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


손바닥 못지않게 발바닥도 땅바닥에 대면 작다. 그런데 발바닥으로 한 걸음씩 디디면서 마을을 느끼고 골목을 느끼다가 숲에 깃들어 해바람비를 맞이하고 보면, “아! 모든 말과 마음은 숲에서 왔네!” 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나래꽃

‘우표(郵票)’는 일본이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퍼뜨렸다. 우리나라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만들거나 짜거나 짓기 어렵던, 아니 모조리 이웃나라한테서 받아들여서 써야 하던 지난날이었으니 어쩔 길이 없었으리라. 일본사람이 지어서 퍼뜨렸기에 안 써야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본을 안 거치고서 ‘postage stamp’나 ‘stamp’를 곧바로 받아들여서 나누려 했다면 어떤 이름을 지었을까? 아무래도 1884년에는 한자를 썼을 만하지만, 글월을 글자루에 담아 띄울 적에 “훨훨 날아간다”는 뜻으로 ‘나래·날개’ 같은 낱말을 살려썼을 수 있다. 글월을 ‘보내다’라고만 하지 않고 ‘띄우다’라고도 하기에, ‘띄우다 = 날려서 가다’라는 얼거리를 돌아볼 만하다. 글월을 띄우는 값을 미리 치러서 붙이는 종이는 작다. 테두리가 오돌토돌하다. “작은 종이꽃”으로 여길 만하다. “날아가는 작은 종이꽃”이기에 ‘날개꽃·나래꽃’처럼 새롭게 가리킬 수 있다. 어느덧 ‘우표’를 쓴 지 한참 지났어도, 우리 나름대로 새길을 찾는 새말로 새꽃을 피울 만하다.


날개꽃 (날개 + 꽃) : 글월을 부칠 적에 붙이는 작은 종이로, 미리 값을 치른다. “글월을 띄우려고 날아가는 작은 종이꽃”이다. (= 나래꽃. ← 우표郵票)

날개삯 (날개 + 삯) : 1. 하늘을 날아서 다른 곳으로 갈 적에 내는 돈. 날개(비행기)를 타고서 움직이며 내는 돈·길삯. (= 나래삯. ← 비행기표 가격, 항공운임비) 2. 글월을 부칠 적에 글자루 겉에 붙이는 작은 종이에 치르는 돈. (= 나래삯. ← 우편요금, 우편료, 우편비, 우편비용)



천바구니

온누리가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닐자루를 안 쓰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면 온누리뿐 아니라 우리 넋을 가꾸는 바탕인 우리말도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푸른말’을 여미고 ‘숲말’을 사랑하면서 ‘푸른바구니·푸른자루’나 ‘숲바구니·숲자루’를 쓸 만하다. ‘풀빛바구니·풀빛자루’는 천으로 짜거나 짓는다. 그래서 ‘천바구니’요 ‘천자루’이다.


천바구니 (천 + 바구니) : 천으로 짜거나 짓거나 마련하여 여러 가지를 담는 살림. 바구니나 자루 같은 모습으로 짜거나 짓거나 마련한다. (= 천자루·천주머니·푸른바구니·푸른자루·푸른주머니·풀빛바구니·풀빛자루·풀빛주머니·숲바구니·숲자루·숲주머니. ← 에코백, 친환경가방, 푸대負袋, 부대負袋, 포包, 포대包袋, 포대布帶, 마대麻袋)



눈밥

예전에는 북녘에서 ‘얼음보숭이’라 흔히 썼다고 하지만, 요새는 북녘도 ‘아이스크림’이란 영어나 ‘빙수’라는 한자말을 그냥 쓴다고도 한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보숭이’나 ‘-고물’을 굳이 뒤에 안 붙이고 ‘얼음’이라고만 단출히 가리킬 만하다. 그리고, 얼음을 마치 눈송이처럼 갈아서 먹는다면, 또는 얼린 고물을 고스란히 누린다고 할 적에도, ‘눈밥’처럼 새롭게 바라보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맛나게 먹는다는 뜻으로 사이에 ‘-꽃’을 넣어 ‘눈꽃밥’이라 할 수 있다. ‘얼음꽃’을 먹는다고 해도 어울릴 테고.


