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 필름스캐너 소리 듣는다

 


  얼마만에 듣는 필름스캐너 소리인지 모릅니다. 몇 달만에 필름스캐너를 돌리는가 가만히 어림합니다. 한 해 남짓 묵힌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 사흘만에 받고는 이른아침에 필름 한 통 여섯 장씩 필름스캐너에 앉힙니다. 가장 크게 긁는 사진파일이기에 여섯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꽤 오래 걸립니다. 서른여섯 장을 모두 긁으려면 한 시간 이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필름 여섯 장을 필름스캐너에 앉히고 빨래를 하더라도 스캐너는 그대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필름 한 장 크기는 고작 35밀리미터. 35밀리미터 필름 한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몇 분 걸립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꼼꼼히 아주 천천히 아주 낱낱이 아주 찬찬히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사진기에 필름을 감아 찍을 때에도 더디 걸리고, 다 찍은 필름을 빼내어 현상을 맡길 적에도 더디 걸리지만, 현상된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파일을 이루기까지 또 더디 걸립니다.


  나는 더디 걸리는 오랜 길을 더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더디 걸리며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채고 몇 번 손길을 타면 금세 태어나는 디지털파일이라 해서 안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면 어떠한 기계로 찍는 사진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는 ‘아주 값진’ 기계라거나 ‘값진’ 기계는 아닙니다. 낮고 작은 기계입니다. 그래, 돈셈으로 치면 낮고 작은 기계라 할 텐데, 나는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한테 늘 말을 겁니다. 나는 네가 좋아. 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나는 네가 믿음직해.


  나한테 필름사진기를 빌려준 분이 이 사진기에 담은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필름값을 빌려준 분이 이 필름마다 담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어느 한 가지 이야기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꼼꼼히 써레질을 합니다. 흙일꾼 할배는 소를 몰아 논을 갈고, 나는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내 사랑을 꿈꿉니다. 좋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하나 태어나는 날을 맞이하고 싶어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4345.6.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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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뜨기 책읽기

 


  나는 어릴 적에 실뜨기를 무척 못했다. 고무줄뜨기는 아예 질려서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일곱 살 밑 어느 때 고무줄뜨기를 하다가 틱 끊어지며 크게 덴 적이 있었을까. 내가 떠올리는 아주 어린 어느 날 고무줄이 끊어져 얼굴인지 눈가인지 튕기며 아주 따끔했던 적은 있다. 하다 보면 못할 만한 일은 없을 텐데, 내 어릴 적 동무들은 뜨기놀이를 할 때에 실로 하는 일 없이 고무줄로 징징 늘이며 하다 보니 이렇게 고무줄뜨기를 하는 곁에서는 멀찍이 떨어지기 일쑤였고, 내 손가락에 걸치려 하지도 않았기에, 두 아이와 살아가는 오늘에도 실뜨기를 도무지 못하고 만다.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실뜨기를 배운다. 아이 어머니는 실뜨기를 보여주는 일본 그림책을 펼치며 이것저것 가르친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실뜨기 그림책을 바라보며 흉내를 내곤 한다. 다만 아직 흉내일 뿐, 어머니가 찬찬히 가르치는 뜨기가 아니면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실 하나로도 오래도록 재미나게 놀 수 있다.


  실이 있기에 옷감을 짜고, 옷감을 짜기에 비로소 옷을 짓는다. 실뜨기놀이란, 옷감을 짜며 남은 짜투리를 버리기 아까워 갈무리하다가 아이들이 심심해 할까 봐 이렁저렁 이어 찬찬히 놀이를 즐기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빛나서 태어난 놀이일 테지, 하고 헤아린다. 옷감을 짜든 옷을 짓든 품과 겨를이 많이 든다. 이동안 아이들은 제 어버이 곁에서 심심할 수 있다. 이때에 어머니는 눈과 몸으로는 옷감을 짜거나 옷을 지으면서 입으로는 아이더러 손가락을 어찌저찌 걸어 실을 엮으라 말할 수 있다. 아이는 길게 늘어뜨린 실을 두 손 손가락에 걸고는 차근차근 실을 꿰며 새롭게 나타나는 모양을 바라보는 데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졸음에 겨운 아이가 실뜨기놀이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나는 왜 실뜨기 그림책을 샀을까. 게다가 그 실뜨기 그림책은 일본책인데. 실뜨기이든 고무줄뜨기이든 할 줄 모르고 무섭다 여긴 주제에 이 그림책을 왜 장만해서 갖추었을까. 나는 앞으로 언제쯤 될는 지 모르나 실뜨기 그림책이 쓰일 날이 있으리라 느꼈을까. 나는 앞으로 나한테 찾아올 우리 아이가 이 실뜨기 그림책을 좋아할 날이 있겠지 하고 느꼈을까.


