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과 전두환

 


  축구선수 기성용은 예전에 대통령 자리에 있던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알까.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 자리를 거머쥐다가 물러난 전두환은 축구선수로 뛰는 기성용이라는 사람을 알까. 두 사람은 서로를 알는지 모르고, 서로를 모를는지 모른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한 가지 모습이 꼭 닮았다. 이녁 스스로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퍼지는가를 모르고, 이녁 스스로 하는 일을 스스로 돌아볼 줄 모른다.

  전두환이라는 사람한테 물린 ‘죄값’이나 ‘추징금’은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에 따지지 않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한참 지나서야 겨우 따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두환이라는 사람한테 물리는 죄값이나 추징금은 아직 ‘시효가 끝나’지 않았다.


  기성용이라는 축구선수가 저지른 ‘잘못’이나 ‘바보스러운 몸가짐’은 이녁이 훨씬 젊거나 어릴 적에 저질렀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도 이러한 잘못과 바보스러운 몸가짐을 되풀이하니까 뭇화살을 맞는다.


  내가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봐주느니(용서하느니) 감싸느니 하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전두환이건 누구이건 ‘사람 탓’을 하지 말라는 옛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흐르도록 내몬 제도권 톱니바퀴 얼거리를 따질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두환이라고 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오늘까지도 예쁘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참답지 않다. 참 슬픈 노릇이다. 스스로 사람다움을 찾지 않으려는 모습은 얼마나 가녀리며 딱한가.


  내가 기성용이라는 사람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말할 까닭조차 없다. 그런데 참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 아름다운 스물너덧 풋풋한 나이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아갈 낌새가 안 보이니 안쓰럽고 안타깝다. 기성용은 하루빨리 아기를 낳아 아이가 자라 보아야 무언가 깨우칠까. 철없이 살아가면 기성용 스스로한테뿐 아니라, 옆지기와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모두한테까지 나쁘게 퍼지는 줄 조금도 못 깨달을까.


  글을 아무리 잘 써도 사람됨이 엉망이라면 기쁘지 않다. 그림이 아무리 훌륭해도 착한 넋이 없으면 반갑지 않다. 만화도 사진도 노래도 춤도 이와 같다. 손재주 발재주 몸재주 좋다 한들 무엇이 대수로울까. 아름다운 사랑이 없다면 빼어난 손재주나 발재주나 몸재주는 한낱 ‘다람쥐 쳇바퀴질’에서 그친다.


  기성용도 전두환도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들 공차기보다 동네 아이들 공차기가 훨씬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서로 다투고 혼자 공 차지하겠다며 동무한테 건네주지 않고 다툼질을 하면, 동네 아이들 공차기마저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기성용 선수여, 축구라는 운동경기를 이녁 혼자서 하는가? 전두환 할배여,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이녁 혼자서 맡아 나라를 돌보는가? 제발 제 넋 좀 찾기를 빈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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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책읽기

 


  아이들한테 아침밥 먹이고 나서 책을 한 권 펼친다. 아이들한테 아침밥 먹이기까지 오늘 아침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집안에 있는 ‘나무로 된’ 것들 평상으로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킨다. 베개와 이불도 마당에 내놓고, 어른 이불 한 채와 아이 이불 두 채를 빨래한다. 잠자는 방에 놓는 나무평상 세 벌도 마당에 내놓고 방바닥을 쓸고 닦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이란 느긋하게 한숨을 돌리면서 등허리 펴기.


