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건축이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1
서윤영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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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4


《선생님, 건축이 뭐예요?》

 서윤영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8.1.



건축은 어느 한 가지 분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면을 골고루 갖춘 종합 학문이에요. (18쪽)


함경도의 겹집, 경기도와 충청도의 튼ㅁ자집, 제주도의 돌집과 울릉도의 우데기집 등은 모두 다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지어진 집이에요. (91쪽)


그때 영국에서 정한 원칙들은 지금도 지어져요. 아파트의 모든 세대는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준으로 하루에 네 시간 이상 해가 들도록 해야 하며, 사람이 사는 방은 절대로 지하에 둘 수 없다는 것 등이었어요. 그런데 왜 요즘 반지하 방이 있을까요? 사람이 사는 방은 지하에 둘 수 없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108쪽)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특색 있는 동네가 사라지고 전국적으로 똑같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점에서 몹시 아쉬워요. (123쪽)



  사람이 처음부터 집을 지어서 살았을까 하고 돌아보면, 아마 집이 없이 살았지 싶습니다. 굳이 뚝딱거려서 올리지 않더라도 숲이며 들이 고스란히 삶자리였을 테니까요.


  오늘날에는 들에서 잔다고 하면 한자말로 ‘노숙’이라 하지만, 지난날에는 누구나 들잠을 이루었지 싶어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붙이가 들잠이거든요. 다만 새는 둥지를 틉니다. 새가 둥지를 트는 까닭이라면, 새는 으레 날아다니며 나뭇가지에 앉는 터라 나뭇가지에서 알을 낳아 새끼를 돌보자면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을 만한 자리가 있어야 하거든요.


  여우나 토끼나 쥐는 굴을 팝니다. 구멍처럼 죽 이어가는 길인 굴처럼 사람도 땅밑을 죽 잇는 새로운 길을 내면서 살림을 가꿉니다. 가만 보면 사람은 새랑 들짐승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은 사람 나름대로 이모저모 살려서 새터를 가꾸어 볼까?’ 하고 생각했겠구나 싶어요. 나뭇가지나 짚을 이어 지붕으로 삼고, 담으로 두르며, 굴처럼 포근하고 조용한 둘레를 칸으로 이루면서 ‘집’이 태어나요.


  《선생님, 건축이 뭐예요?》(서윤영·김규정, 철수와영희, 2020)는 어린이한테 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요새는 ‘건축’이라는 한자말을 써야 집을 좀 깊이 다루는 듯 여깁니다만, ‘건축 = 집짓기’예요. ‘집’이란 한살림을 이루는 사람이 모여서 지내는 자리를 가리키면서, 사고파는 가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일하는 집”은 ‘터’란 낱말로 갈라서 ‘일터’라 하지요.


  집이란 무엇일까요? 집은 어떻게 지으면 아늑할까요? 집은 누가 짓나요? 우리는 누구나 예부터 손수 집을 짓고 보금자리를 이루었는데, 오늘날에는 왜 집장사가 따로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집을 어떻게 가꿀 적에 즐거울까요? 집을 둘러싼 살림살이를 어떻게 가누기에 이웃하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룰까요?


  어린이한테 인문지식으로 집을 들려줄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살림길이라는 틀에서 집을 노래하면 한결 좋으리라 봅니다. 큰고장에 넘치는 시멘트덩이인 아파트를 돈값으로 어림하는 길은 집하고 동떨어진다고 느껴요. 아파트는 고작 서른 해조차 살기도 힘들거든요. 서른이나 마흔 해쯤 되면 어느새 허물어야 하니 집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아파트를 허물면 쓰레기가 잔뜩 나오는걸요.


  새처럼 들짐승처럼, 흙에서 얻어 흙으로 돌려주는 얼거리일 적에 참다이 집이라고 느껴요. 우리들 사람은 앞으로 집다운 집을 아이하고 함께 가꾸고 돌보면서 물려주고 물려받는 길로 나아가기를 빌어요. 마당을 누리고 숲정이를 즐기는 푸른 터전이야말로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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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건강 이야기 - 건강으로 살펴본 세상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6
권세원 외 지음, 시민건강연구소 기획 / 철수와영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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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푸른책시렁 158


《10대와 통하는 건강 이야기》

 시민건강연구소 기획

 철수와영희

 2020.5.18.



