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브런치
반지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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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7.9.

인문책시렁 193


《스님과의 브런치》

 반지현

 나무옆의자

 2020.6.23.



  《스님과의 브런치》(반지현, 나무옆의자, 2020)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글님은 밥차림하고 글쓰기를 나란히 놓고서 글님 삶빛을 돌아봅니다. 저는 밥차림 곁에 아이를 돌보는 살림길을 나란히 놓으면서, 골목마실하고 말빛을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인천에서 나고자랐으나 인천 골목을 200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꽃(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내로라하는 이들이 골목마실을 한다면서 찰칵찰칵하니 굳이 저까지 골목을 담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값진 찰칵이(사진기)로 그분들이 담는 빛꽃을 보자니 “골목마을을 다 죽어가고 쓰러지는 낡아빠지고 케케묵고 뒤처진 쓰레기판”이라도 되는 듯이 다루더군요. 어처구니없어서 그분들한테 “이녁이 쓰레기판이라도 되는 듯 찍은 그 골목집에 사람이 사는데 모르시나요?” 하고 따졌어요.


  이러다 다시 생각했지요. 잿빛집(아파트)에 살고 부릉이(자가용)를 몰며 사는 그분들은 어쩌다 인천으로 ‘출사’를 와서 슥 한 바퀴 돌고서 뒤풀이를 하며 놀려는 생각입니다. 골목이나 마을이나 사람을 볼 생각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아, 골목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찍어야 하는구나. 누구를 탓하거나 따질 일이 하나도 없구나.” 싶더군요.


  골목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골목빛을 담으면 돼요. 골목이웃으로 찾아오는 분이라면, 적어도 한나절(4시간)을 걸어다니면서 돌아본 빛을 옮기면 됩니다. 다만, 하루 한나절이 아닌, 철 따라 하루씩 찾아들 노릇이고,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갈라서 찾아들 노릇이며, 비 눈 바람 땡볕 구름이란 날씨에 맞추어 찾아들 노릇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통틀어 날마다 한나절씩 거닐면서 골목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온마음으로 마주하면서 빛꽃으로 담을 만하지요.


  이처럼 말하면 “번거롭고 귀찮고 힘들게 누가 그렇게 다니면서 찍어? 미쳤어?” 하고 묻더군요. “네. 미치면 안 되고, 사랑하면 다 해요. 사랑하는 사람은 그처럼 다니며 빛꽃으로 담는 길이 하나도 안 번거롭고 안 귀찮고 안 힘들답니다. 사랑으로 마주하면 한 해뿐 아니라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를 꾸준히 거닐다가 어느새 골목집으로 삶터를 옮겨 이 빛살을 누리겠지요.” 하고 덧붙여요.


  절밥을 맛본 다음 스스로 절밥을 지어 보자고 생각한 글님은 《스님과의 브런치》를 써내면서 스스로 삶을 바꾸고 생각을 빛내 보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고작 밥 한 그릇이라고 여길 수 있으나, 바로 밥 한 그릇이 발판이 되어 새롭게 눈뜰 만하다고 여길 만해요.


  밥차림이란 마음차림입니다. 밥짓기란 마음짓기입니다. 으레 “요리를 만들다” 같은 말을 씁니다만, 밥은 ‘만들’지 못해요. ‘만들다 =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다’를 가리킵니다. “논밭에서 열매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논밭을 지어 열매를 얻고 나누고 누려”요. ‘짓다’라는 낱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가려쓰면 좋겠어요. ‘만들다 = 겉치레·꾸미다’하고 잇닿습니다. ‘짓다 = 사랑·가꾸다’라는 길입니다. 작고 수수한 손길이 깃들어 밥차림이 확 거듭나거나 피어나듯, 작고 수수한 낱말 하나를 우리가 스스로 가다듬을 적에 생각차림이 새롭게 자라나고 깨어납니다.


