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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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8.15.

인문책시렁 204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어슐러 K.르 귄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21.1.29.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어슐러 K.르 귄/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21)를 열네 살 푸른씨한테 건네었으나 몇 쪽을 읽다가 접습니다. “이분이 쓴 《어스시의 마법사》하고 너무 다른데요?” 하면서 못 읽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다르니?” “음, 잘 모르겠어요.” “글이 어렵니?” “글도 그렇지만, 뭔가 너무 달라요.”


  이 땅에서 살아온 어린이 삶자취를 돌아보면서 수수하게 빛나는 꽃글(동화)을 남긴 여러 어른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쓴 꽃글(동화)하고 살핌글(평론)은 확 달라요. 꽃글은 어린이 눈높이하고 나란히 서서 썼다면, 살핌글은 순 일본 한자말이 가득한 딱딱한 틀로 썼더군요. 어느 모로 보면 어슐러 르 귄 님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꽃글하고 여느 살핌글은 다른 낱말로 썼을는지 모릅니다. 또는 이녁 책을 우리말로 옮긴 분이 우리말을 거의 안 헤아리면서 일본 한자말을 잔뜩 집어넣었다고도 할 만합니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죽 읽다가 ‘다른 책에 붙인 토막글’은 어쩐지 우리 터전하고 영 안 맞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녁 글을 한 자락으로 죽 모으는 뜻도 있겠지만, 확 덜어내고 단출히 엮으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도톰하게 이녁 글을 많이 싣기보다는, 몇 자락을 싣더라도 우리말스럽게 글을 찬찬히 손질하고 가다듬을 노릇일 텐데 싶기도 해요.


  “words are my matters”가 어떻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로 바뀌는가 아리송한데, 낱말 하나마다 우리가 지은 삶과 살림과 사랑이 깃들기에 “낱말이 대수롭다”고 할 만하겠지요. 둘레(사회)에서 쓰는 대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서 아무 낱말이나 그냥그냥 데려와서 쓴다면, 우리 생각이 없이 둘레(사회) 흐름에 마음을 내맡기는 쳇바퀴이기 마련입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한 사투리라 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해서 짓고 엮은 낱말로 이야기를 펼 적에는, 언제나 ‘대수롭게(대단하게)’ 빛나는 길을 스스로 여는 하루가 된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상상력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에요. 이윤 추구의 어휘들에 상상력이 낄 자리는 없습니다. (22쪽)


장르 중독자들은 책이 패스트푸드처럼 쉽기를 원해요. 자기들이 읽고 싶어하는 게 뭔지 알고 싸구려 처방을 제공해 주는 거대한 온라인 상업 소설 판매자에게 가거나, 도서관 서가에서 손을 쭉 내밀어 공짜 약을 받고 싶어하지요. (37쪽)


모글리는 모든 동물의 언어로 “우리는 한 핏줄이다. 너와 나는!”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진정 힌디어로도 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힌디어가 모글리의 어머니가 쓰던 말이고, 어머니의 핏줄이죠. 모글리가 누굴 배신해야 할까요? (62쪽)


전 이야기와 시를 써요. 그게 다예요. 그 이야기나 시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메시지”는 제게 그 글이 갖는 의미와는 전혀 다를 수 있어요. (93쪽)


인간 역사의 대부분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글을 아예 읽지 못했다. 읽고 쓰는 능력은 힘없는 자와 힘있는 자의 정체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힘이었다. (124쪽)


경영자들의 사랑을 받는 그런 부서들에서는 “좋은 책”이란 수익이 높은 책이고 “좋은 작가”란 다음 책이 지난번보다 더 잘 팔릴 거라 보장할 수 있는 작가다.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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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아침의 책들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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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1.8.10.

인문책시렁 181


《먼 아침의 책들》

 스가 아쓰코

 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9.4.15.



  《먼 아침의 책들》(스가 아쓰코/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9)은 수수하게 보낸 오늘을 찬찬히 적바림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 하나를 둘러싼 어린 날을, 글 한 줄을 되새기는 나이든 날을 조곤조곤 읊습니다. 글님은 꾸미거나 덧붙이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누리는 오늘을 그저 글이라는 빛살에 얹습니다.