‘마음이 아픈 상태’가 단지 기분일 뿐일까요? 사실은 그냥 기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몸도 아픕니다. (11쪽)


수업을 방해해서 그 친구가 싫어진다면 그건 수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잖아요. 만약 학교에서 점수를 매기지 않고 성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그 친구가 싫을까요? (16쪽)


정작 가습기 살균제가 섞인 공기를 마셨을 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어요. 검사를 하고도 위험하다는 걸 숨긴 과학자들도 있었고, 수사를 피하려고 엄청난 돈을 쓴 기업도 있었어요. (65쪽)


글쎄 마을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았대요. 서로 집을 오가며 음식도 나눠 먹고,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수다도 떨고, 그런 것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주었다는 거지요. (84쪽)


우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예요. 큰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잘 들여다봐요. 머리·손·다리·배·얼굴·엉덩이 그리고 마음까지 꼼꼼히, 내 몸 구석구석,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느껴 보는 거예요. (103쪽)


건강의 기준은 대부분 전문가가 정한 거예요. ‘정해진 기준’을 넘으면 건강하지 않다고 얘기하지요. (161쪽)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픕니다. 마음이 싱그러우면 몸이 싱그럽습니다. 마음이 다치면 몸이 다치기 쉽고, 마음이 날개를 달면 몸도 날개를 달 만해요.


  몸이 아프다고 마음이 다 아프지는 않으나, 몸이 아프면서 마음도 슬슬 처지거나 아프곤 합니다. 몸에 기운이 넘친다고 마음이 늘 기운이 넘치지는 않지만, 몸이 거뜬하거나 가벼우면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 잇달아도 씩씩하게 이겨내거나 흘려보내곤 해요.


  오늘날 어린이는 어느 나이에 이르면 학교에 갑니다. 처음 학교에 발을 디딘 뒤부터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입시지옥하고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이 나라는 배움터가 배움터로 있기보다는 ‘대학교로 가는 길목’쯤으로 여기거든요. 삶자리에서 스스로 슬기롭게 살림을 짓는 길을 배우도록 이끌거나 북돋우기보다는 ‘입시 과목에 따라 시험점수를 잘 받느냐 마느냐’로 기울어요.


  그 어느 때보다 2020년은 돌림앓이판으로 사납습니다. 이제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보다도 삶길하고 살림길을 돌아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10대와 통하는 건강 이야기》(시민건강연구소 기획, 철수와영희, 2020)는 우리 몸하고 마음을 둘러싼 실타래를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다뤄요. 언제 튼튼한 몸인지, 언제 다부진 마음인지, 어떻게 탄탄한 몸인지, 어떻게 싱그러운 마음인지를 짚으려고 합니다.


  그나저나 서울 둘레로 너무 빼곡하게 모인 나라인 탓에, 어린이·푸름이는 큰고장이라는 터전을 받아들이면서 지내야 합니다. 맨발로 디딜 풀밭이 없고, 맨손으로 뜰 냇물이 없으며, 가까이에서 심고 돌볼 나무를 마주하기 어려운 서울인걸요. 아파트 한 채가 10억 원이나 20억 원을 한달지라도, 아파트에는 ‘우리 집 마당’이 없어요. ‘마루 미닫이를 스르륵 밀고서 언제라도 드나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우리 몸이며 마음을 싱그럽게 건사할 만할까요? 비싼 집값 탓도 있지만, 아이한테 마당을 누리도록 돌보기 어려운 서울 아파트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노릇은 아닐까요?


  어른 스스로 튼튼하게 살아갈 만한 곳이라면 어린이도 스스로 튼튼하게 살아갈 만한 곳입니다. 푸름이 스스로 싱그러운 마음으로 꿈꾸는 푸른 숲터에 보금자리를 짓는다면 어른도 언제나 싱그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지을 만합니다.


  다같이 튼튼하게 살자면, 우리 모두 돌림앓이를 씻어내는 길로 가자면, 마을을 새로 짓거나 헌 아파트를 허문다고 할 적에 ‘집 너비 곱빼기로 숲하고 마당을 두는 얼거리’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푸르게 아름다운 바람이 불고, 따뜻하게 햇볕이 드리우는 터전을 모든 사람이 누리도록 나라살림을 확 바꾸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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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0
최원형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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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3


《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

 최원형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0.6.25.



