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토마토> 2023년 8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3



여름을 밝히는 자귀나무가 꽃을 피우고, 풀밭에는 까마중이 흰꽃을 피우다가 지면서 어느새 푸릇푸릇 동글알을 맺는다. 매미가 노래하고 빗줄기는 더없이 시원하다. 여름철을 손바닥에 얹으며 하늘빛을 읽는다.



그림잎

여느 어른이라면 익숙한 대로 그냥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 곁에 아이가 있다면 ‘어른한테는 익숙하거나 쉬워도 아이한테는 낯설거나 어려운 말’이 수두룩한 줄 알기에, 말을 바꾸거나 새말을 짓는다. ‘엽서’는 여느 어른이라면 안 어렵고 익숙할 테지. 그러나 어린이를 헤아려 보자. ‘잎(葉) + 글(書)’이란 얼개이다. 수수하게 ‘잎글·잎종이’라 할 만하다. 그림을 넣으면 ‘그림잎·그림잎글’이다.


그림잎 (그림 + 잎) : 한쪽에는 그림·빛꽃(사진)을 담고, 다른 한쪽에는 이야기를 적도록 꾸민 조그마한 종이로, 날개꽃(우표)을 붙여서 가볍게 띄울 수 있다. 나무가 맺는 잎이 바람·물결을 타고서 가볍게 멀리 나아가듯, 조그마한 종이에 그림·글·이야기를 엮어서 가볍게 띄우는 종이. (= 그림잎글. ← 그림엽서-葉書)

잎글 (잎 + 글. = 잎쪽·잎종이. ← 엽서(葉書) : 1. 값을 미리 치러 놓은 조그마한 글월종이. 보내는이·받는이를 적고 뒤쪽이나 한켠에 이야기를 적어서 곧바로 우체통에 넣어서 띄울 수 있다. 2. 한쪽에는 그림·빛꽃(사진)을 담고, 다른 한쪽에는 이야기를 적도록 꾸민 조그마한 종이로, 날개꽃(우표)을 붙여서 가볍게 띄울 수 있다. 나무가 맺는 잎이 바람·물결을 타고서 가볍게 멀리 나아가듯, 조그마한 종이에 그림·글·이야기를 엮어서 가볍게 띄우는 종이.



하늘삯

배를 탈 적에 ‘뱃삯’을 치른다. 나루터에서는 ‘나룻삯’을 낸다. 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하늘을 날 적에는 ‘하늘삯’을 치른다고 할 만하다. 바다에서는 ‘바닷길’이요, 하늘에서는 ‘하늘길’이니, ‘바닷삯·하늘삯’처럼 새말을 지을 수 있다.


하늘삯 (하늘 + 삯) : 1. 하늘을 날면서 내는 삯. 비행기를 타려면 내야 하는 돈. 2. 돌아다니거나 무엇을 탈 적에 드는 삯. (← 항공료, 경비, 여비, 차비車費, 노자路資, 노잣돈, 교통비, 통행료, 운임비, 운임료)



지는꽃

우리 나이를 꽃으로 견주면서 돌아본다면, 어린이는 봉긋봉긋 꽃망울일 테고, 젊은이는 활짝 벌어진 꽃송이일 테고, 늙은이는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일 테지. 시드는 꽃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꽤 있으나, 꽃이 져야 비로소 씨앗을 맺고 열매가 굵다. 꽃이 지지 않으면 씨앗도 열매도 없다. 쌀밥도 볍씨인 줄 알아야 하고, 벼꽃이 지기에 맺는 낟알인 풀열매이다. “늙은 나이”를 꽃에 빗대어 ‘지는꽃’이라 해볼 만하다. ‘진다’기보다 ‘물려주’는 ‘꽃’이라는 뜻이다.