눈밥 (눈 + 밥) : 얼려서 눈처럼 누리는 먹을거리. 달콤한 고물을 얹거나 섞어서 누리기도 한다. (= 눈송이밥·눈꽃밥·얼음·얼음밥·얼음꽃·얼음고물·얼음보숭이. ← 빙수, 아이스크림)


ㅅㄴㄹ


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7월호에 실었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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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



손바닥은 땅바닥에 대면 작다. 그러나 손바닥은 개미한테는 넓고, 나비가 내려앉기에도 넉넉하고, 풀씨를 그득 받을 만큼 넓다. 우리말을 꼭 이 손바닥만큼 생각해 보면 하루가 새로울 수 있을까?



닷새일

지난날에는 이레 가운데 하루조차 안 쉬고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이랑 한가위조차 안 쉬던 분도 많았다. 이분들은 늘 ‘이레일’을 한 셈이다. 이러다가 ‘엿새일’로 바뀌고 ‘닷새일’로 자리를 잡는데, ‘나흘일’을 하는 곳도 꽤 늘었다. 다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늘 이레일을 한다. 낱말책을 여미는 일꾼도 언제나 이레일을 한다. 시골에서 흙살림을 하는 이웃도 노상 이레일을 한다.


나흘일 (나흘 + 일) : 이레 가운데 나흘을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길·틀·얼개·자리. (= 나흘살림. ← 주4일근무, 주4일근무제, 주4일제, 주4일노동, 사일제근무, 사일제노동)

닷새일 (닷새 + 일) : 이레 가운데 닷새를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길·틀·얼개·자리. (= 닷새살림. ← 주5일근무, 주5일근무제, 주5일제, 주5일노동, 오일제근무, 오일제노동)

이레일 (이레 + 일) : 이레 내내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길·틀·얼개·자리. (= 이레살림. ← 주7일근무, 주7일근무제, 주7일제, 주7일노동, 칠일제근무, 칠일제노동)



하루벌이

일하고 또 일하지만 가난한 살림이 있다. 하루하루 땀흘리는데 땀값을 제대로 누리지 못 하는 살림이 있다. 참으로 ‘가난벌이’요 ‘굶는벌이’로 여길 만하다. 하루일꾼은 하루일이 있더라도 일거리가 잇지 않으면 어느새 가난하다. 하루팔이란, 하루를 품팔이를 하지만 앞날이 안 보이는 길이다. 하루벌이란, 하루는 벌되 이튿날은 벌잇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길이다.


하루벌이 (하루 + 벌다 + -이) : 1. 하루 일한 만큼 돈·삯·값을 받는 길이나 자리. 하루를 일하고서 받는 돈·삯·값. (= 하루팔이·하루삯꾼·하루일꾼·날삯꾼·날품팔이. ← 일수日收, 일수입, 일용직, 일용 노동자, 비정규직) 2. 부지런히·힘껏 일하지만 가난한 살림이나 얼개나 모습. (= 하루팔이·하루삯꾼·하루일꾼·가난팔이·가난벌이·가난일꾼·가난삯꾼·굶는벌이·굶는일꾼·굶는삯꾼. ←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 생고생)



봄맞이새

그대로 눌러앉으니 ‘텃새’이고, 철마다 보금자리를 바꾸니 ‘철새’이다. 새는 늘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기에 ‘텃새·철새’는 수수하게 새를 바라보면서 아끼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 낱말을 얄궂게 빗대는 자리에 으레 쓰더라. 그러면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말을 지을 수 있다. 봄철새는 ‘봄맞이새’로, 겨울철새는 ‘겨울맞이새’라 할 만하다. 봄맞이꽃처럼 이름을 붙이고 겨울눈처럼 이름을 헤아린다.


