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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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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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이붕언 엮음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3.5.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이붕언/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은 ‘일본에서 나고자란 한겨레’인 이붕언 님이 ‘일본에서 일하고 살아온 한겨레’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은 자취를 갈무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일본에서 일하며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붙잡히거나 끌려가야 한 분이 있고, 이 나라에서는 입에 풀바를 길이 없어 떠나야 한 분이 있고, 시달리고 들볶이는 살림이 벅차 건너간 분이 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다면 누구나 곱게 품습니다. 나라가 사랑스럽다면 누구나 반가이 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지 않기에 한켠에서 울며 괴로운 사람이 있고, 나라가 사랑스럽지 않아 한쪽에서 멍들며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총칼을 벼린다고 할 적에는, 이 총칼로 으레 옆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총칼이란 옆사람을 이웃 아닌 밉놈으로 삼아 짓밟고 죽이려고 하는 싸움연모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총칼로만 이웃을 짓누르거나 죽이지 않아요. ‘개밥도토리’란 말이 있듯 우리 겨레도 스스로 옆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따순 마음이 아닌, 높낮이(신분·계급·돈·이름·힘)로 가르는 틀을 두었으니, 때리는 쪽하고 맞는 쪽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있대서 이웃이 되지 않습니다. 담 하나를 마주하는 사이라서 이웃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나라하고 더없이 가까운 사이가 될 만하기에, 우리한테 넉넉한 살림을 나누어 주고, 우리한테 없는 살림을 나누어 받으면 서로 좋겠지요. 나라지기라면 나라하고 나라가 사이좋도록, 고을지기라면 고을하고 고을이 사이좋도록, 마을지기라면 집집이 사이좋도록, 슬기롭게 이끌 노릇입니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이웃나라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살림을 짓고 살아가기에 ‘재일조선인’이라면, 이 나라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재한조선인’일까요?


  서로 아끼는 가까운 사이는 ‘동무’입니다. 동글동글 어우러지고, 동글동글한 마음이에요. ‘동포(同胞)’란 한자말은 “1.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2.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만, 글쎄요, 참말로 따스하게 한겨레를 일컬으려고 이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은 터럭만큼도 안 듭니다. ‘우리하고 다르잖아?’ 하는 뜻으로 금을 그으려고 이 이름을 쓴다고 느껴요. ‘한배를 타는’ 사이라면, 한살림을 꾸리는 동무가 되자면, 한사랑으로 나아갈 이웃으로 살자면, 가장 수수한 이름인 ‘이웃·동무·마을’으로 돌아가서 바라보고 어깨를 겯어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눈물을 닦고 웃음으로 가길 바라요.


ㅅㄴㄹ


“먼 길 오셨네.” “네, 조금요. 이런저런 옛날이야기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할 수야 있지만 한량이 없어서…….” 말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 그 순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1쪽)


“일본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그야 탄광이지. 그때가 열예닐곱 살이었으니 아직 어린애잖소. 느닷없이 데려와서는 처박은 거지. 탄광이란 게 어지간해서는 못 배기는 곳이오. 돌덩어리가 머리 위에서 데굴데굴 떨어지는 곳이니까.” 드디어 그는 탄광에서 도망쳤다. (42쪽)


“한국에는 가 보고도 싶다오 태어난 곳은 역시 그리운 법이거든. 그렇지만 생활하기는 어려워. 27년 만에 고향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수. 저기에 내가 자란 마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멀리서 바라보며 울기만 했지.” (49쪽)


일본이 전쟁에서 지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전부 팔아치우고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147쪽)


조선에 가면 목숨은 건진다.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년 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밀항선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에서는 살 수 없어. 돌아가지 마!” 밀항으로 돌아온 조선인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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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박지웅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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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61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박지웅

 마음의숲

 2020.11.9.