  《얘들아, 학교 가자》(푸른숲,2006)라는 사진책을 펼친다. 책 끝부터 앞으로 넘기며 본다. 어제는 앞부터 끝으로 한 번 보았고, 오늘은 끝부터 앞으로 다시 읽는다. 호주와 캐나다와 프랑스 같은 나라에 있는 학교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큰 학교’나 ‘한국에서 널리 받아들이려 하는 앞선 유럽 학교’ 모습은 하나도 없다. 호주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문명과 문화가 앞선 나라에서 짓눌리거나 짓밟히거나 시달리는 작은 겨레’ 자그마한 학교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리카 카메룬에 있는 학교는 ‘피그미 겨레’ 이야기를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들이 피그미 겨레 아이들한테 ‘프랑스말로 프랑스 역사와 문화’를 가르친단다. 이러면서 피그미 겨레 아이들은 사냥도 풀뜯기도 집짓기도 어느 하나도 이녁 어버이한테서 안 배운다고 한다. 남녘땅 선교사들 아프리카에 가면 무엇을 가르치려 할까? 남녘땅 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그 나라 그 겨레 고유하며 오래된 문화와 삶과 말을 즐겁게 쓰도록 가르치는 일’을 할까? 유럽사람이 브라질에 들어와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기 앞서까지 자그마치 1200가지가 넘는 겨레말이 있었다 하는데, 이제는 100가지가 채 안 남았다고 한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도 제주말 전라말 경상말 울릉말 강원말 경기말 충청말 서울말 모두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식구는 전라남도에서도 가장 두멧자락인 고흥에서 살아가는데, 고흥에서 고흥말 듣기란 쉽지 않다. 할매도 할배도 텔레비전과 공무원 말씨에 길들어 ‘텔레비전 말마디’에다가 ‘공무원 말씨(농사지을 때에 쓰는 말)’를 읊기 일쑤이다.


  전라남도 해남이나 강진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해남말이나 강진말을 듣거나 배울 수 있을까. 서울 아이들은 참다운 서울말이나 서울살이를 학교에서 배울 수 있을까. 소련이 무너지며 저마다 독립나라 된 러시아연방 나라들은 이제서야 ‘겨레말’을 학교에서 가르친단다. 카자흐스탄이나 우스베키스탄이 저마다 다른 겨레말을 쓴 줄 한국사람은 알기나 했을까. 네팔과 부탄과 파키스탄과 버마와 스리랑카도 저마다 이녁 겨레말이 따로 있는 줄 아는 한국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표준말 쓴다는 우리들이지만, 정작 우리들은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모르는 채, 삶다운 삶도 잊은 채, 그저 멀거니 문명과 문화라는 굴레에 갇힌 쳇바퀴놀이 아닌지 궁금하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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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7-09 11:09   좋아요 0 | URL
'고유의 언어'가 사라지는 일만큼 무서운 일도 없으리라 생각해요.

2011년에 우즈베키스탄을 갔을 때 보고 들었던 일도 떠오르네요. 오랫동안 '러시아어'를 표준어로 쓰다가 최근에 다시 여러 학교에서 자기네 나라 고유의 언어를 다시 '표준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숲노래 2013-07-09 12:01   좋아요 0 | URL
우와.. 우즈베키스탄을 가 보셨군요 @.@
참 예쁜 나라였을 테지요?

한국사람은 이 나라를 그저 '축구 경쟁국'으로만 잘못 알지만,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빚는 아름다운 나라 아닌가 싶어요.

한국말도 그렇지만,
그 우즈베키스탄도 고장마다 고장말이 사뭇 다를 거예요.
 

'꽃밥 먹자'에서 '무놀이' 사진 올렸지만, '무놀이'라 하는 재미난 놀이를 하나 적바림해 놓으려고 사진 한 장 덜어, 이렇게 다른 글 하나를 남겨 본다.

 

..

 

무놀이 1

 


  놀이는 언제 떠오를까. 놀이는 왜 떠오를까. 놀이는 즐거운 마음일 때에 떠오를 테지. 놀이는 즐겁게 누리는 삶이기에 떠오르겠지. 큰아이가 밥상맡에서 무채로 얼굴그림 놀이를 한다면, 큰아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신나게 누린다는 뜻이라 할까. 어버이로서 할 일이라면, 아이들이 늘 즐거우며 홀가분하고 아름다운 마음 되도록 보살피고 돌보며 사랑하는 일이라 할까.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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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5. 2013.7.8.