봄맞이새 (봄 + 맞이 + 새) : 봄을 맞이할 즈음이나, 봄부터 여름 사이에 찾아오는 새. 봄을 누리려고 찾아와서 여름까지 누리다가 가을 무렵 돌아가는 새. (= 봄새·봄철새. ← 춘조)


ㅅㄴㄹ


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6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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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54. 아직, 그대로, 내내, 자꾸, 동동동



  우리가 그리지 못할 말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건사하고 쓰고 누리는 삶이자 살림이라면 모두 말로 담아낼 만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말로 깔끔하고 알맞고 사랑스럽게 이름을 붙이든, 우리말로 미처 못 붙이고서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영어 이름을 그냥 쓰든, 모든 삶과 살림을 ‘말’로 나타냅니다.


  일본말이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중국말이란,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영어란, 영어를 쓰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우리말(한국말)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이에요.


  경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기에 경상말이고,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서 전라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고장하고 고을하고 마을하고 집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누가 시키기에 외워서 쓰던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고 살림하고 사랑하다 보니 저절로 마음에서 피어나 즐겁게 생각하면서 지은 말이거든요.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스스로 사랑으로 살림을 가꾸려고 생각한다면, 모든 살림을 ‘우리말(전라말이든 경상말이든 서울말이든 충청말이든 제주말이든)’로 짓기 마련입니다. 즐거움도 사랑도 잊거나 등돌린 채 스스로 살림을 가꾸거나 지으려는 생각을 안 한다면, 우리는 예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우리말을 스스로 짓는 눈빛하고 넋’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한자말 ‘계속(繼續)’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 강의의 계속이다 → 지난 이야기와 잇닿는다

 계속 쏟아지는 폭우 → 쉬잖고 쏟아지는 비 / 줄기차게 퍼붓는 비

 열흘 동안 계속 열렸다 → 열흘 동안 열렸다 / 열흘 내리 열렸다

 계속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 → 나날이 줄어든다 / 자꾸 준다


  여느 낱말책은 ‘계속(繼續)’을 “1.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 2. 끊어졌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 나감 3. 끊이지 않고 잇따라”로 풀이합니다. 이는 “끊이지 않고”나 ‘잇따라’로 고쳐서 쓰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밖에 어떻게 다루면 즐겁고 알맞을는지 차곡차곡 펼쳐 볼게요.


 꾸준하다·줄기차다·죽·쭉·줄곧·줄잇다·줄줄이

 자꾸·내리·내처·내내·내·내도록·그동안·동안


  어제도 오늘도 꾸준합니다. 안 지치는지 줄기찹니다. 죽 해왔고 쭉쭉 뻗습니다. 줄을 잇듯이, 줄줄이 흐르듯, 줄곧 했는걸요. 했는데 자꾸 합니다. 아침부터 내리 합니다. 저녁까지 내처 했어요. 오늘도 하루 내내 하는데, 냇물처럼 내 하는군요. 밤새도록 하듯 내도록 하고, 그동안 했어요.


 밤낮·밤낮없다·낮밤·낮밤으로

 꼬박꼬박·곰비임비·걸어가다·거침없이·막힘없이


  밤이며 낮이며 없이 합니다. 밤낮으로 또는 낮밤으로 하고, 밤낮없이 또는 낮밤없이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꼬박꼬박 할까요. 곰비임비 하더니 잘 걸어갑니다. 거침없는 너울 같고, 막힘없는 바람 같아요.


 그냥·그렇게·곧게·곧바로·고스란히

 늘·언제나·노상·언제까지나


  그냥, 그냥그냥 하는군요. 그렇게 하다 보니 곧게 하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마음이 되어 고스란히 합니다. 안 하는 때가 없으니 늘 합니다. 오늘도 어제도 언제나 합니다. 말려도 안 듣고 노상 하니, 멈출 때를 알 길이 없이 언제까지나 합니다.


 끊임없다·끈덕지다·끈질기다·끝없다·가없다

 질질·지며리·좔좔·꼬리를 물다·술술·철철


  끊이지 않네요. 끈덕지군요. 아니, 끈질길까요. 끊이지 않으니 끝이 없어요. 가없는 하늘마냥 하네요. 그러나 질질 끄는 듯하네요. 다시 가다듬어 지며리 하고, 물결처럼 좔좔 흐르듯 해요. 꼬리를 물듯 하고, 가루가 솨르르 쏟아지듯 술술 하고, 샘물이 솟듯 철철 터져나오듯이 합니다.