  언제나 내가 읽을 책을 사서 갖추지만, 하나하나 짚으면 실뜨기 그림책을 내가 읽으려 한 책이라 여겨도 될까 궁금하다. 아니, 나로서는 실뜨기를 안 하더라도 마음으로 가만히 살피려고 장만했다고 할 테지. 나는 이쯤 즐기고 언젠가 나한테 찾아올 사람들한테 이 작은 그림책 하나 알뜰히 쓰이리라 알았기에 기쁘게 장만했다고 할 테지.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부르며, 마음이 읽는 책이리라. (4345.6.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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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신문과 프랑스 사진책 《뒷모습》 (도서관일기 2012.6.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아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이제 책갈무리는 다 마쳤다 할 만하기에 자질구레한 짐을 치운다. 어쩌면 자질구레한 짐을 치우는 품이 더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쪽에 가지런히 쌓든, 상자에 얌전히 넣든, 이들 짐을 잘 갈무리해야 비로소 서재도서관 꼴이 잘 살아날 테고, 바닥 청소도 하기 수월하겠지.


  오래 묵은 짐 담은 상자를 끌르다가 1994년이 〈인천 시민신문〉과 〈황해시대〉라는 묵은 신문을 본다. 지역에서 아주 작게 나오던 신문들인데, 이 신문들은 몇 호까지 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스무 해쯤 지난 오늘날 이 신문들을 떠올리거나 되새길 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하다. 1994년치 〈인천 시민신문〉에는 ‘인천 현안’이라면서 “방송국, 인천엔 왜 없나” 하는 머릿글이 실린다. 참말 인천은 ‘직할시’와 ‘광역시’를 거치면서도 딱히 방송국이 없었다. 전파 수신기지만 있었다.


  인천 바로 곁에는 서울이 있고, 서울에서는 중앙일간지가 나온다. 어쩌면 마땅하나 하나도 안 마땅하다 여길 수 있는데, 중앙일간지를 내는 ‘서울 신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 내는 중앙일간지는 으레 ‘서울 이야기’만 다루지, 온 나라 이야기를 두루 다루지 않는다. 어느 신문이든 어느 방송이든 이와 같다. 이런 모습이라면 중앙일간지라 하지 말고 ‘서울’일간지라 해야 올바를 텐데, 스스로 ‘서울’일간지라고 밝히는 신문은 없다.


  프랑스 사진책 《VUES DE DOS》을 찾아본다. 엊그제 읽은 어느 책에서 새삼스레 이 사진책 이야기를 다시금 ‘잘못’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왜 책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서 책을 말하려 할까. 책을 다루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왜 책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글을 쓰려 할까.


  프랑스에서 나온 사진책 《VUES DE DOS》은 발레하는 가시내 모습이 겉에 나온다. 한국에서 옮겨진 《뒷모습》은 웃통 벗어 젖꼭지 보이는 가시내 모습이 겉에 나온다. 프랑스 사진책 《VUES DE DOS》를 죽 살피면, 한국판 겉모습 사진은 아주 뒤쪽에 나온다. 사진책 《뒷모습》은 ‘벗은 몸을 슬그머니 보여주려는 훔쳐보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참말, 뒤에서 바라보는 삶자락을 이야기하는 사진책이다.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옮겨진 《뒷모습》을 손에 쥐면서 느낌부터 아예 달라지고 만다. 벗은 웃통에 젖꼭지 드러나는 가시내 사진이 꼭 이 한 장뿐이라 하지만, 책겉에 이 사진이 드러날 때와 책 끄트머리에 살짝 스치듯 나오는 사진으로 마주할 때에는 느낌이 다르다. 한국땅에서는 사진을 사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까. 한국땅에서는 사진도 책도 삶도 이야기도 신문도 모두 꾸밈없이 수수하게 살피며 어깨동무할 수 없을까.

 

 

 

 

 

 

 

 

 

 

 

.... 왜 한국판은

이런 겉모습으로

사진책이 나와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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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옆 책읽기

 


  밥상을 차린다. 밥을 먹자고 부른다. 아이가 밥상 옆에서 책을 펼친다. 아이들이 나오는 사진책이다. 밥보다 아이들 사진이 더 마음에 끌릴는지 모른다. 애써 밥상을 차린 사람으로서는 기운이 빠진다. 밥도 책도 아닌 꼴이 되니까. 그런데 나는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사진을 찍는다. 어느 모로 보면 얄밉지만, 어느 모로 보면 귀엽거든. 내 마음속에 깃든 얄미움이 아이한테 옮을 테고, 내 가슴속에 스민 귀여움 또한 아이한테 이어질 테지. 아이가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넋을 추스르기를 꿈꾼다면, 어버이 또한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넋을 추스를 노릇이리라. 서로서로 좋은 길을 찾아 좋은 사랑을 빛낼 때에 가장 기쁘리라. (4345.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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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두 달에 한 번 내는 <경기문화나루>에 싣는 글입니다. 7-8월호치에 실리는 글이기에, 이제 이곳에 함께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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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즐거이 읽는 책

