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피닉스문예 10
표성배 지음 / 갈무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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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7


기업주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지만
― 미안하다
 표성배 글
 갈무리 펴냄, 2017.6.16. 15000원


  공장 노동자인 표성배 님은 공장에서 일하는 삶을 시로 그립니다. 그동안 《기계라도 따뜻하게》나 《저 겨울산 너머에는》이나 《개나리 꽃눈》이나 《기찬 날》이나 《은근히 즐거운》 같은 시집을 선보였습니다.

  공장 노동자 시인은 시에 산문을 엮은 《미안하다》(갈무리,2017)라는 책을 새로 선보입니다. 공장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거나 마주할 수 있는 일을 시와 산문 두 가지 이야기로 들려주어요. 어느 날 갑자기 ‘공장 폐쇄’라는 날벼락이 떨어지면서 이도 저도 하기 어려운, 그냥 나갈 수도 없지만 그대로 버티기도 어려운, 아프면서 힘든 일을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이때가 2015년 겨울입니다.


공장이 언제라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 대부분 잊고 산다.
그만큼 순박하다고 해야 할까.
이런 순박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만 하다
어느 순간 공장 문이 닫히면 그 결과는 혹독하다.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4∼5쪽)


  《미안하다》를 쓴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요. 이 책을 읽는 마음도 나란히 아픕니다. 왜 ‘미안하다’라고 말하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한국말사전을 펼칩니다. ‘미안하다(未安-)’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이 낱말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아니, 공장 노동자 표성배 님은 공장장도 사장도 아닌데 ‘공장 폐쇄’를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요? 정리해고를 받아들여서 나가겠느냐고 설문(또는 설문이라는 이름으로 몰아붙이는 폭력)조사를 하는 회사에서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마디도 안 했다는데, 공장 노동자 한 사람이 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왜 작은 한 사람이 마음이 가볍지 못하면서 부끄러워야 할까요? 주먹을 휘두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주먹질에 얻어맞아 아픈 사람이 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60세가 정년이라고 취업규약에 단체협약에 정부가 펴내는 홍보물에 반듯하에 인쇄되어 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11쪽)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나 불법적인 정리해고나 공장 폐쇄 등에 맞서 송전탑이며 공장 옥상, 크레인 위나 심지어 광고탑에까지 올라가서 밥을 위해 밥을 굶어도,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는 노동부는 자본을 대변하고 있고, 정론을 펼쳐야 하는 언론은 이를 모른 체한다. (13쪽)


  우리는 2015년을 지나고 2016년을 거친 2017년을 살아갑니다. 햇수로 치면 고작 세 해입니다만, 이 세 해 사이에 나라에는 참으로 커다란 일이 불거졌습니다. 뒤에서 검은 짓을 한 이들이 들통났어요. 이들은 작은 사람들이 손에 쥔 촛불로 물결을 이루자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 높은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새로 뽑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미안하다’고 할 만한 일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이 나라 모든 노동자는 헌법에 적힌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요? 법그물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거나 아예 법을 짓밟는 모든 얄궂은 짓을 끝낼 수 있을까요?


“기업 경영하기 좋은 나라 기업 경영하기 좋은 도시”라는 광고 문구 앞에 꿇어앉아 있는 노동자를 상상한다. 심지어 큰 공부를 한다는 대학마저 취업률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 대기업만 살고 모든 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35쪽)

침묵의 무게. 오늘부터 18일까지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공지를 메일로 받았다. 기술직 180여 명. (93쪽)


  나라에서도 도시에서도 이제껏 기업이 살림을 꾸리기 좋은 터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들 누구나 살기 좋은 나라나 마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나 마을이 되고, 평화롭고 평등하면서 이웃이 어깨동무할 수 있는 나라나 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즐거움을 즐겁게 나누고, 괴로움은 홀가분하게 털어내듯이 나눌 수 있는 나라나 마을이 되기를 바라요.


일요일이라고 특별하게 쉬어야지 하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그랬다. 당연히 공장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러니까 공장에 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게 마음이 편안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187쪽)

40%. 187명 중 74명의 동료가 공장을 떠났다. 40%다. 40도짜리 술이라도 한잔해야 견딜 수 있겠다. 너무 독하다. 혀끝에서 입안을 훑고 위장을 뒤흔들고 있는 이 뒤끝. 어지럽다. (201쪽)


  표성배 님은 공장에 남았다고 합니다. 떠나야 한 사람이 40%요, 남을 수 있던 사람이 60%라고 해요.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한테 미안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기업주가 40% 노동자한테 하지 않은 말 ‘미안하다’를 《미안하다》라는 책에 조용히 적바림합니다.