 퍼붓다·빗발치다·쏟아지다·넘치다

 그대로·이대로·있는 그대로·저대로


  함박비가 퍼붓듯 합니다. 빗발이 치는데 끊어질 틈이 없어요. 한꺼번에 쏟아지듯 하고, 찰랑찰랑 넘치는 하루입니다. 여태 했으니 그대로 갈까요. 이제껏 했으니 이대로 가지요. 있는 그대로 둡니다. 저대로 잘 가겠지요.


 사뭇·여태·이제껏·새록새록·아직·씩씩하다

 더·좀더·또·또다시·-다가·다시


  사뭇 새삼스럽게 하고, 여태 해요. 이제껏 두고두고 했으며, 오늘은 새록새록 떠올리며 합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아직 하네요.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씩씩하게 가네요. 더 해볼까요. 좀더 하면 어떤가요. 또 하고 또다시 한다면, 하다가 지치지 말고 다시 하면 새롭습니다.


 이어가다·잇다·잇달다·잇닿다·잇대다·잇따라

 쉬잖다·쉴새없다·숨돌릴틈없다·숨쉴틈없다


  이어가는 삶입니다. 잇는 끈입니다. 잇달아 노래하고, 잇닿는 마음이에요. 잇대는 손길이 반갑고, 잇따라 가는 동무가 즐겁습니다. 쉬어도 좋고, 쉬잖고 해도 좋습니다. 쉴새없이 가면 바쁠 테지만, 웃고 노래하면서 한다면 숨돌릴틈이 없어도 기뻐요.


 재잘거리다·조잘거리다·동동거리다·종종거리다·중얼중얼·지저귀다

 한결같다·한꽃같다


  참새마냥 끝없이 재잘재잘 조잘조잘입니다. 내내 동동거리고 내처 종종거리더니 지절지절 지저귀듯이 잇습니다. 그래요. 흩어진 여럿을 가만가만 모두는구나 싶은, 한결같은 마음씨입니다. 한결같이 눈부시니 한꽃같이 곱네요.


  이럭저럭 여러 낱말을 혀에 얹어 봅니다. 이 숱한 우리말은 참으로 오래도록 ‘계속’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두루 쓰던 살림입니다. 한자말이나 바깥말을 쓰기에 나쁠 까닭은 없되, 다 다른 자리에 다 다른 숨결하고 마음을 드러내던 말빛이 자꾸 사그라들어요. ‘사라지다·사그라들다·스러지다·수그러들다’는 비슷하면서 다른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팽개치면서 서울말에 너무 쏠려 버렸지 싶습니다. 사투리란 삶말이요 살림말이자 사랑말입니다. 투박하면서 투실합니다. 다 다른 삶이란 다 다른 눈빛으로 투박하면서 투실한 오늘을 그리는 튼튼하고 든든한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꾸준히 흐르는 냇물다운 결을 담은 ‘내내·내도록’이란 수수한 말 한 마디야말로 두고두고 찬찬히 우리 넋을 살찌워 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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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숲에서 짓는 글살림

53. 수수밥



  요즘에는 거의 들을 일이 없으나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씨 가운데 ‘기술입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좁고 밑감(자원)이 적지만 사람은 많으니 저마다 ‘솜씨·재주·힘’을 키워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면서, 어린배움터에서 뭇 길잡이가 ‘기술입국’을 참 자주 읊었는데, 2020년에 우리말로 나온 어느 일본 만화책에서 이 말씨를 새삼스레 보았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합니다만, 설마 싶은 웬만한 한자말은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습니다. ‘기술입국’은 섬나라인 일본이 스스로 서려는 뜻으로 지은 말씨더군요.


  아홉열 살이든 열두어 살이든 아이들이 ‘기술입국’이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까요? 어른이라면 다 알아들을까요? 일본 말씨를 들여오더라도 ‘솜씨나라·재주나라’처럼 옮길 생각은 왜 안 했을까요?


