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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2021.6.29.
인문책시렁 189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민음사
2020.3.8.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장영은, 민음사, 2020)는 글순이로 살아온 스물다섯 사람 발자취를 더듬고, 글순이마다 어떠한 글이나 책을 남겼는가를 간추립니다. 스물다섯 사람은 틀림없이 ‘썼다’고 할 텐데, ‘싸우기’하고 ‘살아남기’를 했는가 하고 돌아본다면 좀 아리송합니다.
저는 글돌이로 살아가는데, 글돌이로 살든 글순이로 살든 이 나라에 가득한 굴레나 수렁이나 사슬이나 차꼬를 흔하게 만납니다. 글을 그저 글로 쓸 수 없는 나라라고 할 만합니다. 누구한테나 어떤 목소리나 열려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어떤 목소리나 누구 목소리는 가둔다거나 따돌리거나 손가락질하는 판입니다.
곰곰이 보면 돈·이름·힘을 거머쥔 이들은 마구잡이로 굴되, 이들 스스로 마구잡이인 줄 깨닫지 않습니다. 때로는 팔띠(완장)를 휘두르면서 자랑하거나 우쭐거리지요. 이때에 적잖은 글순이나 글돌이는 굽신거리면서 팔띠쟁이(문필권력가) 옆에서 고물을 받아먹거나 똑같이 팔띠질을 하는 마름 노릇을 하더군요. 웬만한 글쟁이는 돈·이름·힘 앞에서 고분고분합니다. ‘쟁이’가 아닌 ‘지기’가 되려는 사람은 돈·이름·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돈·이름·힘을 안 바라보기에 돈·이름·힘에 휘둘릴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느 글순이나 글돌이는 어떻게 글쟁이 아닌 글지기로 갈까요? 처음부터 숲·별·바람을 바라보거든요. 서울이라는 돈을 내려놓고 시골에서 고즈넉히 숲을 푸르게 안기에 글지기로 살아갈 만합니다. 잿빛집(아파트)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두 다리랑 자전거로 가만가만 살림을 조촐히 짓기에 글지기로 지낼 만합니다. 부릉이(자가용)이라는 힘을 내려놓고 아이랑 손을 잡고 소꿉놀이를 누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오늘을 펴기에 글지기로 빛날 만합니다.
서울이란 돈이고, 잿빛집이란 이름이며, 부릉이란 힘입니다. 자, 보셔요. 어린이는 이 셋 가운데 아무것도 쥐지 않습니다. 자 보셔요. 돈꾼과 이름꾼과 힘꾼은 반드시 이 셋을 휘어잡거나 거머쥐거나 자랑합니다. 우리도 이 셋을 손에서 안 놓는다면 ‘그들과 똑같이’ 돈꾼이요 이름꾼에 힘꾼은 글쟁이에서 허덕이는 셈입니다.
돈꾼·이름꾼·힘꾼이 된 글순이가 수두룩합니다. 글돌이도 수북합니다. 사랑길·살림림·숲길을 걸은 글순이가 조금 있습니다. 글돌이도 조금 있습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가 나쁜 책이라고는 여기지 않으나 ‘이름난 글순이를 알려주는 줄거리 풀이’에 머무른다고 느껴요. 《펠레의 새 옷》을 빚은 엘사 베스코브 같은 아줌마를, 《우리들 소원》을 지은 최명자 같은 아가씨를,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여민 문영이 같은 할머니를, 풀벌레를 사랑하며 《곤충·책》울 갈무리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같은 님을, 예순을 훌쩍 넘고서야 비로소 물빛그림 꿈을 펼치고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남긴 박정희 할머니 같은 주름진 사랑빛을, 이웃이 겪는 생채기랑 멍울을 두고볼 수 없어 앞치마를 살짝 밀쳐두고서 《슬픈 미나마타》를 남긴 이시무레 미치코 아지매 같은 눈물꽃을, 일하는 땀방울에 맺힌 시름을 살살 쓰다듬어 주면서 《마더 존스》를 씨앗처럼 묻은 마더 존스 할멈을 찬찬히 읽고서 찬찬히 읽고서 ‘줄거리 간추리기’가 아닌 ‘살림을 사랑한 길을 노래하기’로 글꽃을 엮는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이름난 글순이 치맛자락은 이제 그만 잡으면 좋겠어요. 살림하는 사랑을 숲빛으로 여민 수수한 글순이하고 어깨동무하기를 바라요.
ㅅㄴㄹ
재능 있는 딸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자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질투가 뒤엉켰다. 여자가 작가로 이름을 얻고 돈을 벌 수 있을까? (19쪽)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 목록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아버지의 서재를 졸업한 버지니아 울프는 대영도서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한다. (38쪽)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글을 썼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시를 쓰면서 후대의 독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은 결코 은둔이나 칩거로만 설명될 수 없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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