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가족은 어렵습니다만
박은빈 지음 / 샨티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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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4.14.

인문책시렁 175


《여전히 가족은 어렵습니다만》

 박은빈

 샨티

 2021.2.5.



  《여전히 가족은 어렵습니다만》(박은빈, 샨티, 2021)은 아직 서로 너무 힘든 한집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집을 이루어서 살아가는데 왜 어렵거나 힘들어야 할까요? 어렵거나 힘들다면 굳이 한집에서 나란히 안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한집을 이루어 살아가는 뜻을 헤아리면서 저마다 스스로 새길을 나아가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한집에서 살아가도 좋고, 어느 나이에 이르면 모두 흩어져 따로 살아가도 좋습니다. 이따금 만나도 좋고, 날마다 만나도 좋으며, 아예 안 만나도 좋습니다.


  우리는 짝꿍을 만나서 사랑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 짝꿍은 만나되 아이는 안 낳을 수 있어요. 짝꿍을 안 만나고 혼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고, 짝꿍은 안 만나지만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다 다른 길이면서 저마다 새로운 길입니다. 다 다르게 나아가는 삶이면서 다 다르게 사랑을 짓는 길이에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틀을 안 세우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한집안이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서로 사슬로 얽맨다고 느껴요. 어려우면 천천히 풀면 되고, 힘들면 쉬면 됩니다. 어려우니 느긋하게 바라보고, 힘들기에 차근차근 헤아리면 되어요.


  하늘에서 흐르는 별빛을 따라 움직입니다. 바람을 따라서 춤추는 풀꽃나무를 바라봅니다. 한집이어야만 하지 않습니다. 두집도 석집도 넉집도 좋아요. 서울살이도 좋고 시골살이도 좋습니다. 믿음길도 좋고 책길도 흙길도 좋아요. 다만 어느 길에 서든 ‘이렇게 해야 한다’는 틀이 없기를 바라요. 틀이 없어야 삶이 됩니다. 틀을 지으니 서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ㅅㄴㄹ


“할머니도 그렇고, 고모들도 왜 아빠 시골 간 걸 그렇게 싫어해요?” “담배를 그렇게 피워대니 몸이 성하나? 농사가 얼마나 힘든데 그 몸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어? 혼자서 시골구석에서 살고 있는 것 보면 불쌍해 죽겠어.” (18쪽)


내 나이 스물여섯 살,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늘 밭에서 흙빛 얼굴로 일만 하던 아빠가 오늘처럼 물렁물렁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저런 눈물을 담고 있던 사람이 그동안 어디로 눈물을 삼켜내고 계셨던 걸까? (47쪽)


지난번 가족 모임 때 나는 그간 혼자서 끌어안고 있던 아빠에 대한 두려움을 툴어놓았었다. 부모님은 과거의 성폭력 사건으로 생긴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그 일이 있던 당시부터 알고 계셨지만 내가 이번 여행에서 다시금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119쪽)


“그럼 누구였으면 좋겠는데?” 수빈이가 물었다. “너 자신이면 좋겠지. 샤이니가 아닌.” “아빠는 아빠 자신을 사랑해?” “아니, 마음에 안 들지. 너희도 알다시피.” 너스레웃음이 이어졌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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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4호
브로드컬리 편집부 지음 / 브로드컬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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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4.11.

인문책시렁 176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조퇴계 엮음

 브로드컬리

 2018.2.15.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조퇴계 엮음, 브로드컬리, 2018)을 읽고서 ‘새터님(이주민)’이란 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다들 한자말로 ‘이사·이주’ 같은 낱말을 쓰는데, 우리말로는 ‘옮기다’이고, ‘새터’를 찾는 발걸음입니다. 북녘을 떠나 남녘으로 온 사람도 ‘새터님’일 테고, 서울을 떠난다든지 큰고장을 등지는 사람도 ‘새터님’입니다.