ㅅㄴㄹ


정성을 다한 음식이 한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음식을 허투루 만들 수 없게 됐다. (97쪽)


힘을 빼려고 안달복달하느라 오히려 힘이 꽉 들어간 아이러니가 내게 요리와 수영 말고 또 하나 있었다. 바로 글쓰기. (102쪽)


하루는 스님이 웃으며 이런 말을 하셨다. “스님들이 별걸 다 먹는다 싶죠? 사실 별개 아니에요.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고 나면 재료가 남는데, 안 버리려고 궁리를 하다 보니 이런 메뉴도 만들어졌네요.” (150쪽)


작은 과정들이 요리의 결정적인 부분을 좌우했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따로 썰고, 따로 볶고, 칼 대신 숟가락을 사용하는 데는 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였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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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나를 만나다 - 나와 함께, 나답게, 나를 위해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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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7.8.

인문책시렁 192


《비로소 나를 만나다》

 김건숙

 바이북스

 2021.6.20.



  《비로소 나를 만나다》(김건숙, 바이북스, 2021)를 읽으며 지난 2017년을 떠올립니다. 그해에 글님을 처음 만났고, 처음 써내신 책도 손에 쥐었어요.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니》하고 《책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니》에 이은 《비로소 나를 만나다》는 ‘책사랑꾼’이라는 이름은 살며시 내려놓고서 ‘그냥 나’는 무엇일까를 돌아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껏 사이좋게 지낸 곁님하고 며칠 사이에 툭탁거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밝히면서 앞으로 걸어갈 새길은 어떤 빛살이 되기를 바라는가를 적바림하는구나 싶어요.


  툭탁거릴 수 있는 사이란, 새롭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사이입니다. 툭탁질하고 비아냥이나 시샘이나 이죽거림은 확 다릅니다. 비아냥대는 사이라면, 시샘하는 사이라면, 이죽거리는 사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거나 고단할까요? 누가 우리를 비아냥대거나 시샘하거나 이죽거리기에 우리가 끔직하거나 고단하지 않습니다. 즐겁고 아름다울 삶길에 남을 비아냥대거나 시샘하거나 이죽거리는 그이가 끔찍하거나 고단하지요. 다시 말하자면, 곁님하고 툭탁거리는 며칠을 보내는 동안 “어제까지 걸어온 길은 나쁘지 않지만, 이대로 걸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툭탁거림으로 불거졌구나 싶어요. 다만 아직 뚜렷이 보이지 않을 뿐이요, 어떻게 갈무리해야 아름다우면서 즐거울까를 어림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런데 모든 수수께끼를 첫고개부터 풀어야 할까요? 다섯고개만에 풀어도 좋고 스무고개나 쉰고개를 넘어서 풀어도 좋습니다. 온(100)이나 즈믄(1000)이란 고개를 넘도록 못 풀어도 되지요.


  우리는 서로 말을 나누고 생각을 섞으면서 새롭게 살아가고 싶기에 때로는 툭탁거리고, 때로는 노래하고, 때로는 수다를 떨고, 때로는 토라지고, 때로는 창피하고, 때로는 포근포근 지낸다고 느껴요.


  밥을 짓든 나들이를 떠나든 책을 읽든 아기를 돌보든 낮잠을 자든 모기에 물리든 맨발로 풀밭을 걷든 개구리랑 속삭이든 잠자리처럼 하늘을 날든, 스스로 마음을 활짝 열고서 일어서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이때에 참나를 만나겠지요. 문득 홀가분한 그때에 참된 나를 만나면서 비 그친 하늘이 새파랗게 눈부신 빛깔을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ㅅㄴㄹ


그러니까 오십오 살이라는 나이에 여행 가방을 싸서 홀로 제주로 향하는 내가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갈 때에는 몸만 잘 챙겨 가면 되지만, 혼자 떠나는 길이었으므로 신경을 바짝 세워야 했다. (16쪽)


가장 힘든 것은 ‘나와 함께’였다. 즉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는 것에 용기도 없었고, 떠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현실이 분주했다. (27쪽)


그동안은 내가 남편한테 많은 거을 받았으니, 이제는 내가 반대로 남편을 챙겨 줘야 할 때가 된 것도 같았다. (55쪽)


〈쑥대머리〉를 배우고 나면 원하는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산을 하나 넘고 나니 또 다른 산을 넘고 싶었다. 그래서 〈춘향가〉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 바탕(한 권)을 다 끝내고 두 번째 익히고 있는 중에 있다. (119쪽)


호박은 뚝, 뚝뚝, 양파는 쓱쓱쓱 했다. 재료들의 성질에 따라 도마 위에서 나는 소리가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렸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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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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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6.29.

