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알 책읽기

 


  멧딸을 따러 네 식구 멧길을 오른다. 멧길은 밭둑을 따라 차츰차츰 비알이 진다. 먼먼 옛날부터 이곳 멧자락에 밭을 일구며 돌 쌓아 밭둑 이룬 분들 손길이 얼마나 깊이깊이 배었을까. 멧길을 올라 멧딸을 따기 앞서 마을 이웃집 앞을 지나가는데, 앵두나무 밑에 경운기를 대고 앵두알 따는 이웃 할매와 할배를 만난다. 우리더러 같이 먹자며 앵두알을 한 아름 따서 베푸신다. 나누어 받은 앵두알을 아이들도 어른들도 함께 먹는다. 둘째 아이는 한손에 한 알씩 쥐고는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이리 빨고 저리 빨고 하면서 논다. 작은 손에 작은 알 하나씩 조물딱조물딱 빨간 물 들으며 아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앵두씨를 심어 앵두나무 키우고 싶다 생각한다. 앵두씨 하나 우리 마당 가장자리에 심는다. (4345.6.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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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제비 책읽기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남긴 작품 가운데에는 나라밖 동화책 번역이 꽤 많다. 이 가운데 하나로 《미운 새끼 오리》가 있다. 나는 아마도 어릴 적 이 책을 학교 학급문고에서 빌려 읽었을 텐데, 책이름이 ‘오리 새끼’ 아닌 ‘새끼 오리’인 줄 참 늦게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 헌책방에서 낡은 동화책 하나 찾아서 다시 읽기 앞서까지 으레 “미운 오리 새끼”라는 이름이 내 혀와 입과 귀에 익숙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한국말로 옳고 바르고 알맞으며 살가이 이야기하자면 “새끼 아무개”이다. “아무개 새끼”라 하지 않는다. “아무개 새끼”처럼 읊는 말은 모조리 막말이다. “새끼 아무개”라 하면서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좋거나 아름다운 무언가를 가리킨다. “소새끼 말새끼 닭새끼 개새끼”처럼 읊는 말은 몽땅 막말이다. 소도 말도 닭도 개도 사람한테 깎아내리는 말을 들을 까닭이 없지만, 사람 스스로 못난 바보가 되면서 이런 막말을 일삼는다. 곧, 한겨레는 한겨레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며 여느 말을 보드라이 읊을 때에 “새끼 사람, 새끼 소, 새끼 말, 새끼 닭, 새끼 개”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나라밖 동화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붙인 《미운 새끼 오리》라는 이름 하나만 올바르다.


  할머니들은, 또 할아버지들은, 요즈음 도시에서는 듣기 어렵다 할는지라도 시골에서는 아주 홀가분하면서 넉넉하게 으레 듣는데, “아유, 귀여운 내 새끼, 왔니?” 하고 말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귀여운 내 새끼”이다. 왜냐하면 “새끼 사람”이니까.


  사람도 짐승도 ‘새끼’와 ‘어미’가 있다. “어미 소, 어미 닭, 어미 개”이듯 “새끼 소, 새끼 닭, 새끼 개”이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조금만 사랑을 들여 생각한다면, 조금만 사랑을 들여 착하게 생각한다면,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슬기롭게 할 수 있다. 조금조차 생각하지 않고, 조금조차 사랑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람은 거의 모두 엉터리로 한국말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 앞뒤로 우리 집 처마 제비들 노랫소리를 듣는다. 알에서 깬 새끼 제비들은 어미 제비가 바지런히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 둥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 만큼 컸다. 제비들이 놀랄까 봐, 또 우리 식구 고흥 시골마을로 옮긴 지 첫 해인만큼, 섣불리 제비집 안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올해가 가고 이듬해를 맞이하며 다시 새해를 맞아들이고 나면, 이제 제비들도 우리 식구하고 낯을 트고 한결 살가이 지낼 테니까, 그때에는 제비집 둥지를 살그머니 들여다보며 제비알도 보고 새끼 제비도 볼 수 있을까 하고 꿈꾼다.


  새벽 다섯 시 반, 첫째 아이가 쉬 마렵다며 일어나기에 손을 잡고 섬돌에 놓은 오줌그릇으로 내려와 오줌을 누인다. 오줌을 누이며 제비집 새끼 제비들 노랫소리를 듣는다. 좋은 새벽이고 좋은 하루이다. 좋은 새날이고 좋은 아침이다. 쉬를 눈 아이를 자리에 다시 눕혀 재운다. 둘째 아이는 자꾸 뒤척여 무릎에 누여 토닥인다. (4345.6.4.달.ㅎㄲㅅㄱ)

 

 

 

 

.. 먹이 주는 제비 모습 사진으로 잘 보셨으면 추천 눌러 주셔요~~~ ㅋㅋㅋ ..

.. 요새 이런 모습 어디서 '돈 주고도 볼 수 없'어요~~~ ^^ ..

 

 

.. 새끼들 밥먹는 동안

   다른 어미 제비는 코앞 전깃줄에 앉아 지켜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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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순이 책읽기

 


  이웃 할머니한테서 푸른콩을 얻었다. 오직 우리 집 아이들이 예쁘기 때문에 얻은 콩이다. 그런데 나는 살짝 달리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와 옆지기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한테는 ‘막내아들’이나 ‘막내딸’ 뻘이기에, 당신 아들딸을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 식구를 아껴 주시기도 한다고 느낀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주말을 맞이하면 곧잘 ‘자가용’을 보곤 한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동백마을에는 자가용 있는 집이 한 군데도 없다. 이장님만 짐차 하나를 몰고, 다른 분들은 경운기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아무 기계가 없다. 자가용을 모는 이는 마을 어르신들 아들이거나 딸이다. 곧, 마을 어르신들 아들딸이 어르신들을 뵈러 주말 맞아 찾아올 때에 자가용이 곳곳에 서곤 한다.