  그런데 어떤 새터님도 처음 며칠이나 몇 이레나 몇 달쯤만 새터님일 뿐, 어느덧 ‘마을사람’이 됩니다. 길을 익히고 이웃을 헤아리고 하늘빛하고 햇볕하고 비바람을 받는 사이에 똑같이 마을지기란 자리에 서요.


  한 달을 살았건 두 해를 살았건 열 해를 살았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곳에 발을 담그면서 찬찬히 뿌리를 뻗으면 다 ‘마을사람’입니다. 굳이 ‘텃사람·새사람’을 갈라야 하지 않아요. 어느 마을 어느 자리에서든 스스로 하루를 사랑하면서 살림을 짓고 싶다면 ‘마을사람’이요, 집이며 몸은 마을에 있되 돈벌이에만 매달리면 ‘돈바치’입니다.


  제주에 깃든 지 세 해가 안 되는 가게지기 목소리는 그 고장에서만 들을 만한 목소리는 아닙니다. 어느 고장 어느 가게에서도 한결같이 들을 만한 목소리예요. 책이름에서 ‘제주’를 가린다면 다 매한가지입니다. 책이름에서 ‘세 해’를 가려도 그래요. 세 해가 안 되든 서른 해가 넘든, 부대끼거나 복닥이거나 맞닥뜨리는 이웃이며 살림은 어디를 가서 물어봐도 똑같습니다.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이 좀 남다르게 틀을 짜서 책으로 엮으려는 뜻은 알겠지만, 참말로 ‘제주·세 해·새터·가게’란 길을 얼마나 깊거나 넓게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좀 아쉽달까요.


  저라면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대목은 하나도 안 물을 생각이에요. 굳이 물어봐야 하지 않아요. 다 다른 사람이요 다 다른 가게인 만큼 뭘 물어보려 하지 말고, 그곳을 느긋하게 누리면서 ‘스스로 무엇이 즐거운가’를 가게지기한테 들려주면 가게지기는 손님 이야기를 듣고서 이녁 이야기를 한결 스스럼없이 노래하듯 피워 내리라 봅니다. 다만, 책을 엮은 분이 틀에 박힌 말만 묻더라도 여러 가게지기는 스스로 할 말만 하시기도 하더군요. 그렇지요, 스스로 할 말이 있는 사람이기에 새터를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알다시피 제주도에 부동산 붐이 있었다. 갑자기 집값이 뛰다 보니, 마을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월세 비교하고 그랬다. 누구는 방 한 칸에 얼마를 받는데 너희는 그것밖에 못 받느냐, 그런 식으로 서로 부추기는 상황에서 근거가 무슨 소용이겠나. (49쪽)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시간이 문제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누가 시킨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미래의 성공이나 실패와 관계없이 이미 어느 정도의 성취감을 느낀다. 구태여 앞날을 불안해 할 이유는 없다고 감히 생각한다. (107쪽)


자연이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내권은 차를 타고 20분은 나가야 바다를 볼 수 있다.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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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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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3.30.

인문책시렁 173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박홍규·박지원 이야기

 싸이드웨이

 2019.12.5.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박홍규·박지원, 싸이드웨이, 2019)는 열린배움터에서 길잡이 노릇을 하는 삶을 이루기까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읽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지으려 했는가 하는 발자국을 들려줍니다. 글님으로서는 틀(법) 곁에 꽃(예술)을 놓아야 비로소 이 나라가 거듭나리라 여기는 배움길이자 가르침길이었다고 합니다. 틀을 반듯하게 세우더라도 꽃을 곁에 놓지 않을 적에는 그저 딱딱하거나 차가운 쇳덩이에 그친다고, 꽃이 피어날 틈을 두는 틀이어야 하고, 꽃을 돌보는 손길로 삶을 가꿀 줄 아는 틀이어야 한다고 여긴다지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님은 틀(대학교) 쪽에 서서 일합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딱딱하고 차가운 쇳덩이를 바꾸거나 고칠 만한 길을 생각하지만, 좀처럼 틈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틀(권력) 쪽에 서고 나면 주머니를 그득히 채울 만하기에, 숱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바른말(정의·진보)을 내놓지만 속은 빈 겉발림이기 일쑤라고 합니다.


