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8
이지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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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2021.4.27.

푸른책시렁 160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

 이지현

 철수와영희

 2021.3.20.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이지현, 철수와영희, 2021)를 읽다가 속이 꽤 쓰렸습니다. 아무래도 저한테 아픈 구석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어느 대목이 아픈가 하면 “꼭 여성만 강간 피해를 입을까요?”입니다. 이제는 이런 말을 어렵잖이 할 만합니다만, 2000년으로 접어들고 2010년이 되었어도 이렇게 말하기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내(남성)가 가시내 못지않게 노리개질(성폭력)에 시달리면서 아픈 어린날·푸른날·젊은날을 보냈는가를 입밖에 내기란 참으로 까마득했어요.


  적잖은 이웃님이 ‘나쁜 뜻은 없다’지만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면서 “남자가 참 여자 아이처럼 생겼다”고 말한다거나 “귀엽게 생겼다”고 말하는데, 어린 사내한테 읊는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노리개질로 탈바꿈하는가를 거의 모르지 싶어요. 이른바 ‘곱상하게 생긴 사내’는 숱한 응큼손에 휘둘린 이 나라입니다. 아니, 이 나라뿐이 아니지요. 로알드 달 님이 쓴 책을 보면 이분도 어릴 적에 노리개질(성폭력)로 얼마나 괴로웠는가를 밝힙니다.


  우리 삶터는 틀림없이 거듭나겠지요? 그러리라 믿고 싶습니다. 다만 2004년에 저한테 노리개질을 한 58년 개띠 시인이 2019년에 ‘광주 문학정신과 뿌리’를 읊는 책을 내놓는 글판인 만큼, 아직 거듭나기까지는 한참 멀었지 싶습니다. 막짓을 일삼은 그들은 어떻게 뉘우치는 말 한마디도 없이 이런 자리를 거머쥐고 저런 이름을 팔까요? 누구나 광주를 말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나 광주를 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새롭게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익히고 사랑을 배울 푸름이는 ‘법과 재판’을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어질게 맞아들이면 좋겠어요. 허울만 법이 아닌, 껍데기만 재판이 아닌, 왜 어떠한 틀을 잡아서 잘잘못을 따지는가를 살피고, 왜 어떠한 길을 세워서 옳고그름을 밝히는가를 헤아리도록 우리 어른이 길잡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쁜길(악법)은 그저 나쁜길입니다. 길(법)일 적에만 길(법)이지요.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적에만 사람일 뿐, 사람탈을 쓴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나라가 바로서기 앞서 마을이 바로설 노릇이고, 마을이 바로서기 앞서 집안이 바로설 노릇이며, 집안이 바로서기 앞서 수수한 어버이와 어른부터 바로설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수수하지만 가장 빛나는 살림자리에서 우리가 스스로 바로설 적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면서 짙푸른 삶터를 이룰 테지요.


  다만 잘못을 저지른 그들 목아지를 치거나 손목아지를 분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못을 저지른 그들이 모든 돈·자리·이름을 내려놓고서 시골로 삶터를 옮긴 다음, 손수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면서 해바람비를 맞이하는 흙지기 살림을 보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잘못을 일삼은 그들을 차가운 사슬터에 가두기보다는, 짙푸른 숲으로 보내어 숲사람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내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차가운 사슬터에 가두면 사람은 더 차갑게 메마르기 마련입니다. 포근한 숲터에 풀어놓아야 사람다운 길을 스스로 알아볼 틈이 생깁니다.


ㅅㄴㄹ


지금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소수자를 희생시키는 방식을 인정하지 않아요. (17쪽)


꼭 여성만 강간 피해를 입을까요? (32쪽)


우리 스스로 외모나 성격에 대한 편견은 없는지, 학교 성적으로 친구에 대한 선입견을 품은 적은 없는지 떠올려 보세요. (35쪽)


주변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때조차도 무심하게 지나친다면, 법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반대로 도움을 받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외려 자신을 왜 도왔냐고 상대를 비난하며 소송을 벌인다면 이것이 과연 그 법의 취지에 걸맞은 일일까요? (56쪽)


우리나라에서는 판결을 잘못했다고 판사가 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78쪽)


유럽 국가들 중에는 법 왜곡죄를 형법에 두고, 잘못된 재판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어요. (79쪽) 


가짜 논리로 누가 가장 많은 혜택과 이득을 얻었을까요. 바로 총칼로 권력을 잡은 그 당시 독재 정권입니다. (143쪽)


악법은 우리의 힘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합니다. 법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정당성을 따져 보고 국민을 위한 법인지 살펴보아야 해요. 악법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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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나의 미오 힘찬문고 29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서정 옮김 / 우리교육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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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2021.4.22.