  《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박지웅, 마음의숲, 2020)를 읽었습니다. 글님이 짐차를 처음 몰다가 그만 꽈당 부딪힌 이야기를 거듭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씽씽이를 몰지 않지만, 몇 판쯤 씽씽이한테 치였습니다. 저를 치고 간 씽씽이는 모두 뺑소니였고, 모두 서울에서 겪었습니다. 새벽에 자전거를 몰며 새뜸을 다 돌리고서 이제 쉬러 돌아가는 길에 뒤에서 들이받힌 적이 있고, 헌책집에 책을 사러 자전거를 몰고 가는 길에 또 뒤에서 들이받힌 적이 있습니다.


  한자말로는 ‘자동차’라 하지만, 찻길에서 으레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리니 ‘씽씽이’일 텐데, 그야말로 씽씽 물결치는 이 쇳덩이는 어쩐지 자전거를 대단히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자전거를 좋아하거나 아끼는 쇳덩이도 더러 있습니다만, 갑자기 뒤에서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며 거님길 턱에 걸리도록 한다든지, 사납게 빵빵거리거나 앞등을 켰다 끄며 괴롭히는 이들이 수두룩했어요. 이들은 짐자전거 아닌 ‘천만 원이나 일억 원짜리 자전거’한테도 이런 짓을 했을까요?


  글님은 글을 씁니다. 글님이니 글을 쓸 텐데, 글님이 쓰는 글은 가늘게 퍼지는 노래입니다. 살아온 길 그대로 쓰고, 살아가려는 길 그대로 씁니다. 사랑하는 삶 그대로 쓰고, 사랑하려는 삶 그대로 쓰지요.


  겨울이 저물려는 1월 끝자락은 매우 포근하다가도 바람이 칼처럼 하늘을 찢으려 합니다. 볕이 잘 드는 풀밭에는 몽실몽실 봄까지꽃이 무리를 이루어 보랏빛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높바람이 문득 속삭입니다. 아직 겨울이라고, 이제 높바람이 떠나고 마파람이 흐르겠지만, 이 높바람이 할 일이 남았기에 쌩쌩 구름을 날리고 앙상한 가지를 흔든다고, 춥다고 웅크리면 언제나 추위에 떨 테니 어깨를 펴고 높바람을 듬뿍 가슴에 안으라고 …… 합니다.


  바람은 노래합니다. 우리는 춤을 춥니다. 바람이 춤춥니다. 우리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렇게 이슥하여 별빛이 너울너울합니다.


ㅅㄴㄹ


누가 붙잡아둔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스물다섯 사람은 모두 자기가 선택한 시간과 공간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과 한 화요일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38쪽)


그렇게 서울을 떠난 지 21일째, 고향 부산에 도착했다. 샌들을 신고 대나무 작대기를 짚으며 들어간 고향 집. 어머니는 새까맣게 탄 아들을 보고 “아이고” 소리만 내셨다. 그리고 아들이 짚고 온 대나무 작대기를 몇 년 동안 집에 보관하셨다. (77쪽)


사랑의 유통기한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습니다. 거대 운석과 충돌하는 순간이 아니라,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인류를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120쪽)


동래 옛집을 떠나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은 나에게 있어 문명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이 거대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생태적 삶이라고는 흙 한 줌뿐이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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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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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58


《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요시카와 나기 옮김

 비채

 2015.4.24.



  《사과에 대한 고집》(다니카와 슌타로/요시카와 나기 옮김, 비채, 2015)은 어떤 글을 묶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글님은 스스로 노래님이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묶은 글은 노래일 테지요. 노래꽃 한 자락을 쓰며 글삯을 얼마를 받든, ‘직업사전’이란 책에 ‘노래님(시인)’이란 일이 실리든 안 실리든, 스스로 노래님입니다.


  저는 우리말꽃을 짓는 사람이니 ‘우리말꽃지기(사전편찬자)’일 텐데, ‘직업사전’이란 책에 ‘사전편찬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을까요? 아마 없지 않을까요? 날개를 타고 나라밖으로 나가야 할 때면 으레 ‘일(직업)’도 적어야 하는데요, 저는 ‘Korean-Dictionary writer’나 ‘Korean-Dictionary editor’로 적습니다. “하는 일”이란 바깥으로는 낱말책 쓰기요, 집에서는 집안일입니다. 그래서 곧잘 ‘살림지기’나 ‘살림꾼’으로 적기도 합니다.


