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원 책읽기



  엊저녁 길손집에 묵으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습니다. 그제하고 어제 이틀에 걸쳐 이야기꽃마실을 다니는 동안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래서 어제하고 그제는 거의 밥을 안 먹으면서 한참 이야기를 했고, 묵직한 가방을 짊어지며 걸어다녔습니다. 이래도 힘들지 않더군요. 엊저녁에 이르러 비로소 ‘무언가 좀 먹으면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길손집에서 가까운 가게를 찾아가서 김밥하고 빵하고 장만합니다. 이때에 가게 일꾼은 팔천 얼마에 20원을 붙여서 값을 받습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가게 일꾼이 나중에 “아차! 미안해서 어쩌나. 봉지 값까지 받아 버렸네. 이렇게 천가방 들고 다니면서 담으실 줄 몰랐어요!”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여쭈었지요. “그래요? 그러면 20원을 덤으로 받으신다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고작 20원이지만 저는 이곳에 선물로 드릴 수 있으니 좋습니다.” 여느 때에 여느 자리에서 쇠돈으로 20원을 건넨다면 “이놈 뭐야? 미친 녀석이야?” 할는지 몰라요. 그러나 가게에서 값을 치르면서 엉뚱하게 20원을 더 치르도록 해서 고개를 숙이시는 분한테 “여기 20원은 제 마음입니다.” 하고 여쭈면 뜻밖에도 이 조그마한 20원은 마치 20억 같은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2017.12.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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