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는 책읽기



  사랑스러운 책을 장만합니다. 싱그러이 흐르는 노래를 온몸으로 들으며 책을 펼칩니다. 눈은 글씨랑 그림이랑 사진을 좇으며 춤춥니다. 마음은 즐거운 보금자리에서 지을 고운 꿈을 그립니다. 나는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노래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기쁜 책 한 권을 다 읽고서 덮을 적에는 마음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노래 한 가락을 가만히 흥얼거립니다. 2017.3.1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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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값 책읽기



  어제 읍내에 나가서 살피니 달걀 한 판에 7900∼8500원 즈음 합니다. 보름 앞서하고 대니 천 원 즈음 내렸구나 싶어요. 이 값이 비싸다면 비쌀 테지만 싸다면 싸고, 아무렇지 않다면 아무렇지 않습니다. 한 달에 달걀 한 판을 먹는다면 지난해하고 견주어 4000∼5000원을 더 치르는 셈이지만 고작 한 달에 4000∼5000원입니다. 한 달에 달걀 두 판을 먹는다면 한 달에 만 원쯤 더 쓰는 셈이고요. 살림하는 사람한테 이만 한 값이란 아쉬운 돈일 수 있으나 대수롭지 않을 수 있어요. 천 원이나 오백 원이라도 아끼려 한다면 아쉬워요. 아이들하고 밥을 즐겁게 지어서 맛나게 먹는다는 생각이라면 값을 딱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이게 얼마고 저게 얼마인데’ 하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오늘 하루 이 밥을 다 같이 웃으면서 먹자는 생각입니다.


  책값은 쌀까요, 비쌀까요. 책값이 비싸서 도무지 사 읽을 엄두가 안 난다고 여기면 비쌉니다. 즐겁게 읽어서 기쁘게 생각을 살찌우려는 마음이 되면 ‘싸지도 비싸지도 않으’면서 즐겁거나 기쁩니다. 책값 만 원이나 이만 원이란 그리 큰돈이 아닙니다. 살뜰히 건사해서 두고두고 되읽다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장만한다면 시집 한 권에 만 원이라든지 만화책 한 권에 오천 원은 대수롭지 않은 값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고마운 값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책값을 비싸게 느낀다면, 두고두고 되읽다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고르지 않은 때이지 싶어요.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들출 일이 없는 책일 적에는 어느 책이든 값이 비싸다고 느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늘 책상맡에 놓고서 몇 해 동안 즐겁게 읽는 책이라면 십만 원이라는 값이어도 안 비싸요. 아이들한테 물려주어 쉰 해 넘게 즐기는 책이라면 이십만 원이라는 값이어도 안 비쌉니다. 값만 바라보면 값만 보입니다. 책을 바라보면 책이 보여요. 2017.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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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책읽기



  전복 손질을 이제껏 해 본 적 없습니다. 전복을 따로 장만해서 먹지 않았습니다. 얼마 앞서 전복을 선물로 받았고, 며칠에 걸쳐서 여러모로 전복을 먹어 봅니다. 국에 넣어 보고, 달걀찜에 넣어 보다가, 마지막에는 구이를 했어요. 막상 전복을 손질해서 이것저것 해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아요. 해 보기 앞서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모르더라도, 여러모로 살펴서 다루어 보면, 손수 만져 보면 천천히 배울 수 있어요. 다음에는 스스로 전복을 장만해서 전복구이를 즐겁게 해 보려고 생각합니다. 2017.1.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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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책읽기



  이웃님이 쌀을 선물해 주십니다. 우와, 쌀이네. 게다가 저희가 즐겁게 먹는 누런쌀로 선물해 주셔요. 어쩜 이리 고마우신지. 작은 나락섬을 하나 받고서, 저희 선물로 책을 두 권 드립니다. 하나는 《한국 식물 생태 보감》 첫째 권. 이 ‘생태 보감’을 두 권 건사해서 집하고 도서관학교에 한 권씩 둔 터라, 깨끗한 책으로 드립니다. 여기에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을 얹어서 함께 드립니다. 이웃님하고 몇 마디 나누다가 문득 생각해 보는데, 요새는 쌀값이 너무 눅어서 ‘생태 보감’ 한 권 값이 쌀값을 웃돕니다. 어라, 책 한 권 값이 외려 쌀값보다 높다고? 참 거석한 노릇이지만, 참말로 쌀값이 너무 눅습니다. 2017.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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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



  처음이 있다고 여기니 마지막이 있고, 이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저곳이 있어요. 처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길 만하니, 한 해를 열두 달로 나눌 수 있고, 한 달을 서른 날로 가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해 어느 날이든 우리한테는 모두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열 살 나이에 맞이하는 12월 31일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서른 살 나이에 맞이하는 1월 1일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나는 이를 아마 아홉 살 즈음에 불현듯 깨달았다고 느끼는데, 어릴 적에는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하도 얻어맞는 일’이 잦아서 ‘빨리 나이를 더 먹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 독재는 어디에나 시퍼런 서슬을 뻗었어요. 그렇지만 꼭 정치 탓만 할 수는 없을 테지요. 그런 어두운 때에도 아이를 한 번도 안 때리고 따스히 돌본 보금자리는 틀림없이 있었으니까요. 2016년 12월 31일이든 2017년 1월 1일이든 대수로울 일은 없으나,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언제나 꼭 한 번만 찾아와서 누리는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아침을 엽니다. ‘ㅅㅎㄱ’을 어떻게 엮으면 즐겁거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16.12.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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