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실 놓을 자리 (도서관일기 2012.6.1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옆지기가 즐거이 장만한 뜨개실이 무척 많다. 이 실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을까. 서재도서관 교실 넉 칸 가운데 한 칸 벽에 책꽂이를 두른 다음 놓으면 될까. 셋째 칸은 책꽂이를 조금만 두어 무척 널따랗기 때문에 이곳에 큰 책꽂이 둘을 붙여 보기로 한다.


  아버지하고 함께 서재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신이 자꾸 벗겨진다며 벗어서 손에 든다. 찻길은 판판해 달리기 좋아 아버지더러 신을 들어 달라고 내민다. 다른 한손에는 종이인형을 들고는 폴딱폴딱 뜀뛰기를 하면서 내처 달린다. 혼자 저 멀리 앞서 달린다. 신나게 달릴 곳, 마음껏 뛸 곳, 흐드러지게 놀 곳 들이 가장 좋은 삶터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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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달려가는 모습은 참 멋지네요.
여유로워보여요
아이 삶에서 여유로워 보이는 것까지 생각하다니
참 당연한 건데 말이에여

숲노래 2012-06-21 00:20   좋아요 0 | URL
아이가 늘 너그럽고 느긋하도록
잘 지내고 싶어요 @.@
에구구~~
 


 밥상 앞에서 책읽기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나면 아침밥 차려야겠다고 천천히 생각한다. 풀물을 짤 만한 겨를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고, 밥과 국을 다 마련하면서 둘째 죽까지 마무리짓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기다릴까 하고 살핀다. 늘 어슷비슷하다 싶은 푸성귀로 밥을 차리면서 늘 같은 밥상을 할 수는 없다고 여겨, 조금씩 달리 마련해 보는데, 밥상을 차리기까지 두 시간쯤 훌쩍 지나가지만, 밥상 앞에 앉아 수저를 들면 십 분이나 이십 분쯤 지나면 다 먹기 일쑤이다. 밥상을 받는 사람은 밥상이 놓이기까지 어떤 땀과 품과 겨를을 들여야 하는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집에서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는 사람과, 가게에서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는 사람은, 저마다 어떤 넋과 매무새가 될까. 집에서든 가게에서든 밥상을 차리는 품과 땀과 겨를은 다르지 않다. 가게에서 더 금세 밥상을 차리는 듯하다면, 그만큼 미리 손질하는 품과 땀과 겨를이 있었을 테고, 밥상을 차리고 나서 ‘밥손이 못 보는 자리’에서 뒤를 치우는 품과 땀과 겨를을 많이 들여야 하리라.


  내가 차린 밥상을 아주 가끔 사진으로 담는다. 나 스스로 이 밥상을 사진으로 찍지 않으면 그날그날 밥상을 차린 줄 생각조차 못 하리라 느낀다. 곰곰이 돌이키면, 내 어머니가 차리던 밥상을 환하게 떠올리자면, 따로 사진으로 찍든 밥상을 찬찬히 살피면서 마음으로 새기든 해야 한다. 스스로 밥상을 차리면서 내 어머니가 어떻게 밥상을 꾸몄는가를 되살려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으레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맛스럽고 멋스럽다는 밥상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런데, 막상 이녁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린 수수하거나 투박한 밥상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수하거나 투박한 밥상을, 날마다 으레 함께 누리는 밥상을, 오랜 옛날부터 죽 대물림하면서 차리던 밥상을, 기쁘고 새롭게 맞아들이며 사진으로도 찍고 마음으로도 찍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임금님 푸짐한 밥상도 밥상이요, 니어링 부부 수수한 밥상도 밥상이지만, 여느 살림집 여느 밥상도 밥상이다. 삶을 살리고 사랑한 밥상은 아직 역사책에도 문화책에도 요리책에도 사진책에도 문학책에도 실리는 법이 없다. (4345.6.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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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18 22:54   좋아요 0 | URL
ㅎㅎ 소박하지만 맛나 보이는 밥상이네요^^

숲노래 2012-06-19 07:27   좋아요 0 | URL
그냥... 풀밥상입니다 ^^;;

책읽는나무 2012-06-19 10:18   좋아요 0 | URL
점심때 시원한 마루에 걸터앉아 저런 밥상을 받아 먹고 싶을때가 있어요.
특히 여름에요.