사람들에겐 다양한 특징이 있고

→ 사람들은 다 다르고

→ 사람들은 모두 다른 빛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빛이 있고


  한자말 ‘특징’을 낱말책에서 뜻을 살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싶습니다만, 이러다 보니 이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특징 :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이고, ‘특별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가리킨다는데 ‘구별 : 차이가 남’이요, ‘차이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이라지요. 간추리자면 ‘특빙·특별·구별·차이 = 다르다’입니다. 우리말 ‘다르다’를 제대로 가릴 줄 모르면서 애먼 한자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셈이니 “다양한 특징” 같은 겹말을 쓰고도 겹말인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수수하게 ‘다르다’라 하면 되고, ‘남다르다’나 ‘빛다르다’라 할 만하고, ‘도드라지다·두드러지다’나 ‘돋보이다·도두보이다’라 할 만해요. 꾸밈말을 붙여 “모두 다르다·저마다 다르다”나 “참 다르다·무척 다르다”라 해도 될 테지요.


  부치거나 튀길 적에 ‘기름’을 씁니다. 한자로는 ‘유(油)’라 하는데, 기름이 기름인 까닭을 생각하거나 가르치는 어른은 드물어요. ‘기르다’에서 온 ‘기름’인데 말이지요. ‘포도씨기름’이든 ‘콩기름’이든 ‘돌기름(석탄)’이든, 살점이 알뜰히 붙은 열매로 나아가기에 고맙게 얻습니다. 수수한 말씨 하나이지만 어느 말이 어떤 뿌리로 퍼지는가를 짚으면서 알맞게 가려서 쓰고 널리 살려서 쓰는 길을 밝힌다면 누구보다 아이들이 오늘 우리 삶을 슬기롭게 배우기 마련입니다.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소식이었다

→ 하루한끼만 조금 먹었다


  하루에 한끼를 먹는다면 ‘하루한끼’라 하면 됩니다. 이 말씨가 낱말책(국어사전)에 없으면 우리가 먼저 스스로 즐겁게 써서 퍼뜨리면 됩니다. 하루에 두끼를 누리면 ‘하루두끼’로, 하루에 세끼를 누리면 ‘하루세끼’처럼 새말을 알맞게 퍼뜨리면 되어요.


  이 땅에서 삶을 짓기에 이 땅에서 비롯한 말씨를 가만히 추슬러서 말을 짓습니다. 굳이 뛰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훌륭하게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생각하면서 수수하게 말합니다. 투박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투박하게 사랑할 말씨를 가다듬습니다.


  조금 먹으니 “조금 먹는다”고 말해요. 구태여 ‘소식’이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많이 먹으니 “많이 먹는다”고 말합니다. 굳이 ‘대식’이란 한자말은 안 써도 됩니다. 밥을 많이 먹으니 ‘밥보·밥꾼·밥꾸러기’입니다. ‘밥돌이·밥순이’라 해도 어울려요. 때로는 ‘밥고래·밥깨비’처럼 재미나게 쓸 만합니다.


  그리고 여느 사람이 먹는 여느 밥자리란 ‘한식’도 ‘가정식’도 아닌 ‘수수밥’이나 ‘조촐밥’일 테지요. ‘단출밥’이나 ‘단촐밥’이라 해도 되어요. 한글로는 ‘소식’이라 적으나 한자가 다른 ‘소식(消息)’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이 한자말은 그냥 쓰는 길이 낫다고 하지만, ‘알리다·알려주다·알림’이나 ‘알림글’로 풀어낼 만합니다. ‘다른일·딴일·새일’이나 ‘목소리·말·말씀·얘기·이야기’로 풀어내어도 돼요. 자리를 살피고 때를 헤아리면 자리랑 때에 맞는 말씨가 하나둘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말이 없기에 “말이 없다”고 해요. ‘무소식’이 아닙니다. 말이 없으니 ‘조용하다’고 하지요. 조용하니까 잘 지내나 보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닙니다. 말이 없기에 걱정이 없고, 조용하니까 잘 있습니다.