맑은책시렁 243


《미오, 나의 미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트 그림

 김서정 옮김

 우리교육

 2002.7.10.



  《미오, 나의 미오》(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트 그림/김서정 옮김, 우리교육, 2002)는 길과 집을 새롭게 찾아나서면서 동무와 이웃을 마주하는 발걸음이랑 몸짓이랑 마음을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미오’는 사랑받으며 태어난 아이입니다만, 자라나는 길에서는 좀처럼 사랑받을 일이 없다지요. 그렇지만 마음에 흐르는 사랑을 잊거나 잃지 않아요. 마음자리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궁금해 합니다.


  아이는 모두 알지만 새로 배우려는 걸음마를 내딛는다고 느낍니다. 굳이 어버이를 골라서 태어나고, 어버이 살림자락을 지켜보고, 어버이 손길을 받으면서 삶을 짓는 꿈을 그리려 해요.


  아이는 왜 어른으로 자랄까요? 아이로서 머물러도 될 텐데, 구태여 어른스럽게 나아가려고 하는 발걸음에는 어떤 뜻이 흐를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은 스스로 예전에 아이인 줄 떠올리는가요? 오늘은 어른 모습이되 얼마 앞서까지 아이인 줄 돌아볼 수 있나요? 새롭게 지으려는 꿈을 품기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걸어온 줄 차근차근 짚는 하루인가요?


  아이다울 적에 하늘나라에 가고 구름을 타고 풀꽃나무랑 이야기한다지요. 아이다움을 잃으면 하늘나라에 못 가고 구름을 못 타며 풀꽃나무랑 아무 말을 못 섞는다지요. 아이다울 적에는 눈빛으로 배우고 눈길로 알아보며 눈망울로 사랑을 나눈다지요. 아이다움을 등지면 눈빛이 흐르고 눈길이 흩어지고 눈망울에 죽음이 서린다지요.


  어린이 미오는 늘 갈림길에 섭니다. 갈림길에서 어느 곳으로 가면 좋을까를 알려줄 어른은 없습니다. 어느 어른도 ‘이 길이 맞다’고 잡아끌 수 없어요. ‘이 길은 이렇고, 저 길은 저렇다’ 하고만 짚어 줄 뿐이요, 모든 갈림길에서 첫발을 내디딜 사람은 바로 어린이 미오예요.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가시밭길을 갔기에 겪는 하루가 있습니다. 말을 타고 하늘을 날기에 이 하늘길에서 맛보는 하루가 있어요. 피리를 불면서 풀꽃나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속이 타들어간 시커먼 사람들한테도 처음에는 마음이 있은 줄 알아차리면서 ‘싸움연모’가 아닌 ‘사랑’ 하나로 모두 포근히 안는 길을 가자고 다짐하지요.


  그나저나 이 책은 “나의 미오”가 아닌 “우리 미오”로 옮겨야 맞습니다. 옮김말은 어린이한테 너무 걸맞지 않더군요.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새길을 찾아서 푸른사랑을 빛내려고 하는 줄거리처럼, 이 나라 어린이가 스스로 싱그러이 읽고 아름빛을 새기는 길에 징검돌로 삼도록 ‘싱그럽고 수수하며 쉬운 숲말’로 모두 손질하면 좋겠어요.