  그래요,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서로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함께 일하는 벗님입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이 있다고 할 만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글로 남겨서 이렇게 온누리에 띄우는 사람은 이 나라가 평화롭고 평등한 길로 거듭나기를 비는 뜻을 품었다고 할 만합니다. 2017.8.2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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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책읽기 - 안건모 서평집
안건모 지음 / 산지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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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5


틈이 없어 책 못 읽는다는 핑계는 안 먹혀
― 삐딱한 책읽기
 안건모 글
 산지니 펴냄, 2017.6.19. 15000원


  버스기사로 일하던 안건모 님은 버스를 몰다가 신호에 걸려서 기다려야 할 적에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 본들 책을 얼마나 읽겠느냐고 여길 분이 있을 텐데, 열 권짜리 《태백산맥》을 오직 버스를 모는 동안 한 달 만에 다 읽었다고 해요.

  한 달에 열 권쯤 읽기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버스가 신호에 걸리는 작은 틈을 차곡차곡 모으니 한 달 동안 열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 새로운 길을 연 셈이에요. 우리한테 틈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기보다, 책을 읽는 틈을 스스로 못 내는 하루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짧은지, 게다가 강연과 책이 다시 말해 ‘말’과 ‘글’이 이렇게 느낌이 다르고 이해가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44쪽,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읽고)

노동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동료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뉴라이트까지 들어가 자본에 넘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가들의 이간질과 이념 공세 때문이 아닌가. 노동자들이 참다 참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 공세가 얼마나 심한가. (75쪽,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읽고)


  버스기사 안건모 님은 책읽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벼운 책읽기로 끝내지 않습니다. 버스를 몰면서 생기는 작은 틈에 책을 읽는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로 합니다. 사회에서 바라본다면 아주 작은 버스기사 한 사람입니다만, 이 땅하고 이웃을 책으로 읽어 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글을 쓰기로 합니다. 작가도 지식인도 문학인도 아니지만, 버스기사로 살아가는 나날을 수수하게 적어 보기로 합니다. 책을 읽으며 넓힌 눈길을 바탕으로 이녁 삶을 이녁 손으로 고스란히 적는 글쓰기로 나아가요.

  이러면서 잡지 《작은책》을 펴내는 자리로 일터를 옮겼고, 《삐딱한 책읽기》(산지니,2017) 같은 책까지 써낼 수 있습니다.


전교조를 탄압하던 박근혜에게 김진숙은 “박근혜 씨, 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하면서 박근혜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 본 적이 있으시오?” 하면서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일갈하고 (107쪽, 《소금꽃 나무》를 읽고)

그런 책 한 권을 보면 사회를 보는 눈이 트일 텐데 우리 노동자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같이 일하던 버스 운전사들을 보면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못 본다는 핑계는 나한테 먹히지 않는다. “나는 운전하면서 책 읽었어.” (112쪽, 《전태일》을 읽고)


  책읽기를 둘러싸고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바빠서 책 읽을 틈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틈이 많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터이나, 없는 틈을 내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느껴요. 요즈음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매우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있어요. 여행을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어요. 여행을 간 곳에서 다리를 쉬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지요. 여행을 간 곳에서 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틈틈이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있고요.

  저는 집에서 살림하는 틈틈이 책을 손에 쥡니다. 밥을 하다가 1분이나 10초쯤 쪽틈이 날 적에 책을 읽어요. 김치를 담그려고 풀을 쑤면서 책을 읽지요. 한 손으로는 주걱을 쥐고 한 손으로는 책을 쥡니다. 낫을 쥐고 풀을 베다가 땀을 식히느라 풀밭에 앉아서 책을 쥐어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책을 쥐고요.


