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
손바닥 못지않게 발바닥도 땅바닥에 대면 작다. 그런데 발바닥으로 한 걸음씩 디디면서 마을을 느끼고 골목을 느끼다가 숲에 깃들어 해바람비를 맞이하고 보면, “아! 모든 말과 마음은 숲에서 왔네!” 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나래꽃
‘우표(郵票)’는 일본이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퍼뜨렸다. 우리나라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만들거나 짜거나 짓기 어렵던, 아니 모조리 이웃나라한테서 받아들여서 써야 하던 지난날이었으니 어쩔 길이 없었으리라. 일본사람이 지어서 퍼뜨렸기에 안 써야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본을 안 거치고서 ‘postage stamp’나 ‘stamp’를 곧바로 받아들여서 나누려 했다면 어떤 이름을 지었을까? 아무래도 1884년에는 한자를 썼을 만하지만, 글월을 글자루에 담아 띄울 적에 “훨훨 날아간다”는 뜻으로 ‘나래·날개’ 같은 낱말을 살려썼을 수 있다. 글월을 ‘보내다’라고만 하지 않고 ‘띄우다’라고도 하기에, ‘띄우다 = 날려서 가다’라는 얼거리를 돌아볼 만하다. 글월을 띄우는 값을 미리 치러서 붙이는 종이는 작다. 테두리가 오돌토돌하다. “작은 종이꽃”으로 여길 만하다. “날아가는 작은 종이꽃”이기에 ‘날개꽃·나래꽃’처럼 새롭게 가리킬 수 있다. 어느덧 ‘우표’를 쓴 지 한참 지났어도, 우리 나름대로 새길을 찾는 새말로 새꽃을 피울 만하다.
날개꽃 (날개 + 꽃) : 글월을 부칠 적에 붙이는 작은 종이로, 미리 값을 치른다. “글월을 띄우려고 날아가는 작은 종이꽃”이다. (= 나래꽃. ← 우표郵票)
날개삯 (날개 + 삯) : 1. 하늘을 날아서 다른 곳으로 갈 적에 내는 돈. 날개(비행기)를 타고서 움직이며 내는 돈·길삯. (= 나래삯. ← 비행기표 가격, 항공운임비) 2. 글월을 부칠 적에 글자루 겉에 붙이는 작은 종이에 치르는 돈. (= 나래삯. ← 우편요금, 우편료, 우편비, 우편비용)
천바구니
온누리가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닐자루를 안 쓰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면 온누리뿐 아니라 우리 넋을 가꾸는 바탕인 우리말도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푸른말’을 여미고 ‘숲말’을 사랑하면서 ‘푸른바구니·푸른자루’나 ‘숲바구니·숲자루’를 쓸 만하다. ‘풀빛바구니·풀빛자루’는 천으로 짜거나 짓는다. 그래서 ‘천바구니’요 ‘천자루’이다.
천바구니 (천 + 바구니) : 천으로 짜거나 짓거나 마련하여 여러 가지를 담는 살림. 바구니나 자루 같은 모습으로 짜거나 짓거나 마련한다. (= 천자루·천주머니·푸른바구니·푸른자루·푸른주머니·풀빛바구니·풀빛자루·풀빛주머니·숲바구니·숲자루·숲주머니. ← 에코백, 친환경가방, 푸대負袋, 부대負袋, 포包, 포대包袋, 포대布帶, 마대麻袋)
눈밥
예전에는 북녘에서 ‘얼음보숭이’라 흔히 썼다고 하지만, 요새는 북녘도 ‘아이스크림’이란 영어나 ‘빙수’라는 한자말을 그냥 쓴다고도 한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보숭이’나 ‘-고물’을 굳이 뒤에 안 붙이고 ‘얼음’이라고만 단출히 가리킬 만하다. 그리고, 얼음을 마치 눈송이처럼 갈아서 먹는다면, 또는 얼린 고물을 고스란히 누린다고 할 적에도, ‘눈밥’처럼 새롭게 바라보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맛나게 먹는다는 뜻으로 사이에 ‘-꽃’을 넣어 ‘눈꽃밥’이라 할 수 있다. ‘얼음꽃’을 먹는다고 해도 어울릴 테고.
눈밥 (눈 + 밥) : 얼려서 눈처럼 누리는 먹을거리. 달콤한 고물을 얹거나 섞어서 누리기도 한다. (= 눈송이밥·눈꽃밥·얼음·얼음밥·얼음꽃·얼음고물·얼음보숭이. ← 빙수, 아이스크림)
ㅅㄴㄹ
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7월호에 실었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