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혐, 여혐, 혐한
‘혐(嫌)’이라는 한자를 넣은 ‘혐한’은 일본에서 쓰는 낱말입니다. 한국에서는 ‘혐일’처럼 안 쓰고 ‘일혐’처럼 쓰는데, 앞뒤 얼개가 다르기는 하지만 ‘일혐’도 일본 말씨입니다. ‘혐’을 앞이든 뒤이든 넣는 말씨는 일본 말씨이거든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일본을 끔찍히 미워하는 분이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는 모습은 살짝 얄궂습니다. 일본이 미운데 왜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을 못 털어낼까요? 일본이 참말로 밉다면 한국말에 깃든 모든 일본 말씨나 일본 한자말부터 제대로 낱낱이 말끔히 털어낼 노릇이지 싶습니다. 아무튼 이 땅에서 ‘일혐’인 사람이나 일본에서 ‘혐한’인 사람은 모두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똑같아, 바로 이 미움에서 전쟁무기가 불거지고 평화가 깨지며 싸움이 태어나요. 여혐인 이들은 여자를 깔보거나 깎아내리기 일쑤인데, 이들은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까요? 이들은 어머니 없이 태어날까요? 여혐이고 싶은 이들한테도 자유가 있으니, ‘여혐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 될 텐데, 이렇게 ‘여혐하는 자유’를 실컷 누리려 한다면, 밥도 옷도 집도 모두 그들 스스로 건사하고 지어서 살 노릇이지 싶습니다. 모두 혼자 해야지요.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그 미운 사람 손을 탄 것은 안 쓸 수 있어야지요. 이를테면 일혐이라면서 ‘일본 기술이 깃든 모든 전자제품’을 그냥 쓴다면 입으로만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치달리면서, 삶하고 말이 어긋난 매무새입니다. 배우지 않으니 미워하고,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니 미움질에서 쳇바퀴를 돌지 싶습니다. 2018.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