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토마토> 2023년 8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3



여름을 밝히는 자귀나무가 꽃을 피우고, 풀밭에는 까마중이 흰꽃을 피우다가 지면서 어느새 푸릇푸릇 동글알을 맺는다. 매미가 노래하고 빗줄기는 더없이 시원하다. 여름철을 손바닥에 얹으며 하늘빛을 읽는다.



그림잎

여느 어른이라면 익숙한 대로 그냥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 곁에 아이가 있다면 ‘어른한테는 익숙하거나 쉬워도 아이한테는 낯설거나 어려운 말’이 수두룩한 줄 알기에, 말을 바꾸거나 새말을 짓는다. ‘엽서’는 여느 어른이라면 안 어렵고 익숙할 테지. 그러나 어린이를 헤아려 보자. ‘잎(葉) + 글(書)’이란 얼개이다. 수수하게 ‘잎글·잎종이’라 할 만하다. 그림을 넣으면 ‘그림잎·그림잎글’이다.


그림잎 (그림 + 잎) : 한쪽에는 그림·빛꽃(사진)을 담고, 다른 한쪽에는 이야기를 적도록 꾸민 조그마한 종이로, 날개꽃(우표)을 붙여서 가볍게 띄울 수 있다. 나무가 맺는 잎이 바람·물결을 타고서 가볍게 멀리 나아가듯, 조그마한 종이에 그림·글·이야기를 엮어서 가볍게 띄우는 종이. (= 그림잎글. ← 그림엽서-葉書)

잎글 (잎 + 글. = 잎쪽·잎종이. ← 엽서(葉書) : 1. 값을 미리 치러 놓은 조그마한 글월종이. 보내는이·받는이를 적고 뒤쪽이나 한켠에 이야기를 적어서 곧바로 우체통에 넣어서 띄울 수 있다. 2. 한쪽에는 그림·빛꽃(사진)을 담고, 다른 한쪽에는 이야기를 적도록 꾸민 조그마한 종이로, 날개꽃(우표)을 붙여서 가볍게 띄울 수 있다. 나무가 맺는 잎이 바람·물결을 타고서 가볍게 멀리 나아가듯, 조그마한 종이에 그림·글·이야기를 엮어서 가볍게 띄우는 종이.



하늘삯

배를 탈 적에 ‘뱃삯’을 치른다. 나루터에서는 ‘나룻삯’을 낸다. 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하늘을 날 적에는 ‘하늘삯’을 치른다고 할 만하다. 바다에서는 ‘바닷길’이요, 하늘에서는 ‘하늘길’이니, ‘바닷삯·하늘삯’처럼 새말을 지을 수 있다.


하늘삯 (하늘 + 삯) : 1. 하늘을 날면서 내는 삯. 비행기를 타려면 내야 하는 돈. 2. 돌아다니거나 무엇을 탈 적에 드는 삯. (← 항공료, 경비, 여비, 차비車費, 노자路資, 노잣돈, 교통비, 통행료, 운임비, 운임료)



지는꽃

우리 나이를 꽃으로 견주면서 돌아본다면, 어린이는 봉긋봉긋 꽃망울일 테고, 젊은이는 활짝 벌어진 꽃송이일 테고, 늙은이는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일 테지. 시드는 꽃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꽤 있으나, 꽃이 져야 비로소 씨앗을 맺고 열매가 굵다. 꽃이 지지 않으면 씨앗도 열매도 없다. 쌀밥도 볍씨인 줄 알아야 하고, 벼꽃이 지기에 맺는 낟알인 풀열매이다. “늙은 나이”를 꽃에 빗대어 ‘지는꽃’이라 해볼 만하다. ‘진다’기보다 ‘물려주’는 ‘꽃’이라는 뜻이다.


지는꽃 (지다 + -는 + 꽃) : 한창 피어서 맑고 밝은 내음을 나누다가 이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꽃. 눈부신 젊음을 뒷사람한테 물려주고서 새롭게 피어날 살림살이를 씨앗으로 남기는 철든 숨결로 나아가려는 나이. (= 지는 나이. ← 노년, 낙화, 은퇴자, 쇠락, 퇴물, 퇴락, 퇴색, 고물古物, 폐물, 폐품, 낙마자, 낙향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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