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4년 6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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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2


배를 타면서 ‘뱃고동’을 울린다.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가슴이 ‘고동’을 친다. 고단해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면서 잔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새삼스레 돌아본다. ‘고요’하면서 ‘곧’게 뻗는 소리를 ‘고르’면서 ‘곱’게 나누는 노래를 헤아린다. 말에 담는 마음을 ‘곰곰’이 생각한다. 너랑 나랑 잇는 ‘고리’를 ‘공’처럼 둥글면서 가볍게 놓는다.



활가락

우리 손으로 짠 살림이라면 으레 우리말로 이름을 붙인다. 우리 손으로 안 짰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즐기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잇노라면, 어느 날 문득 우리 숨결을 담아서 새롭게 이름을 얹을 만하다. 활을 쥔 손으로 슥슥 타거나 켜면서 깊고 고즈넉하다가도 높고 빠르게 가락을 일으키는 살림이라면 ‘활가락’이라 할 수 있고, ‘거문고’라는 이름에서 ‘고’를 살려서 ‘활고’라 할 만하다.


활가락 (활 + 가락) : 속을 비워 긴둥근꼴로 나무를 짜서 틀을 싸고, 밖에는 줄을 넷 매고는 어깨에 얹어서, 한 손으로 줄을 잡고 다른 손으로 활로 줄을 타거나 켜면서, 소리와 가락을 깊고 고즈넉하고 높고 빠르고 크게 내는 살림. (= 활고·넉줄고. ← 바이올린violin, 제금提琴, 사현금四絃琴)



새바라기

해를 바라보니 ‘해바라기’이다. 가뭄이 길어 비를 바라니 ‘비바라기’이다. 겨울에 눈놀이를 하고 싶어 ‘눈바라기’를 한다. 사랑을 그리며 ‘사랑바라기’를 한다. 새를 아끼며 곁에 두고 싶은 즐거운 마음이라면 ‘새바라기’를 한다.


새바라기 (새 + 바라다 + -기) : 새를 바라보는 일. 새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거나 지내거나 있는가를 가만히 보고 알려고 하는 일. (= 새보기·새찾기·새구경·새를 보다·새를 찾다·새를 살피다. ← 탐조探鳥, 버드워칭)



들꽃책집

우리말은 ‘마을’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와서 마을살림을 짓밟으면서 ‘-洞’이란 이름으로 뒤바꾸면서 ‘마을·말·고을·골’ 같은 이름이 죄 밀려났다. 이러다 보니 ‘洞內’를 옮긴 ‘동네’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이 확 퍼져서 ‘동네책방’처럼 쓰는데, 우리는 ‘마을책집’이나 ‘고을책집’이라 하면 된다. 마을에 여는 자그마한 책집은 들꽃을 닮고 담은 우리 숨결을 책으로 펴는 터전이니 ‘들꽃책집’처럼 새롭게 나타내어도 어울린다.


들꽃책집 (들꽃 + 책 + 집) : 마을에 있는 책집. 마을에서 사는 사람이 가까이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책집. 마을이 숲을 품을 수 있도록 숲빛 이야기를 담은 책을 다루면서 이웃하고 나누는 징검다리 노릇을 하고, 책으로 생각을 펴고 북돋우는 쉼터이자 만남터 노릇을 하는 책집. 마을에 깃든 살림집이 마을 곳곳에 들꽃이 자라도록 북돋우고 들빛을 나누려는 삶결이듯, 마을에 깃든 책집은 더 높거나 이름난 책보다는 마을살림을 헤아리는 책을 조촐히 건사하면서 들꽃빛 이야기를 나눈다. (= 들꽃책밭·들꽃책터·들꽃책집·들꽃책가게·마을책숲·마을책밭·마을책터·마을책집·마을책가게·고을책숲·고을책밭·고을책터·고을책집·고을책가게. ← 동네책방, 독립서점, 소형서점, 지역서점, 오프라인 서점, 향토서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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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1


봄에 피는 ‘매화’라는 나무에는 한자 ‘화(花)’가 이미 깃들어 ‘매화꽃’은 틀린말인데, 알아채는 분이 드물다. 곰곰이 보면 ‘매나무·매꽃’이다. 이른봄에 새가 쪼다가 떨어뜨린 매꽃을 줍는다. 새도 사람도 봄꽃을 누린다. 매꽃한테서는 매끄러우면서 말간 빛이 퍼진다.