  한자말로는 ‘수필·산문’이라 하지만, 우리말로는 ‘글’입니다. 따로 이름을 붙인다면 ‘삶글’이나 ‘오늘글’쯤 됩니다. 삶을 쓰기에 삶글이요, 오늘을 쓰기에 오늘글이에요.


  곰곰이 보면 두 갈래 글쓰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을 쳐다보는 ‘남글’입니다. 남한테 잘 보이려고 쓰는 남글이고, 남 눈치를 보는 남글입니다. 남이 일러 주는 대로 손질하거나 가다듬는 남글이지요. 이와 달리 우리 스스로 바라보는 ‘나글’이 있어요. 마음을 읽고 느껴서 옮기는 나글입니다. 스스로 짓고 누린 하루를 담는 나글이에요.


  둘레를 보면 숱한 글자락이 ‘나글’보다는 ‘남글’입니다. 보여주려고 쓰는 나글이 넘실거립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쓰는 나글은 어쩐지 파묻힙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이자 하루이니 남을 볼 일이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즐겁게 살 적에 아름다우니 나를 보면 됩니다.


  먼 아침에 책이 있고, 가까운 밤에 글이 있습니다. 새로운 새벽에 노래가 있고, 싱그러운 낮에 바람이 흘러요. 부엌일을 하다가, 빨래를 마당에 널다가, 이불을 햇볕에 말리고 털다가, 저녁을 어림하다가 구름밭이 언제쯤 비구름으로 바뀌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하룻밤에 읽어버리면 다음 책이 읽고 싶어진다. 시무룩한 얼굴로 다 읽었어, 하고 말하면 어머니는 나의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무서운 얼굴을 했다. (35쪽)


학교에서 독본을 읽게 하는 것은 지루하고 싫었지만 침대에서 여동생에게 읽어 주는 것은 재미있었다. 정말 싫을 때 여동생은 두 귀에 손가락을 넣어 막고 깃털베개 밑으로 머리를 파묻으며 듣지 않으려고 했다. (52쪽)


중학생이었다고는 해도 전쟁 중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군사정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 분해서 나는 생텍쥐페리 같은 삶을 동경했는데, (151쪽)


아홉 살에 도쿄로 이사를 갔을 때 무엇보다 나를 낙담케 한 것 중 하나는 이렇게 자연에 둘러싸여 혼자 지내는 시간을 잃어버린 일이었다. (192쪽)


#遠い朝の本たち #須賀敦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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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 안전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강상구 지음 / 알마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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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책읽기 2021.7.20.

인문책시렁 195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강상구

 알마

 2015.10.10.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강상구, 알마, 2015)를 읽는 내내 ‘안전’하고 ‘살아남기’란 두 낱말이 걸립니다. 이 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길을 ‘안전·살아남기’라는 눈으로 보면서 줄거리를 풀어냅니다. ‘안전·안전하지 않은’으로 하나를 가르고 ‘살아남기·살아남지 못하고 죽기’로 둘을 갈라요.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은 늘 ‘안전’을 외쳤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안전 제일”이란 말을 내붙이는 곳이 많았고, 다치거나 떨어지거나 아프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들 말해요. 푸른배움터에서는 “안전 지원”을 하라고들 말하지요. 안 떨어질 만한 곳에 넣으라고 합니다. 푸름이 스스로 꿈꾸는 길로 가도록 북돋우거나 이끌지 않아요. 그저 ‘안전’입니다.


  흔히들 ‘안전 = 걱정할 일이 없음’으로 바라보지만, 여태 이 나라에서 살아오며 느끼기로 ‘안전 = 생각하지 않겠음’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말 ‘생각 = 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안전 = 생각하지 않는 길 = 새길이 아닌 낡은길에 맞추어 스스로 꿈을 버리고 사랑을 잊기’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참말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고픈 일을 하다가 안 되면(실패) 어떡하지요? 다시 하면 되지요. 새로 하고 거듭 하면 돼요. 숱하게 하다가 안 되어 그만둘 수 있습니다만, 꿈길이기에 즐겁게 새로 부딪히고 또 부딪힙니다.