인문책시렁 189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민음사

 2020.3.8.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장영은, 민음사, 2020)는 글순이로 살아온 스물다섯 사람 발자취를 더듬고, 글순이마다 어떠한 글이나 책을 남겼는가를 간추립니다. 스물다섯 사람은 틀림없이 ‘썼다’고 할 텐데, ‘싸우기’하고 ‘살아남기’를 했는가 하고 돌아본다면 좀 아리송합니다.


  저는 글돌이로 살아가는데, 글돌이로 살든 글순이로 살든 이 나라에 가득한 굴레나 수렁이나 사슬이나 차꼬를 흔하게 만납니다. 글을 그저 글로 쓸 수 없는 나라라고 할 만합니다. 누구한테나 어떤 목소리나 열려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어떤 목소리나 누구 목소리는 가둔다거나 따돌리거나 손가락질하는 판입니다.


  곰곰이 보면 돈·이름·힘을 거머쥔 이들은 마구잡이로 굴되, 이들 스스로 마구잡이인 줄 깨닫지 않습니다. 때로는 팔띠(완장)를 휘두르면서 자랑하거나 우쭐거리지요. 이때에 적잖은 글순이나 글돌이는 굽신거리면서 팔띠쟁이(문필권력가) 옆에서 고물을 받아먹거나 똑같이 팔띠질을 하는 마름 노릇을 하더군요. 웬만한 글쟁이는 돈·이름·힘 앞에서 고분고분합니다. ‘쟁이’가 아닌 ‘지기’가 되려는 사람은 돈·이름·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돈·이름·힘을 안 바라보기에 돈·이름·힘에 휘둘릴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느 글순이나 글돌이는 어떻게 글쟁이 아닌 글지기로 갈까요? 처음부터 숲·별·바람을 바라보거든요. 서울이라는 돈을 내려놓고 시골에서 고즈넉히 숲을 푸르게 안기에 글지기로 살아갈 만합니다. 잿빛집(아파트)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두 다리랑 자전거로 가만가만 살림을 조촐히 짓기에 글지기로 지낼 만합니다. 부릉이(자가용)이라는 힘을 내려놓고 아이랑 손을 잡고 소꿉놀이를 누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오늘을 펴기에 글지기로 빛날 만합니다.


  서울이란 돈이고, 잿빛집이란 이름이며, 부릉이란 힘입니다. 자, 보셔요. 어린이는 이 셋 가운데 아무것도 쥐지 않습니다. 자 보셔요. 돈꾼과 이름꾼과 힘꾼은 반드시 이 셋을 휘어잡거나 거머쥐거나 자랑합니다. 우리도 이 셋을 손에서 안 놓는다면 ‘그들과 똑같이’ 돈꾼이요 이름꾼에 힘꾼은 글쟁이에서 허덕이는 셈입니다.


  돈꾼·이름꾼·힘꾼이 된 글순이가 수두룩합니다. 글돌이도 수북합니다. 사랑길·살림림·숲길을 걸은 글순이가 조금 있습니다. 글돌이도 조금 있습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가 나쁜 책이라고는 여기지 않으나 ‘이름난 글순이를 알려주는 줄거리 풀이’에 머무른다고 느껴요. 《펠레의 새 옷》을 빚은 엘사 베스코브 같은 아줌마를, 《우리들 소원》을 지은 최명자 같은 아가씨를,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여민 문영이 같은 할머니를, 풀벌레를 사랑하며 《곤충·책》울 갈무리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같은 님을, 예순을 훌쩍 넘고서야 비로소 물빛그림 꿈을 펼치고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남긴 박정희 할머니 같은 주름진 사랑빛을, 이웃이 겪는 생채기랑 멍울을 두고볼 수 없어 앞치마를 살짝 밀쳐두고서 《슬픈 미나마타》를 남긴 이시무레 미치코 아지매 같은 눈물꽃을, 일하는 땀방울에 맺힌 시름을 살살 쓰다듬어 주면서 《마더 존스》를 씨앗처럼 묻은 마더 존스 할멈을 찬찬히 읽고서 찬찬히 읽고서 ‘줄거리 간추리기’가 아닌 ‘살림을 사랑한 길을 노래하기’로 글꽃을 엮는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이름난 글순이 치맛자락은 이제 그만 잡으면 좋겠어요. 살림하는 사랑을 숲빛으로 여민 수수한 글순이하고 어깨동무하기를 바라요.