어린시절엔 마루에 앉아 마당에 심어진 텃밭을 바라보며
앉은뱅이 밥상을 차려 먹었는데..^^
가끔씩 그랬던 시절이 생각나요.님의 밥상을 보니 문득 어린시절이 생각나네요.^^




숲노래 2012-06-19 14:13   좋아요 0 | URL
오늘도 내일도
시원한 밥상 누려 보시기를 빌어요~~
좋은 하루예요~
 


 시골 자전거 책읽기

 


  시골 할아버지들이 경운기를 몹니다. 짐차를 모는 할아버지가 더러 있으나 으레 경운기를 몹니다. 경운기가 나오기 앞서, 시골 할배나 아저씨는 으레 소를 몰았습니다. 누구라도 으레 소를 몰며 들판으로 나가 들일을 했는데, 어느 무렵부터 자전거가 나타나 한 사람 두 사람 자전거를 장만해 자전거에 삽을 꽂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자전거라는 탈거리 다음으로 오토바이가 나오고, 오토바이와 함께 자동차가 나옵니다. 짐을 싣는다든지 더 멀리 나간다든지 할 적에는 자동차가 퍽 좋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지구자원이 말라붙는다는 소리가 높은 오늘날까지도 지구자원을 갉아먹는 자동차만 끝없이 나옵니다. 새로 나오는 번쩍거리는 자동차조차 지구자원을 갉아먹는 자동차일 뿐입니다. 지구별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자동차는 만나기 너무 힘듭니다. 지구별을 갉아먹으면서 겉멋을 뽐내는 자동차만 넘칩니다. 자동차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온통 나쁜 것투성이입니다. 내 다리와 내 몸이 덜 힘들게 해 준다고 하지만, 막상 자동차가 한 번 지나가면 끔찍한 배기가스가 피어나 내 몸을 망가뜨립니다. 자동차를 만든다며 공장을 돌리느라 내 삶터 물과 바람과 햇살을 더럽힙니다. 자동차 다닐 찻길을 닦는다며 숲을 밀고 들을 밀며 냇물까지 밀어냅니다. 자동차에 넣을 기름을 뽑느라 지구별 곳곳에 구멍이 뚫릴 뿐 아니라, 바다에서 석유를 캐내느라 바다는 아주 지저분해집니다. 캐내거나 뽑아낸 석유를 배로 실어나르느라 커다란 기름배를 만든다며 또 물과 바람과 햇살이 어지러워지고, 커다란 기름배는 기름을 태워 움직일 뿐더러, 참 자주 기름을 바다에 흘립니다. 기름배가 싣고 온 기름, 그러니까 석유는 자동차에 곧바로 집어넣지 못합니다. 정유공장이라는 데에서 다시 기름을 태워 ‘자동차에 넣을 만한 기름’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동안 새삼스레 물과 바람과 햇살은 자꾸자꾸 무너집니다. 다 만든 ‘자동차에 넣을 기름’은 또다시 기름을 태워야 굴러가는 커다란 짐차에 실려 온 나라 기름집에 보내고, 온 나라 기름집은 거듭 새삼스레 ‘기름을 태워 얻은 전기’로 불을 환하게 밝히면서 기름을 팝니다.


  여느 사람이 여느 살림을 꾸리며 모는 자동차에 넣는 기름 한 방울은 그냥 기름 한 방울이 아닙니다. 여느 사람이 여느 마을에서 여느 자동차를 몰며 쓰는 기름 한 방울은 그냥 기름 한 방울이 아닙니다. 자동차공장에서도, 기름집에서도, 기름 나르는 짐차에서도, 기름 나르던 짐배에서도, 정유공장에서도, 석유 캐는 나라에서도, 석유 캐는 나라에서 쓰는 기계에서도, …… 그야말로 끝없이 기름을 쓰고 또 쓰는 얼거리가 이어집니다.


  하나하나 돌이켜,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 여느 사람으로서 자동차를 안 몬다면, 자동차를 몰더라도 기름이 아니라 햇볕을 먹거나 물을 먹거나 바람을 먹으며 달리는 자동차를 몬다면, 모든 어지럽고 슬프며 지저분한 굴레를 걷을 수 있겠지요.


  시골마을 흙일꾼 할아버지가 삽 한 자루 자전거에 꽂고는 들판으로 들일을 하러 나옵니다. 자전거는 할아버지 걸음만큼 느립니다. 자전거는 시골 들바람을 시원스레 맞으며 천천히 달립니다. 삽자루 자전거가 달리는 시골 들바람은 맑고 상큼합니다. (4345.6.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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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짓는 손길과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8] Jorma Komulainen 엮음, 《Vision of Finland》(Kirjayhtyma,1990)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나라밖 사진책을 기쁘게 장만하곤 합니다. 세계사진역사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한 이들이 빚은 사진으로 이루어진 숱한 사진책을 재미나게 만나 예쁜 꿈을 꾸면서 사들이곤 합니다. 나한테 돈이 퍽 많았다면 헌책방 나들이를 안 즐겼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러니까, 돈있는 집에서 태어나 돈을 실컷 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굳이 헌책방을 뒤지지 않으면서 지구별 숱한 사진책을 수만 수십만 권 장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있는 집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책길이나 사진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길을 걸을는지 몰라요. 돈을 펑펑 쓰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안 사랑하는 길에서 헤맬는지 몰라요.