미국은 대체 왜 그렇게 다른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핵을 보유하고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 있는 핵은 무용지물이 되도록 미사일방어체제를 갖추고, 그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까지 배치하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167쪽, 《맨발의 겐》을 읽고)

나리타공항을 반대했던 이들은 언론이 보도한 과격파들이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왜,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고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176쪽,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고)


  안건모 님은 ‘삐딱한 책읽기’를 말합니다.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삐딱한’ 눈길로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바쁜 틈을 쪼개어 읽는 책인 만큼, 시간을 죽이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넓히는 책을 읽자고 말해요.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인가를 꿰뚫어보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우리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방울이 무엇인가를 깊이 느끼도록 알려주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애서 틈을 내고, 틈 가운데에서도 아주 작은 쪽틈을 내는데, 아무 책이나 손에 쥘 수 없어요.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일깨우는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요.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요. 스스로 새롭게 살림을 짓도록 돕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삐딱한 책읽기란 아직 평등하지 않고 평화롭지 않으며 민주하고 동떨어진 이 나라에서 평등·평화·민주를 찾아내어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모습이나 몸짓일 수 있습니다. 평등·평화·민주하고 엇나가는 나라 흐름을 앞으로는 작은 촛불힘으로 바꾸어 내고 싶은 꿈으로 바지런히 책을 읽습니다. 2017.7.2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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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7-07-2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버스 신호 대기 중에 책을 읽는다는 건 너무 무서워요^^ 엘레베이터안에서 책을 읽는 일인인데 못 내린적 많습니다^^

숲노래 2017-07-30 05:42   좋아요 0 | URL
너무 푹 빠지면... 위험할 만하겠지요?
알맞게 끊으면서 조금조금 즐길 수 있다면
할 만할 테지만
책에 푹 사로잡히는 분한테는
많이 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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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8


선진국에는 ‘지각’이 없대요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글
 생각정원 펴냄, 2016.10.10. 14000원


  저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가 보지 못했기에 프랑스가 어떤 곳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나 책으로도 이웃나라 살림을 살짝 엿볼 수 있어요. 유투브에는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제 나라 살림을 손수 찍어서 올리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 방송이나 책도 퍽 쉽게 만날 수 있고요.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 살림살이 이야기를 한국 살림살이하고 맞대면서 곧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목수정 님이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도 목수정도 잘 몰랐습니다만, 제가 사는 전남 고흥에는 ‘목씨 집안’이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이름이 높아요. 어린이노래를 지은 목일신이라는 분도 고흥 분이고요. 이런 여러 실타래를 헤아리면서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생각정원,2016)을 읽습니다.


프랑스사회가 한국사회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뼛속까지 새겨진 시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각해도 뛰지 않는다. (30쪽)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의 몸에 밴, 어릴 때부터 사히와 학교와 부모가 주입한 행동양식일 테니.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주입받고 자란 사람들이 안전 대신 속도를 선택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결과다. (34쪽)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첫머리에서 목수정 님은 ‘학교나 일터에 늦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학교나 일터에 늦는다고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는다고 해요. 참말로 한 사람조차 안 서두르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사회 흐름으로 보건대 굳이 서두르지 않는 기운이 흐른다는 대목을 생각하면서 놀랍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한국에서는 학교에 1분만 늦어도, 아니 1초만 늦어도 문을 쾅 닫아걸기 일쑤예요. 요즘에는 달라졌을까 모르겠는데, 지난날에는 초시계로 재서 그야말로 1초만 늦어도 모두 ‘지각’으로 묶어서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걷게 한다거나 몽둥이로 엉덩이찜질을 시킨다거나 운동장 가장자리 풀을 뽑게 시키곤 했어요. 게다가 성적표에 ‘지각’ 횟수를 또렷이 새겨서 더욱 괴롭혔고요.

  지각을 두 차례 하면 결석을 한 차례 한 것과 같다고 윽박지르니, 집하고 학교 사이가 먼 동무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학교에 오기 마련입니다. 그야말로 끙끙 앓고 눈치를 보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이는 학교를 떠나 회사나 공장이라는 일터를 갈 적에도 똑같고요.


아이들의 요구 중에서 담임 선생님을 학교에 남게 해 달라는 요구는 관철되었다. 담임은 되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선생님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크게 기뻐했다. 음악 선생님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지난해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59쪽)

(아이) 칼리는 담배꽁초를 구해 주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무생물인 줄 알지만, 저 담배꽁초가 정말 불쌍해 보였어. 아, 이제 좀 편하겠다.” 세상의 미물들이 겪는 고통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다는 것, 소중한 능력이다. 문득 이 아이가 나보다 커 보였다. (64쪽)


  조금 늦는다고 윽박지르면서 괴롭히는 학교·사회 얼거리는 언제나 ‘빨리빨리’로 잇닿습니다. 조금만 누가 앞에 끼어들어도 불같이 성을 냅니다.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남 앞에 재빨리 끼어들어 더 빨리 가려고 불꽃을 튀기지요. 고속도로에서뿐 아니라 여느 길에서도 사람들은 그저 빨리빨리 달리기만 해요. 좁은 골목으로 자동차를 이끄는 이들은 아이들이 놀건 말건, 할머니 할아버지가 천천히 걷건 말건 얼른 비키라고 빵빵 울려대요.