  처음 우리 동백마을에 들어올 때에는 둘레 분들이 ‘여기 참 살기 좋은 곳이에요’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 들과 멧자락이 좋고 포근하기 때문인가, 하고만 여겼는데, 지내고 보니, 마을 어르신들 아들딸이 퍽 자주 찾아온다. 아마, 시골마을치고 ‘도시로 떠난 아들딸’이 우리 마을처럼 자주 찾아오는 데는 썩 드물지 않을까 싶다. 어버이날이 낀 저번 달에는 한창 마늘밭 일로 바쁠 때였는데, 온 마을에 ‘차 댈 데가 모자랄 만큼’ 자가용이 득실득실했고, 마늘밭에도 젊은 사람과 어린 아이 얼굴이 자주 보였다.


  이웃 할머니한테서 푸른콩을 얻어 콩보따리를 들고 온 첫째 아이는 저 스스로 콩을 다 까겠다고 한다. 그래서 안 도와주기로 하고 빈 그릇 하나를 내민다. 네가 다 까서 담아 주렴. 첫째 아이는 한참 콩을 깐다. 많이 더디다. 곁에서 꼬투리 몇 내가 까서 담는다. “벼리야, 콩을 깔 때에는 꼬투리를 이렇게 잡고 뒤집으면 금세 잘 깔 수 있어.” 콩까기를 몇 차례 보여주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마당에서 콩을 깐다. “다 깠어요.” 하고 부르며 아이가 들어온다. 그릇을 들여다보는데 얼마 안 된다. “다 깠어?” “네, 다 깠어요.” 마당을 내다 본다. 콩꼬투리가 많이 남았다. 1/20도 안 깐 듯하다. 아마 이만큼 까며 퍽 힘들었는지 모른다. 잘 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콩순이가 깐 푸른콩으로 아침에 밥을 지어 다 함께 먹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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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개구리 (도서관일기 2012.6.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치우면서 책꽂이 자리를 잡기로 한다. 어쨌든 바닥을 쓸고 책꽂이를 놓는다. 마지막 칸에 남은 걸상은 한쪽 벽에 높이 쌓는다. 내 것으로 사들인 옛 학교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옛 학교가 문을 닫으며 남긴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해서 한쪽 벽에 쌓는다.


  먼지를 잔뜩 마시며 일한다. 오늘은 아이들 안 데리고 와서 혼자 일하는데, 외려 잘 한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까지 이 먼지를 마시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며칠쯤 혼자 먼지를 실컷 마시며 치우고 나면, 이제 아이들이 와서 뒹굴거나 기어다녀도 이럭저럭 괜찮을 만큼 될 테지.


  면내 철물점에서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랑 낫을 장만했다. 학교 나무를 우리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지만, 등나무 가지와 덩쿨이 너무 뒤죽박죽 뻗기에, 때때로 이 가지를 치고 잘라야겠다고 생각한다.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조금씩 치우기로 하니, 이제 어느 만큼 꼴을 잡는다 하겠지. 올여름이 다 갈 무렵이면 사람들을 부를 만큼 갈무리 마칠 수 있을까. 오늘은 책꽂이며 이것저것 사진으로 찍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세 시간 즈음 쉴새없이 일하다가 땀에 젖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무렵, 빗물 새는 벽 한쪽에 조그마한 푸른개구리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다. 그래, 네 모습은 사진으로 찍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살갗으로 느끼는 이야기만 스스로 알아챌 수 있다.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때에만 책 한 줄 내 삶으로 스며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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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걸상 책읽기

 


  다섯 살 아이는 부엌 개수대에서 걸상을 대지 않으면 까치발을 해야 한다. 걸상 하나를 대면 물을 켤 수 없다. 걸상 둘을 대니 물을 마음껏 켜거나 끌 수 있다. 다섯 살 아이는 제 손과 머리를 써서 슬기롭게 논다. 아버지가 늘 하는 대로 설거지 놀이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날마다 새롭게 놀이를 누린다. 나는 아이한테 딱히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살아가며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면서 익힌다. 아이는 어디에선가 걸상을 디디고 올라가며 무언가 꺼내는 모습을 으레 보았을 테고, 하나로 안 되면 둘을 받치면 되는 줄 문득 깨달았으리라. 아이는 아이 키보다 훨씬 높은 사다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오르내린다. 이 모습은 아마 ‘삐삐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아홉 살에서 열 살을 맞이하는 말괄량이 삐삐는 높다란 사다리이든 지붕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삐삐가 두려워 할 일이란 한 가지도 없다. 아니, 꼭 한 가지 있다. 삐삐한테는 사랑스러우면서 좋은 동무인 토미와 아네카하고 헤어질 뻔한 일을 걱정했다. 해적이 토미와 아네카를 붙들었을 때에도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삐삐 스스로 이 실타래를 슬기롭게 풀 테니까. 다섯 살 아이도 다섯 살 아이 깜냥껏 제 삶을 제 나름대로 푼다. 나도 아이가 놓은 걸상 도움을 받아서, 높은 데 있는 무언가를 꺼내기도 한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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