ㅅㄴㄹ


재능 있는 딸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자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질투가 뒤엉켰다. 여자가 작가로 이름을 얻고 돈을 벌 수 있을까? (19쪽)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 목록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아버지의 서재를 졸업한 버지니아 울프는 대영도서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한다. (38쪽)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글을 썼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시를 쓰면서 후대의 독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은 결코 은둔이나 칩거로만 설명될 수 없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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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는 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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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6.28.

인문책시렁 191


《그림책이라는 산》

 고정순

 만만한책방

 2021.3.12.



  《그림책이라는 산》(고정순, 만만한책방, 2021)은 그림책을 빚는 길을 걸어가는 분이 돌아본 나날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그림책을 어떻게 만났고 읽었으며, 어떻게 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보여줍니다. 그림책으로 밥벌이를 하며 고단하거나 지치는 하루를 밝히고, 스스로 무엇을 그림책에 담아내려 하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모두 다르게 말합니다. 이 다른 말을 ‘사투리’라고 합니다. 서울말이라서 좋지 않고 사투리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거꾸로 사투리라서 좋지 않고 서울말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삶이 다르기에 말이 다를 뿐입니다.


  더 나은 밑천이란 없고, 더 빼어난 붓이란 없습니다. 더 좋은 글이란 없고, 더 알찬 책이란 없습니다. 다 다른 눈빛으로 다 다르게 살아내며 길어올린 이야기를 다 다른 말씨이자 그림씨인 사투리로 풀어낼 뿐입니다.


  그림님 고정순 님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다가 “전쟁 사진을 보며 전쟁 이야기를 다룬 그림을 그린다”는 대목에서 멈칫합니다. 아무래도 여느 삶터에서는 싸움판을 겪거나 치르거나 마주할 일이 없으니 다른 이가 남긴 사진이나 영화로 싸움판을 헤아릴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돈·이름·힘이 없는 모든 사내가 싸움판(군대)에 끌려가서 개죽음 같은 나날을 보냅니다. 싸움판(군대)에서는 멀쩡한 사내한테 총칼을 쥐어 주고는 서로 죽이는 짓을 가르치고 길들입니다. 싸움판(군대)에서는 가시내를 삶벗(동반자)으로 여기기보다는 속풀이(욕구해소)를 하는 노리개로 가르치고 길들입니다.


  싸울아비(군인)가 있는 곳에는 돈이 흘러넘칩니다. 나라(정부)에서 대는 돈으로 멀쩡한 젊은 사내가 가시내를 곁짝 아닌 노리개로 부리는 바보스런 짓이 판칩니다. 나라(정부)는 일부러 싸움판(군대)을 키우고 함박돈을 댄다고 느낍니다. 사내한테 사랑 아닌 싸움과 미움과 노닥질과 바보짓에 길들도록 내몰아, 온나라에서 가시내하고 사내가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짓는 꽃길을 짓밟는구나 싶습니다.


  맨주먹이어서 싸움판(군대)에 끌려가야 한 수수한 아저씨가 그림책을 그리면 좋겠어요. 스스로 겪은 슬픈 맨몸을 그림 한 자락하고 글 한 줄로 풀어내면 좋겠어요. 눈물젖고 멍울이 진 사내를 토닥이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서 뒹굴어야 한 사내가 뒤집어쓴 구정물을 따뜻한 눈물로 씻어 주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림책은 왜 멧부리(산)일까요? 굳이 멧부리를 넘어야 하지 않아요. 멧자락에 씨앗 한 톨을 심어 나무가 자라도록 지켜보고 돌보면 돼요.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타고 놀면서 숲을 푸르게 노래하면 돼요. “전쟁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나무를 타고 놀면서 그림을 그린다”면, “따뜻한 눈물로 이웃 멍울을 살살 씻고 달래고 녹이는 손길로 그림을 그린다”면, 우리는 바로 맨주먹인 수수한 숨결로 오롯이 사랑을 들려주는 그림책도 글책도 노래책(시집)도 넉넉히 지어서 나눌 만하지 싶습니다.