  이렇게 적으면 으레 눈살을 찌푸려요. 틀에 안 맞는다고 하면서요. 그러나 일을 어떻게 틀에 맞추나요? 일이 ‘회사원·공무원·노동자·교사’만 있나요? 은행이란 곳에서 일을 볼 적에도 “하는 일”을 적어야 할 때가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흙지기(농부)’는 안 보입니다. 우리 터전은 삶을 두루 품거나 고루 아우르는 길하고 자꾸만 멀어지지 싶어요. 틀에 맞추거나 가두거나 옭매어서 생각까지 틀박이로 얽어 놓는다고 느낍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총칼로 짓밟던 무렵에 ‘한글’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총칼에 맞선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이 나라 임금틀에도 맞섰습니다. 총칼나라가 물러난 뒤에도 매한가지예요. 사람들을 굴레에 가두려는 나라지기나 벼슬아치하고 맞서는 ‘말길’입니다. 배움터에서 달달 외우도록 가두는 그 배움수렁판에서 쓰는 말이 재미나나요? 배움터에서는 글(시·소설·수필)을 글맛이 나게 가르치나요?


  다시 《사과에 대한 고집》으로 돌아와 보면, 아니 내내 이 책을 놓고 빗대어 말했습니다만, 글님은 스스로 재미나고 즐겁게 글빛을 지으려고 했구나 싶은데, 자꾸자꾸 ‘안타깝고 안쓰러운 일본 터전에 시나브로 젖어든’ 빛이 제법 드러납니다. 밥을 먹고서 보임틀에 푹 빠져도 나쁘지 않지만, 밥을 먹고서 맨발로 풀밭을 거닐면 이녁 글빛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둘레에 나는 풀을 그때그때 조금 훑어서 밥으로 삼고 해바라기를 하면 이녁 글결이 새로우리라 생각합니다.


  능금은 능금이지요. 배는 배예요. 딸기는 딸기입니다. 언제나 그뿐입니다. 글은 글이요, 사람은 사람이고, 사랑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사랑’ 아닌 다른 낱말로는 나타낼 길이 없습니다. 하늘은 ‘하늘’일 뿐이기에, 창공이나 창천이나 상공 같은 낱말로는 도무지 못 그려요.


ㅅㄴㄹ


빨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색이 아니라 사과다. 동그라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양이 아니라 사과다. 신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맛이 아니라 사과다. 비싼 가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값이 아니라 사과다.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가 아니라 사과다. (34쪽)


고구마 먹고 푸 / 밥 먹고 포 / 안 그런 척 헤 / 미안해요 파 // 목욕하며 뽀 / 남 몰래 스 / 당황해서 뿌 / 둘이 같이 뽕 (39쪽)


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 /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준다 / 책은 책으로 있다는 게 / 조금 기뻤다 (69쪽)


저녁은 밖에서 먹을 때도 많다. 이제는 조식粗食이 체질에 맞아서 집에 있을 때는 채소를 쪄서 현미밥과 함께 먹는다. 식후는 당연히 텔레비전을 보게 된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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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의 구두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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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56


《유르스나르의 구두》

 스가 아쓰코

 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20.12.10.



  《유르스나르의 구두》(스가 아쓰코/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20)를 서울마실길에 장만했고, 서울에서 볼일을 보러 움직이는 동안 읽었습니다. 이 책을 펴낸 ‘한뼘책방’은 서울 가좌마을 한켠에 2016년부터 조그맣게 책집을 열었고, 2020년 12월 22일에 닫았습니다. 나라에서는 돌아다니지 말라 합니다만, 볼일을 봐야 하는 사람은 돌아다닐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입가리개를 하더라도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하지요. 아무리 하늘이며 들이며 바다가 망가져도 우리는 흙을 일구어 밥을 먹어야 하지요. 마냥 묶어둔대서 풀 길이란 없습니다. 전화로 시키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나름일꾼을 생각한다면, 또 우체국 일꾼을 헤아린다면, 또 숱한 우리 삶자락 뭇일꾼을 돌아본다면 ‘모두 집에만 머물며 꼼짝을 안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서울마실을 않고서 고흥이랑 서울 사이에서 글월만 주고받으며 일을 풀려 했으나 두 달 가까이 도무지 안 되더군요.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서울마실을 했지요. 서울길은 서울답게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버스랑 전철은 사람이 물결칩니다. 밥집이나 찻집에 못 앉게 한대서, 작은모임조차 못하게 막는대서, 도서관이며 학교이며 이런저런 곳을 닫는대서, 이 돌림앓이판이 걷힐 턱이 없지 싶어요.