지는꽃 (지다 + -는 + 꽃) : 한창 피어서 맑고 밝은 내음을 나누다가 이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꽃. 눈부신 젊음을 뒷사람한테 물려주고서 새롭게 피어날 살림살이를 씨앗으로 남기는 철든 숨결로 나아가려는 나이. (= 지는 나이. ← 노년, 낙화, 은퇴자, 쇠락, 퇴물, 퇴락, 퇴색, 고물古物, 폐물, 폐품, 낙마자, 낙향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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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


손바닥 못지않게 발바닥도 땅바닥에 대면 작다. 그런데 발바닥으로 한 걸음씩 디디면서 마을을 느끼고 골목을 느끼다가 숲에 깃들어 해바람비를 맞이하고 보면, “아! 모든 말과 마음은 숲에서 왔네!” 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나래꽃

‘우표(郵票)’는 일본이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퍼뜨렸다. 우리나라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만들거나 짜거나 짓기 어렵던, 아니 모조리 이웃나라한테서 받아들여서 써야 하던 지난날이었으니 어쩔 길이 없었으리라. 일본사람이 지어서 퍼뜨렸기에 안 써야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본을 안 거치고서 ‘postage stamp’나 ‘stamp’를 곧바로 받아들여서 나누려 했다면 어떤 이름을 지었을까? 아무래도 1884년에는 한자를 썼을 만하지만, 글월을 글자루에 담아 띄울 적에 “훨훨 날아간다”는 뜻으로 ‘나래·날개’ 같은 낱말을 살려썼을 수 있다. 글월을 ‘보내다’라고만 하지 않고 ‘띄우다’라고도 하기에, ‘띄우다 = 날려서 가다’라는 얼거리를 돌아볼 만하다. 글월을 띄우는 값을 미리 치러서 붙이는 종이는 작다. 테두리가 오돌토돌하다. “작은 종이꽃”으로 여길 만하다. “날아가는 작은 종이꽃”이기에 ‘날개꽃·나래꽃’처럼 새롭게 가리킬 수 있다. 어느덧 ‘우표’를 쓴 지 한참 지났어도, 우리 나름대로 새길을 찾는 새말로 새꽃을 피울 만하다.


날개꽃 (날개 + 꽃) : 글월을 부칠 적에 붙이는 작은 종이로, 미리 값을 치른다. “글월을 띄우려고 날아가는 작은 종이꽃”이다. (= 나래꽃. ← 우표郵票)

날개삯 (날개 + 삯) : 1. 하늘을 날아서 다른 곳으로 갈 적에 내는 돈. 날개(비행기)를 타고서 움직이며 내는 돈·길삯. (= 나래삯. ← 비행기표 가격, 항공운임비) 2. 글월을 부칠 적에 글자루 겉에 붙이는 작은 종이에 치르는 돈. (= 나래삯. ← 우편요금, 우편료, 우편비, 우편비용)



천바구니

온누리가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닐자루를 안 쓰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면 온누리뿐 아니라 우리 넋을 가꾸는 바탕인 우리말도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푸른말’을 여미고 ‘숲말’을 사랑하면서 ‘푸른바구니·푸른자루’나 ‘숲바구니·숲자루’를 쓸 만하다. ‘풀빛바구니·풀빛자루’는 천으로 짜거나 짓는다. 그래서 ‘천바구니’요 ‘천자루’이다.


천바구니 (천 + 바구니) : 천으로 짜거나 짓거나 마련하여 여러 가지를 담는 살림. 바구니나 자루 같은 모습으로 짜거나 짓거나 마련한다. (= 천자루·천주머니·푸른바구니·푸른자루·푸른주머니·풀빛바구니·풀빛자루·풀빛주머니·숲바구니·숲자루·숲주머니. ← 에코백, 친환경가방, 푸대負袋, 부대負袋, 포包, 포대包袋, 포대布帶, 마대麻袋)



눈밥

예전에는 북녘에서 ‘얼음보숭이’라 흔히 썼다고 하지만, 요새는 북녘도 ‘아이스크림’이란 영어나 ‘빙수’라는 한자말을 그냥 쓴다고도 한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보숭이’나 ‘-고물’을 굳이 뒤에 안 붙이고 ‘얼음’이라고만 단출히 가리킬 만하다. 그리고, 얼음을 마치 눈송이처럼 갈아서 먹는다면, 또는 얼린 고물을 고스란히 누린다고 할 적에도, ‘눈밥’처럼 새롭게 바라보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맛나게 먹는다는 뜻으로 사이에 ‘-꽃’을 넣어 ‘눈꽃밥’이라 할 수 있다. ‘얼음꽃’을 먹는다고 해도 어울릴 테고.