  그림책은 숲입니다. 그림책은 바다입니다. 그림책은 샘물입니다. 그림책은 뒤꼍입니다. 그림책은 꽃밭입니다. 그림책은 빈터요 골목입니다. 그림책은 앞마당이고 멍석입니다. 그림책은 풀밭이자 구름송이입니다. 그림책은 눈물꽃이 맺은 웃음씨앗이요, 그림책은 웃음꽃으로 얼싸안는 눈물바람입니다. 


ㅅㄴㄹ


내 밑천을 보는 일이 괴로웠다. 유행 지난 옷을 간직한 그 친구는 자신의 미약한 시작을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15쪽)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림을 그렸다. 정신을 차리니 여긴 제주도. 컵라면 먹고 다시 마우스와 토느북. 엄마가 전화로 저녁 뭐 먹었냐고 물어서 갈치조림 먹었다고 둘러댔다. (79쪽)


얼마 전 출판사에서 인터넷서점에 출간 기념 이벤트를 하면서 ‘이 시대의 작가’라고 날 소개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웃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정말 이 시대의 작가가 되고 싶다. (89쪽)


강의를 계속하면 일정 기간 고정수입이 생겨 좋다. 하지만 집중력의 밀도가 낮아진다. (135쪽)


전쟁 장면을 그리던 어느 날, 꼬박 밤새고 날이 밝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 마감보다 전쟁 사진을 보는 게 더 어려운 숙제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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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 2021-09-0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 부분에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적으시고는 뒷부분에는 왜 그림책이 산이냐 산 아니고 숲, 바다라고 적으셨네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도 필요하지만 전쟁을 담은 그림책도 필요합니다. 빛 만 보려고 한다면 어둠 속에서 아파하는 사람은 외면하게 되는 거예요. “눈물 젖고 멍울이 진 사내를 토닥이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구렁텅이에서 뒹굴어야 한 사내가 뒤집어쓴 구정물을 따뜻한 눈물로 씻어 주는 가시내가 늘어나면 좋겠어요.” 성차별적인 글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혹시 이 글의 사내가 본인은 아니신지요. 시야를 넓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을 책의 리뷰에 적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본인 만 알겠지요.

숲노래 2021-09-08 02:13   좋아요 0 | URL
˝전쟁을 담은 그림책˝은 아주 많습니다. ˝전쟁을 어떻게 담느냐˝일 뿐입니다.
빛을 보려면 어둠을 볼 노릇이고,
어둠을 보려면 빛을 보아야겠지요.
˝빛을 보는 이야기˝가 ˝어둠에서 아파하는 사람한테서 등돌린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어둠에서 헤매며 아프기에 빛을 보며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책이란 ‘어른만 보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누구나 보는 책‘입니다.
어른한테만 읽힐 책을 빚으려는 그림책이 아닌,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그림책을 빚으려 할 적에는
˝전쟁을 다루는 그림책˝에서 멈출 노릇이 아닌
˝전쟁을 어떻게 다루어 사랑으로 녹여내어 새길을 빛으로 빚느냐˝를 바라보고서
이 길을 열어야겠지요.
고정순 님 그림책을 읽으시는 만큼
˝전쟁을 사랑으로 녹여내어 새길을 빛으로 빚는 숱한 아름책˝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를테면 이와사키 치히로 님 <꼬마 도깨비 오니타>가
이런 그림책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전쟁 이야기에 스스로 다가서서 고백하는 남자 그림책 작가˝가 너무 적은데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쟁 한복판을 살아낸 ˝남자 그림책 작가˝가 그들 스스로부터
사랑으로 녹여내어 밝히기도 해야겠지요.