 


  무와 오이와 곤약을 썰어 접시에 담은 다음 밥상에 올린다. 다른 것보다 이 접시를 먼저 올려서, 아이들이 배고프다 하면 스스로 집어먹도록 한다. 밥은 나중에, 국도 나중에, 천천히 준다. 무랑 오이랑 곤약을 한참 집어먹더니 큰아이가 문득 무놀이를 한다. 얼씨구, 먹는 것으로 노네? 마당에서 풀을 뜯어 밥상에 올릴 즈음 무놀이를 하던 무를 모두 접시로 옮긴다. 얘야, 그 무 누가 먹으라고 그렇게 섞어 놓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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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3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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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53

 


밥을 함께 먹는 웃음
― 은빛 숟가락 3
 오자와 마리 글·그림,노미영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3.6.21./5000원

 


  엊저녁에 이어 오늘 새벽 다섯 시부터 이웃마을에서 방송을 합니다. 시골에서는 마을방송을 새벽 네 시에 하기도 하지만, 이웃마을 이장님은 마을방송을 자그마치 삼십 분 동안 합니다. 마을에 알릴 얘기 있어 방송을 하기는 하지만, 너무 길게 늘어놓는 말씀은 적이 거슬립니다. 그런데 어제오늘 잇달아 하는 마을방송에서 ‘친환경농업 항공방제’를 말합니다. 며칠 뒤 군에서 ‘항공방제’를 한다면서, 멸구를 없애고 또 무엇을 없애는 항공방제라고 말씀합니다.


  아직 면사무소에서 항공방제를 한다는 면내방송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 항공방제가 마을사람 생각을 얼마나 귀기울여 들은 뒤 하는지 알 길이 없고, 또 항공방제를 할 적에 뿌리는 농약이 마을과 숲과 사람한테 어떻게 스며드는지 제대로 밝힌 적마저 없습니다만, 마을 어르신들 농약 뿌리기 번거로우니 헬리콥터로 죽 뿌려 주는 ‘선물’인 듯 여깁니다.


  지난달에 항공방제를 한다며 면내방송이 나올 적에, 면사무소에서는 다음 몇 가지를 밝혔습니다. 첫째, 항공방제를 하는 때에 ‘어르신들 바깥 활동 하지 마시’라 했습니다. 둘째, 항공방제를 하면 ‘장독대 뚜껑 모두 닫으’라 했습니다. 지난달이나 이달이나 항공방제로 뿌리는 농약을 놓고 ‘친환경’이라 말하는데, 이 농약을 맞으면 안 된다 하고, 이 농약이 장독에 들어가면 된장이고 고추장이고 모두 버려야 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면 궁금하지요. 이 ‘친환경 항공방제’로 뿌리는 농약이 텃밭에 떨어지면, 텃밭에서 돌보던 푸성귀는 ‘먹어도 될’까요? 헬리콥터는 하늘에서 죽 농약을 뿌리고 지나가는데, 이 농약이 빨랫줄이나 마당에 떨어지면, 빨래를 널어도 안 되고, 콩을 말리려고 마당에 펼쳐도 안 될까요? 항공방제 하는 날부터 여러 날 동안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아도 안 될까요?