눈밥 (눈 + 밥) : 얼려서 눈처럼 누리는 먹을거리. 달콤한 고물을 얹거나 섞어서 누리기도 한다. (= 눈송이밥·눈꽃밥·얼음·얼음밥·얼음꽃·얼음고물·얼음보숭이. ← 빙수, 아이스크림)


ㅅㄴㄹ


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7월호에 실었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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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



손바닥은 땅바닥에 대면 작다. 그러나 손바닥은 개미한테는 넓고, 나비가 내려앉기에도 넉넉하고, 풀씨를 그득 받을 만큼 넓다. 우리말을 꼭 이 손바닥만큼 생각해 보면 하루가 새로울 수 있을까?



닷새일

지난날에는 이레 가운데 하루조차 안 쉬고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이랑 한가위조차 안 쉬던 분도 많았다. 이분들은 늘 ‘이레일’을 한 셈이다. 이러다가 ‘엿새일’로 바뀌고 ‘닷새일’로 자리를 잡는데, ‘나흘일’을 하는 곳도 꽤 늘었다. 다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늘 이레일을 한다. 낱말책을 여미는 일꾼도 언제나 이레일을 한다. 시골에서 흙살림을 하는 이웃도 노상 이레일을 한다.


나흘일 (나흘 + 일) : 이레 가운데 나흘을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길·틀·얼개·자리. (= 나흘살림. ← 주4일근무, 주4일근무제, 주4일제, 주4일노동, 사일제근무, 사일제노동)

닷새일 (닷새 + 일) : 이레 가운데 닷새를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길·틀·얼개·자리. (= 닷새살림. ← 주5일근무, 주5일근무제, 주5일제, 주5일노동, 오일제근무, 오일제노동)

이레일 (이레 + 일) : 이레 내내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길·틀·얼개·자리. (= 이레살림. ← 주7일근무, 주7일근무제, 주7일제, 주7일노동, 칠일제근무, 칠일제노동)



하루벌이

일하고 또 일하지만 가난한 살림이 있다. 하루하루 땀흘리는데 땀값을 제대로 누리지 못 하는 살림이 있다. 참으로 ‘가난벌이’요 ‘굶는벌이’로 여길 만하다. 하루일꾼은 하루일이 있더라도 일거리가 잇지 않으면 어느새 가난하다. 하루팔이란, 하루를 품팔이를 하지만 앞날이 안 보이는 길이다. 하루벌이란, 하루는 벌되 이튿날은 벌잇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길이다.


하루벌이 (하루 + 벌다 + -이) : 1. 하루 일한 만큼 돈·삯·값을 받는 길이나 자리. 하루를 일하고서 받는 돈·삯·값. (= 하루팔이·하루삯꾼·하루일꾼·날삯꾼·날품팔이. ← 일수日收, 일수입, 일용직, 일용 노동자, 비정규직) 2. 부지런히·힘껏 일하지만 가난한 살림이나 얼개나 모습. (= 하루팔이·하루삯꾼·하루일꾼·가난팔이·가난벌이·가난일꾼·가난삯꾼·굶는벌이·굶는일꾼·굶는삯꾼. ←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 생고생)



봄맞이새

그대로 눌러앉으니 ‘텃새’이고, 철마다 보금자리를 바꾸니 ‘철새’이다. 새는 늘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기에 ‘텃새·철새’는 수수하게 새를 바라보면서 아끼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 낱말을 얄궂게 빗대는 자리에 으레 쓰더라. 그러면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말을 지을 수 있다. 봄철새는 ‘봄맞이새’로, 겨울철새는 ‘겨울맞이새’라 할 만하다. 봄맞이꽃처럼 이름을 붙이고 겨울눈처럼 이름을 헤아린다.