 귀신 같은 솜씨 → 빼어나다 . 솜씨있다


  언제부터인가 퍼진 “귀신 같은 솜씨”는 얼마나 알맞을까요. 왜 ‘귀신’ 같다고 할까요. 눈에 안 보일 만하도록 무엇을 한다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나 어느새 한다는, 이러한 결이라면 ‘감쪽같다’라 했습니다. “감쪽같이 해낸다”고 하지요. 감쪽같이 해내는데 보기에 좋다면 ‘빼어나다·훌륭하다’요 ‘솜씨있다·재주있다’입니다.


  여기에서도 생각해 봐요. ‘솜씨있다·재주있다’를 얼마든지 새말로 삼아서 쓸 만합니다. ‘멋있다·값있다·뜻있다’처럼 어떤 모습이나 몸짓이나 몸놀림이 남다르다고 여기면서 새말을 짓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꿈있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어른이라면 언제나 ‘사랑있는’ 살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 한 마디를 살리는 길은 매우 쉽습니다. 스스로 살림길을 아름다이 다스리고 즐겁게 가꾸려는 마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새삼스레 말을 짓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삶이 즐겁지 않다면 옆사람 살림을 훔치거나 빼앗으려 들어요. 또는 남을 쳐다보면서 흉내를 내거나 따라합니다. 일본사람이 쓰던 ‘기술입국’ 같은 말씨를 고스란히 흉내낸 이 나라 어른이 바로 안 즐거운 마음을 낱낱이 드러낸 셈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홀로서기(독립)를 할 노릇입니다. 혼자서 서기에 홀로서기라면, 즐겁게 사랑으로 살림을 세운다면 ‘사랑서기’입니다. 누구한테 기대지 않으려고 애쓴다면 ‘스스로서기’일 텐데, 서울바라기를 하지 않으려는 눈빛이라면 ‘마을세우기’를 하겠지요. 마을세우기 곁에는 ‘마을짓기’가 있을 테고, 마을짓기 둘레에는 ‘마을가꾸기’에 ‘마을나눔’이 있기 마련입니다.


 수수살림 ← 미니멀라이프 . 간소한 생활


  수수하게 누리는 밥처럼 수수하게 짓는 살림입니다. 영어나 한자말이 아니어도 우리 살림을 너끈히 펼칠 만합니다. ‘수수살림’을 짓고, ‘작은살림’을 돌보고, ‘조촐살림’을 꾸립니다. ‘들꽃살림’을 품고, ‘푸른살림’을 펴며, ‘마을살림’을 일구지요.


  수수하게 쓰는 말이니 ‘수수말’입니다. ‘일상용어’나 ‘생활용어’가 아닌 ‘수수말’이요 ‘여느말’입니다. ‘들꽃말’이자 ‘삶말’이고요. 우리는 누구나 들꽃입니다. 저마다 다르게 피고 지는 들꽃 한 송이입니다. 똑같은 들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르익는 봄날에 나무 곁에 서 볼까요? 나무 한 그루에 돋는 나뭇잎 가운데 똑같은 무늬나 빛깔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핏 수수하게 보여도 다 다르면서 빛나는 들꽃이요 나뭇잎이듯, 우리가 늘 혀에 얹는 말 한 마디는 새록새록 수수하면서 빛나는 넋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골 할매가 말을 꾸밀 일이 없고, 시골 할배가 억지스레 말을 치레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시골말을 쓰는 곳에 아름드리숲이 무럭무럭 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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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숲에서 짓는 글살림

52. 도꼬마리



  가을이 저물고 겨울로 접어들다가 슬슬 잎샘바람이 부는 어느 날 ‘도꼬마리’가 불쑥 떠오릅니다. 아, 아, 도꼬마리. 요새는 이 들꽃을 아예 못 보다시피 합니다. 제가 어린 나날을 보내던 1980년대에는 큰고장 한켠에 빈터나 골목이 어김없이 있었어요. 배움터 꽃밭에 살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들꽃이 많았어요. 새마을바람이 한창이던 때에도 나라 곳곳 어디에나 빈터나 풀밭은 꼭 있었는데요, 씽씽이(자동차)가 부쩍 늘어난 1990년대를 지나니 바야흐로 빈터도 풀밭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러면서 그토록 흔하던 들풀이며 들꽃이 자취를 감추어요.