시리아가 위치한 곳은 과거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었어요. 그런 땅을 그동안 너무 혹사시켰고 기상이변으로 비까지 내리지 않자 척박한 땅으로 바뀌었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민들은 난민이 된 거지요. (38쪽)


감염병이 생기는 원인으로 몇 가지를 꼽아요. 일단 인구가 너무 많은 데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많아졌어요. (56쪽)


의류 폐기물 재활용은 1%도 안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섬유는 2012년 1186톤이었다가 2016년 284톤으로 늘었어요.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500년 이상 썩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태우면 발암 물질이 나오고요. (67쪽)


구글은 2009년 연중 기온이 낮은 북유럽의 핀란드에 데이터 센터를 열었어요. 열을 식히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줄이려고요. 2016년 전 세계 데이터 센터에서 소비한 전력은 영국이 1년 동안 사용한 전력량보다 많았어요. (69쪽)


사람들은 숲을 왜 쓸모없이 버려진 땅이라 생각하는 걸까요? 숲은 무엇보다 수많은 동물의 집이에요. (72쪽)



  어린이한테 ‘기후위기’나 ‘기후변화’란 못 알아들을 말입니다. ‘기상이변’이나 ‘이상기후’도 못 알아들을 말이지요. 이런 말씨는 모조리 일본 한자말입니다. 서양말을 일본사람이 한자말로 풀어내어 쓰는 말씨이지요. 한때 널리 퍼졌던 ‘게릴라성 폭우’도 일본사람이 지은 말씨였는데, 요즈막 뜬금없이 쓰는 ‘물폭탄’은 누가 지은 말씨일까요? 날씨하고 얽힌 말을 이렇게 생각없이 쓰거나 받아들이는 어른이라면, 이 나라에서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길을 놓고도 슬기롭거나 어질거나 참한 생각을 밝히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말씨부터 쉽잖은 ‘기후위기’를 놓고서 《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최원형, 철수와영희, 2020)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배울 교과서도 대수롭고, 앞으로 나아갈 중·고등학교 입시도 대수롭겠지만, 이제야말로 온누리 어린이한테는 날씨·철·터전·숲·바다야말로 대수롭습니다.


  2019년이 저물 무렵부터 번진 돌림앓이 하나로 숱한 학교가 오래도록 멈추었어요. 학교는 다시 열었다지만 언제나 끙끙 앓을 뿐 아니라, 언제나 조마조마합니다.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수업을 하도록 이끌려 하고, 대학입시나 공무원시험도 억지로 치르려고 하는데요, 이웃 여러 나라처럼 갑자기 너울이 친다거나 물벼락이나 불벼락이 내리면 그 어떤 학교수업이나 대학입시도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더구나 2020년에 거의 모든 대학교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해요.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이 열두 해를 지나서 들어갈 대학교마저 배움터 구실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이제는 교과서를 덮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웬만한 인문책이나 문학책도 내려놓아야지 싶습니다. 바야흐로 삶을 슬기롭게 읽고, 살림을 사랑스레 가꾸며, 날씨랑 철이랑 숲을 제대로 깨우치는 길로 가야지 싶어요.


  다만 여태까지 웬만한 어른은 그냥그냥 수업을 하는 교사 노릇을 했고, 학원이 엄청나게 돌아가며, 입시지옥은 뚱딴지처럼 어마어마한 장사판인 나라입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살림돈을 엄청나게 주무르는데, 배움살림돈은 막상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이 아니라, 대학입시를 잘 치르도록 북돋우는 길로 흐를 뿐이에요.


  학교는 없어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숲이 없으면 다 죽습니다. 사회나 정치나 공공기관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숲이 망가지면 다 죽습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안 펼쳐도 언제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어요. 바람을 읽고 하늘을 읽고 물빛을 읽고 풀벌레노래를 읽을 만하지요.


  어린이부터 스스로 눈을 뜨기를 바라요. 졸업장을 따야 하는 학교가 아닌 길이 숱하게 많은 줄 하나씩 알아차리면서 새길을 가기를 바라요. 어린이 곁에 선 어른은 어린이가 씩씩하고 즐겁게 새길로 나아가도록 하나하나 도우면서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읽고 구름빛을 읽고 꽃빛을 읽으면서 튼튼하고 아름다운 숨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ㅅㄴ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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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 저학년 읽기대장
김성효 지음, 홍지혜 그림 / 한솔수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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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1


《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

 김성효 글

 홍지혜 그림

 한솔수북

 2020.3.20.



“천년손이는 한 번도 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데 괜히 용궁의 노여움만 사는 게 아닐지 걱정이구려.” “둘 다 어려서 이 일을 맡겨도 될지…….” 그때 요마 선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 세상이 위험한 마당에 무슨 소리!” (28쪽)


“도련님은 이름이?” “자래.” “용궁 말로 잉어라는 뜻이지? 하찮은 물고기 주제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용왕의 아들에게!” (44쪽)


“일단 밥부터 먹자.” “네? 밥을 먹자고요?” 미오 할머니가 미오 엄마와 아빠에게 속삭였다. “어제 꿈에 웬 수염이 기다란 노인이 나타나 말씀하셨어. 손님들이 찾아갈 테니 잘 돌보라고 말이야.” (54쪽)


“내 일은 요괴들을 물리치고 인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을 만나 오면서 나는 요괴보다 인간이 더욱 무서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103쪽)


“그래 봐야 인간들은 고마움을 모른다.” “사인검이 구한 인간들 중에는 바라는 것 없이 남을 돕는 사람도 있고, 낡은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지수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107쪽)



  숱한 목숨붙이가 이 땅에서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푸른별에서는 저마다 다르게 삶을 잇고 나누며 누리기 마련입니다만, 사람들이 ‘나라’라면서 먼저 금을 그은 탓에, 이다음으로는 ‘돈으로 산 땅’이라면서 새로 금을 그은 탓에 그야말로 숱한 목숨붙이는 죽음길로 가야 했습니다.