봄맞이새 (봄 + 맞이 + 새) : 봄을 맞이할 즈음이나, 봄부터 여름 사이에 찾아오는 새. 봄을 누리려고 찾아와서 여름까지 누리다가 가을 무렵 돌아가는 새. (= 봄새·봄철새. ← 춘조)


ㅅㄴㄹ


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6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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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54. 아직, 그대로, 내내, 자꾸, 동동동



  우리가 그리지 못할 말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건사하고 쓰고 누리는 삶이자 살림이라면 모두 말로 담아낼 만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말로 깔끔하고 알맞고 사랑스럽게 이름을 붙이든, 우리말로 미처 못 붙이고서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영어 이름을 그냥 쓰든, 모든 삶과 살림을 ‘말’로 나타냅니다.


  일본말이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중국말이란,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영어란, 영어를 쓰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우리말(한국말)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이에요.


  경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기에 경상말이고,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서 전라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고장하고 고을하고 마을하고 집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누가 시키기에 외워서 쓰던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고 살림하고 사랑하다 보니 저절로 마음에서 피어나 즐겁게 생각하면서 지은 말이거든요.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스스로 사랑으로 살림을 가꾸려고 생각한다면, 모든 살림을 ‘우리말(전라말이든 경상말이든 서울말이든 충청말이든 제주말이든)’로 짓기 마련입니다. 즐거움도 사랑도 잊거나 등돌린 채 스스로 살림을 가꾸거나 지으려는 생각을 안 한다면, 우리는 예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우리말을 스스로 짓는 눈빛하고 넋’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한자말 ‘계속(繼續)’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 강의의 계속이다 → 지난 이야기와 잇닿는다

 계속 쏟아지는 폭우 → 쉬잖고 쏟아지는 비 / 줄기차게 퍼붓는 비

 열흘 동안 계속 열렸다 → 열흘 동안 열렸다 / 열흘 내리 열렸다

 계속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 → 나날이 줄어든다 / 자꾸 준다


  여느 낱말책은 ‘계속(繼續)’을 “1.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 2. 끊어졌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 나감 3. 끊이지 않고 잇따라”로 풀이합니다. 이는 “끊이지 않고”나 ‘잇따라’로 고쳐서 쓰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밖에 어떻게 다루면 즐겁고 알맞을는지 차곡차곡 펼쳐 볼게요.


 꾸준하다·줄기차다·죽·쭉·줄곧·줄잇다·줄줄이

 자꾸·내리·내처·내내·내·내도록·그동안·동안


  어제도 오늘도 꾸준합니다. 안 지치는지 줄기찹니다. 죽 해왔고 쭉쭉 뻗습니다. 줄을 잇듯이, 줄줄이 흐르듯, 줄곧 했는걸요. 했는데 자꾸 합니다. 아침부터 내리 합니다. 저녁까지 내처 했어요. 오늘도 하루 내내 하는데, 냇물처럼 내 하는군요. 밤새도록 하듯 내도록 하고, 그동안 했어요.


 밤낮·밤낮없다·낮밤·낮밤으로

 꼬박꼬박·곰비임비·걸어가다·거침없이·막힘없이


  밤이며 낮이며 없이 합니다. 밤낮으로 또는 낮밤으로 하고, 밤낮없이 또는 낮밤없이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꼬박꼬박 할까요. 곰비임비 하더니 잘 걸어갑니다. 거침없는 너울 같고, 막힘없는 바람 같아요.


 그냥·그렇게·곧게·곧바로·고스란히

 늘·언제나·노상·언제까지나


  그냥, 그냥그냥 하는군요. 그렇게 하다 보니 곧게 하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마음이 되어 고스란히 합니다. 안 하는 때가 없으니 늘 합니다. 오늘도 어제도 언제나 합니다. 말려도 안 듣고 노상 하니, 멈출 때를 알 길이 없이 언제까지나 합니다.