  빨리빨리 외치는 마음은 집이나 다리를 지을 적에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무엇이든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많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성적을 내야 하고 점수를 얻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러는 동안 ‘삶이라는 기쁨이나 즐거움’하고는 멀어져요. 숫자에 얽매이면서 이웃을 볼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차분하게 되새길 겨를마저 없어요.


선진국이란,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투명한 사회를 일컬으며,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법 위에 군림하는 인간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127∼128쪽)

가부장제가 부여한 과도한 남성 구건력이 가족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도 스스로 궤도 수정을 할 줄 모르는 이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잔혹한 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마침내 승리하는 여성들을 보노라면 환희와 절망이 교차한다. (166쪽)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은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렵거나 남다른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른바 상식이라고 할 만한 곳을 살짝 짚습니다. 사람들이 기쁜 삶을 헤아리지 않고 숫자에 매여 빨리빨리 내달려야 하는 곳에는 평등도 평화도 민주도 자유도 깃들기 어렵다고 하는 쉬운 이야기를 밝혀요. 사람들 누구나 즐거운 삶을 생각할 적에 비로소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나 자유를 스스로 가꾸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는 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삶은 빛나기 시작한다. 뜨겁게 사랑하는 인간의 심장보다 더 강력한 모터는 없다. (275쪽)

(프랑스에서) 60∼70대들은 20∼30대에 68혁명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투쟁 결과를 청장년 시절 누려 왔고, 노년이 된 지금, 그들이 건설한 프랑스가 파괴되어 가자, 어느 세대보다 많이 거리에 나와 프랑스의 가치를 복원하고자 애쓴다. 프랑스 쪽이 더 튼튼한 건 노인들의 관절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었던 것. (285쪽)


  2016년 끝자락을 지나서 2017년대 첫머리를 지나는 사회를 바라본 이 나라 사람들은 촛불물결을 몸소 마주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촛불물결을 스스로 일으켰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는 그리 평화롭거나 평등하거나 자유스럽거나 민주답다고 하기 어려울는지라도, 이제부터 시나브로 하나하나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손으로 작은 힘을 모아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줄 느낀 분들은 이제는 낡은 길로는 다시 접어들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이 꿈꿀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어요. 즐겁게 삶을 짓는 마을이 되기를 바라요. 기쁘게 하루를 노래하는 아이랑 어른이 손을 맞잡는 보금자리가 되도록 서로 마음을 기울이리라 믿습니다. 2017.7.2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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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아가는 기쁨 - 진짜 삶을 방해하는 열 가지 거짓 신념에서 깨어나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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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0


한 번 죽고 나서 송두리째 바뀐 삶
― 나로 살아가는 기쁨
 아니타 무르자니 글
 추미란 옮김
 샨티 펴냄, 2017.5.31. 15000원


  살다가 죽음 코앞까지 가 본 사람이라면, 이때부터 다르게 살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죽었구나 싶은 나날을 보내다가 새롭게 깨어나 본 사람이라면, 이때부터 새롭게 살기 마련이라고 하지요. 하늘 높이 날듯이 살다가 고꾸라진 사람하고, 벼랑 밑으로 굴러떨어졌다가 천천히 한 발씩 딛고 일어선 사람도 삶이 다를 테고요.

  어쩌면 삶에는 벼랑이나 밑바닥이란 없을 수 있어요. 낮하고 밤이 있듯이, 여름하고 겨울이 있듯이, 때로는 훨훨 날 수 있고, 때로는 푹 주저앉거나 가라앉을 수 있어요. 훨훨 날기에 기쁘기만 하지 않고, 푹 주저앉거나 가라앉기에 슬프거나 괴롭기만 하지 않아요.