ㅅㄴㄹ


“풀이 듣잖아.” 논노가 말했다. “꽃이랑 바람도, 나무도 우리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개울 위로 고개 숙이고 있는 버드나무도 들어.” “그래?” 내가 물었다. “그럼, 우리 피리 소리가 좋대?” “응, 아주 듣기 좋대.” (50쪽)


에들라 아주머니가 저녁이면 소곤대는 우물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책에 코를 박고 옛날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바깥 신선한 공기 속에서 듣고 싶은 대로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도대체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에들라 아주머니도 그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아 할 것이다. (80쪽)


염탐꾼들은 사방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마침내 조용해졌다. 속이 텅 빈 나무가 우리를 구한 것이었다. 나무는 왜 우리를 구해 줬을까? (127쪽)


“윰윰, 이제 어느 쪽 길로 갈까?” “우리 둘이 같이 있기만 하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어.” (144쪽)


기사 카토는 이렇게 보초를 많이 세울 정도로 나를 무서워했다는 말일까? 일곱 자물쇠가 달리고 일곱 보초가 망을 보는 탑 안에 칼도 없이 갇히는 나를? (179쪽)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눈 안에서 묘한 것을 보았다. 기사 카토는 자기의 돌 심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기사 카토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기사 카토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194쪽)


#AstridLindgren #IlonWikland #MiosKingdom #MioMySon #ミオよわたしのミ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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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7
임옥희 외 지음, 인권연대 기획 / 철수와영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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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72


《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

 인권연대 밑틀

 임옥희·로리주희·윤김지영·오창익 글

 철수와영희

 2020.10.24.



  《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20)는 뜻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인권’은 ‘사람길’이 아닌 ‘사내가 살아갈 길’이란 뜻이었고, 이 틀을 깨려고 ‘여권’이란 말을 이웃나라 일본에서 짓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아내’란 낱말은 일본말 ‘내자(內子)’를 그대로 옮긴 말씨입니다. ‘안사람 = 안해 = 아내’이거든요. ‘바깥양반’도 일본말이지요. 겉모습은 한글이어도 속내는 일본 살림을 드러냅니다. 이러구러 우리나라는 조선 오백 해에 일제강점기 서른여섯 해를 거치면서 ‘집안일을 도맡고 아이를 가르치되 늘 뒷전에서 들볶이던 가시내’라는 틀이 섰어요. 이동안 사내는 붓을 쥐고 거들먹거렸습니다.


  다만 이러한 틀은 벼슬아치나 임금붙이에서나 있었어요. 흙을 만지고 풀꽃나무를 돌보는 수수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같이 일하고 쉬고 놀고 어우러지면서 지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보고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림을 꾸리고 손수 집밥옷을 짓고 아이를 낳아 돌보던 순이돌이는 어깨동무라는 길을 걸었어요. 이와 달리 먹을 갈아 종이에 붓글씨를 쓰던 한 줌조차 안 되는 이(사내)들은 가시내를 억누르면서 종으로 부리는 길이었습니다. 이 틀은 오늘날에도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사내가 집안을 꾸리는 틀은 ‘먹붓종이를 만지던 옛날 사내’하고 똑같거든요.


  2021년 우리나라는 서울지기(서울시장)·부산지기(부산시장)를 새로 뽑습니다. 서울지기·부산지기 모두 응큼짓(성폭력)을 저질러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들은 두 손으로 흙을 만지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꾸리는 사내가 아닌, 먹붓종이를 손에 쥔 사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림을 모르거나 등돌린 채 나라일을 맡거나 글을 쓰거나 가르치는 모든 사내’는 바보짓을 일삼기 쉽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가시내도 매한가지이지 싶어요. 응큼짓(성폭력)은 사내만 하지 않습니다. 살림을 짓지 않는 가시내도 똑같이 응큼짓을 해요. 다시 말해서, 살림을 안 짓고 참사랑하고 등진 채 글만 파는 먹물붙이(지식인)는 사람길(인권)하고 동떨어진 응큼짓(성폭력)이며 막짓(폭력·갑질)으로 기울고 만다고 느낍니다.


  이런 오늘날 우리는 《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를 새롭게 바라볼 만합니다. 여태껏 ‘길(인권)’을 ‘사람’이란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길을 사람으로 보도록 ‘응큼짓·막짓 먹물붙이 사내’가 아닌 ‘살림을 짓고 사랑을 가꾸는 사람, 이 가운데 가시내라는 포근사랑’이라는 눈썰미를 키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름·힘을 거머쥔 자리에 서면 참말로 모든 사내·가시내가 바보짓이나 막짓이나 응큼짓을 합니다.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지으며 숲을 사랑하는 자리에 있으면 어떤 사내나 가시내도 바보짓·막짓·응큼짓을 안 해요.