 끊임없다·끈덕지다·끈질기다·끝없다·가없다

 질질·지며리·좔좔·꼬리를 물다·술술·철철


  끊이지 않네요. 끈덕지군요. 아니, 끈질길까요. 끊이지 않으니 끝이 없어요. 가없는 하늘마냥 하네요. 그러나 질질 끄는 듯하네요. 다시 가다듬어 지며리 하고, 물결처럼 좔좔 흐르듯 해요. 꼬리를 물듯 하고, 가루가 솨르르 쏟아지듯 술술 하고, 샘물이 솟듯 철철 터져나오듯이 합니다.


 퍼붓다·빗발치다·쏟아지다·넘치다

 그대로·이대로·있는 그대로·저대로


  함박비가 퍼붓듯 합니다. 빗발이 치는데 끊어질 틈이 없어요. 한꺼번에 쏟아지듯 하고, 찰랑찰랑 넘치는 하루입니다. 여태 했으니 그대로 갈까요. 이제껏 했으니 이대로 가지요. 있는 그대로 둡니다. 저대로 잘 가겠지요.


 사뭇·여태·이제껏·새록새록·아직·씩씩하다

 더·좀더·또·또다시·-다가·다시


  사뭇 새삼스럽게 하고, 여태 해요. 이제껏 두고두고 했으며, 오늘은 새록새록 떠올리며 합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아직 하네요.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씩씩하게 가네요. 더 해볼까요. 좀더 하면 어떤가요. 또 하고 또다시 한다면, 하다가 지치지 말고 다시 하면 새롭습니다.


 이어가다·잇다·잇달다·잇닿다·잇대다·잇따라

 쉬잖다·쉴새없다·숨돌릴틈없다·숨쉴틈없다


  이어가는 삶입니다. 잇는 끈입니다. 잇달아 노래하고, 잇닿는 마음이에요. 잇대는 손길이 반갑고, 잇따라 가는 동무가 즐겁습니다. 쉬어도 좋고, 쉬잖고 해도 좋습니다. 쉴새없이 가면 바쁠 테지만, 웃고 노래하면서 한다면 숨돌릴틈이 없어도 기뻐요.


 재잘거리다·조잘거리다·동동거리다·종종거리다·중얼중얼·지저귀다

 한결같다·한꽃같다


  참새마냥 끝없이 재잘재잘 조잘조잘입니다. 내내 동동거리고 내처 종종거리더니 지절지절 지저귀듯이 잇습니다. 그래요. 흩어진 여럿을 가만가만 모두는구나 싶은, 한결같은 마음씨입니다. 한결같이 눈부시니 한꽃같이 곱네요.


  이럭저럭 여러 낱말을 혀에 얹어 봅니다. 이 숱한 우리말은 참으로 오래도록 ‘계속’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두루 쓰던 살림입니다. 한자말이나 바깥말을 쓰기에 나쁠 까닭은 없되, 다 다른 자리에 다 다른 숨결하고 마음을 드러내던 말빛이 자꾸 사그라들어요. ‘사라지다·사그라들다·스러지다·수그러들다’는 비슷하면서 다른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팽개치면서 서울말에 너무 쏠려 버렸지 싶습니다. 사투리란 삶말이요 살림말이자 사랑말입니다. 투박하면서 투실합니다. 다 다른 삶이란 다 다른 눈빛으로 투박하면서 투실한 오늘을 그리는 튼튼하고 든든한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꾸준히 흐르는 냇물다운 결을 담은 ‘내내·내도록’이란 수수한 말 한 마디야말로 두고두고 찬찬히 우리 넋을 살찌워 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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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숲에서 짓는 글살림

53. 수수밥



  요즘에는 거의 들을 일이 없으나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씨 가운데 ‘기술입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좁고 밑감(자원)이 적지만 사람은 많으니 저마다 ‘솜씨·재주·힘’을 키워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면서, 어린배움터에서 뭇 길잡이가 ‘기술입국’을 참 자주 읊었는데, 2020년에 우리말로 나온 어느 일본 만화책에서 이 말씨를 새삼스레 보았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합니다만, 설마 싶은 웬만한 한자말은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습니다. ‘기술입국’은 섬나라인 일본이 스스로 서려는 뜻으로 지은 말씨더군요.