  우리한테 찾아오는 모든 일은 무언가 배울 수 있도록 이끌지 싶습니다. 이곳에서는 이것을 배우고, 저곳에서는 저것을 배워요. 신나는 날에는 신나는 하루를 배우고, 괴로운 날에는 괴로운 하루를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의 놀림이 괴로웠던 것은 나 스스로도 내 피부색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6쪽)

내가 지금 음미하고 있는 이 멋진 것들을 깨닫기 위해 나는 그 고통스럽고 괴롭고 두려웠던 시간들을 통과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43쪽)


  아니타 무르자니 님이 쓴 《나로 살아가는 기쁨》(샨티,2017)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이 낸 다른 책으로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2012)가 있어요. 두 가지 책은 글쓴이가 ‘씻을 수 없다는 병’에 걸린 뒤 몸져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다가 넋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일을 겪고 나서 스스로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들 아니타 무르자니 님이 ‘죽네’ 하고 여겼다는데, 이승에서 저승으로 죽음이라는 냇물을 건너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은 뒤에 ‘삶을 보는 눈’이 그야말로 뒤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바뀌었느냐 하면, 죽음이라는 문턱을 맛본 뒤부터는 ‘스스로 가장 바라는 일’만 하는 삶이 되었다고 해요. 이녁한테 주어진 하루를 오직 스스로 가장 즐겁게 지을 수 있는 삶으로 가꾸려고 했답니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믿음, 가치, 판단, 견해, 불안, 의심, 두려움이 내가 아님을 갑자기 깨달았을 때 어땠겠는가? (48쪽)

임사체험 중에 저는 조건 없는 사랑이 어떤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반대가 없습니다. (66쪽)

우리 둘 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거든요. 서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또 존중하니까요. 그리고 사실 서로 다른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서로 많이 배울 수 있죠. 그렇게 배운 덕분에 둘 다 많이 변하고 성장했죠. (70쪽)


  제법 많은 영화와 만화와 책이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죽음이라는 문턱을 디뎌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제껏 나는 내가 스스로 하고픈 일을 안 하고 남이 시킨 일만 했네’ 하고 알아차렸다고 밝혀요. 사회를 이루는 톱니바퀴나 쳇바퀴에서 이제부터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지요. 사회에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쥐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삶에 기쁨과 사랑과 노래가 흐르는 길로 걸어간다고 하고요.

  《나로 살아가는 기쁨》은 말 그대로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남이 아닌 나로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남 눈치를 살피지 않는 삶을 이야기해요. 남이 나를 어떻게 재거나 따지거나 말할까 하고 근심걱정을 하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지요. 남이 나를 높이 여겨 주기를 바라지 않는 삶을 이야기해요. 오직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깨어나서 즐겁게 꿈을 펼치자고 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다룹니다.


나를 치유할 수 있는 모든 힘이 (의사) 젠 타이에게 있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내가 더 약해질 것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약해지면 나는 외부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믿게 될 것이었다. (110쪽)

나는 우리의 몸이 전쟁터가 아니라는 것과 몸을 전쟁터처럼 다루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무찔러야 할 적은 어디에도 없다. (122쪽)


  모진 아픔을 털어내 본 일을 겪은 글쓴이는 ‘약이나 의사나 병원 처방’이 아닌 ‘마음이 어떠한가’를 비로소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해요. 약이나 의사를 아예 안 믿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약이나 의사한테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스스로 늘 튼튼하며 아름답다고 하는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해요. 남이 보기에 못생겼느니 잘생겼느니 하는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나 스스로 내 모습을 고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산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누구는 걸음이 빠를 수 있어요. 누구는 힘이 셀 수 있어요. 누구는 키가 클 수 있어요. 누구는 몸집이 우람할 수 있어요. 빨간 머리나 하얀 머리가 있고, 검은 머리나 노란 머리가 있어요. 어떤 몸이나 머리나 힘이 되어야 가장 좋거나 훌륭하지 않아요. 걸음이 느리고 힘이 여리더라도 스스로 얼마든지 튼튼하면서 이쁜 삶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그렇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죽이고 증오심을 퍼뜨린다. (153쪽)

임사체험을 하는 동안 제가 할 일은 오직 저 자신으로 살고 저의 신성한 진실을 따라 사는 것임을 기억해 냈어요. (228쪽)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문화에 어울리려고 애쓰느라 정신이 없어 조금씩 그런 진실들을 잊어가죠. 또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게 싫어서 자신의 빛을 희미하게 하기도 하고요. (250쪽)


  옛말을 떠올립니다. ‘앓고 나니 달라진다’고들 해요. 작은 감기라 하더라도 이 감기를 치르고 나면 몸이 아플 적에는 그동안 대수롭다고 여긴 일이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은 줄, 아무것도 아닌 줄 알 뿐 아니라, 몸이 아플 적에 곁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가를 알 수 있어요. 앓고 나면 으레 스스로 가장 즐거울 일을 찾아나설 뿐 아니라, 곁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만 놓기 마련이에요. 밥 한 그릇을 맛나게 먹는 마음을 되찾을 수 있고, 늘 마주하는 하늘을 고마이 바라볼 수 있어요.