  틀이 아닌 쪽은 어떤 삶일까요. 틀에 들어서지 않기에 가난하거나 고되거나 벅차거나 아프거나 슬픈 삶일까요. 틀에 서서 주머니를 꿰차기에 외려 마음이 가난하고 고되고 벅차고 아프거나 슬픈 길이지는 않을까요.


  2021년에 고흥군청 코앞에 높다란 잿빛집(아파트)이 잔뜩 들어섭니다. 전라남도에서도 귀퉁이라 할 이 시골자락 군청 코앞 잿빛집은 한 칸에 3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놀랍지요. 시골 읍내에 높다란 잿빛집까지 올려야 할 만큼 ‘시골에 집이 없’을까요. 시골에서도 잿빛집을 올려야 ‘서울을 닮은 살림(세련된 도시문화)’이 될까요.


  틀이 나쁠 까닭은 없습니다. 그저 틀만 있고 꽃이 없다면, 풀 한 포기가 돋을 틈이 없고, 풀꽃을 둘러싼 숲이 없다면, 그 틀은 언제나 딱딱하고 차가운 나머지 아무런 숨결(생명)을 못 낳습니다. 숨결을 못 낳는 곳에는 사랑이 없기 마련이고, 사랑이 없는 데에는 새롭게 날갯짓할 생각이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집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책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돈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일꾼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햇볕이나 비나 바람이나 바다나 들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누구나 넉넉히 누릴 만큼 다 있습니다. 틀을 세워서 혼자 주머니에 쑤셔넣으려 하니 모자라 보일 뿐입니다.


  살림하는 사람은 틀을 세우지 않아요. 살림을 하기에 삶을 지어요. 사랑하는 사람은 틀에 서지 않아요. 사랑을 하기에 사람다이 하루를 노래해요. 돈·힘·이름은 나쁘지 않습니다. 오직 돈만 밝히고 오로지 힘만 움켜쥐고 그저 이름에 얽매이니 바보가 될 뿐입니다. 꽃돈이 되고 꽃힘이 되고 꽃이름이 될 노릇입니다. 꽃손이 되고 꽃눈이 되고 꽃몸이 될 삶입니다. 틀(법·사회·정치·권력)은 이제 그만 읽고서 틈(꽃·풀·숲·사랑·살림)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그저 제가 읽은 책들을 저 나름으로 소화하고 정리했을 뿐입니다. 전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에요. (18쪽)


우리나라는 교보문고 정도 되는 대형서점에서도 대학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든가 전문적인 학술서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일본은 후쿠오카만 하더라도 그런 방면의 다양성은 훨씬 낫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교보문고만큼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그런 다양성을 꾀하면서 훌륭한 내실을 보여주는 서점들이 몇 군데 있어요. (56쪽)


중학교에 올라온 제게 대구라고 하는 공간은 너무나도 외로운 곳이었어요. 제 마음을 이해해 줄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으니 하굣길의 헌책방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죠. 그때 헌책방 주인 분들은 저 같은 학생이 책을 샅샅이 헤집고, 몇 시간이나 구석에 앉아서 줄곧 그 책들을 읽는 것을 눈감아 주었던 것 같아요. (60∼61쪽)


우리나라의 법률 교육이라고 하는 게 철두철미 폐쇄적이고 도그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법률가가 되어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기란 대단히 힘든 법입니다. (92쪽)


서구의 경우 르네상스 이후엔 일반적인 지식 사회, 지식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근대적 지식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에서 교과서라고 하는 것이 미신적 권위를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95쪽)


저는 바깥세상에 대곤 정의와 진보를 얘기하면서 자기가 속한 학문, 대학, 가정, 학연, 지연, 혈연을 너무 존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던 것 같아요. (125쪽)


우리나라의 대다수 학자는 번역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이 한글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그런 걸 꺼리는 것 같은 인상까지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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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제주 내가 좋아하는 것들 3
이희선 지음 / 스토리닷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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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3.12.

