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앞에서 책읽기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나면 아침밥 차려야겠다고 천천히 생각한다. 풀물을 짤 만한 겨를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고, 밥과 국을 다 마련하면서 둘째 죽까지 마무리짓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기다릴까 하고 살핀다. 늘 어슷비슷하다 싶은 푸성귀로 밥을 차리면서 늘 같은 밥상을 할 수는 없다고 여겨, 조금씩 달리 마련해 보는데, 밥상을 차리기까지 두 시간쯤 훌쩍 지나가지만, 밥상 앞에 앉아 수저를 들면 십 분이나 이십 분쯤 지나면 다 먹기 일쑤이다. 밥상을 받는 사람은 밥상이 놓이기까지 어떤 땀과 품과 겨를을 들여야 하는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집에서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는 사람과, 가게에서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는 사람은, 저마다 어떤 넋과 매무새가 될까. 집에서든 가게에서든 밥상을 차리는 품과 땀과 겨를은 다르지 않다. 가게에서 더 금세 밥상을 차리는 듯하다면, 그만큼 미리 손질하는 품과 땀과 겨를이 있었을 테고, 밥상을 차리고 나서 ‘밥손이 못 보는 자리’에서 뒤를 치우는 품과 땀과 겨를을 많이 들여야 하리라.
내가 차린 밥상을 아주 가끔 사진으로 담는다. 나 스스로 이 밥상을 사진으로 찍지 않으면 그날그날 밥상을 차린 줄 생각조차 못 하리라 느낀다. 곰곰이 돌이키면, 내 어머니가 차리던 밥상을 환하게 떠올리자면, 따로 사진으로 찍든 밥상을 찬찬히 살피면서 마음으로 새기든 해야 한다. 스스로 밥상을 차리면서 내 어머니가 어떻게 밥상을 꾸몄는가를 되살려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으레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맛스럽고 멋스럽다는 밥상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런데, 막상 이녁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린 수수하거나 투박한 밥상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수하거나 투박한 밥상을, 날마다 으레 함께 누리는 밥상을, 오랜 옛날부터 죽 대물림하면서 차리던 밥상을, 기쁘고 새롭게 맞아들이며 사진으로도 찍고 마음으로도 찍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임금님 푸짐한 밥상도 밥상이요, 니어링 부부 수수한 밥상도 밥상이지만, 여느 살림집 여느 밥상도 밥상이다. 삶을 살리고 사랑한 밥상은 아직 역사책에도 문화책에도 요리책에도 사진책에도 문학책에도 실리는 법이 없다. (4345.6.18.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