  나로 살아가는 기쁨, 고스란히 내가 나다운 기쁨, 언제나 스스로 사랑하며 이 사랑을 마음껏 펼치는 기쁨, 이 여러 가지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지지 않아도 아름다운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멋지거나 값진 옷을 걸치지 않아도 싱그러우며 빛나는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잔칫밥을 차리지 않더라도 즐거운 밥상맡이 되는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기쁘게 살아가는 길은 늘 한 가지로구나 싶어요. 남을 보지 않고 나를 보는 길입니다. 남을 따라가지 않고 내 길을 걷는 마음입니다. 남을 흉내내거나 베끼지 말고 아무리 초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즐기면서 좋아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남한테서 사랑받는 길이 아닌, 스스로 사랑하는 길이 되기에 시나브로 웃음꽃이 피어나고 노래마당을 여는구나 싶어요. 2017.7.1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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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공단에 피다 - 세상을 바꾸는 투쟁,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이야기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지음 / 한티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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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같은 사람들로 숲을 이룹니다
― 들꽃, 공단에 피다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글·사진
 한티재 펴냄, 2017.5.29. 15000원


  들풀이 돋고 들꽃이 피는 자리에는 비가 아무리 드세게 퍼부어도 흙이 좀처럼 쓸리지 않습니다. 작은 풀꽃이지만 작은 풀뿌리로 흙을 단단히 움켜쥐거든요. 나무만 서고 들풀이 없으면 제아무리 우람한 나무라 하더라도 빗줄기에 흙이 쓸려서 굵은 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나곤 해요. 우람한 나무 둘레에 돋는 풀을 샅샅이 뽑거나 죽인다면 나무는 흙을 제대로 붙들지 못하면서 그만 시름시름 앓다가 쓰러질 수 있습니다.

  들풀 한 포기는 매우 작고, 들꽃 한 송이는 무척 작습니다. 얼핏 스치면 안 보이기 마련이고, 짬을 내어 가만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느끼기조차 어려워요. 그러나 작은 들풀하고 들꽃이 있기에 들을 이루고 숲을 이룹니다. 작은 들풀하고 들꽃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들이며 숲이 깨어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16명에 대한 권고사직 강요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 원청에도 없는 노동조합을 하청 비정규직이 만들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도 의심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10쪽)

일 년 반 동안 구미 전역을 들쑤시며 투쟁했고, 지역에서는 우리 문제가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꿈쩍하지 않았고 그 배훙에는 법률자문 김앤장이 있었다. (18쪽)


  경상도 구미에 아사히글라스라고 하는 다국적 유리제조 기업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업이 꾸리는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된 일과 여러 푸대접을 바꾸어 보고자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열었다고 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여니, 손전화 쪽글로 아주 가볍게 해고 통보를 했대요.

  멀쩡히 일을 잘 하던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열려고 했다는 까닭 하나로 일터에서 쫓겨나야 했다는데, 노동조합은 불법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은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권리를 지키려는 아주 자그마한 몸짓입니다. 헌법에서도 노동3권을 누려야 한다고 똑똑히 밝혀요.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까지 노동조합을 마음 놓고 열지 못합니다. 온갖 불법과 부정과 비리를 일삼은 대통령을 촛불 한 자루 힘으로 사람들이 끌어내려 새 대통령을 뽑았는데, 새롭게 대통령 자리에 선 분도 아직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눈길을 맞추지 않습니다.


