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책읽기

 


  해거름에 뒷밭에 물을 주다가 뽕나무에서 까만 오디가 떨어진 모습을 본다. 바람이 그닥 안 불었는데 오디가 떨어지네 하고 생각하며 한 알 두 알 줍는다. 뽕나무 가지가 퍽 높아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오디를 따겠거니 싶더니, 이렇게 한 알 두 알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고 문득 깨닫는다. 안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달린 오디가 훨씬 많겠지. 날이 밝으면 오디를 더 줍고, 사다리를 챙겨서 신나게 오디를 따자고 생각한다. 들딸이랑 멧딸을 배부르도록 따먹으니, 이제 오디철이 되는구나 싶다. 식구들 모두 오디를 맛나게 먹으니 좋다. 말랑말랑한 오디는 흙과 햇살과 바람과 비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면서 나무 한 그루를 살찌운 푸른 맛이다. (4345.6.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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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는 '다 다른 빛깔로 다 다른 즐거움 누리는 서재'이기에 좋은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과 '네 생각'은 서로 다르면서 이 지구별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느낍니다. 서로 다르면서 아름다운 이웃 서재인 줄 살피지 않고, 스스로를 갉아먹기까지 하는 빈말과 막말로 생채기를 내는 일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빕니다. 남한테 '당신은 이걸 알아야 해' 하고 밀어붙인다든지 '당신이 하는 말은 틀렸니' 하고 말한들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스스로 가장 옳다고 여기는 길을 걸어가면서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글'을 써서 나누면 넉넉합니다. '비판'이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이웃을 다치게 하고, 다친 이웃이 알라딘서재를 떠나도록 하는 일은 참말 누구한테 기쁘거나 좋은 일이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석류꽃 몽우리 책읽기

 


  감나무에 감꽃이 맺힌다 해서 모든 감꽃이 천천히 무르익어 감알이 되지는 않습니다. 고추꽃도 오이꽃도 콩꽃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빗물에 톡 떨어지는 꽃잎이 있어요. 봄바람에 스러지는 꽃잎이 있어요.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에 부딪히며 바스라지는 꽃잎이 있어요. 그런데, 빗물도 봄바람도 사람들 다리도 아닌데, 그저 조용히 스스로 흙으로 돌아가는 꽃잎이 있어요.


  꽃잎이 왜 씨나 열매를 맺지 않고 흙으로 돌아가는가를 모두 알아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꽃잎 스스로 알 테고, 꽃잎 피우는 풀이나 나무가 알 테며, 풀이나 나무를 살찌우는 지구별이 알 테지요.


  밭뙈기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서 혀에 올려놓습니다. 감꽃 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오물오물 씹어서 먹습니다. 흙바닥에 떨어진 매화 열매를 주워 흙땅으로 옮깁니다. 아이는 이웃집 석류나무 밑으로 들어가 미처 봉오리가 되지 못한 몽우리를 줍습니다. 석류꽃은 바알간 빛깔 환한데, 봉오리가 못 된 몽우리는 노오란 빛깔 맑습니다. (4345.6.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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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실 사진과 석류꽃 몽우리 (도서관일기 2012.6.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멧딸을 따며 놀다가 둘째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둘째 아이가 잠든 김에 수레를 끌고 도서관까지 가기로 한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깊이 잠들었고, 아주 살짝 도서관 넷째 칸 갈무리를 해 본다. 몇 해째 상자에만 박힌 채 햇볕을 쬐지 못하던 여러 가지를 들춘다. 내가 고등학생 적 모은 최진실 님 사진 여러 장 나온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들어간 대학교에서 오려모은 박재동 님 그림판도 몇 장 보인다. 다섯 학기를 다닌 대학교 학보가 여러 장 나오고, 이무렵 내 밥벌이를 하며 지낸 신문사지국에서 돌리며 드문드문 모은 신문이 나온다. 1995년에 1995년치 신문을 모으며 ‘이 신문이 언제쯤 낡은 신문이 될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금세 낡은 신문이 되겠지.’ 하고 여겼는데, 몇 해 흐르면 벌써 스무 해나 묵은 신문이 된다. 헌책방에서 그러모은 1970년대 〈이대학보〉가 보이고, 1970년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꽤 재미나구나 싶다. 아무튼,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그야말로 바지런히 오려모으거나 통으로 갈무리하던 신문꾸러미를 그냥저냥 꽂기도 하고 반듯이 눕히기도 한다.