- ‘뭐, 뭐지? 그냥 천사인가?’ (10∼11쪽)
- “어째서 동정해야 하는 건데? 변명만 늘어놓는 놈한테 누가 동정한다는 거야?” (25쪽)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먹을거리 이야기가 크게 떠오르면서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저농약’이니 ‘전환기’이니 하는 말이 떠돕니다. 유기농이란, 오롯이 똥오줌 거름으로 흙을 일굴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똥오줌 흙일이라 하더라도, 사람똥을 쓰는지 소돼지 똥오줌을 쓰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사람똥이라 하더라도 시골에서 풀밥 먹은 사람 똥오줌을 쓰는지, 도시에서 아무것이나 마구 먹던 사람들 똥오줌을 쓰는지에 따라 또 사뭇 달라요. 전환기란, 화학농에서 유기농으로 바꾸는 흙일을 가리킵니다. 저농약은 농약을 적게 쓰는 흙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친환경은? 친환경은 어떤 흙일인지 알 수 없어요. 똥오줌 거름을 쓴다는 뜻인지, 농약을 적게 쓴다는 뜻인지, 화학농에서 유기농으로 바꾸는 흐름이라는 뜻인지, 어느 한 가지로 또렷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고흥읍 하나로마트에 가 보면 ‘친환경’ 이름을 붙인 날푸성귀를 파는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로마트에 있는 일꾼한테 ‘친환경’이 무엇인가 하고 물은 적 있습니다. 아마, 이렇게 묻는 사람이 없은 듯한데, 하나로마트 일꾼은 ‘친환경’이 무엇인지 얘기해 주지 못합니다. 유기농이면 유기농, 저농약이면 저농약, 전환기이면 전환기, 이렇게 똑똑히 밝혀야지 두루뭉술하게 ‘친환경’이라 푯말 붙이면 거짓말 아니느냐 따져도 아뭇소리를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시골마을 고흥군 곳곳에 ‘친환경농업단지’라는 일곱 글자 푯말 큼지막하게 세우는 군청 행정입니다만, ‘친환경’이라는 이름은 말짱 거짓말이라는 소리입니다. 환경을 살리자는 ‘친환경’이라는데, 할매 할배도, 아이들도, 짐승들도, 풀벌레와 멧새도, 어느 누구도 맞으면 목숨이 다칠 수 있는 농약을 헬리콥터로 마구잡이처럼 뿌리려 하는 이런 농사법은 조금도 ‘친환경’일 수 없습니다. 그저 ‘화학농’일 뿐입니다. 환경을 살린다는 거짓스러운 허울로 사람을 속이는 이름이 바로 ‘친환경’입니다.


- “뭐 만들어, 오빠?” “응? 고기된장볶음.” “냄새가 좋구나.” “그치?” “내일 도시락으로 싸 가려고 먼저 대충 볶아 두는 거예요. 엄마도 가져가실래요?” “그래! 요즘 밥 먹으러 갈 시간 없는데 잘 됐네.” (27쪽)
- “가정의 맛이라고 자랑하는 거냐?” “아냐, 내가 만들었어. 요리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너도 혼자 살면 이런 걸 만들어 두면 편해. 넉넉하게 만들어서 저장해 두면 이런저런 요리에 응용할 수 있어서 경제적이야.” (32쪽)

 

 


  해마다 봄이면 어느 마을이든 마을 어귀에 비닐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쌓입니다. 이 비닐쓰레기는 군청에서 모두 거두어 줍니다. 그러나, 비닐쓰레기가 두어 달쯤 쌓인 채 있어야 비로소 거두지, 처음부터 거두지 않습니다. 봄부터 여름날 장마철까지 마을마다 비닐쓰레기가 마을 어귀를 어지럽히는 모습을 어디에서나 봅니다.


  마늘을 심건 고추를 심건 감자를 심건, 하나같이 비닐을 씁니다. 고흥에서 거두는 마늘에도 으레 ‘친환경 마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비닐을 흙바닥에 넓게 깔아서 짓는 마늘농사가 ‘친환경’이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비닐을 쓰는 농사는 ‘비닐농사’일 텐데요. 게다가 마늘밭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뿌리는데요.


  군내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고흥 곳곳을 다니고 보면, 비닐집을 어느 마을에서나 쉽게 찾아봅니다. 비닐집 세우고 ‘유기농’을 한다는 분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러한 농사짓기도 유기농은 유기농이 될 테지만, 그냥 유기농이라 하면 올바르지 않습니다. ‘비닐집 유기농’입니다. 또는 ‘비닐집 농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이 나라 모든 시골에서 하던 ‘옛날 유기농’이란, 비닐집에서 흙을 다루지 않았어요. 햇볕을 쬐고 빗물을 마시며 바람을 들이켜는 흙일이 될 때에 비로소 ‘유기농’이라 했습니다.