  아홉열 살이든 열두어 살이든 아이들이 ‘기술입국’이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까요? 어른이라면 다 알아들을까요? 일본 말씨를 들여오더라도 ‘솜씨나라·재주나라’처럼 옮길 생각은 왜 안 했을까요?


사람들에겐 다양한 특징이 있고

→ 사람들은 다 다르고

→ 사람들은 모두 다른 빛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빛이 있고


  한자말 ‘특징’을 낱말책에서 뜻을 살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싶습니다만, 이러다 보니 이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특징 :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이고, ‘특별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가리킨다는데 ‘구별 : 차이가 남’이요, ‘차이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이라지요. 간추리자면 ‘특빙·특별·구별·차이 = 다르다’입니다. 우리말 ‘다르다’를 제대로 가릴 줄 모르면서 애먼 한자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셈이니 “다양한 특징” 같은 겹말을 쓰고도 겹말인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수수하게 ‘다르다’라 하면 되고, ‘남다르다’나 ‘빛다르다’라 할 만하고, ‘도드라지다·두드러지다’나 ‘돋보이다·도두보이다’라 할 만해요. 꾸밈말을 붙여 “모두 다르다·저마다 다르다”나 “참 다르다·무척 다르다”라 해도 될 테지요.


  부치거나 튀길 적에 ‘기름’을 씁니다. 한자로는 ‘유(油)’라 하는데, 기름이 기름인 까닭을 생각하거나 가르치는 어른은 드물어요. ‘기르다’에서 온 ‘기름’인데 말이지요. ‘포도씨기름’이든 ‘콩기름’이든 ‘돌기름(석탄)’이든, 살점이 알뜰히 붙은 열매로 나아가기에 고맙게 얻습니다. 수수한 말씨 하나이지만 어느 말이 어떤 뿌리로 퍼지는가를 짚으면서 알맞게 가려서 쓰고 널리 살려서 쓰는 길을 밝힌다면 누구보다 아이들이 오늘 우리 삶을 슬기롭게 배우기 마련입니다.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소식이었다

→ 하루한끼만 조금 먹었다


  하루에 한끼를 먹는다면 ‘하루한끼’라 하면 됩니다. 이 말씨가 낱말책(국어사전)에 없으면 우리가 먼저 스스로 즐겁게 써서 퍼뜨리면 됩니다. 하루에 두끼를 누리면 ‘하루두끼’로, 하루에 세끼를 누리면 ‘하루세끼’처럼 새말을 알맞게 퍼뜨리면 되어요.


  이 땅에서 삶을 짓기에 이 땅에서 비롯한 말씨를 가만히 추슬러서 말을 짓습니다. 굳이 뛰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훌륭하게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생각하면서 수수하게 말합니다. 투박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투박하게 사랑할 말씨를 가다듬습니다.


  조금 먹으니 “조금 먹는다”고 말해요. 구태여 ‘소식’이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많이 먹으니 “많이 먹는다”고 말합니다. 굳이 ‘대식’이란 한자말은 안 써도 됩니다. 밥을 많이 먹으니 ‘밥보·밥꾼·밥꾸러기’입니다. ‘밥돌이·밥순이’라 해도 어울려요. 때로는 ‘밥고래·밥깨비’처럼 재미나게 쓸 만합니다.


