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자라는 책읽기



  어느 때에 생각이 자라는가 하고 헤아리면, 즐거운 자리에서 생각이 자라는구나 싶습니다.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리에서 생각이 자라고,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자리에서 생각이 자랍니다. 스스로 웃거나 노래하면서 삶을 되새기는 자리에서 생각이 자랍니다. 새로운 길을 꿈꾸려는 이웃하고 동무랑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할 적에 생각이 자랍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책을 만나서 읽기에 생각이 자라고, 어느 책이든 아름다운 눈길로 읽으려고 하기에 생각이 자라요. 2018.1.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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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혐, 여혐, 혐한



  ‘혐(嫌)’이라는 한자를 넣은 ‘혐한’은 일본에서 쓰는 낱말입니다. 한국에서는 ‘혐일’처럼 안 쓰고 ‘일혐’처럼 쓰는데, 앞뒤 얼개가 다르기는 하지만 ‘일혐’도 일본 말씨입니다. ‘혐’을 앞이든 뒤이든 넣는 말씨는 일본 말씨이거든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일본을 끔찍히 미워하는 분이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는 모습은 살짝 얄궂습니다. 일본이 미운데 왜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못 털어낼까요? 일본이 참말로 밉다면 한국말에 깃든 모든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부터 제대로 낱낱이 말끔히 털어낼 노릇이지 싶습니다. 아무튼 이 땅에서 ‘일혐’인 사람이나 일본에서 ‘혐한’인 사람은 모두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똑같아, 바로 이 미움에서 전쟁무기가 불거지고 평화가 깨지며 싸움이 태어나요. 여혐인 이들은 여자를 깔보거나 깎아내리기 일쑤인데, 이들은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까요? 이들은 어머니 없이 태어날까요? 여혐이고 싶은 이들한테도 자유가 있으니, ‘여혐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 될 텐데, 이렇게 ‘여혐하는 자유’를 실컷 누리려 한다면, 밥도 옷도 집도 모두 그들 스스로 건사하고 지어서 살 노릇이지 싶습니다. 모두 혼자 해야지요.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그 미운 사람 손을 탄 것은 안 쓸 수 있어야지요. 이를테면 일혐이라면서 ‘일본 기술이 깃든 모든 전자제품’을 그냥 쓴다면 입으로만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치달리면서, 삶하고 말이 어긋난 매무새입니다. 배우지 않으니 미워하고,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니 미움질에서 쳇바퀴를 돌지 싶습니다. 2018.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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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는 책읽기



  2018년이라는 해를 맞이하고 어림해 보니,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꼽아 보니, 나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은 지 스물여섯 해째인가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먹었고, 그 뒤로는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었으며, 아이들한테도 내가 지은 밥을 먹이고 나도 함께 먹습니다. 앞으로도 밥을 지어서 먹을 나날이 길겠구나 싶은데, 밥짓는 살림을 잇는 동안 늘 느끼는 대목 가운데 하나를 밝혀 본다면, ‘학교를 오래 다닌 이’는 하나같이 참말로 밥을 잘 못 짓는구나 싶어요. 학교를 오래 다니고도 밥을 잘 짓는 이를 본 일은 너무나 드물더군요. 그리고 학교를 오래 다니면서 밥을 짓는 살림을 모르는 이들은 글을 참 잘 못 쓰지 싶어요. 학교를 다니지 않고서 밥을 내내 지어 온 사람들은 말도 참 잘 하고 글도 참 정갈히 쓴다고 느낍니다. 재미있지요. 밥짓기를 잘 하는 사람이 글을 참 맛깔스럽게 쓰고, 옷짓기나 집짓기를 즐거이 하는 사람이 글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레 쓰는구나 싶으니까요. 2018.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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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책읽기



  순천에서 어느 길손집에 묵는데 하룻밤에 2만 원을 받습니다. 퍽 눅은 값이네 하고 생각하는데, 막상 씻으려고 보니 이 겨울에 찬물만 나옵니다. 값을 만 원이든 이만 원이든 더 받고서 따순물이 나오도록 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어제 서울에서 어느 길손집에 묵을 적에 4만 원을 치렀는데요, 그곳은 그리 깨끗하거나 좋지는 않았어도 따순물이 나왔기에 고마이 여기면서 씻고 쉴 수 있었습니다. 엊저녁에 또 아침에 찬물로 몸을 씻고 머리를 감으며 생각해 보았어요. ‘모처럼 겨울에 오직 찬물로만 씻어 보는구나, 찬물로 몸을 더욱 튼튼하게 다스리라는 뜻이겠지’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순천에서 묵는 이 길손집은 바닥에는 불이 들어오지만 한 방에 침대를 여섯 놓았어요. 침대에서 잘 적에는 춥더군요. 아침에 이르러서야, 이불을 바닥에 깔고 덮으면서 잘걸 하고 뉘우칩니다. 침대방인데 바닥에만 불이 들어와서 방이 온통 찬바람이면서 김이 나온다면? 하하하 재미나게 웃으면서 짐을 꾸립니다.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2017.12.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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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원 책읽기



  엊저녁 길손집에 묵으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습니다. 그제하고 어제 이틀에 걸쳐 이야기꽃마실을 다니는 동안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래서 어제하고 그제는 거의 밥을 안 먹으면서 한참 이야기를 했고, 묵직한 가방을 짊어지며 걸어다녔습니다. 이래도 힘들지 않더군요. 엊저녁에 이르러 비로소 ‘무언가 좀 먹으면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길손집에서 가까운 가게를 찾아가서 김밥하고 빵하고 장만합니다. 이때에 가게 일꾼은 팔천 얼마에 20원을 붙여서 값을 받습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가게 일꾼이 나중에 “아차! 미안해서 어쩌나. 봉지 값까지 받아 버렸네. 이렇게 천가방 들고 다니면서 담으실 줄 몰랐어요!”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여쭈었지요. “그래요? 그러면 20원을 덤으로 받으신다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고작 20원이지만 저는 이곳에 선물로 드릴 수 있으니 좋습니다.” 여느 때에 여느 자리에서 쇠돈으로 20원을 건넨다면 “이놈 뭐야? 미친 녀석이야?” 할는지 몰라요. 그러나 가게에서 값을 치르면서 엉뚱하게 20원을 더 치르도록 해서 고개를 숙이시는 분한테 “여기 20원은 제 마음입니다.” 하고 여쭈면 뜻밖에도 이 조그마한 20원은 마치 20억 같은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2017.12.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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