  아니, 쫓겨납니다. 아니, 짓밟힙니다. 아니, 잿빛덩이(시멘트)에 옴팡 파묻힙니다.


  2021년 새해에 열네 살이 된 큰아이 곁에서 ‘도꼬마리’가 그립다고 노래를 하니 “도꼬…… 뭐요? 그게 뭐예요?” 하고 묻습니다. “응? 그렇지? 넌 아직 도꼬마리를 못 봤구나. 우리 집에는 아주까리는 많아도 도꼬마리는 없어!” “도꼬마리? 도꼬마리도 풀이에요?” “그럼, 얼마나 멋지고 재미난 풀인데. 그냥 풀로 있을 적에는 잘 눈여겨보지 않지만,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그러니까 씨앗이 영글 적에는 동무들하고 도꼬마리씨를 찾으려고 뻔질나게 빈터랑 풀밭을 뒤졌어.” “왜? 그걸로 뭐하는데?” “응. 도꼬마리씨를 서로 몸에다 던지며 놀았거든. 도꼬마리씨는 갈퀴가 안으로 굽어서 말야, 털옷이나 솜옷에 척 붙어서 안 떨어지거든.”


도꼬마리 ← 창이(蒼耳)

도꼬마리씨·도꼬마리 열매 ← 창이자(蒼耳子)


  큰아이 곁에서 작은아이도 도꼬마리가 궁금합니다. 새해에는 도꼬마리를 찾아내고 싶습니다. 도꼬마리씨를 몇 톨 얻어서 우리 집 뒤꼍이며 책숲에 살살 뿌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들 곁에서 어버이로 살지만, 저 스스로 이 아이들마냥 어린이로 지내던 지난날, 들꽃으로 어떻게 놀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들꽃놀이를 하면서 들꽃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도꼬마리는 도꼬마리일 뿐 ‘창이’가 아니거든요. 도꼬마리씨도 도꼬마리씨일 뿐 ‘창이자’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삽질바람에 같이 휘말리면서 빈터하고 풀밭을 씽씽이랑 찻길이랑 가게한테 모조리 내주면서 우리 들꽃이며 들풀뿐 아니라, 들꽃말하고 들풀말까지 잊거나 잃는구나 싶습니다. 들꽃하고 들풀을 잊거나 잃기 때문에 수수하면서 쉽고 상그레한 말을 어느새 잊거나 잃지 싶어요.


  싱그러운 들꽃을 보면서 싱글싱글 웃지요. 상그러운 들풀을 쓰다듬으면서 상글상글 노래합니다.


원추리 ← 황화채(黃花菜), 훤초(萱草), 망우초(忘憂草)


  원추리를 아무렇지 않게 훑어서 나물로 삼던 사람은 아스라이 먼 옛날 옛적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아저씨나 아줌마라는 이름인 분들이라면 원추리 나물쯤 가뜬히 누리고 나눈 살림이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원추리꽃빛’을 맑게 떠올릴 만하겠지요.


  꽃다지꽃빛하고 개나리꽃빛하고 원추리꽃빛이 다릅니다. 진달래꽃빛하고 모과꽃빛하고 배롱꽃빛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꽃빛은 서로 얽히고 어울려요. 우리는 먼먼 옛날부터 꽃을 바라보면서 빛깔을 익혔고, 꽃노래를 부르면서 말빛을 가락으로 영글어서 즐겼습니다.


  생각해 봐요. 원추리는 원추리일 뿐, ‘황화채’도 ‘황초’도 ‘망우초’도 아닙니다.


봉긋꽃 ← 튤립


  이 땅에 없던 꽃이 꽤 많이 들어왔고, 새로 들어오며, 앞으로도 들어오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 없던 꽃이니까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이나 여러 바깥말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만, 이 땅에서 아끼고 싶은 꽃마음을 담아서 새롭게 이름을 지어도 즐겁습니다.