  그리고 여느 사람이 먹는 여느 밥자리란 ‘한식’도 ‘가정식’도 아닌 ‘수수밥’이나 ‘조촐밥’일 테지요. ‘단출밥’이나 ‘단촐밥’이라 해도 되어요. 한글로는 ‘소식’이라 적으나 한자가 다른 ‘소식(消息)’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이 한자말은 그냥 쓰는 길이 낫다고 하지만, ‘알리다·알려주다·알림’이나 ‘알림글’로 풀어낼 만합니다. ‘다른일·딴일·새일’이나 ‘목소리·말·말씀·얘기·이야기’로 풀어내어도 돼요. 자리를 살피고 때를 헤아리면 자리랑 때에 맞는 말씨가 하나둘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말이 없기에 “말이 없다”고 해요. ‘무소식’이 아닙니다. 말이 없으니 ‘조용하다’고 하지요. 조용하니까 잘 지내나 보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닙니다. 말이 없기에 걱정이 없고, 조용하니까 잘 있습니다.


 귀신 같은 솜씨 → 빼어나다 . 솜씨있다


  언제부터인가 퍼진 “귀신 같은 솜씨”는 얼마나 알맞을까요. 왜 ‘귀신’ 같다고 할까요. 눈에 안 보일 만하도록 무엇을 한다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나 어느새 한다는, 이러한 결이라면 ‘감쪽같다’라 했습니다. “감쪽같이 해낸다”고 하지요. 감쪽같이 해내는데 보기에 좋다면 ‘빼어나다·훌륭하다’요 ‘솜씨있다·재주있다’입니다.


  여기에서도 생각해 봐요. ‘솜씨있다·재주있다’를 얼마든지 새말로 삼아서 쓸 만합니다. ‘멋있다·값있다·뜻있다’처럼 어떤 모습이나 몸짓이나 몸놀림이 남다르다고 여기면서 새말을 짓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꿈있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어른이라면 언제나 ‘사랑있는’ 살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 한 마디를 살리는 길은 매우 쉽습니다. 스스로 살림길을 아름다이 다스리고 즐겁게 가꾸려는 마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새삼스레 말을 짓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삶이 즐겁지 않다면 옆사람 살림을 훔치거나 빼앗으려 들어요. 또는 남을 쳐다보면서 흉내를 내거나 따라합니다. 일본사람이 쓰던 ‘기술입국’ 같은 말씨를 고스란히 흉내낸 이 나라 어른이 바로 안 즐거운 마음을 낱낱이 드러낸 셈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홀로서기(독립)를 할 노릇입니다. 혼자서 서기에 홀로서기라면, 즐겁게 사랑으로 살림을 세운다면 ‘사랑서기’입니다. 누구한테 기대지 않으려고 애쓴다면 ‘스스로서기’일 텐데, 서울바라기를 하지 않으려는 눈빛이라면 ‘마을세우기’를 하겠지요. 마을세우기 곁에는 ‘마을짓기’가 있을 테고, 마을짓기 둘레에는 ‘마을가꾸기’에 ‘마을나눔’이 있기 마련입니다.


 수수살림 ← 미니멀라이프 . 간소한 생활


  수수하게 누리는 밥처럼 수수하게 짓는 살림입니다. 영어나 한자말이 아니어도 우리 살림을 너끈히 펼칠 만합니다. ‘수수살림’을 짓고, ‘작은살림’을 돌보고, ‘조촐살림’을 꾸립니다. ‘들꽃살림’을 품고, ‘푸른살림’을 펴며, ‘마을살림’을 일구지요.


  수수하게 쓰는 말이니 ‘수수말’입니다. ‘일상용어’나 ‘생활용어’가 아닌 ‘수수말’이요 ‘여느말’입니다. ‘들꽃말’이자 ‘삶말’이고요. 우리는 누구나 들꽃입니다. 저마다 다르게 피고 지는 들꽃 한 송이입니다. 똑같은 들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르익는 봄날에 나무 곁에 서 볼까요? 나무 한 그루에 돋는 나뭇잎 가운데 똑같은 무늬나 빛깔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핏 수수하게 보여도 다 다르면서 빛나는 들꽃이요 나뭇잎이듯, 우리가 늘 혀에 얹는 말 한 마디는 새록새록 수수하면서 빛나는 넋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골 할매가 말을 꾸밀 일이 없고, 시골 할배가 억지스레 말을 치레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시골말을 쓰는 곳에 아름드리숲이 무럭무럭 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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