인문책시렁 170


《내가 좋아하는 것들, 제주》

 이희선

 스토리닷

 2021.2.5.



  《내가 좋아하는 것들, 제주》(이희선, 스토리닷, 2021)를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에도, 덮고 나서도, 이웃님이 저마다 이렇게 이야기를 엮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잘난 글’이 아니라 ‘살아가는 글’을 쓰면 됩니다. ‘내세울 글’이 아닌 ‘살림하는 글’을 쓰고, ‘자랑하는 글’이 아닌 ‘사랑하는 글’을 쓰면 됩니다.


  꽁꽁 감춘 이야기를 써도 좋고, 오래 묵힌 이야기를 써도 좋습니다. 남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아닌, 스스로 살아내면서 마음에 새긴 이야기를 쓰면 됩니다. 웃음이나 기쁨만 쓸 글은 아닙니다. 눈물이며 멍울도 얼마든지 쓸 만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살펴봐요. 기쁨노래 곁에 슬픔노래가 있어요. 웃음노래 옆에 눈물노래가 있어요. 태어나기에 죽고, 오르기에 내려옵니다. 죽기에 새로 태어나고, 내려오기에 새로 올라갑니다.


  우리 몸은 거의 물로 이룹니다. 사람뿐 아니라 풀꽃나무도 거의 물입니다. 돌이나 바위에는 물이 거의 없다고 여기지만, 막상 바위나 돌도 바탕은 물이에요. ‘물이 굳어’서 바위나 돌이란 모습일 뿐입니다. ‘광석’이 뭔가 하고 생각해 보면 모두 어렵잖이 알 만합니다.


  우리가 물이란 몸을 입었다고 한다면, 냇물이나 바닷물처럼 늘 찰랑이는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냇물이나 바닷물에 풍덩 안겨서 가만히 몸을 내려놓으면 어느새 물낯에 떠서 하늘바라기를 누릴 수 있듯, 몸을 옭매거나 누르지 말고 홀가분히 다스리는 길로 간다면 늘 즐겁게 하루를 맞이할 만해요.


  제주라는 터에 뿌리를 조금씩 내리면서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바라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제주》예요. 이웃님이 살아가는 고장을 놓고서 이처럼 수수하게 이야기를 엮는다면, 이웃님이 좋아하는 하나를 살피면서 이렇게 조촐히 이야기를 여민다면, 오늘 하루가 얼마나 빛나는 삶인지 마음으로 새삼스레 맞아들일 만하겠지요. 대단한 척하니까 대수롭지 않고, 대단하게 꾸미지 않으니까 대수롭습니다.


ㅅㄴㄹ


등산도 싫어하고 자연도 멀리했던 이에게 문득문득 보이는 한라산의 자태는 저절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게 한다. (10쪽)


하얗고 야리야리한 두 살배기 딸이 밥도 영 신통치 않게 먹는 것을 보고 골골거리게 생겼다며 걱정하셨다. 그러고는 “겨울에 감기에 안 걸리려면 여름에 신나게 바다에 넣었다 뺐다 해야 한다”며 소금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30쪽)


제주의 산과 바다도 물론 아름답지만 무심코 올려다보다 만나는 밤하늘 광경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55쪽)


지금은 나도 같이 싸운다. 아니, 같이 토론한다. 요즘엔 내가 이길 때도 있다. (101쪽)


회사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제주토박이 분이 넌지시 알려주셨다. 제주에서는 무언가를 받으면 그냥 보내지 않고 꼭 손에 뭔가를 들려 보낸다고 말이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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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파뉴 1
나가토모 켄지 그림, 아라키 조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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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한 모금에 담는 손길


《샹파뉴 1》

 아라키 조 글

 나가토모 켄지 그림

 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20.3.25.



