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책읽기

 


  아이들한테 아침밥 먹이고 나서 책을 한 권 펼친다. 아이들한테 아침밥 먹이기까지 오늘 아침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집안에 있는 ‘나무로 된’ 것들 평상으로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킨다. 베개와 이불도 마당에 내놓고, 어른 이불 한 채와 아이 이불 두 채를 빨래한다. 잠자는 방에 놓는 나무평상 세 벌도 마당에 내놓고 방바닥을 쓸고 닦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이란 느긋하게 한숨을 돌리면서 등허리 펴기.


  《얘들아, 학교 가자》(푸른숲,2006)라는 사진책을 펼친다. 책 끝부터 앞으로 넘기며 본다. 어제는 앞부터 끝으로 한 번 보았고, 오늘은 끝부터 앞으로 다시 읽는다. 호주와 캐나다와 프랑스 같은 나라에 있는 학교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큰 학교’나 ‘한국에서 널리 받아들이려 하는 앞선 유럽 학교’ 모습은 하나도 없다. 호주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문명과 문화가 앞선 나라에서 짓눌리거나 짓밟히거나 시달리는 작은 겨레’ 자그마한 학교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리카 카메룬에 있는 학교는 ‘피그미 겨레’ 이야기를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들이 피그미 겨레 아이들한테 ‘프랑스말로 프랑스 역사와 문화’를 가르친단다. 이러면서 피그미 겨레 아이들은 사냥도 풀뜯기도 집짓기도 어느 하나도 이녁 어버이한테서 안 배운다고 한다. 남녘땅 선교사들 아프리카에 가면 무엇을 가르치려 할까? 남녘땅 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그 나라 그 겨레 고유하며 오래된 문화와 삶과 말을 즐겁게 쓰도록 가르치는 일’을 할까? 유럽사람이 브라질에 들어와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기 앞서까지 자그마치 1200가지가 넘는 겨레말이 있었다 하는데, 이제는 100가지가 채 안 남았다고 한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도 제주말 전라말 경상말 울릉말 강원말 경기말 충청말 서울말 모두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식구는 전라남도에서도 가장 두멧자락인 고흥에서 살아가는데, 고흥에서 고흥말 듣기란 쉽지 않다. 할매도 할배도 텔레비전과 공무원 말씨에 길들어 ‘텔레비전 말마디’에다가 ‘공무원 말씨(농사지을 때에 쓰는 말)’를 읊기 일쑤이다.


  전라남도 해남이나 강진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해남말이나 강진말을 듣거나 배울 수 있을까. 서울 아이들은 참다운 서울말이나 서울살이를 학교에서 배울 수 있을까. 소련이 무너지며 저마다 독립나라 된 러시아연방 나라들은 이제서야 ‘겨레말’을 학교에서 가르친단다. 카자흐스탄이나 우스베키스탄이 저마다 다른 겨레말을 쓴 줄 한국사람은 알기나 했을까. 네팔과 부탄과 파키스탄과 버마와 스리랑카도 저마다 이녁 겨레말이 따로 있는 줄 아는 한국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표준말 쓴다는 우리들이지만, 정작 우리들은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모르는 채, 삶다운 삶도 잊은 채, 그저 멀거니 문명과 문화라는 굴레에 갇힌 쳇바퀴놀이 아닌지 궁금하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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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7-09 11:09   좋아요 0 | URL
'고유의 언어'가 사라지는 일만큼 무서운 일도 없으리라 생각해요.

2011년에 우즈베키스탄을 갔을 때 보고 들었던 일도 떠오르네요. 오랫동안 '러시아어'를 표준어로 쓰다가 최근에 다시 여러 학교에서 자기네 나라 고유의 언어를 다시 '표준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숲노래 2013-07-09 12:01   좋아요 0 | URL
우와.. 우즈베키스탄을 가 보셨군요 @.@
참 예쁜 나라였을 테지요?

한국사람은 이 나라를 그저 '축구 경쟁국'으로만 잘못 알지만,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빚는 아름다운 나라 아닌가 싶어요.

한국말도 그렇지만,
그 우즈베키스탄도 고장마다 고장말이 사뭇 다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