단추

옛날부터 쓰는 말 그대로 ‘단추’라 하는 사람이 있고, 일본이 밀려든 뒤로 일본말씨 ‘부저(ブザ-)’를 그냥 받아들인 버릇대로 ‘버튼·버저’를 쓰는 사람이 있다. 달면, 눌러서 여미거나 닫되, 곰곰이 보면 속으로 담을 뿐 아니라, 서로 닿는다. 당기는 구실인 단추이기도 하다. 잘 다물었으니 단단하거나 든든하다. 조그마한 단추 하나로 곧추선다. 작은 단추를 여미면서 추스르고 추린다. 옷춤을 다스리거나 다독인다. 이제 ‘단추’한테는 ‘실마리’를 빗대는 셋쨋뜻으로 넓힐 만하다.


단추 (다 + ㄴ + 추 / 달다·닫다·담다·닿다·땋다·당기다 + 추키다·추리다·추스르다·춤·곧추) : 1. 덮거나 닫거나 여민 뒤에 가볍게 열려고, 천·옷·살림에 다는 것. 옷섶이나 옷자락 한쪽에 작게 구멍을 내어서 닫거나 여미는 길로 삼기도 하고, 암단추하고 수단추를 옷섶이나 옷자락에 따로 달아서 둘이 물리기도 한다. (← 버튼) 2. 알리거나 알거나 무엇을 움직이거나 하거나 일으키려고 누르는 것. (= 실마리. ← 버튼, 버저buzzer, 부저ブザ-, 벨bell, 스위치, 초인종招人鐘) 3. 잇거나 풀거나 맺거나 마치는 길목·실마리·수수께끼를 빗대는 말. (← 단서, 단초端初, 사단事端, 시초, 비결, 비방秘方, 비법秘法, 노하우, 치트키, 키key, 해결, 해결책, 관건, 대책, 묘수, 돌파구, 타개책, 해법, 솔루션, 정답, 해답, 답答, 답안, 방정식, 이슈issue, 쟁점爭點, 화두話頭, 두서頭緖, 힌트, 방위方位, 방향方向, 프로젝트, 계획, 정향定向, 예정, 기획)



밥옷집

남녘에서는 한자말로 ‘의식주’라 하고, 북녘에서는 한자말로 ‘식의주’라 한다. 남북녘은 서로 옳다고 티격태격한다. 그러나 굳이 둘이 다툴 까닭이 없다. ‘옷밥집’이나 ‘밥옷집’처럼 우리말을 쓰면 된다. 따로 하나만 올림말(표준말)이어야 하지 않다. ‘옷집밥’이나 ‘밥집옷’이라 해도 되고, ‘집옷밥’이나 ‘집밥옷’처럼 사람들 스스로 가장 마음을 기울일 대목을 앞에 넣으면서 말하면 된다.


밥옷집 (밥 + 옷 + 집) : 밥과 옷과 집. 살아가며 누리거나 가꾸거나 펴는 세 가지 큰 살림을 아우르는 이름. 살아가며 곁에 두는 살림살이. (= 밥집옷·옷밥집·옷집밥·집밥옷·집옷밥. ← 의식주, 식의주)



다살림

우리나라 둘레에 있는 일본이나 중국은 ‘나란살림’이 썩 흔하지는 않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조금 먼 이웃나라를 보면 ‘무지개’처럼 여러 사람이 어우러지는 집이 퍽 많고 수수하기까지 하다. 겨레가 달라도 얼마든지 보금자리를 꾸린다. 겨레가 같아야만 보금자리를 꾸리지 않는다. 굳이 ‘다문화(多文化)’처럼 ‘다(多)’란 한자를 안 붙이더라도, ‘살림(문화)’이라는 낱말에 “여러 길·삶·눈”을 고루 담는 결이 스민다. 다만, 나라에서 따로 어느 집안을 가리켜야 한다고 여긴다면 새말을 지을 수 있고, 이때에는 ‘모두(다)’ 아우르는 이름을 붙인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온살림’이나 ‘무지개’로 바라볼 만하다. ‘다·모두’를 붙인 ‘다살림’이라 할 만하다. 한자 ‘多’가 아닌, 우리말 ‘다’이다. 다 하나로 어우러지며 나란히 서는 살림이다.


