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책읽기



  우리 스스로 엉성한 생각이라면 우리 눈길이 엉성하기 마련입니다. 이때에 우리 손에 집는 책도 엉성한 책이기 일쑤예요. 엉성한 눈길로는 고운 책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고운 책을 알아보려면 고운 눈길이 되어야 하고, 고운 생각을 지필 줄 알아야 합니다. 엉성한 생각이나 눈길이었어도 때로는 고운 책을 손에 쥘 수 있어요. 이때에는 우리 스스로 좀 엉성하구나 하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이런 엉성한 모습으로는 삶이 즐거울 수 없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할 만해요. 스스로 엉성한 줄 느끼면서, 이 엉성한 실타래를 풀려는 마음이어야 비로소 엉성한 수렁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엉성한 책읽기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언제까지나 엉성한 수렁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더 깊이 빠져들는지 몰라요. 끝까지 엉성한 수렁에 갇힌 채, 엉성한 수렁에 갇힌 줄 모른다면, 아마 죽어서 다시 태어나겠지요. 똑같이 되풀이하려고, 또는 다음 삶에서는 엉성한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우리 스스로 ‘나를 바라보기’를 하려고 마음을 품고 생각을 지핀다면, 엉성한 길을 걷지 않습니다. 가시밭길이나 쓸쓸한 길이어도 늘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길을 걸어요. 수렁에 갇힌 몸으로 안 힘들다면 즐거운 삶일까요? 조금 힘들는지 모르나 홀가분하면서 활짝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길을 걷는다면, 이때에 즐거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8.1.2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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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로 여기는 책



  제가 사는 모든 책은 저한테 이야깃거리입니다. 자료로 삼을 책은 장만하지 않습니다. 사전을 짓는 길에 자료로 삼아야 하는 책을 더러 사기는 하지만, 자료 값어치가 아닌 ‘사전을 짓는 길을 걷는 나한테 이야깃거리를 샘솟도록 이끄는 기운이 있는가’를 살펴서 책을 삽니다. 이야깃거리를 느끼지 못한다면 책을 손에 쥐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 제 삶에서 이야깃거리를 길어올리는 즐거운 빛을 밝히는 책이 아니라면 장만하지 않습니다. 2018.1.2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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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책



  저녁 여덟 시. 아이들아 이제 곧 잘 텐데 하루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보고요. 저녁 아홉 시. 이 아이들아 잘 때가 되었는데 책은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어떨까? 조금만 더 보고 싶은데. 저녁 열 시. 이쁜 아이들아 잘 때가 훌쩍 지나가는데 몸을 헤아려서 책은 그만 보면 어떻겠니? 조금만 더 볼게요. 이리하여 밤 열한 시가 다 될 즈음에 겨우 달래고 달래서 촛불을 함께 보고 나서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늦게까지 잠을 미루니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납니다. 일찌감치 잠든다면 아침 일찍 책을 펼 수 있을 테지요. 아침에 읽든 저녁에 읽든 모두 똑같은 책인데 말이지요. 2018.1.2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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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뺏는 책읽기



  누가 말합니다. “귀한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이분한테 한말씀을 여쭙니다. “제 아름다운 한때를 뺏으셨으면 돌려주셔요.” 저한테 말한 분이 어쩔 줄 몰라합니다. “서로 즐겁고 아름다이 보냈다면 ‘즐겁고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 하고 말하면 돼요. 우리가 서로 즐겁지 않으려면 만날 까닭이 없고, 시간을 ‘뺏는’ 사이라면 더더욱 만날 일이 없으리라 여겨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 즐겁게 어울리면서 하루를 누리는 데에는 미처 생각이 못 미치면서 지낼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는 하루는 책한테 시간을 뺏기는 일일까요? 아이한테 차근차근 품을 들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이란 아이한테 시간을 뺏기는 일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시간을 뺏길까요? 2018.1.1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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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알이 되는 책읽기



  감 한 알이 되기까지 겨우내 찬바람을 머금으로 자랍니다. 새봄에 잎을 틔우고 꽃망울을 내놓습니다. 조금씩 굵는 감꽃은 감알 같은 달콤한 냄새를 퍼뜨리면서 조롱조롱 피다가 톡톡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여름내 햇볕을 듬뿍 머금으며 푸릇푸릇 열매가 여물고, 가을에 산들바람 마시면서 바알갛게 익으니, 이제 우리는 감 한 알을 두 손이 고이 얹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살아낸 살뜰한 숨결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책 하나는 어떤 길을 거쳐 태어났을까요? 책 하나를 두 손에 이쁘게 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먹을까요? 무르익어 달콤한 감알을 하나 베어물면서 헤아립니다. 단단히 여물고 달콤한 냄새 가득한 책을 찬찬히 펼치면서 노래합니다. 2018.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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