  이 나라에서 말하는 ‘안전’은 언제나 “생각을 스스로 안 하는 채, 남(권력자)이 말하는 대로 따르면서 먹이를 받아먹는 짐들뜰(동물원) 굴레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른바 “안 다치려면(안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야지요. 어떻게 나아가거나 할 적에 스스로 바라는 대로 이룰는지를 차근차근 짚기에 “안 다치면서 뜻을 이루는 길”을 엽니다. “안 다치기”만 바랄 적에는 외려 “안 다치기(안전)”하고 멀어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남(권력자)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종살이(로봇)”로 치닫습니다. 그러니까 ‘안전’을 말하는 모든 목소리는 우리 스스로 굴레살이로 갇히도록 이끄는 눈속임이자 눈가림입니다.


  우리는 “안 다칠 길”이 아닌,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노래하고 즐기는 길을 갈 노릇입니다. 라면을 먹으니 죽을까요? 아니에요. “라면 = 나쁜밥”이란 생각을 머리에 집어넣기에 몸이 다칩니다. 우리 몸에 이바지하는 밥은 ‘빗물·샘물·바닷물’이 첫째요, 빗물·샘물·바닷물을 머금는 바람이 둘째이며, 빗물·샘물·바닷물하고 하나되어 노는 몸짓이 셋째이고, 빗물·샘물·바닷물로 자란 숨결이 막째입니다. 사랑으로 차려 즐겁게 나누는 라면 한 그릇은 사람을 살리지만, 아무 사랑이 없이 영양소만 따진 모든 밥은 우리를 굴레에 가둡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씨앗을 심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말도 글도 펴지 말아야지요.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놀이하는 웃음빛으로 ‘살면’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가 나쁜 책은 아니지 싶으나, 오직 머리로 쓴 책이고, 손발로는 쓰지 않은, 더구나 사랑이나 생각이나 마음이 없이 ‘이론에 갇힌 이론에 고여’ 쓴 책이로구나 싶어 안쓰럽습니다.


ㅅㄴㄹ


그러니까 결국 제가 병든 닭과 돼지, 아픈 소를 먹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것도 항생제와 호르몬제와 찌든 고기들을요. 이제 제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34쪽)


지금 제도가 그래요. 그리고 어묵 같은 경우에는 워낙 이런저런 물고기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원산지 표시가 의미가 없어요. (73쪽)


맞아요. 똑같은 과자를 먹어도 어떤 아이는 아토피가 심해지고 어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104쪽)


아이요? 오늘 아침에는 어젯밤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좀 치우라고 했더니 대충 구석에 밀어놓더라고요. “짜증나”가 입에 붙었어요. 학교 가는 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내내 툴툴거리더라고요. (162쪽)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겠네요. 명절날 하루 종일 수십 명분 식사를 준비하고 나면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거든요. (255쪽)


#비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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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걷다 - 인문학자 김경집이 건네는 18가지 삶의 문답
김경집 지음 / 휴(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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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7.20.

인문책시렁 194


《생각을 걷다》

 김경집

 휴

 2017.10.30.



  《생각을 걷다》(김경집, 휴, 2017)를 읽으며 글님이 스스로 무엇을 바꾸고 싶어하는가를 밝히는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속내를 다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글님 스스로 너무 바쁘게 삽니다. 돈을 버는 일을 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이야기(강의)와 글(집필)’을 왜 해야 할까요? 이웃한테 들려줄 이야기나 글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눈빛으로 길어올려 스스로 살아내는 몸짓으로 펼 적에 스스로 즐거울까요?


  책을 읽는 사람은 책에서 얻은 이야기하고 글을 폅니다. 바람을 읽는 사람은 바람하고 나눈 생각하고 숨결을 폅니다. 흙을 읽는 사람은 흙하고 주고받은 하루를 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은 아이가 가르치고 들려주고 보여주고 노래하고 나누는 사랑을 폅니다. 《생각을 걷다》를 내놓은 글님은 하나부터 열까지 책을 읽고서 얻은 이야기를 다시 글로 엮는구나 싶습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을 읽어서 얻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아름책이나 사랑책이 아닌 인문책만 읽고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언제나 ‘이론에 갇힌 이론으로 그치기’ 마련입니다.


  등짐을 짊어지고 두 다리로 걸어서 저잣마실을 하면 좋겠어요. 아이들 밥자리를 차리면 좋겠어요. 손으로 빨래하고 걸레질을 하면 좋겠어요.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아닌 자전거로 다니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구름하고 비하고 바다하고 풀꽃나무가 들려주는 “종이에 글로 안 적힌 숱한 이야기”를 듣고서 글을 쓰면 좋겠어요.