다살림 : 다 있는 살림. 다 어우러진 살림. 다 만나는 살림.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 (= 나란하다·나란살림·무지개·온살림·온삶. ← 다문화多文化)

다살림집 : 어떠한 길·결·모습·삶·살림·넋·빛깔이든 함께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살림으로 가꾸는 집. (= 나란집·무지개집·온살림집. ← 다문화 가정多文化 家庭)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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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0


곧 잎빛이 푸른 철이 온다. 겨우내 잠든 잎망울이 깨어나라며 잎샘바람이 분다. ‘잎샘’은 잎이 돋는 봄을 시샘하는 듯한 바람이라 여길 수 있으면서, 잎이 샘솟도록 북돋우는 바람이라 여길 수 있다. 수수한 사람을 들풀이나 풀잎에 빗대곤 하는데, 나뭇잎이며 잎으로 빗대어도 어울린다. 나무를 이루는 잎처럼, 푸른숨을 베푸는 잎처럼, 푸른봄을 기다린다.



잎빛

꽃은 꽃빛이고 풀은 풀빛이나. 하늘은 하늘빛이고 바람은 바람빛이다. 모든 곳에는 빛이 있으니, 모래빛도 흙빛도 다르고, 눈빛도 물빛도 새롭다. 풀과 나무는 ‘풀잎’하고 ‘꽃잎’을 내놓는다. 푸른 ‘잎빛’에 고운 ‘잎빛’이 있다. 풀빛과 매한가지로 잎빛이란 수수하면서 맑고 밝은 넋을 나타낸다. 풀빛이며 잎빛을 그리기에 아름다운 길로 걸어갈 만하다.


잎빛 (잎 + 빛) : 1. 잎에서 나는 빛·빛깔. 싱그러운 나뭇잎이나 풀잎이 띠는 빛·빛깔. (← 초록草綠, 초록색·초색草色, 녹색, 그린, 연두軟豆, 연두색,연둣빛, 식물, 녹색식물) 2. 해바람비를 머금으면서 싱그러운 풀잎·나뭇잎처럼 반짝이면서 맑고 밝게 퍼지는 빛이나 기운이나 결. (← 신록, 녹음綠陰, 녹음방초, 대자연, 천지자연, 생태, 자연, 천연, 녹색성장) 3. 나라·삶터·마을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나 숨결. 나라·삶터·마을에서 바탕으로 있고, 높거나 낮지 않으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뜻·생각·마음을 나누고, 스스로 이 터전에 뿌리를 내리면서 맑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이나 숨결. (← 국민, 백성. 백인百人, 민중, 민초, 양민, 중생衆生, 인민, 서민, 시민, 대중) 4. 나라에 깃든 사람으로서 으뜸길(헌법)을 함께 따르고, 제몫(권리·의무)을 누리면서, 스스로 삶을 짓고 꿈을 펴고 생각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 (← 국민)



오솔바다

좁고 길게 난 길이라 ‘오솔길’이다. 으레 숲에 난 좁으면서 호젓한 길을 가리키는데, 큰고장 골목길도 오솔길로 여길 만하다. 뭍 사이에 난 바닷길이라면 ‘오솔바다’로 가리킬 수 있다. ‘옹송그리다·옹크리다’는 조그맣게 움직이는 결이다. 조그맣게 패인 듯한 곳에서 솟기에 ‘옹달샘’이다. 조그맣게 뭉치듯 가까이 모여서 포근하게 이루는 사이라서 ‘오순도순’이다.


오솔바다 (오솔 + 바다) : 뭍 사이에 좁고 길게 있는 바다. 난바다를 잇는데, 뭍 사이로 좁고 길게 잇는 바다. (= 쪽바다·목·길목 ← 해협)

오솔길 (오솔 + 길) : 한 줄로 다닐 만큼 좁으면서, 조용하거나 아무도 없어 외롭다고 느끼는 길.



옷나래

예부터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을 갖춘 모습으로 달라 보일 수 있다고 여긴다. 어떤 차림새여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속빛을 읽을 수 있고, 새롭게 차리면서 힘을 낼 수 있다. 옷이 날개나 나래가 된다면, 옷이 꽃이 될 만하리라. 옷으로 드러내는 멋이나 맵시가 있고, 마음멋이나 마음꽃이나 마음날개를 펼 수 있다.


옷나래 (옷 + 나래) : 옷이 나래·날개. 나래·날개 같거나, 나래·날개를 단 듯한 옷이나 옷차림. 겉으로 보거나 느끼는 옷이나 모습. 옷으로 꾸미거나 차리거나 보여주는 모습. 틀에 가두거나 갇히지 않고서, 마음껏 입거나 즐기거나 누리는 옷. (= 옷날개·옷멋·옷맵시·옷꽃·옷이 나래·옷이 날개. ← 패션, 핏fit, 복식服飾, 복장服裝, 의관衣冠, 인상착의, 코디coordination, 외적外的, 외부, 외면外面, 외관, 외모, 외양外樣, 외장, 외형, 외견, 코스프레コス-プレ, 교복자율화, 자유복)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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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9


더 오래 살아가는 나날을 연다면, 우리 눈길을 더 곱게 다스릴 적에 서로 반가우면서 즐겁게 빛나리라. 누가 맞거나 틀리다고 가르는 눈이 아닌,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니, 이 다른 결을 새롭게 어우르도록 눈을 뜨고 배우는 하루를 그려 본다. 온누리에 꽃보라가 일렁일렁 춤출 수 있기를.



