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4년 12월호에 실은 '도서관일기'입니다. 고흥은 올해가 가기 앞서 어젯밤에 1밀리미터쯤 눈이 쌓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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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논도랑 반딧불이는 어디로



  태평양과 맞닿은 남녘은 겨울로 접어들어도 제법 포근합니다. 한겨울에도 볕이 여러 날 포근하면 동백나무는 꽃봉오리를 가만히 터뜨립니다. 전라북도나 충청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일 테고, 경기도나 서울이나 강원도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일일 테지요.


  찬바람이 불면서 논둑이나 빈들에 유채풀과 갓풀이 돋습니다. 찬바람이 싱싱 불어도 무화과나무와 모과나무는 아직 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유자나무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답니다. 일찌감치 익은 노란 알은 십일월 문턱에 따고, 느즈막히 익는 노란 알은 십이월이 되어서야 땁니다.


  날씨가 폭한 곳이니, 서리가 내리는 날에도 까마중은 하얀 꽃을 피우고 까만 열매를 내놓습니다. 주전부리 삼아 찬찬히 훑습니다. 살살 달달한 까마중을 훑는 동안 아이들은 손에 얼어도 씩씩하게 참고 기다립니다. 입에 들어올 맛난 것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다른 고장에서는 눈이 내리기도 하고 얼음이 얼기도 하지만, 우리 시골에서는 아직 가늘게 풀벌레 소리를 살몃살몃 듣습니다. 거의 모든 풀벌레가 흙으로 돌아가거나 겨울잠을 자는데,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겨울잠조차 미루는 풀벌레가 있어요. 부전나비와 노랑나비는 십일월 한복판에도 깨어나 팔랑팔랑 날아다닙니다. 겨울 코앞에 새로 돋는 들풀을 살피면, 또 마당 한쪽에서 돋는 갓풀과 괭이밥풀을 살피면, 풀벌레나 애벌레가 야금야금 갉은 자국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벌레일까요. 어떤 벌레는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먹으면서 푸른 숨결을 이을까요.


  씩씩한 ‘겨울벌레’가 있기에, 따스한 남녘 고장에서 텃새로 지내는 멧새와 들새는 바지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얻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차츰 바람이 차갑게 불면서 딱새와 참새가 우리 집 처마로 조용히 찾아와서 가만히 깃듭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제비가 지내던 제비집에 딱새와 참새가 사이좋게 나누어 깃듭니다. 한쪽 둥지에는 딱새 두 마리, 다른 한쪽 둥지에는 참새 두 마리, 이렇게 새로운 이웃이 들어옵니다.


  아침저녁으로 늦가을 들풀을 뜯어서 밥에 얹어 먹습니다. 일찍 해가 떨어지면 깜깜한 하늘에 별이 돋는 모습을 살피다가 슬그머니 마실을 나갑니다. 조용한 들판을 걷습니다. 캄캄한 들길을 걷습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기에 반딧불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텐데, 해가 갈수록 반딧불이 작은 꽁지불은 차츰 사라집니다. 올해에는 고작 두어 마리만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반딧불이는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춥니다. 아마 골짜기에서도 자취를 감추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시골 논도랑이 흙도랑이 아닌 ‘시멘트도랑’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군청과 도청에서 목돈을 들여 ‘시멘트 들이붓는 토목사업’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도 ‘시멘트도랑’을 문화사업이나 복지사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제 어느 신문에서나 4대강 사업을 나무랍니다. 한때 4대강 사업을 아주 우러르거나 섬기던 신문과 지식인조차, 이 토목사업 때문에 22조 원에 이르는 나랏돈을 흘려버렸다고 아우성입니다. 돈을 쏟아부어 시멘트를 들이부을 적에는 손뼉을 치면서 부추기더니, 왜 뒤늦게 나무라는 목소리를 내는지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이런 짓 때문에 누가 눈먼 돈을 거두어들였고, 누가 밥그릇을 챙겼는지 올바로 따지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식구가 지내는 시골마을에서도 4대강 사업 끄트머리인 ‘시멘트 토목사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을 뒷간 골짜기 바닥을 갑작스레 뒤집어엎으면서 시멘트를 붓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시멘트둑을 쌓습니다. 조그마한 골짜기일 뿐인데 마냥 시멘트를 붓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조그마한 멧길에도 시멘트를 부어서 관광도로를 낸다는데, 이러한 토목사업을 벌써 세 해째 하지만 언제 끝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숲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마시고 논밭에 물을 대는 시골마을에까지 ‘댐에 가둔 물로 수돗물을 잇겠다’는 토목사업을 여러 해째 하는데, 이 토목사업도 언제 끝날는지 모릅니다. 허구한 날 고샅과 큰길을 뒤엎으면서 뭔가 붓고 파내는 일만 되풀이합니다. 해마다 흙도랑이 사라지고 시멘트도랑이 늘 뿐 아니라, 찻길이 더 늘고, 묵은 밭은 바닥을 시멘트로 다지고 쇠기둥을 박아 창고를 세우기 일쑤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정말 자연을 정복한 걸까요? 오히려 현대인들은 자연을 그리워하잖아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도 죽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상식에 탐욕에 가려져 온 거예요. 어렵지 않습니다(86쪽).” 같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할 시골 이웃을 그립니다. 아주 마땅하지만, 논이나 밭을 시멘트로 덮으면 아무 씨앗을 못 심어요. 시멘트 길바닥을 비집고 솟는 들풀이 있지만, 나락도 남새도 시멘트땅에는 심지 못합니다.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면 미꾸라지와 다슬기와 가재와 개구리는 모조리 죽습니다. 게아재비도 물방개도 시멘트덩이 논에서는 삶자리를 못 찾습니다.


  도시로 떠난 어린이와 젊은이를 시골로 다시 부르려면, 시골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면서 가재와 미꾸라지와 냇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반딧불이를 만나고 다슬기를 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아름답게 살자면 서로 흙을 만지고 북돋우면서 풀과 나무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벌나비와 제비와 잠자리와 반딧불이와 사슴벌레와 소쩍새와 뜸부기와 매와 너구리와 멧토끼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골이라면, 참말 너나없이 살고 싶다고 여기리라 생각합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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