  우리는 사람이 될 노릇입니다. 껍데기만 사람이 아닌, 속알맹이가 참답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기에 즐거이 살림을 짓고 돌보는 사람이 될 노릇입니다. 서로 사람이기에 가시내랑 사내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서로 사람일 때라야만 오늘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아이들하고 즐겁게 놀면서 꿈을 가꾸는 어른이 되어요.


ㅅㄴㄹ



‘사내 녀석들이 본래 그렇잖아.’ ‘뭘 그까짓 걸 갖고 앞길이 구만리인 남자애들 인생 망치려고 해’라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이 한국 사회의 관행이었죠. (21쪽)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은 관리의 대상이었다는 거예요. 국가가 나서서 여성의 역할을 규정하고 기획합니다. (77쪽)


자기들도 아는 거예요. 그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도 스트레스가 심한 거예요. 딱히 욕을 하는 이유가 없어요.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86쪽)


저도 그렇지만 대학 안에 있으면 현실감각이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 결과 현실의 물적 조건, 가장 절박한 그 순간과 너무나 동떨어져서 이론을 위한 이론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148쪽)


20대 이후 남성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50대가 되면, 여성보다 세 배나 많아집니다. 왜 그럴까요? 군대에서 익힌 잘못된 군대 문화, 가부장적 질서, 남성 중심의 사회가 결국은 남성 자신이 스스로의 목숨을 더 많이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요?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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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보이는 한자 - 삶을 본뜬 글자 이야기
장인용 지음, 오승민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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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아쉬운책 2021.3.26.

맑은책시렁 241


《세상이 보이는 한자》

 장인용 글

 오승민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12.29.



  《세상이 보이는 한자》(장인용, 책과함께어린이, 2020)는 한자란 글씨를 지을 무렵 어떤 마음을 담았는가를 들려주면서, 오늘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쓰는가를 살며시 짚습니다. 글을 제법 알고 책을 퍽 읽은 어른이 보기에는 쉬운 한자를 살펴서 말결을 더 널리 익힐 만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라도 한자는 영어하고 똑같이 바깥말이자 바깥글입니다.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똑같이 어렵기 마련입니다. 말을 좋아해서 영어나 일본말이나 러시아말이나 독일말로 죽죽 뻗어 나가며 배운다면 한자도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그러나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고 살아가는 길에서 한자는 꽤나 높직한 담벼락입니다.


  ‘한자와 한자말을 아는 어른’이라면 ‘온누리가 보이는 한자’로 여길 만하지만, ‘한자를 잘 모르고 한자말인지 아닌지 가리지 않고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어른’이라면 ‘온누리를 막는 한자’로 느낄 만합니다. 어린이한테는 어떨까요?


  어린이한테 한자를 들려주거나 알려준다고 해서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섣불리 온갖 한자말을 끼워서 가르치려고 들지는 말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린이한테는 한자에 앞서 우리말부터 제대로 들려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야지요. 우리말을 모르는 채 한자를 배우거나 왼들 부질없어요. ‘물’이라는 낱말이 어떻게 비롯했고 어떻게 쓰임새를 펴는가를 모르는 채 ‘수(水)’라는 한자만 가르친들 뭘 알까요? ‘흙’하고 ‘땅’하고 ‘터’ 같은 우리말이 어떻게 비롯했고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모르는 채 ‘토(土)’라는 한자만 알려준들 뭘 배울까요?


  물이나 흙이 대수롭고 뜻있기에 ‘숲’하고 얽힌 한자가 무척 많다는데, 우리말도 매한가지예요. 우리말도 ‘숲’하고 얽힌 낱말이 대단히 많아요. 무엇보다도 ‘살림’을 짓고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는 길을 밝히는 우리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우리말을 바탕으로 한자를 나란히 놓고, 또 영어도 함께 놓으면서, 오늘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말글살이를 하는가를 넌지시 나무라면서 어린이가 앞으로 새길을 새말로 열도록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말은 외워서 못 써요. 말은 오로지 삶으로 녹여내어 즐겁게 놀면서 재미나게 익히고 새롭게 지어서 씁니다.