  더 생각을 기울이면, 지난날에는 사람똥으로 짓던 흙일을 ‘유기농’이라 하지 않고, ‘그냥 농사’라 했어요. 지난날에는 ‘농사’라 하면 마땅히 사람똥을 쓰고, 비닐을 안 썼어요.


- “노리카, 루미, 낫치. 다시 같이 먹어도 될까?” “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행이다.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나 했어.” “그런 말 할 리가 없잖아. 같이 토끼 먹이 당번도 했는데 말야.” (67쪽)
- “뭔가 방금 엄청 감동적인 영상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대지의 은혜’ 같은 느낌?” “전해져서 다행이야.” (82쪽)
- “참고로 묻겠는데, 넌, 저기 있는 한정된 도구와 재료만으로 늘 지금처럼 어떻게든 요리의 형태로 만들 수 있어?” “그럴 리가, 자신 없어. 요리하게 된 지 아직 1년밖에 안 됐는걸.” (95∼96쪽)

 

 


  함께 먹는 밥입니다. 서로 나누어 먹는 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밥만 함께 먹지 않습니다. 바람을 함께 마십니다. 마을 어느 집에서 비닐과 비료푸대와 플라스틱 따위를 아무렇게나 태우면, 이 냄새와 매연은 이웃집으로 스며들 뿐 아니라, 이런 비닐쓰레기 태우는 집안으로도 스며듭니다. 더욱이, 이런 비닐쓰레기 태우는 냄새와 매연은 논으로도 밭으로도 숲으로도 스며들어요. 비가 오면 땅속으로까지 스며듭니다.


  비닐농사를 지으며 나오는 비닐에다가, 화학비료 뿌리고 남은 비닐푸대를 어찌해야 할까요? 친환경 농사라 하면서 해마다 쏟아지는 이 비닐더미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군청에서는 비닐더미를 거두어서 어떻게 할까요? 도시사람은 시골에서 나오는 엄청난 비닐더미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도시사람들 먹이려고 이렇게 비닐더미 엄청나게 써대는데, 도시사람은 시골마을 비닐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할는지, 조금이나마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을에서 정갈하게 농사를 지으면, 바람이 맑고 물이 싱그럽습니다. 마을에서 비료와 농약을 끝없이 써대면, 지하수를 마실 수 없습니다.


  고흥뿐 아니라 이 나라 어느 시골이든 똑같아요. 시골 논길을 걸어 보셔요. 흙도랑은 거의 모두 사라졌습니다.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야 개똥벌레 겨우 만나지만, 가재잡이 할 만한 도랑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가재도 개똥벌레도 없는 논자락인데, 이런 논자락이 무슨 ‘친환경’이 되겠어요. 미꾸라지도 못 잡고 물방개나 게아재비도 못 사는 논자락에서 나는 쌀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시멘트로 바뀐 논도랑을 들여다보셔요. 맑은 물 흐르는 시멘트도랑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어느 논도랑이든 지저분한 물이 흐릅니다. 아래쪽 논자락으로 가면 갈수록 물이 더 지저분하고 냄새까지 코를 찌릅니다. 그러나, 모두들 이런 물을 논에 대어 벼를 키워요. 이러면서 이름표는 ‘친환경’입니다. 농약과 비료와 쓰레기로 잔뜩 더럽혀서 ‘도무지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없을 뿐 아니라 ‘발을 담글’ 수조차 없는 도랑물로 키우는 벼가 사람 몸에 어떻게 도움이 될는지 그야말로 알쏭달쏭합니다.


