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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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6.

까칠읽기 9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2016.10.14.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을 읽으면서 지나간 1982년을 떠올린다. 나는 이해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갔고, 윗내기인 1974년에 태어난 언니하고 1975년에 태어난 또래가 확 다를 뿐 아니라, 동생인 1976년 아이들도 훅 다른 줄 느꼈다.


  우리나라만큼 나라가 와장창 뒤엎히며 바뀌는 곳이 없다. 나나 언니는 한두 시간뿐 아니라 서너 시간쯤 가볍게 걷던 길이 어느덧 동생들한테는 ‘시내버스’로 차츰 바뀌고, 1982년에 태어난 까마득한 동생이 어린배움터에 들어갈 즈음에는 둘레에 ‘자가용’을 ‘프라이드’부터 장만하는 이웃이 조금씩 늘었다. 동생이 늘어날수록 ‘자가용 + 아파트’가 무섭도록 늘더니, 어느새 작은 골목집에서 사는 동생을 웬만해서는 못 만났다.


  우리 집 곁님은 1980년에 태어났고, 곁님 또래뿐 아니라 내 또래도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듯 ‘시내버스에서 타고내릴 적에 으스스한 사내나 아저씨’가 따라붙는 소름돋는 일을 겪었다. 그런데 이 일은 순이뿐 아니라 돌이도 똑같이 겪었다. 사람잡이(인신매매)와 양아치(깡패)는 순이만 가리지 않았다. 엉큼질(성추행)을 저지르는 놈은 순이돌이 모두한테 저지른다. 엉큼질을 겪은 돌이가 입꾹닫을 해서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싸움터(군대)뿐 아니라 배움터와 마을과 여느 살림집에서도 ‘돌이를 괴롭히는 엉큼짓’이 숱하다.


  《82년생 김지영》은 얼핏 차분하게 잘 쓴 글 같으나, 곰곰이 새길수록 어쩐지 “이 나라에서 사내는 느긋하게 잘 살았잖아?” 하고 비웃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순이한테 아늑한 터전”이 아니기는 한데, “돌이한테도 나란히 아늑하지 않은 터전”이다. 힘꾼과 이름꾼과 돈꾼이 아니면 모든 순이돌이가 고단하고 괴롭고 다치고 아플 뿐 아니라 목숨까지 쉽게 빼앗기는 불수렁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래도 순이와 돌이 삶길을 나란히 담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 그나마 ‘아픈순이’는 여러모로 멍울을 밝히거나 털어놓는 수다라도 하는데, ‘아픈돌이’는 오히려 웅크리면서 입을 꿰매고 마니까, 글님으로서는 ‘몰랐’을 수 있다. 1982년에 들어간 어린배움터에서 날마다 겪은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선생님, 왜 남자만 더 세게 많이 때려요? 여자도 똑같이 세게 많이 때려 주세요!” 하고 외치는 동무가 꽤 있었다. 철없는 사내는 ‘학교폭력’이라는 대목을 깨닫고서 없애도록 힘쓰기보다는 “너희(순이)도 좀 똑같이 얻어터져 봐!” 하는 부아를 내기 일쑤였다.


  똑같이 숙제를 안 했거나, 지각·결석을 했거나, 돈(육성회비·방위성금·갖가지 회비)을 안 냈거나, 크리스마스실을 안 샀거나, 가을에 국화를 안 샀거나, 폐품을 안 냈거나, ‘학교에 내는 쌀’을 안 가져오면, 사내가 열 대를 맞을 적에 가시내는 한두 대를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뺨을 맞으면 가시내는 손바닥을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엉덩이와 허벅지에 밀대자루로 피멍이 들도록 맞으면 가시내는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운동장 열 바퀴를 돌면 가시내는 운동장 한 바퀴를 돌거나 구경을 했다. 안 맞거나 구경을 하는 적잖은 가시내는 얻어터지거나 운동장을 도는 사내한테 혀를 내밀거나 놀리기 일쑤였다. 이러다 보니, 어린배움터 여섯 해 내내 순이돌이는 날마다 힘겨루기에 쌈박질이었다.


  1994년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겪은 여러 일을 돌아본다. 똑같은 술자리를 마칠 즈음, 여학생은 선배들이 택시를 태워서 따로 한 사람씩 집에 보낸다. 남학생은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이루거나, 동아리방이나 과방에서 덜덜 떨면서 서로 부둥켜안으며 새벽이 밝기를 기다렸다. 또는 밤을 새워 집까지 걸어갔다. 나는 처음에는 서울 이문동에서 인천 연수동까지 밤새워서 걷다가, 나중에는 그냥 한뎃잠을 이루면서 덜덜 떨다가 새벽 첫 전철로 집으로 얼른 돌아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학교로 왔다.