 


  나카야마 세이코 님 청소년문학 《산촌유학》(문원,2012)을 금세 다 읽습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가슴에 얹혀 재우면서 이 책 하나 훌러덩 읽습니다. ‘산촌유학’이란 도시에 사는 아이를 시골로 보내 배우게 한다는 일로,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살림집 가운데 한 곳으로 ‘도시 아이가 들어가서’ 그 집 아이와 똑같이 살아가도록 합니다. 26쪽을 보면,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든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참말, 시골 밤하늘 별은 밝습니다. 도시 밤하늘에는 별이 밝지도 않으나, 별이 뜰 수조차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고, 밤하늘을 생각할 일마저 없곤 합니다.


  경기 파주 책도시 한켠에서 5월 한 달, 제 사진잔치를 마련했습니다. 사진잔치를 나 스스로 기리며 식구들하고 먼 마실을 떠납니다. 들새 소리와 바람 냄새와 햇살 빛깔과 들풀 빛무늬 어여쁜 시골집을 떠나 여러 날 파주에서 머물렀습니다. 시골집 날씨와 여러 날 묵을 일을 헤아리며 두 아이 옷가지를 챙겼는데, 막상 파주 책도시에 닿으니 복사열이 대단해 두 아이 모두 더위에 시달립니다. 더욱이, 걸을 만한 들길이라든지 오를 만한 멧자락이라든지 쉴 만한 나무그늘이라든지 마실 만한 냇물이라든지 먹을 만한 들풀이라든지 하나도 없습니다.


  청소년문학 《산촌유학》에 나오는 도쿄 청소년들은 ‘시골에 편의점이 없어 과자나 청량음료를 사 마실 수 없겠다고 걱정’합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볼일 보러 아이들 이끌고 찾아간 우리 식구는 ‘도시에 쉬고 걸으며 먹을 너른 들판과 숲이 없다고 새삼스레 깨달으며 걱정’합니다.


  복사열과 아스팔트와 시멘트집에 시달린 끝에 시외버스와 여러 차를 갈아타고 예닐곱 시간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짐을 풀고 벌렁 드러누워 달게 잔 이듬날 아침, 아이와 함께 그림책 《루비의 소원》(비룡소,2003)을 읽습니다. 1900년대 첫무렵 중국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책으로 빚었다 합니다. 사내로 태어난 사람만 글을 가르치고, 가시내로 태어난 사람은 집일과 살림을 배우느라 글을 배울 수 없다던 지난날,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이녁 할아버지를 깨우칩니다. 루비네 할아버지는 루비한테 “아가, 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정말로 알고 싶구나. 남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더 잘 해 준다는 거니?” 하고 물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던 루비는 할아버지가 알아들을 만한 가장 쉬운 보기를 찾습니다. 이를테면, 전병을 줄 때에 사내한테는 더 달콤한 자리를 떼어 주고, 가시내한테는 퍽퍽한 데를 떼어 준다는 말을 들려줍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곁에서 누군가 깨우쳐 주지 않으면 참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곁에서 쉽고 살가우며 따스한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나 말길로 깨우쳐 주더라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림책 할아버지는 당신 손녀가 넌지시 깨우쳐 주는 말마디를 잘 삭힙니다. 가시내를 대학교까지 보내는 일이 아주 없다던 때에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화책 《사원 시마, 주임 편》(서울문화사,2008)을 읽습니다. 첫째 권 70쪽에 ‘평사원 시마’가 “우직해도 좋다. 출세 못해도 좋다. 난 이런 자세를 관철하고 싶다.”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평사원 시마 주임은 이처럼 혼잣말을 하지만, 만화책 흐름을 보면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며 전무와 이사를 거쳐 사장에 이릅니다.


  마음을 쉬고 싶어 《어머니전》(호미,2012)이라는 책을 펼칩니다. 섬마을에서 ‘스스로 고향이 된’ 할머니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섬할매 한 분은 “자식들 있어도 다 객지 가 사요. 큰아들은 서울서 살고, 나는 이라고 삽니다. 이게 편합니다. 시골 사람은 시골 사는 게 좋습니다(111쪽).”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할 만한 곳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삶을 일구며 사랑을 합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들길을 거닐며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꿈을 읽다가, 우리 집 처마 밑 제비들 노랫소리 들으며 삶을 읽습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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