  서울사람은 어떻게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할까요? 먹을거리를 다루는 저잣거리는 어떡해야 할까요? 서울사람 누구나 손수 논밭을 일구고 과일밭을 돌본다면 걱정없겠지요. 그러나 서른이며 쉰 겹을 오르내리는 그 잿빛집(아파트)에서 어떻게 논밭이나 과일밭을 가꿀까요?


  이웃나라 글님은 ‘유르스나르’란 사람이 걸어간 길을 톺아보면서 삶과 생각과 하루를 되새깁니다. ‘유르스나르’란 사람이 남긴 글을 읽으며 글님하고 오래도록 삶을 나눈 오랜 동무를 떠올립니다. 글님 동무는 ‘스스로 읽고픈 책’을 거리끼지 않고 읽었다지요.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며 어떤 이웃을 마주하고 어떤 글·책을 읽을 적에 스스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울까요?


  전남 고흥군은 온나라에서 가장 말썽이 많고 안 깨끗한 고장, 이른바 ‘공직자 부정부패가 으뜸인 곳’으로 꽤 오래 손꼽힙니다. 이곳만 그처럼 썩은 벼슬판으로 손꼽히지 않습니다. 서울하고 먼 참으로 많은 시골 벼슬아치가 뒷짓을 숱하게 일삼습니다. 이 뒷짓은 누가 어떻게 언제 다스릴 만할까요? 나라지기는 무엇부터 바라보면서 무엇을 먼저 제대로 해야 할까요?


  《유르스나르의 구두》를 읽으며 ‘유르스나르’도 궁금하지만, 글님하고 오래 마음을 나눈 동무가 훨씬 궁금합니다. ‘어른이나 남들 눈치를 안 보고, 오직 스스로 나아갈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삶길’ 하나를 바라보며 걸어간 글님 동무가 바로 글님한테 ‘글씨앗’을 남겼을 테지요.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한 삶이 흐르고, 언제나 이 수수한 삶이 가장 빛나는 글감이요 노래가 되지 싶습니다. 다시 촛불이 물결치는 때를 그리는 해밑입니다.


ㅅㄴㄹ


내가 플랑드르(플랜더스)라는 지방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마 많은 일본 어린이들이 그러듯이 나막신을 신은 소년 네로와 개와 할아버지의 이야기 《플랜더스의 개》를 읽었기 때문이다. 루벤스라는 화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 이야기에서였다. (38쪽)


요짱은 머릿속에 마법의 거미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녀밖에 생각할 수 없는 디자인의 장갑을, 동그스름한 손끝에 털실을 걸고 재빨리 짜나갔다. (56쪽)


안개가 짙은 날,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신호등 때문에 쉬이 나아가지 못하는 자어리 열차처럼 불안하게 나아가는 것 외에 글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유르스나르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왠지 깊은 위로를 받는다. (147쪽)


그때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누가 가장 시몽과 비슷했을까. 그런 생각이 글을 쓰는 손을 멈추게 한다. 자투리를 이어서 붙인 작은 깃발처럼 나는 친구들 중에서 시몽을 찾는다. (230쪽)


#ユルスナ-ルの靴 #須賀敦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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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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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55


《시 읽는 엄마》

 신현림

 놀

 2018.5.15.