  이 나라를 버티는 나라힘(국가권력)을 되새겨 본다. 나라(정부·기득권)는 자꾸 순이돌이가 서로 다투면서 스스로 갈라치기를 하라고 내모는구나 싶다. 왜 순이돌이가 다투거나 싸워야 하는가? 둘은 서로 다르게 짓밟히고 억눌리고 시달리고 들볶이면서, 서로 다르게 피멍이 들 뿐 아니라 목숨을 빼앗긴 동무와 언니와 동생이 있는, 서로 다르지만 나란히 아픈 사이 아닌가?


  누가 더 아프거나 고달팠다고 말할 일이란 없다. 서로 어떻게 달리 아프고 고달팠는지 흉허물없이 털어놓으면서 서로 토닥일 수 있는 길을 바라보고 열고 틔울 노릇이라고 본다.


  이곳뿐 아니라 이 별은, 딸한테도 아들한테도 서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터전으로 거듭날 노릇이어야지 싶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살림꾼으로서 새롭게 일어설 노릇이어야지 싶다.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할까? 나라일은 누가 맡아야 할까? 마을일은 누가 해야 할까? 이 별을 사랑하는 길은 뭘까? 집안일은 순이도 돌이도 함께 맡을 노릇이요, 둘 모두 “모든 집안일을 살뜰히 건사할 줄 알아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글님이 ‘새길’을 바라보려는 눈이었다면 줄거리나 글결이 아주 달랐으리라 본다. 1982년에도 2022년에도 ‘지영’이만 태어나지 않았고, ‘지영’은 순이한테뿐 아니라 돌이한테도 흔한 이름이다. “두 지영 씨”가 있는데, “따돌림받은 다른 지영 씨”를 너무 모르려 하거나 아예 등돌려 버린다면, 어깨동무가 없는 길이라면, 그곳에서는 ‘사랑’뿐 아니라 ‘기쁨’도 ‘즐거움’도 ‘살림’도 ‘꿈’도 ‘씨앗’도 없는, 오직 힘(권력)·돈(재산)·이름(명예)만 드날릴 뿐이다.


ㅅㄴㄹ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 김지영 씨가 딸을 도맡는다

→ 김지영 씨가 딸을 혼자 돌본다

9쪽


이건 또 무슨 유체 이탈 화법이야

→ 아니 또 무슨 넋나간 말씨야

→ 또 무슨 얼나간 소리야

12쪽


어떻게 그런 끔찍한 주사가 있을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 어떻게 그리 끔찍히 술지랄일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 어떻게 그리 곤드레할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14쪽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얼음장에 온집안이 앉은 듯했다

→ 얼음판에 온사람이 앉은 듯했다

17쪽


안 그래도 짧은 스커트를 최대한 걷어 올리고

→ 안 그래도 짧은 치마를 더 걷어올리고

35쪽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 그동안 있던 일을 얼른 되짚어 봤지만

→ 그동안을 훅 되짚어 봤지만

→ 여태 겪은 일을 휙 되짚어 봤지만

41쪽


오래된 주택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재래식과 현대식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옛틀과 새틀이 섞였다

→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예스러우면서 새로웠다

48쪽


김지영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 김지영 씨는 낫다

→ 김지영 씨는 좀 낫다

64쪽


행인 한 명 지나가지 않았고

→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

→ 한 사람도 안 지나갔고

67쪽


두 사람 사이에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남아 있던 어느 날

→ 두 사람 사이가 아직 쌀쌀하던 어느 날

→ 두 사람이 그대로 차갑던 어느 날

→ 둘이 아직 싸늘히 지내던 어느 날 

77쪽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불안감을 단 한 마디로 잠재웠다

→ 어머니는 김지영 씨 걱정을 딱 한 마디로 잠재웠다

→ 어머니는 걱정하는 김지영씨를 한 마디로 잠재웠다

79쪽


고향에 내려가 1년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 집에 가서 한 해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85쪽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 꽃이니 혼꽃이니 하면서

→ 꽃이니 홀꽃이니 하면서

91쪽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 술을 즐기지만

→ 술을 즐겨 마시지만

93쪽


귀를 살짝 덮는 길이의 단발머리를 하고

→ 귀를 살짝 덮는 머리를 하고

→ 귀밑머리를 하고

101쪽


대답 하나가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 말 하나로 붙거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 한마디 때문에 바뀌지는 않는다고

102쪽


정대현 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 정대현 씨 말에 불끈하지 않고

→ 정대현 씨한테 바글대지 않고

137쪽


순진한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 철없는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 몰라서 그랬는지

160쪽


김지영 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다

→ 김지영 씨가 살아온 날을 이쯤 추스를 수 있다

→ 김지영 씨가 보낸 나날을 이렇게 적어 본다

→ 김지영 씨 발자국을 얼추 이렇게 적어 본다

169쪽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 김지영 씨도 그러기를 바란다

→ 김지영 씨도 그러기를 빈다

174쪽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딸이 살아갈 나라는 제가 살아온 나라보다 나은 곳이어야 하고, 나으리라 믿고, 낫도록 애씁니다

→ 딸이 살아갈 곳은 제가 살아온 곳보다 나아야 하고, 나으리라 믿고, 낫도록 힘씁니다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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