(입사) 3개월 후부터는 쉬는 날이 없어졌다. 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가족을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실수한 사람에게 징벌용 조끼를 길게는 한 달 이상 입혔다. (29쪽)

현재 나는 20개월째 아사히글라스와 싸우고 있다. 20개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였다. 몇 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살아 보니까, “비정규직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꼭 없어져야 한다. (39쪽)


  《들꽃, 공단에 피다》(한티재,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은 얼결에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던 작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을 쓴 이들은 여태 아주 조용히 공장 노동자로 지내던 우리 이웃입니다. 글재주나 말솜씨가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엄청난 운동가나 활동가도 아닙니다. 바로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하거나 투박한 아저씨입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할 권리를 지키고 싶어서 비정규직이어도 노동조합을 열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들 스스로뿐 아니라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이웃 노동자 누구나 일할 권리가 짓밟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동조합을 이루려 할 뿐입니다.

  한국 정부에 노동부가 있고 노동청이 있습니다. 이곳은 바로 일하는 사람을 지켜야 할 공공기관입니다. 커다란 공장이든 작은 공장이든 노동조합이 제대로 서도록 도울 구실을 할 공공기관이지요. 그러나 노동부도 노동청도, 또 시청이나 군청도, 공장 노동자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제대로 안 살피지 싶습니다. 일하는 사람 스스로 노동조합을 열려고 할 적에 아사히글라스 같은 기업에서 손전화 쪽글로 어처구니없이 해고 통보를 해도, 이를 바로잡거나 나무라는 구실을 못 합니다.


몇 개월에서 보통 5∼6년 넘게 일해 온 동료들의 얼굴을, 노동조합 만들고 제대로 처음 마주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이름조차 알 기회가 없었다. 삶에도 관계에도 여유가 없었고 생산 물량에 치여 일만 해온 게 우리 현실이었다. (91쪽)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한국은 어떤 나라로 나아가야 아름다울까요? 이 나라는 ‘기업을 하기 좋은 나라’인가요? 이 나라와 이 나라 지자체는 ‘기업을 하기 좋은 도시’가 되면 아름다울까요?

  그렇다면 기업이란 어떤 곳인가요? 기업주 몇 사람만 돈을 잘 벌면 될까요? 기업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이 다 같이 즐겁고 넉넉하게 일하고 살림을 가꿀 때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언제쯤 ‘기업을 하기 좋은 나라·도시’라는 허울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요? 이 나라에서 대통령 자리에 서는 ‘일꾼’은 언제쯤 공장 노동자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대통령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나 똑같은 일꾼이면서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시민이요 똑같은 이웃이라는 대목을 당차게 밝힐 만할까요? 정규직하고 비정규직 사이에 놓인 높다란 금을 이 나라 지도자나 기업인은 언제쯤 스스로 떨쳐내어 다 함께 손을 맞잡아 활짝 웃는 아름다운 길로 거듭날 만할까요?


법에서는 분명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왜 보장되지 않는가. 아사히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서 출발하고, 이들이 밟고 있는 법적 구제 절차는 그 답을 듣기 위한 과정이다. (220쪽)


  들풀하고 들꽃이 흐드러지면서 나무가 우거진 숲은 제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숲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들풀 한 포기 없고 들꽃 한 송이 없이 나무 몇 그루만 오도카니 선 곳은 도시이든 시골이든 숲이든 작은 비바람에도 흙이 쓸려서 흙물이 흘러내립니다.

  높고 낮은 멧봉우리가 오랜 나날 비바람을 맞아도 높이가 낮아지지 않는 까닭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뿐 아니라 숱한 풀꽃이 함께 살기에 높고 낮은 멧봉우리는 오랜 나날 씩씩하면서 튼튼합니다.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튼튼하려면 어떠한 길을 걸어야 아름다운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대통령 자리에 서서 일하는 분은 누구하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섞을 적에 아름답게 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좋겠어요.


노동조합만 만들면 잘될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자본은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우리를 잘 분석했다. 자본은 무리수를 두면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하청업체 하나를 통째로 날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199쪽)


  아주 조그마한 사람인 이웃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아주 자그마한 사람인 이웃 노동자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요. 대통령은 청와대 앞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 곁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요. 시장과 군수는 시청이나 군청 앞에서 작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요.

  들풀을 짓밟거나 들꽃에 등돌리는 길에는 민주나 평화나 자유나 평등이란 자라지 못합니다. 들풀을 쓰다듬고 들꽃을 아끼는 길에서 비로소 민주나 평화나 자유나 평등이 자랄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녁 일터를 되찾을 뿐 아니라, 앞으로는 ‘비정규직’이라는 딱지가 말끔히 사라질 수 있기를 빕니다. 2017.7.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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