  《샹파뉴 1》(아라키 조· 나가토모 켄지/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20)를 읽으면서 손길에 담는 숨결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기를 바라기에 아름다운 손길이 되도록 스스로 가다듬는 길을 가요. 아름답기를 바라지 않기에 아름다운 손길하고는 동떨어진 길로 스스로 가요.


  마음을 보려 한다면 마음을 봅니다. 마음을 보려는 뜻이 없기에 마음이 아닌 겉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닌 옷차림을 보고, 마음이 아닌 돈을 보고 말아요. 사랑을 보려는 사람만 사랑을 봅니다. 사랑을 보려는 뜻이 없기에 사랑이 아닌 손길이 되고 눈길이 되며 몸짓이 되어요.


  값진 포도술 한 모금은 해랑 비바람이랑 흙을 고이 머금습니다. 값지지 않은 포도술 한 모금도 해랑 비바람이랑 흙을 곱게 머금어요. 모든 포도술을 해랑 비바람이랑 흙을 머금습니다. 술뿐 아니라 모든 밥도 바로 이 별에 드리우는 해랑 비바람이랑 흙을 바탕으로 기운을 머금습니다.


  겉보기로는 고기요 밥이요 술이요 떡이요 빵입니다만, 속살로는 해요 비바람이요 흙이기 마련이에요. 바탕은 모두 같으나 값이 갈려요. 왜 그럴까요? 같은 바탕을 다루는 손길이 다르거든요. 아무리 빛나는 바탕이어도 사랑을 담아서 매만지거나 돌보지 않기에 값이 없어요. 수수하거나 투박한 바탕이어도 사랑을 담아서 어루만지거나 보살피기에 값이 나가요.


  어느 밥이나 술이든 해입니다. 해를 어떻게 누리려나요? 해를 어떻게 맞이하려나요? 어느 밥이나 술이든 비바람이자 흙입니다. 우리를 둘러싸는 비바람하고 흙을 어떻게 바라보려나요? 어떻게 가꾸려나요? 《샹파뉴》는 썩 대단하지 않다 싶은, 그냥그냥 마주할 만한 줄거리를 다룰는지 모릅니다. 작은 빛을, 작은 길을, 작은 노래를, 작은 삶을, 작은 오늘을 다룬다고 할 만해요. 우리 함께 작은이가 되어 작은 자리를 들여다보지 않겠어요?



“아뇨, 단지 그 시대 인간에게 고호의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을 뿐.” (29쪽)


“수도사 동 페리뇽이 이런 말을 남겼답니다. ‘샹파뉴를 마시는 것은, 별을 마시는 것이다.’” (38쪽)


“좋은 연도의 포도만으로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건 쉬워. 그건 자연의 기술이지. 하지만 좋은 연도에도 나쁜 연도에도 변함없이 같은 맛을 유지하는 건 사람의 기술, 그거야말로 만드는 사람의 애정과 긍지.” (65쪽)


“특상 갈비는 어느 가게든 최상급 고기를 준비하니까 맛있는 게 당연해. 하지만 진짜 가게의 얼굴=개성과 가게의 레벨은 평소에 먹는 일반 갈비로 알 수 있어.” (69쪽)


“여기 선생님이 부탁하셔서요.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셔서,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는 살 수 없죠. 손님은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90쪽)


“남자는 몰라요! 여자는 샴페인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게 자신만의 특별한 한 병이기 때문에 기쁜 거라고요!” (128쪽)


“처음 잔에 닿은 순간.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다 마신 후의 여운. 모든 때가 더 멋진 거야. 샹파뉴도 연애도.” (164쪽)


“애정이라는 건 진짜처럼 보여도 가짜인 게 있고, 가짜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짜일 때도 있는지 모릅니다.” (182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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