  꼭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진책이 아닙니다. 반드시 돈이 넉넉해야 살 만한 사진기가 아닙니다. 돈이 적다면 적은 대로 사진책을 살 수 있습니다. 돈이 아예 없으면 얻어서 읽거나 빌려서 봅니다. 책방에 가서 선 채로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돈에 맞추어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아예 없으면, 남한테서 얻어서 쓸 수 있어요. 또는, 따로 기계를 써서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에 앉히지 않는 사진을 찍습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으로 아끼며 내 사랑으로 보듬을 사진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을 찾아가서 온갖 책을 신나게 들여다보다가 《Jorma Komulainen 엮음-Vision of Finland》(Kirjayhtyma,1990)라 하는 사진책 하나를 집어듭니다.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제 나라를 이웃에 널리 알리려 하는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는 으레 ‘나라이름’만 적습니다. 때때로 ‘beautiful’ 같은 이름을 붙여요. “Vision of Finland”처럼 ‘앞날을 꿈꾸는 생각’을 이야기하려는 사진책은 퍽 드뭅니다.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를 여러모로 좋아합니다. 가 본 적 없고, 참말 가 본 적 없으니 겪은 적 없을 뿐더러, 내 곁에는 핀란드 동무나 이웃이 없어요. 그런데 이래저래 듣거나 마주하는 ‘핀란드 문화와 삶과 사회’는 매우 살가우면서 예뻐요. 요즈막에는 한국땅에 ‘핀란드 교육 혁명’ 이야기가 들어오기도 해요. 곧, 거꾸로 생각해 보면 돼요. 핀란드에 ‘한국 교육 혁명’ 같은 이야기가 흘러들 수 있을까요. 핀란드 아이들이 한국 학교 아이들처럼 ‘시험공부에 시달리’도록 핀란드 어른들이 함부로 내몰까요.


  핀란드 아이들이 좋은 배움터와 삶터와 놀이터와 꿈터를 누릴 수 있다면, 핀란드 어른들 또한 좋은 일터와 만남터와 숲터와 사랑터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란히 누리는 핀란드 숲일 테지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 함께 즐기는 핀란드 책내음과 삶내음과 사랑내음일 테지요.


  사진책 《Vision of Finland》를 읽습니다. 핀란드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진쟁이들 사진을 아기자기하게 담습니다. 따로 어느 한 사람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은 아니요, 사진이 한결같이 포근하고 저마다 맑게 빛납니다. 모두들 어떤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떠한 삶터에서 어떠한 이웃을 사귀며 지내기에 밝은 빛살을 살뜰히 품는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고 가늠해 봅니다.

 


  한참 책장을 넘기다가, ‘무민’ 이야기를 쓰며 핀란드 어린이문학을 빛낸 ‘토베 얀슨’ 님 사진과 무민 모습이 두 쪽에 걸쳐 나오는 대목을 봅니다.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한국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려는 사진책을 정부이든 공공기관이든 문화부이든 개인이든 상업출판사이든 이럭저럭 애써 내놓는다 할 때에, ‘한국 아이들 꿈을 보살피고자 어린이문학을 빛낸’ 분들 모습과 이야기를 한 자리 살포시 꾸밀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껏 이렇게 해 보리라 생각한 사진쟁이나 책쟁이나 글쟁이가 있었나 궁금합니다. 지구별 어느 나라나 ‘글’이나 ‘문학’을 빛낸 사람을 손꼽으며 예쁘게 기릴 적에는 으레 ‘어린이문학’으로 꿈과 사랑을 돌본 이들 이름부터 적바림하는 줄 깨닫는 한국 문화쟁이나 예술쟁이는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책 《Vision of Finland》에는 숲에서 살아가는 곰 사진도 몇 장 깃듭니다. 참말 숲에서 곰이 홀가분하게 살아가니까 이런 사진을 찍어서 실을 만하겠지요. 참으로 핀란드는 자연이 넓고 아름답기에 너르며 아름다운 숲과 들판과 바다를 해맑게 보여주는 사진을 찍어서 실을 만하겠지요.