어울눈

영어 ‘gender sensitivity’를 1995년부터 쓴다고 하며, 일본에서는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으로 옮긴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일본말씨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곰곰이 짚자면, 서로 다른 결(성별)을 알맞게 살피고 아름답게 어우르는 길을 찾자는 말씨인 만큼, 이제까지 미처 살피지 못한 “어울리는 눈”을 익히고 나누자는 마음을 담아낼 만하다. 이리하여 ‘어울 + 눈’처럼 새말을 엮어 본다. ‘아우름눈’을 뜰 수 있고, ‘서로눈뜸’이나 ‘다름눈뜸’으로 피어날 수 있다.


어울눈 (어울리다 + 눈) : 어울리는 눈. 서로 다르되 나란히 사랑으로 피어날 아름다운 이웃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서 새롭게 살림빛을 가꾸는 길을 밝히려는 눈. (= 어울눈뜸·서로눈뜸·다름눈뜸·아우름눈. ←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性認知 感受性)



온살

100이라는 셈을 우리말로는 ‘온’으로 센다. 우리말 ‘온’은 ‘모두’를 나타내기도 한다. ‘온누리·온나라’는 “모든 누리·모든 나라”를 가리킨다. ‘온몸·온마음’은 “모든 몸·모든 마음”을 뜻한다. 나이로 ‘온(100)’에 이를 적에는 모두 헤아리거나 보거나 느끼거나 안다고 여긴다. 더없이 참하고 어질다고 여기는 ‘온살’이요, 어느덧 ‘온살이날’이나 ‘온살림길’로 바라본다.


온살 (온 + 살) : 온(100)에 이른 나이. 오래 살아온 날. 오래 흐르거나 이은 나날. (← 백세百歲)

온살림날 (온 + 살리다 + ㅁ + 날) : 온(100)에 이르도록 살아온 나이. 오래 살아오거나 살아가는 길·날. 오래 흐르거나 이으며 누리거나 짓는 길·나날. (= 온살림길·온삶길·온살이길·온살이날·온삶날. ← 백세시대)



물보라 꽃보라 눈보라

보얗게 덮을 만큼 퍼지는 결을 ‘보라’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물보라’로, 오늘날 큰고장에서 여름에 더위를 식히는 물뿜개를 가리킬 만하다. 봄날에 바람을 타면서 퍼지는 ‘꽃보라’로, 곱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시게 이루거나 누리거나 짓는 삶과 살림과 길을 가리킬 만하다. 겨울에 바람을 타면서 세차거나 드센 ‘눈보라’로, 버겁거나 벅차거나 힘겹거나 고단한 길을 가리킬 수 있다.


물보라 (물 + 보라) : 1. 바람을 탄 물결이 크게 치거나 바위에 부딪힐 적에 여기저기 하얗게 날리거나 가거나 춤추거나 덮는 숱한 물방울. 2. 물결이 크게 칠 적에 여기저기 숱한 물방울이 퍼지듯, 물줄기를 하늘로 뿜어서 여기저기 숱한 물방울을 퍼뜨리는 것.


꽃보라 (꽃 + 보라) : 1. 바람을 타면서 한꺼번에 여기저기로 가득가득 날리거나 떨어지거나 춤추거나 덮는 숱한 꽃잎. 2.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신 일·나날·때·철·삶이 가득한 길이나 자리. 3. 즐겁거나 기쁘거나 반갑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어서 하늘에 가득가득 뿌려서 마치 꽃잎처럼 날리거나 춤추거나 덮는 여러 빛깔 종이.