전쟁 이야기를 ˝전쟁 사진만으로 그려내는 일˝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불구덩이요 죽음수렁인가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고맙습니다.
 
출근길에 썼습니다 - 내 하루를 살리는 10분
돌고래 지음 / 버찌책방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책읽기 2021.6.14.

인문책시렁 188


《출근길에 썼습니다》

 돌고래

 버찌책방

 2020.5.5.



  《출근길에 썼습니다》(돌고래, 버찌책방, 2020)는 숨통을 트는 길을 남이 아닌 나한테서 스스로 찾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저녁에 돌아오는 하루를 보내는 쳇바퀴라지만, 스스로 틈을 내어 몇 마디나 몇 줄씩 적은 생각이 차곡차곡 모여 어느덧 꾸러미가 됩니다. 책으로 묶을 만하지요.


  똑같은 일을 하기에 쳇바퀴이지 않습니다. 일터를 아침저녁으로 오가기에 쳇바퀴이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에 쳇바퀴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니 쳇바퀴입니다. 배움터나 일터에서 모두 똑같은 옷차림이 되도록 하는 밑뜻을 읽을 노릇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생각해서는 나라(정부)·터전(사회)·배움터(학교)·일터(회사)·믿음터(종교)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생각하면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보금자리를 짓고 돌보거든요.


  다 다른 사람이 모두 똑같이 생각하기에 나라(정부)·터전(사회)·배움터(학교)·일터(회사)·믿음터(종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합니다. 이때 나라·터전·배움터·일터·믿음터는 쳇바퀴에 스스로 들어서는 사람한테 떡고물(월급)을 주고, 이 떡고물에 길들입니다. 나라·터전·배움터·일터·믿음터가 들려주는 말만 옳다고 여기도록 가르치지요(훈육·훈련).


  사랑으로 짓는 보금자리에서는 길들이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서로 돌보면서 사랑합니다. 떡고물·돈으로 굴러가는 나라·터전·배움터·일터·믿음터는 서로 돌보거나 사랑하지 않아요. 언제나 길들이거나 가르치려 들면서 ‘다 다른 사람이 모두 똑같이 쳇바퀴에 스스로 갇혀서 스스로 안 빠져나가도’록 울타리를 쌓습니다.


  숨통을 트려면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글을 쓰고, 이 글을 스스로 책으로 여미어서 읽으면 됩니다. 맨 먼저 ‘우리가 스스로 쓴 글을 즐겁게 읽고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쓴 글’을 마음으로 읽고서 사랑할 줄 안다면, 이제부터는 이웃이나 동무가 쓴 글을 마음으로 읽고서 사랑하는 눈을 틔웁니다.


  온누리 모든 이웃님하고 동무님이 스스로 쓰고 스스로 책을 엮고 스스로 읽으면서 스스로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참사랑(나사랑)’을 가만히 연다면,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운 여러 이웃 눈길하고 동무 손길을 새롭게 느끼면서 이 땅에 풀꽃누리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걸어갈 테지요.


  수수한 아버지가 쓴 《출근길에 썼습니다》에서 한 가지는 아쉽습니다. 이 책을 글님 아이가 열 살이나 열두 살이 될 무렵 읽을 수 있도록 좀더 ‘수수하고 쉽고 부드러이’ 가다듬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쓸 다음 책은 ‘수수한 말·삶말·쉬운말·사랑말’로 손질해 보시기를 바라요.


ㅅㄴㄹ


글쓰기가 숨통을 틔우고 심장을 뛰게 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고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짧은 시간이 행복했다. (11쪽)


‘늙다’라는 말의 의미는 혹시 ‘늘다’와 ‘가다’의 합성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흐르는 세월에 던진 말과 행동이 가라앉아 겹겹이 쌓인다. (35쪽)


새벽부터 일어나 추석 기차표를 예매했다 / 대기자만 만 명. 사십 분을 기다려 / 오는 표는 예매했지만 가는 표를 구하지 못했다 / 분통이 터져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만삭의 아내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117쪽)


양심의 노예도 아니고 규칙과 질서를 모르는 아이들은 본성 그대로 표현한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 그대로의 나를 잊고서 아이들의 순수함을 미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럽고 그리워서.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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