가. 사진 한 장에는 어떤 삶이 깃드는가.


  스치듯이 지나가는 사이에 아주 놀랍거나 멋진 모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스치듯이 지나가지 않고 발걸음을 멈추어 가만히 이야기를 귀여겨들을 수 있다면, ‘놀랍거나 멋진 모습’을 넘어서는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삶’을 사진으로도 글로도 넉넉히 담을 수 있다.


  사진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사진가’라 할 수 있을까? 사진 공모전을 여는 ㄱ도서관은 사진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다루어야 ‘책과 사진’을 함께 아름다이 엮어서 ‘책 문화 북돋우기’를 할 수 있을까? 눈이 살짝 덮인 도서관에서 매우 무거운 마음이 된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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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2014년 12월호에 실은 '도서관일기'입니다. 고흥은 올해가 가기 앞서 어젯밤에 1밀리미터쯤 눈이 쌓였네요 ^^


..



시골도서관 풀내음

― 논도랑 반딧불이는 어디로



  태평양과 맞닿은 남녘은 겨울로 접어들어도 제법 포근합니다. 한겨울에도 볕이 여러 날 포근하면 동백나무는 꽃봉오리를 가만히 터뜨립니다. 전라북도나 충청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일 테고, 경기도나 서울이나 강원도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일일 테지요.


  찬바람이 불면서 논둑이나 빈들에 유채풀과 갓풀이 돋습니다. 찬바람이 싱싱 불어도 무화과나무와 모과나무는 아직 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유자나무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답니다. 일찌감치 익은 노란 알은 십일월 문턱에 따고, 느즈막히 익는 노란 알은 십이월이 되어서야 땁니다.


  날씨가 폭한 곳이니, 서리가 내리는 날에도 까마중은 하얀 꽃을 피우고 까만 열매를 내놓습니다. 주전부리 삼아 찬찬히 훑습니다. 살살 달달한 까마중을 훑는 동안 아이들은 손에 얼어도 씩씩하게 참고 기다립니다. 입에 들어올 맛난 것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다른 고장에서는 눈이 내리기도 하고 얼음이 얼기도 하지만, 우리 시골에서는 아직 가늘게 풀벌레 소리를 살몃살몃 듣습니다. 거의 모든 풀벌레가 흙으로 돌아가거나 겨울잠을 자는데,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겨울잠조차 미루는 풀벌레가 있어요. 부전나비와 노랑나비는 십일월 한복판에도 깨어나 팔랑팔랑 날아다닙니다. 겨울 코앞에 새로 돋는 들풀을 살피면, 또 마당 한쪽에서 돋는 갓풀과 괭이밥풀을 살피면, 풀벌레나 애벌레가 야금야금 갉은 자국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벌레일까요. 어떤 벌레는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먹으면서 푸른 숨결을 이을까요.


  씩씩한 ‘겨울벌레’가 있기에, 따스한 남녘 고장에서 텃새로 지내는 멧새와 들새는 바지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얻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차츰 바람이 차갑게 불면서 딱새와 참새가 우리 집 처마로 조용히 찾아와서 가만히 깃듭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제비가 지내던 제비집에 딱새와 참새가 사이좋게 나누어 깃듭니다. 한쪽 둥지에는 딱새 두 마리, 다른 한쪽 둥지에는 참새 두 마리, 이렇게 새로운 이웃이 들어옵니다.


  아침저녁으로 늦가을 들풀을 뜯어서 밥에 얹어 먹습니다. 일찍 해가 떨어지면 깜깜한 하늘에 별이 돋는 모습을 살피다가 슬그머니 마실을 나갑니다. 조용한 들판을 걷습니다. 캄캄한 들길을 걷습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기에 반딧불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텐데, 해가 갈수록 반딧불이 작은 꽁지불은 차츰 사라집니다. 올해에는 고작 두어 마리만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반딧불이는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춥니다. 아마 골짜기에서도 자취를 감추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시골 논도랑이 흙도랑이 아닌 ‘시멘트도랑’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군청과 도청에서 목돈을 들여 ‘시멘트 들이붓는 토목사업’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도 ‘시멘트도랑’을 문화사업이나 복지사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제 어느 신문에서나 4대강 사업을 나무랍니다. 한때 4대강 사업을 아주 우러르거나 섬기던 신문과 지식인조차, 이 토목사업 때문에 22조 원에 이르는 나랏돈을 흘려버렸다고 아우성입니다. 돈을 쏟아부어 시멘트를 들이부을 적에는 손뼉을 치면서 부추기더니, 왜 뒤늦게 나무라는 목소리를 내는지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이런 짓 때문에 누가 눈먼 돈을 거두어들였고, 누가 밥그릇을 챙겼는지 올바로 따지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식구가 지내는 시골마을에서도 4대강 사업 끄트머리인 ‘시멘트 토목사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을 뒷간 골짜기 바닥을 갑작스레 뒤집어엎으면서 시멘트를 붓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시멘트둑을 쌓습니다. 조그마한 골짜기일 뿐인데 마냥 시멘트를 붓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조그마한 멧길에도 시멘트를 부어서 관광도로를 낸다는데, 이러한 토목사업을 벌써 세 해째 하지만 언제 끝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숲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마시고 논밭에 물을 대는 시골마을에까지 ‘댐에 가둔 물로 수돗물을 잇겠다’는 토목사업을 여러 해째 하는데, 이 토목사업도 언제 끝날는지 모릅니다. 허구한 날 고샅과 큰길을 뒤엎으면서 뭔가 붓고 파내는 일만 되풀이합니다. 해마다 흙도랑이 사라지고 시멘트도랑이 늘 뿐 아니라, 찻길이 더 늘고, 묵은 밭은 바닥을 시멘트로 다지고 쇠기둥을 박아 창고를 세우기 일쑤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정말 자연을 정복한 걸까요? 오히려 현대인들은 자연을 그리워하잖아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도 죽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상식에 탐욕에 가려져 온 거예요. 어렵지 않습니다(86쪽).” 같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할 시골 이웃을 그립니다. 아주 마땅하지만, 논이나 밭을 시멘트로 덮으면 아무 씨앗을 못 심어요. 시멘트 길바닥을 비집고 솟는 들풀이 있지만, 나락도 남새도 시멘트땅에는 심지 못합니다.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면 미꾸라지와 다슬기와 가재와 개구리는 모조리 죽습니다. 게아재비도 물방개도 시멘트덩이 논에서는 삶자리를 못 찾습니다.


  도시로 떠난 어린이와 젊은이를 시골로 다시 부르려면, 시골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면서 가재와 미꾸라지와 냇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반딧불이를 만나고 다슬기를 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아름답게 살자면 서로 흙을 만지고 북돋우면서 풀과 나무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벌나비와 제비와 잠자리와 반딧불이와 사슴벌레와 소쩍새와 뜸부기와 매와 너구리와 멧토끼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골이라면, 참말 너나없이 살고 싶다고 여기리라 생각합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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