눈보라 (눈 + 보라) : 1. 바람을 타면서 한꺼번에 여기저기로 가득가득 날리거나 떨어지거나 춤추거나 덮는 숱한 눈송이나 눈가루. 2. 가까운 앞도 알아볼 수 없거나 가까운 앞조차 가로막힐 만큼, 어렵거나 힘들거나 괴롭거나 벅차거나 모질거나 사나운 일을 겪거나 맞이하거나 견디거나 이겨내면서 나아가는 길.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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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8


말을 모으자면 으레 걷는다. 걸으며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담고 살필 적에, 온누리를 나타내는 말을 깨닫고 새롭게 배운다. 남들은 부릉부릉 앞서 달리지만, 낱말책을 여미려고 두 다리로 걷는다. 두 손으로 슥슥 종이에 적는다. 조금 번다 싶으면 책을 사들이니 살림돈은 으레 가난하다. 이런 삶길을 이 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이라 일컫는데, 이름부터 바꾸면 눈길이 바뀔까? 늦꽃이 피듯 ‘가난꽃’이라고.



딸아들

국립국어원을 비롯해 여러 낱말책은 ‘아들딸’만 올림말로 삼는다만, 적잖은 사람들은 ‘딸아들’이란 낱말을 널리 쓴다. 이제 두 낱말 모두 올림말이어야지 싶다.


딸아들 (딸 + 아들) : 딸하고 아들. 딸하고 아들을 함께 가리키는 말. (= 아들딸. ← 자녀, 자식, 후예, 후손, 후대, 자손, 손孫, 손주, 손자, 손녀, 손자손녀, 자제子弟, 이세二世, 키드kid, 키즈, 존재)

아들딸 (아들 + 딸)  : 아들하고 딸. 아들하고 딸을 함께 가리키는 말. (= 딸아들)



늦별

해가 넘어가자마자 돋는 별이 있고, 한밤에 이르러 돋는 별이 있다. ‘이른별’도 ‘늦별’도 똑같이 별이다. 처음부터 잘 해내거나 이내 익숙하게 선보이는 사람이 있되, 오래오래 했어도 서툴거나 엉성한 사람이 있다. 이르니 이르다 여기고, 늦으니 늦다고 여긴다. 이르게 펴도 꽃이고, 늦게 돋아도 별이다.


늦별 (늦 + 별) : 1. 늦게 뜨거나 돋거나 나타나는 별. 2. 늦게 뜨거나 돋거나 나타나는 별처럼, 말·일·몸짓이 늦거나 서툴다고 여길 만하지만, 느슨하면서 느긋하게 말·일·몸짓을 다스리거나 다독이거나 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 늦꽃·늦게 핀 꽃. ← 만화晩花, 대기만성), 만성晩成, 미숙, 발달장애, 발달지연)



가난꽃

가난한 사람을 두고 ‘가난뱅이’라 하면서 낮잡곤 한다. 수수하게 ‘가난이’라고만 할 수 있을 텐데, 없거나 모자라거나 적으면 마치 나쁘다고 여기는 말씨이다. 한자말로 가리키는 ‘빈민·저소득층·무산자·영세민’도 다 낮춘다는 결이다. 돈이나 살림이 적더라도 나쁠까? 가난하면서 오붓하게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가난꽃’이나 ‘가난별’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가난꽃 (가난하다 + 꽃) : 가난한 꽃. 가난한 사람을 빗대는 말. 돈이 적거나 살림이 모자란 사람. 돈이나 살림을 넉넉하게 쓸 수 없는 사람. (= 가난하다·가난이·가난뱅이·가난님. ← 빈자, 무산無産, 무일푼, 빈곤, 빈한, 빈궁, 곤궁, 궁벽, 궁핍, 무전無錢, 궁하다, 저소득, 공황, 영세민)



뒷북치다

한창 할 적에는 조용하다가, 모두 끝나고서 불쑥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있다. 함께 땀흘리며 모인 자리에서는 뒷짐을 지더니, 다 끝낸 자리에 뜬금없이 나서서 티내려는 사람이 있다. 뒷북인 셈인데, 혼자 돋보이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창이던 무렵에는 막상 알아차리지 못 한 터라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나서는 마음도 있다. 얄궂으면 ‘뒷북꾼’이요, 귀여우면 ‘뒷북아이’에 ‘뒷북노래’이다.


뒷북치다 :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을 적에는, 안 하거나 안 누리거나 안 펴거나 없더니, 모두 끝이 난 뒤에 하거나 누리거나 펴거나 있으려고 움직이거나 나오거나 나서거나 떠들다. (= 뒷북·뒷북노래·뒷북이·뒷북아이·뒷북님·뒷북꾼·뒷북쟁이. ← 지각遲刻, 후발주자, 후순위, 지연遲延, 체납, 체불, 연체延滯, 연기延期, 지체遲滯, 시간관념이 없다, 나태, 안일, 태만, 불성실, 서서徐徐, 슬로slow, 둔감, 둔하다鈍-, 사후事後, 사후대책事後對策,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만년晩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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