  이웃님이 문득 건네준 ‘튤립’ 여러 송이를 받고서 한참 생각에 잠겼어요. 이윽고 말꼬가 터졌습니다. “이 봉긋봉긋 꽃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가!” 가녀리다 싶은 꽃대(줄기)에 꽃송이가 소담스럽지요. 그래요, 그 어느 꽃보다 봉긋봉긋 올라오는 꽃송이가 아름차니, ‘봉긋꽃’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사랑바람꽃·사랑물결꽃·사랑해꽃 ← 카네이션


  사랑해 마지 않는 마음을 새빨간, 아주 빨갛디빨간 꽃으로 나타낸다고 해요. 해마다 오월을 맞이하면 거리마다 이 붉은꽃으로 물결칩니다. 흔히 ‘카네이션’이라 합니다만, 이 꽃송이를 가슴에 달면서, 또 이 꽃송이를 건네면서, 서로서로 “사랑해!” 하고 노래합니다.


  그래요. 사랑한다고 노래하면서 주고받는 꽃,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가슴에 다는 꽃, 사랑하는 사이를 더욱 짙게 물들이는 꽃, 오월 한 달을 온통 붉게 물들여 서로서로 사랑으로 물결치는 꽃, 사랑이라는 바람을 훅 끼치면서 포근히 어루만지는 꽃, 이 꽃한테는 ‘사랑바람꽃’이나 ‘사랑해꽃’처럼 고스란하게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해바라기 ← 규곽(葵藿), 향일화(向日花)


  튤립이며 카네이션한테 이름을 새로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느 이웃님이 시큰둥히 한소리를 합니다. “자네는 식물학자도 꽃 전문가도 아닐 텐데, 꽃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붙여서야 되나?” 시큰둥꾸러기 이웃님을 바라보면서 봉긋웃음을 짓습니다. “‘찔레’를 전라말로 ‘찔구’라 하는 줄 아시지요?” “그걸 모르면 전라사람인감?” “‘찔구’란 이름은 누가 함부로 지었나요?” “아니, 함부로 짓다니, 구수한 사투리 아녀?” “네, 구수한 사투리는 누가 짓나요? 식물학자나 꽃 전문가가 짓나요?” “아, 아니, 그렇지만서도, 이름을 새로 짓는데, 전문가 생각을 들어야 하지 않것나?” “사투리는 여느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어요. 그리고 어린이가 지어요. 사투리란, 그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이 언제나 즐거이 노래하면서 지어요. ‘해바라기’가 이 나라에서 안 자라던 꽃인 줄 아시나요? 그런데 누가 ‘해바라기’라고 이름을 지었을까요? 아무도 모른답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람들이 이 꽃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마음에서 샘솟은 이름이거든요. 우리가 곁에 두고 사랑하고 돌보려는 꽃이라면, 우리가 즐겁게 노래하면서 이름을 지으면 돼요. 구태여 학술이름에 안 매여도 되잖아요? 우리가 사랑할 이름을 붙여서 나누면 넉넉하지요.”


들풀·들꽃·풀·풀꽃 ← 무명초(無名草), 무명화(無名花), 잡꽃, 잡종, 잡초, 잡화(雜花), 방초(芳草), 야생초, 허브, 약초, 약풀, 초본(草本)


  ‘이름없는 풀꽃(무명초·무명화)’이란 없습니다. 이름을 지으려는 사랑을 마음에 일으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름모를 풀꽃’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되는데, 식물학자나 전문가라는 손길을 기다리니, 우리는 스스로 생각날개를 잊고 말빛을 잃습니다.


  들꽃이요 풀꽃입니다. 들사람이며 들넋입니다. 들길이고 들살림이에요.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투리를 오늘도 새롭게 지으면 좋겠습니다. 머나먼 옛날 옛적에 쓰던 말에만 기대지 말고,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짓는 말을 마주하고 품으면 좋겠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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