ㅅㄴㄹ


여행이란 건 어쩌면 목적지가 정해졌다는 점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의 대표적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여행은 단지 공간이라는 포괄적 대상만 정해졌을 뿐이고, 그 공간조차 못으로 박은 듯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더 설레고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23쪽)


적성에 맞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능력에 맞는 직업을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적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공부만 했다. (43쪽)


수십 년 살아오면서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재고 따지고 짐작하고 판단하며 속으로는 우월과 열등의 가늠자로 재단했다. 늘 목적이 개입했다. (77쪽)


거대한 불의와 폭력 앞에서 혼자 싸우는 것은 어렵다. 두렵다. 그 비겁이 사회를 타락시키는 데 한몫을 했고 우리의 비겁이 악의 세력에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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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 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
채효정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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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7.18.

인문책시렁 201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채효정

 교육공동체 벗

 2017.6.27.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채효정, 교육공동체 벗, 2017)는 책이름에 맺음말이 드러납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라고 하는 곳은 오늘날 같은 길이어서는 이 배움터가 무너지고 이 나라도 무너질 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어른 모두 나란히 무너지는 낭떠러지로 치달을 뿐이라서 밝혀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돼요. 누구나 어느 배움터이든 들어갈 수 있으면 되고, 누구나 무엇이든 배울 수 있으면 돼요. 어느 곳에서도 마침종이(졸업장)나 솜씨종이(자격증)를 안 주면 됩니다.


  보기를 들어 볼게요. 흔히 열린배움터 문헌정보학과라는 데를 마쳐서 ‘사서 자격증’을 주는데, ‘사서 자격증’이 있어야 책숲(도서관)이라는 곳을 책숲답게 알뜰살뜰 가꾸면서 책빛을 밝히나요? 마을책집을 여는 일꾼은 열린배움터를 안 나오면 책집살림을 못 꾸리나요? 이른바 열린배움터 문예창작학과를 나와야 글꽃(문학)을 쓸 수 있나요?


  모든 이름(명예와 신분과 자격)은 허울입니다. 이제 열린배움터 얘기는 그만두기로 해요. 아이들을 이런 데에 보내지 말아요. 이런 데에서 일하는 어른인 우리는 모두 그만두고서 나오면 좋겠어요. 마침종이를 돈으로 주고받는 그런 데가 아니라, 우리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배우고 신나게 나누는 길을 가기로 해요. ‘요리 강의’를 들어야 밥을 짓는다면 얼마나 메마른가요? ‘목수 수업’을 받아야 집을 짓는다면 얼마나 벅찬가요?


  아이들은 어버이라는 품에서 자라기에 말을 익히고 삶을 바라보며 사랑을 깨닫습니다. 어버이는 “배우는 품”이요 “배우는 집”입니다. 어버이는 ‘학교’이지 않습니다. 마침종이·솜씨종이(졸업장·자격증)를 돈으로 주고받는 얼거리인 열린배움터(대학교)이기에 갖가지 말썽거리와 잘못이 불거지고 끊임없이 생겨요. 허울·겉모습이 아닌 손길·눈길로 마주하는 마을이 되고 집이 되고 살림이 된다면, 이때에는 어떤 말썽이나 잘못이 깃들지 않습니다. “교육 개혁·제도 개혁”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거의 밥그릇다툼(기득권 정쟁)에서 맴도는 그런 ‘껍데기 개혁’이 아닌, 삶자리(보금자리) 사랑길을 생각하고 나누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그렇지만 이 고등학교의 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이 있기는 있다. 그 건물은 있다. 무엇인가가 이 있는 것에 속해 있다면, 그것은 그것의 있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있는 것 안에서 찾지 못하는 것이다. (33쪽)


지금은 그 세력이 너무 위축되어서 학내에선 운동권 학생들이 거의 소수자가 되어 있는 상태예요. 그래서 되도록 옹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싶지만 반성할 건 반성해야죠. (98쪽)


아이디어 하나로 자동차 수백 대를 파는 것보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죠. 근데 이게 누구의 미래죠? (119쪽)


대학 교육에서 전공성의 약화는 심화된 지식의 전수라고 하는 고등교육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179쪽)


이 이사들은 과연 무슨 자격으로 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 몫을 가지고 있지요?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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