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54. 아직, 그대로, 내내, 자꾸, 동동동
우리가 그리지 못할 말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건사하고 쓰고 누리는 삶이자 살림이라면 모두 말로 담아낼 만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말로 깔끔하고 알맞고 사랑스럽게 이름을 붙이든, 우리말로 미처 못 붙이고서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영어 이름을 그냥 쓰든, 모든 삶과 살림을 ‘말’로 나타냅니다.
일본말이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중국말이란,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영어란, 영어를 쓰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우리말(한국말)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이에요.
경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기에 경상말이고,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서 전라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고장하고 고을하고 마을하고 집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누가 시키기에 외워서 쓰던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고 살림하고 사랑하다 보니 저절로 마음에서 피어나 즐겁게 생각하면서 지은 말이거든요.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스스로 사랑으로 살림을 가꾸려고 생각한다면, 모든 살림을 ‘우리말(전라말이든 경상말이든 서울말이든 충청말이든 제주말이든)’로 짓기 마련입니다. 즐거움도 사랑도 잊거나 등돌린 채 스스로 살림을 가꾸거나 지으려는 생각을 안 한다면, 우리는 예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우리말을 스스로 짓는 눈빛하고 넋’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한자말 ‘계속(繼續)’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 강의의 계속이다 → 지난 이야기와 잇닿는다
계속 쏟아지는 폭우 → 쉬잖고 쏟아지는 비 / 줄기차게 퍼붓는 비
열흘 동안 계속 열렸다 → 열흘 동안 열렸다 / 열흘 내리 열렸다
계속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 → 나날이 줄어든다 / 자꾸 준다
여느 낱말책은 ‘계속(繼續)’을 “1.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 2. 끊어졌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 나감 3. 끊이지 않고 잇따라”로 풀이합니다. 이는 “끊이지 않고”나 ‘잇따라’로 고쳐서 쓰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밖에 어떻게 다루면 즐겁고 알맞을는지 차곡차곡 펼쳐 볼게요.
꾸준하다·줄기차다·죽·쭉·줄곧·줄잇다·줄줄이
자꾸·내리·내처·내내·내·내도록·그동안·동안
어제도 오늘도 꾸준합니다. 안 지치는지 줄기찹니다. 죽 해왔고 쭉쭉 뻗습니다. 줄을 잇듯이, 줄줄이 흐르듯, 줄곧 했는걸요. 했는데 자꾸 합니다. 아침부터 내리 합니다. 저녁까지 내처 했어요. 오늘도 하루 내내 하는데, 냇물처럼 내 하는군요. 밤새도록 하듯 내도록 하고, 그동안 했어요.
밤낮·밤낮없다·낮밤·낮밤으로
꼬박꼬박·곰비임비·걸어가다·거침없이·막힘없이
밤이며 낮이며 없이 합니다. 밤낮으로 또는 낮밤으로 하고, 밤낮없이 또는 낮밤없이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꼬박꼬박 할까요. 곰비임비 하더니 잘 걸어갑니다. 거침없는 너울 같고, 막힘없는 바람 같아요.
그냥·그렇게·곧게·곧바로·고스란히
늘·언제나·노상·언제까지나
그냥, 그냥그냥 하는군요. 그렇게 하다 보니 곧게 하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마음이 되어 고스란히 합니다. 안 하는 때가 없으니 늘 합니다. 오늘도 어제도 언제나 합니다. 말려도 안 듣고 노상 하니, 멈출 때를 알 길이 없이 언제까지나 합니다.
끊임없다·끈덕지다·끈질기다·끝없다·가없다
질질·지며리·좔좔·꼬리를 물다·술술·철철
끊이지 않네요. 끈덕지군요. 아니, 끈질길까요. 끊이지 않으니 끝이 없어요. 가없는 하늘마냥 하네요. 그러나 질질 끄는 듯하네요. 다시 가다듬어 지며리 하고, 물결처럼 좔좔 흐르듯 해요. 꼬리를 물듯 하고, 가루가 솨르르 쏟아지듯 술술 하고, 샘물이 솟듯 철철 터져나오듯이 합니다.
퍼붓다·빗발치다·쏟아지다·넘치다
그대로·이대로·있는 그대로·저대로
함박비가 퍼붓듯 합니다. 빗발이 치는데 끊어질 틈이 없어요. 한꺼번에 쏟아지듯 하고, 찰랑찰랑 넘치는 하루입니다. 여태 했으니 그대로 갈까요. 이제껏 했으니 이대로 가지요. 있는 그대로 둡니다. 저대로 잘 가겠지요.
사뭇·여태·이제껏·새록새록·아직·씩씩하다
더·좀더·또·또다시·-다가·다시
사뭇 새삼스럽게 하고, 여태 해요. 이제껏 두고두고 했으며, 오늘은 새록새록 떠올리며 합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아직 하네요.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씩씩하게 가네요. 더 해볼까요. 좀더 하면 어떤가요. 또 하고 또다시 한다면, 하다가 지치지 말고 다시 하면 새롭습니다.
이어가다·잇다·잇달다·잇닿다·잇대다·잇따라
쉬잖다·쉴새없다·숨돌릴틈없다·숨쉴틈없다
이어가는 삶입니다. 잇는 끈입니다. 잇달아 노래하고, 잇닿는 마음이에요. 잇대는 손길이 반갑고, 잇따라 가는 동무가 즐겁습니다. 쉬어도 좋고, 쉬잖고 해도 좋습니다. 쉴새없이 가면 바쁠 테지만, 웃고 노래하면서 한다면 숨돌릴틈이 없어도 기뻐요.
재잘거리다·조잘거리다·동동거리다·종종거리다·중얼중얼·지저귀다
한결같다·한꽃같다
참새마냥 끝없이 재잘재잘 조잘조잘입니다. 내내 동동거리고 내처 종종거리더니 지절지절 지저귀듯이 잇습니다. 그래요. 흩어진 여럿을 가만가만 모두는구나 싶은, 한결같은 마음씨입니다. 한결같이 눈부시니 한꽃같이 곱네요.
이럭저럭 여러 낱말을 혀에 얹어 봅니다. 이 숱한 우리말은 참으로 오래도록 ‘계속’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두루 쓰던 살림입니다. 한자말이나 바깥말을 쓰기에 나쁠 까닭은 없되, 다 다른 자리에 다 다른 숨결하고 마음을 드러내던 말빛이 자꾸 사그라들어요. ‘사라지다·사그라들다·스러지다·수그러들다’는 비슷하면서 다른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팽개치면서 서울말에 너무 쏠려 버렸지 싶습니다. 사투리란 삶말이요 살림말이자 사랑말입니다. 투박하면서 투실합니다. 다 다른 삶이란 다 다른 눈빛으로 투박하면서 투실한 오늘을 그리는 튼튼하고 든든한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꾸준히 흐르는 냇물다운 결을 담은 ‘내내·내도록’이란 수수한 말 한 마디야말로 두고두고 찬찬히 우리 넋을 살찌워 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