- “전갱이 회라. 우리 집 푸른 차조기잎이 나설 차례로군.” “푸른 차조기잎 키워?” “응, 그리고 바질도 키워. 작은 화분이지만 매일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쑥쑥 자라. 근데 요즘 푸른 차조기잎만 벌레가 먹네. 우리 집 벌레는 일식을 좋아하나 봐.” (123쪽)
-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이렇게 즐거운 건, 그 상대가 리츠이기 때문이다.’ (124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학산문화사,2013)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은빛 숟가락》 셋째 권을 보면, ‘없는 살림’으로도 밥 한 그릇 맛나게 차려서 함께 먹는 즐거움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있는 살림’이 되어야 밥을 맛나게 차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살림이 넉넉하거나 가난하거나 대수롭지 않구나 하고 일깨웁니다. 밥 한 그릇은 오직 사랑으로 차립니다. 식구들과 이웃들과 동무들을 아끼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차리는 밥 한 그릇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급 요리집에 가야 맛난 밥을 먹지 않아요.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얘기꽃 피우며 활짝 웃으며 수저를 들 때에 맛난 밥을 먹어요. 영양성분 척척 맞춘 급식밥을 먹어야 맛나지 않아요. 영양성분표를 모르는 채 꾸리더라도, 사랑과 웃음과 이야기를 담은 도시락 하나를 먹을 때에 맛나고 즐거워요.


- “형은 여자 때문에 고생한 적 없지?” “넌 고생하고 있어?” “고생이라고 해야 하나. 전혀 마음을 모르겠어.” “네 마음은?” “그건 물론 알고 있어.” “여친한테는 전했어?” “아마 전혀 그러지 못 했을걸. 말 붙여 볼 여지가 없다고나 할까? 그 전에 화내고 돌아가 버렸어.” “왜 화냈는지도 알아?” (153쪽)

 


  아이도 어른도 몸뿐 아니라 마음을 살찌우는 밥 한 그릇 먹을 때에 즐겁습니다. 혀를 간질이는 밥이 몸이나 마음에 좋지 않습니다. 돈을 비싸게 치르는 밥이 몸이나 마음을 살리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집 마당가에서 날마다 풀을 뜯습니다. 내가 심은 풀이 아니라, 풀 스스로 씩씩하게 늘 새로 돋는 풀입니다. 이월 끝무렵부터 십일월 첫무렵까지 들풀이 가장 맛나며 좋은 반찬이 됩니다.


  누구나 알 텐데, 냉이나 씀바귀나 미나리를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 주며 키워서 먹는 시골사람은 없습니다. 민들레나 도라지나 아욱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 쓰며 키워서 먹는 시골사람은 없습니다. 쑥도 갈퀴나물도 비름나물도 농약이건 비료이건 항생제이건 하나도 안 먹어도 아주 잘 큽니다. 갯기름나물이나 고들빼기나 소리쟁이도 농약이든 비료이든 항생제이든 조금조차 없어도 참으로 잘 자랍니다.


  상추나 시금치나 배추에 굳이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써야 하지 않아요. 더 헤아려 보면, 나물이 되는 들풀은 ‘똥오줌 거름’조차 먹지 않아요. 사람들이 맛나게 먹는 들나물이나 멧나물은 모두 햇볕과 빗물과 바람만 먹는데, 무럭무럭 자라서 가장 싱그럽고 맑은 기운을 사람들한테 나누어 줍니다.


  함께 먹는 밥이요, 같이 먹는 풀입니다. 돈이 되어야 하는 농사가 아니요, 수출을 해야 하는 농업이 아닙니다. 함께 먹으며 함께 즐거울 밥입니다. 같이 먹으며 같이 흙을 보살필 삶입니다. 항공방제부터 하루 빨리 그치기를 바랍니다. 허울좋은 ‘친환경’ 아닌 참다운 ‘유기농’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유기농이 아니라면 ‘저농약’이라는 이름으로 쓰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유기농도 ‘비닐농사’나 ‘비닐집농사’ 아닌, 해와 비와 바람을 맞아들이는 아름다운 손길로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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