  핀란드에도 헬싱키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겨울올림픽이든 여름올림픽이든 퍽 커다란 행사나 경기를 치르곤 합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더 높이 세우는 건물’을 자랑하는 듯 보이지 않습니다. 핀란드 사진책에서는 ‘더 크거나 더 우람하거나 더 대단하다’고 내세울 만한 모습은 굳이 보여줄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키가 더 커서 더 멋지지 않습니다. 얼굴이 더 예쁘장하다 말하기에 더 즐거울 삶은 아닙니다. 머리가 똑똑하대서 누구 한 사람이 가장 돋보이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큰 키도 작은 키도 없고, 가난하거나 가멸찬 살림도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누리는 좋은 나날이요, 저마다 손수 빚는 좋은 삶입니다. 올림픽에서 보리빛 메달을 목에 걸어야 눈밭을 싱싱 잘 달리지 않습니다. 시험을 치러 1등이 되어야 대학교에 붙지 않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몇 분이나 몇 시간이나 몇 초라는 숫자에 맞추어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그릇에 밥알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 담지 않습니다.


  좋게 누릴 삶을 생각하면서 좋게 나눌 사랑을 좋게 바라보는 눈길로 얼싸안는 손길일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누군가는 눈물지으며 사진을 찍을 테고, 누군가는 웃음지으며 사진을 찍을 테지요. 괴롭거나 힘들다면 눈물바람 사진이 나올 만한데, 괴롭거나 힘든 나날에도 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참 꾀죄죄하거나 고달프다는 삶이라 하지만, 언제나 스스럼없이 웃음지으며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있어요.

 


  무엇일까요. 무엇인가요.


  사진은 무엇이고, 사진으로 담는 삶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어 빚는 책은 어떤 넋을 담으면서 사랑스러운가요. 책에 담으려 찍는 사진은 어떤 얼로 빚을 때에 아름다운가요.


  여기에서 누리는 삶을 여기에서 찍습니다. 여기에서 짓는 삶을 여기에서 사진책으로 짓습니다. 사랑을 짓는 손길이 사진을 짓는 손길입니다. 꿈을 짓는 손길이 사진을 짓는 손길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손길이 사진을 나누는 손길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밥 한 그릇 베푸는 손길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좋은 사진을 누리도록 베푸는 손길입니다. (4345.6.17.해.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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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쫑 뽑는 책읽기

 


  우리 집 대문을 열면 논이 넓게 펼쳐진다. 집 앞부터 논이요, 앞논을 지나 다시 논이고, 저 멀리 멧자락까지 그예 논이다. 왼쪽으로 이웃집을 지나 마을회관 옆으로도 온통 논이다. 논은 죽죽 돌로 쌓은 울에 맞추어 섬돌처럼 차곡차곡 포개어진다. 살림집에서 멧줄기 쪽으로 비탈이 진 자리에는 차곡차곡 밭이 이루어진다. 가을날 벼를 베고 난 뒤, 마을 안쪽 논은 마늘밭으로 바뀐다. 마늘이 한창 무르익던 오월 한복판, 마늘밭 할머님은 우리더러 마늘쫑 뽑아 가라 말씀한다. 나중에 마늘뽑기 일을 조금 거들며 살피니,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마늘쫑까지 따로 뽑아서 내다 팔 만큼 일손을 나누지 못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드실 만큼만 뽑고 나머지는 그냥 버린다. 마늘 꽃대라 할 마늘쫑을 뽑아서도 버리고 그냥 두었다가 마늘을 캐고.


  마늘쫑을 뽑을 때에는 땅속에 뿌리내린 마늘 알씨부터 올라오는 풀기운을 느낀다. 뽁 뽁 소리내며 뽑히는 마늘쫑 끝자락마다 물방울이 말갛게 진다. 마늘밭 둘레에 서기만 하더라도 마늘내음이 가득 퍼지는데, 마늘쫑을 뽑노라면 한결 짙은 마늘내음이 온 들판을 감돈다. 마늘쫑 뽑기는 다섯 살 아이도 어렵잖이 할 만하다. 한창 바쁜 일철에는 부지깽이마저 일손을 거든다 했으니, 다섯 살이든 여섯 살이든, 아이들은 얼마나 고마우며 놀랍고 멋스러운 두레 일꾼이었을까. 일을 한 가득 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조금 일을 바라보고 익히는 동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까르르 웃는다. 아이 몇이 논둑이나 밭둑에 얼크러져 서로 놀기만 하더라도 웬만한 장구잽이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신이 나고 재미있다. 노래하는 손이 노래하듯 마늘쫑을 뽑는다. 춤추는 손이 춤추듯 마늘쫑을 뽑는다. 웃음 어린 손이 웃음을 품으며 마늘쫑을 뽑는다. (4345.6.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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