  수레에서 자는 둘째한테 자꾸 모기가 달라붙는다. 도서관 갈무리는 그만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첫째 아이는 마을 이웃집 석류나무 밑으로 들어간다. 떨어진 석류꽃을 줍겠단다. 몽우리에서 봉오리로 맺지 못하고 만 누런 석류꽃을 본다. 아이는 석류나무 옆 감나무에서 흙땅으로 떨어진 감꽃을 두 손 가득 주워서 보여준다.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도서관이니까 책이 있어야 할 테고, 이런저런 낡은 신문이 있어도 좋겠지. 그런데, 이런 책 저런 신문 못지않게, 나무가 있고 풀이 자라며 꽃이 피어야 도서관다우리라 느낀다. 아무래도 가장 좋다 싶은 도서관은 숲이 아닐까.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도서관은 어린이가 아닐까.

 

 

 

 

 

 

 

 

 

 

 

(석류꽃 몽우리 사진은 다른 글에서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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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 쓰는 책읽기

 


  이제부터 글씨를 쓴다. ‘ㄱㄴㄷ’부터 쓰고 ‘가나다’도 쓴다. 아이 이름 ‘사름벼리’도 써 본다. 슬슬 쓰다가 ‘어머니’로 넘어가 보기도 한다. 아이는 하나하나 아주 힘을 주어 또박또박 쓴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글씨를 쓸 때에 그닥 힘을 안 주고 쓰는구나 싶다. 이렇게 글씨 하나마다 힘을 꼬옥꼬옥 주면서 단단히 눌러서 쓰면 깊이깊이 사랑이 아로새겨지겠지.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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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6-07 10:37   좋아요 0 | URL
그마음이 느껴져요,,

숲노래 2012-06-07 12:13   좋아요 0 | URL
오오, 울보 님네 아이도
이런 나날을 즐겁게 거쳤겠지요 @.@
 


 사름빛 책읽기

 


  올여름에도 첫째 아이 이름이 된 ‘사름’을 맞이한다. 우리 집에는 논이 없으나 이웃 집에는 모두 논이 있으니, 날이면 날마다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먼저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반짝반짝 눈부신 논물이 푸른 숲 멧자락을 비춘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걸쳐 논물은 새삼스레 바뀌는 그림을 끝없이 그린다. 옮겨심은 모가 뿌리를 튼튼히 내린 논을 들여다보면 볏모 빛깔이 그지없이 푸르다. 그런데, 아직 옮겨심지 않은 모도 모판에 꽂힌 모습을 바라보면 가없이 푸르다. 마을 이장님 댁 모판을 나르는데, 모판 한복판에 참개구리 한 마리 떡하니 앉아 골골 노래를 부르던걸.


  다섯 살 첫째 아이 사름벼리는 제 이름 넉 자 가운데 첫 두 글자가 비롯한 ‘사름’을 날마다 마주한다. 날마다 마주하면서 아직 ‘낱말과 이름’을 서로 맞대어 헤아리지는 못한다. 한 해를 더 살고 또 한 해를 새로 살면 시나브로 알아채며 즐길 수 있겠지.


  모 심는 기계에 모판을 실을 때에 일손을 살짝 거들며 어린 볏모가 얼마나 보드라운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이 보드라운 볏모가 보드라운 논흙에 뿌리를 내리고 보드라운 햇살을 먹는 한편 보드라운 바람을 누리면서 보드라운 꽃을 피우고 보드라운 열매를 맺는다. 여름빛은 사름빛이다.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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