ㅅㄴㄹ


하늘이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면 땅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손으로 만질 수도 있어. 거기서 식물들이 자라고 동물들도 발을 딛고 살아가기에 흙과 돌에 관련된 글자가 많은 건 당연한 거야. (24쪽)


물이 들어간 글자가 많은 것은 물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61쪽)


원래 ‘민(民)’은 백성이라는 뜻이 아니었어.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기엔 전쟁에서 사로잡은 다른 나라 포로들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노예로 부렸다고 해. ‘민(民)’은 그 모습을 나타낸 글자였지.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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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제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3
배성호.주수원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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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1.3.18.

맑은책시렁 240


《선생님, 경제가 뭐예요?》

 배성호·주수원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11.13.



  《선생님, 경제가 뭐예요?》(배성호·주수원, 철수와영희, 2020)를 읽으면, 우리가 무엇을 살 적마다 낛(세금)이 나간다고 하는 대목을 넌지시 들려줍니다. 값싸다 싶은 주전부리를 사더라도 낛이 나가기 마련인데, 물을 마시거나 숨만 쉬어도 낛이 나갑니다. 냇물이나 샘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물낛(수도세)을 내요.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도 목숨낛(주민세)을 냅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가게를 차리거나 일터를 열면 온갖 낛이 뒤따릅니다. 느끼든 못 느끼든 안 느끼든, 우리가 하루를 사는 동안 하루몫으로 나라에 돈을 내요.


  나라는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움직이거나 일하거나 놀면서 내는 돈을 모아서 나라살림을 꾸립니다. 고장(지자체)에서는 고장살림을 꾸리지요. 교사·공무원·군인은 모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내는 돈으로 일삯을 받고, 이이가 일하는 자리도 우리가 낸 돈으로 짓고 꾸립니다. 핵발전소를 짓든 화력발전소를 짓든, 이런 삽질을 하든 저런 막짓을 하든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흘러나간 돈으로 합니다.


  살림(경제)을 읽고 알며 생각하는 길이란, 바로 이런 돈흐름을 헤아리면서 슬기롭고 아름다이 나아가도록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스스로 하루를 짓는 삶이라고 봅니다. 나라돈(우리가 낸 돈)으로 총알이나 미사일이나 폭탄이나 탱크나 잠수함을 만들어도 좋은가를 살펴야 합니다. 나라돈(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찻길을 더 늘려야 하는지 숲을 푸르게 가꾸어야 할는지 살펴야지요. 나라돈(우리 살림돈)으로 벼슬아치 일삯을 더 줄는지, 아니면 이웃사랑을 하는 길에 쓸는지 살필 노릇입니다.


  물은 고이면 썩어요. 돈도 고이면 썩습니다. 썩은 물은 죽음길입니다. 썩은 돈도 죽음길이에요. 돌고돌아야, 다시 말하자면 꾸준히 흐르면서 어디이든 거치고 닿아야 비로소 맑게 빛나는 물줄기예요. 누구한테나 고루 흐르면서 어디이든 머물면서 살려야 비로소 밝게 쓰는 돈자루입니다.


  조그마한 책 《선생님, 경제가 뭐예요?》는 어린이한테 살림길을 모두 짚어 주거나 밝힐 수는 없습니다. 자그마한 실마리를 건드립니다. 이 작은 실마리를 바탕으로 우리 어른이 한결 슬기로이 우리 보금자리랑 마을이랑 이웃을 바라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별도 헤아리면 좋겠어요. 우리 두 손을 거쳐서 흐르는 돈은 이 나라 벼슬아치나 나라지기뿐 아니라 이웃나라 벼슬아치나 나라지기한테도 흘러들거든요. 모두 하나로 맺어 흐르는 살림길을 잇는 돈 한 푼입니다.


ㅅㄴㄹ


경제 활동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면서 이뤄집니다. (38쪽)


여러분도 세금을 낼까요? 아직 돈을 안 버니까 안 낼 거라고요? 아니에요. 우리는 매일매일 물건을 살 때 세금을 낸답니다. (56쪽)


그런데 항상 자기 물건만 쓰지는 않잖아요. 내가 쓰지 않을 때 다른 친구들이 쓸 수 있도록 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이 쓰지 않을 때 내가 쓸 수 있다면 어떨까요? (79쪽)


착한 소비는 다섯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요. 첫 번째는 환경이에요. 지구 온난화 같은 기후변화를 일으키거나 오염물질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지 살펴요. 두 번째는 사람이에요. 인간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전쟁이나 군사력과 연관이 없는지 살펴요.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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