  《시 읽는 엄마》(신현림, 놀, 2018)를 읽으면서 “나는 시 읽는 아빠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아니야. 나는 아이들하고 하루를 노래하다 보니 어느새 시를 쓰고 읽는 아버지란 자리에서 살지.” 하고 느낍니다. 새벽 두 시 반 무렵, 두 아이가 잠결에 까르르 웃으면서 좋아합니다. 두 아이 잠꼬대를 문득 들으면서 “오늘은 즐겁게 꿈꾸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곧이어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릅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서 두 아이 사이에 앉고, 두 아이 머리하고 등허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달랩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저도 어릴 적에 꿈에서 무서운 일을 곧잘 겪었을 텐데, 그때에는 누구한테도 이런 얘기를 털어놓거나 풀어놓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제가 나중에 어른이 되거나 어버이란 자리에 서면 “난 꿈에서 헤매는 아이들 곁에서 다독여 줄래.”


  어른이란 몸이라지만, 모든 어른은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란 나날을 지났습니다. 아이란 몸이어도, 모든 아이는 차근차근 자라서 의젓하고 듬직한 어른이란 나날을 살아갑니다.


  아이는 무엇을 배우면 즐거울까요? 아이는 무엇을 물려받으면 아름다울까요? 아이는 무엇을 보면 사랑스러울까요? 어른이나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이 세 가지를 늘 생각해야지 싶어요. 대학입시 아닌 배움길을, 재산 아닌 살림꽃을, 짝짓기 아닌 참사랑을 함께하면서 가꿀 노릇이지 싶습니다.


  가만 보면 《시 읽는 엄마》에 ‘시 이야기’는 얼마 없습니다. 글님이 읽은 시를 놓고서 이녁 딸아이하고 얼크러진 삶을 풀어놓기 때문에 ‘시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 모든 삶은 언제나 노래(시)이고, 어떤 노래(시)이든 이녁 삶을 담아내니까, 굳이 ‘시 읽는 엄마’가 아니어도 ‘삶 읽는 길’이 됩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아쉽다면, 글님이 딸아이한테 어떤 삶을 보여주면서 물려주고 싶은가 하는 꿈이 잘 안 보입니다. 돈을 벌어서 집안을 꾸리기가 벅차니까 딸아이가 돈을 잘 벌어서 넉넉하면 좋겠다는 마음일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이런 줄거리가 잇달아서 적잖이 뻑적지근합니다.


  저도 우리 집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아버지, 내가 아버지한테 돈 줄게요.” 하면서 1000원이건 10000원이건 건네주는 일을 겪습니다. 빠듯한 집살림에도 아이들 주전부리나 놀잇감을 따박따박 장만하니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 테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버이가 마음에 담은 뜻’을 읽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한테 “응, 고맙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너희가 아버지한테 돈보다 너희가 노래하는 하루를 즐겁게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어. 한 줄로도 좋으니, 너희가 신나게 논 이야기를 너희 손으로 종이에 천천히 적어서 주면 좋아.” 하고 말합니다.


  신현림 님, 걱정은 걱정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답니다. 아마 돈은 돈을 낳겠지요. 그러니, 늘 노래를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노래가 노래를 낳는 이야기를 엮으면 훨씬 좋겠습니다.


ㅅㄴㄹ


대수롭지 않은 그 말에도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다. 배 속의 아기가 전해오는 달콤한 향기가 내 몸과 영혼에 퍼짐을 느꼈다. (21쪽)


저녁때가 되면 애처롭게 우는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려 괴로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악착같이 일을 해야 어느 정도 먹고살 형편이 되는데, 나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46쪽)


멋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딸에게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단골 고깃집에 가서 가브리살 3인분을 시켰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와 매캐한 연기 속에서 딸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딸이 친구들에게 질투와 시샘을 받고 이간질당한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48쪽)


순간 울컥해졌다. 이번 설에 딸은 친척들에게 받은 세뱃돈을 자기 지갑 속에 꼭꼭 챙겨 넣었더랬다. 그 돈으로 자기 옷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엄마에게 준다니. 혼자 아이를 키우며 최고로 감동한 순간이었다. 그때 딸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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