  모든 목숨붙이는 저마다 보금자리를 틀 뿐, 저 혼자만 살아남으려 하지 않아요. 제아무리 엄청나게 센 힘을 내는 숲짐승이라 하더라도 둘레에 새가 살아가고, 풀벌레랑 나비가 살아가며, 풀이며 나무가 우거집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 모든 이웃을 송두리째 밀어내기만 했어요. 풀포기 하나 없는 큰고장을 올려세우고,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도록 하늘을 덮으며, 개미나 풀벌레 한 마리 깃들 틈마저 막았지요.


  둥글둥글 돌아가는 푸른별은 사람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일까요. 푸른별로 찾아오는 별빛은 이 별을 혼자 차지하려는 사람을 마주하며 무엇을 느낄까요. 《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김성효, 한솔수북, 2020)은 하늘나라에서 살다가 땅나라로 찾아와서 ‘범칼(사인검)’을 찾으려는 즈믄손이(천년손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범칼은 이름은 ‘칼’이되 칼 모습이기보다는 칼처럼 베어서 없애듯 몹쓸 기운을 물리치는 넋빛이지 싶어요. 이 넋빛은 사람한테 이바지하고자 땅나라에 깃들었다지만, 사람들이 나날이 새롭게 보여주는 다툼질이며 돈질에 질려서 마음앓이를 한다지요.


  곰곰이 본다면 ‘망가진 푸른별’은 어른들이 일군 오늘날 모습입니다. 어른이란 몸으로 살면서 제 밥그릇을 움켜쥐고서 이웃을 내치는 나날이 쌓이고 겹치면서 ‘어지럼 푸른별’이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도 처음에는 아이였을 텐데, 왜 어른이란 몸으로 크면서 바보짓을 일삼을까요? 어른도 처음에는 티없는 눈망울로 꿈을 키우고 사랑을 노래했을 텐데, 왜 자꾸 스스로 망가지거나 어지럼길을 탈까요?


  이 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는 ‘어른판’입니다. 어른끼리 정치이니 사회이니 문화이니 교육이니 스포츠이니 종교이니 무어니 하면서 금을 긋고 밥그릇을 챙기면서 다툼판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면서 물려받을 만할까요? 앞으로 아이들은 어떤 꿈을 키우면서 이 푸른별이 어깨동무하는 아름나라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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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을 열어라 - 좌충우돌 고려 사람 조선 적응기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 지음, 이해정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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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2


《조선의 문을 열어라》

 손주현 글

 이해정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5.23.



‘고려라고 한다더니 조선으로 바꾸고 고려 때 해온 대로 한다더니 다 뒤집어 버렸네, 훌쩍.’ (21쪽)


“조상에게 빌면 된다. 제사를 잘 지내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을 잘 치르는 게 중요하지. 그러다 보면 조상들이 우리를 보살펴 주는 것이고.” “거참 이상하네. 죽은 조상을 믿는 것은 미신이 아니고 부처를 믿는 것은 미신이라고요?” (56쪽)


‘고려인 중에서도 왜구들 앞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놈들이 있다더니 이 자도 그중 하나인가 보군.’ (111쪽)


우치는 그제야 무언가 이해가 됐다. 조선은 무역을 금지하며 나라의 문을 닫아 놓은 줄 알았지만 공물을 바치고 선물을 받아 오면서 문물을 주고받았다. 꼭 닫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120쪽)


“시조 말이야?”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치는 맨날 충효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시조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조선은 재미가 없어도 너무 재미없었다. (131쪽)


“고려 때는 지방 아전 자리를 지방 권세가들이 맡아서 했지만 조선에서는 그저 수령을 돕는 말단 행정 일꾼일 뿐이다. 글을 알고 수완이 있으면 할 수 있지.” (149쪽)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역사를 다룬 인문책이 꽤 많습니다만, 거의 모두 ‘다른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갈무리합니다. 역사란 다른 책이나 자료가 있어야 쓸 수 있거나 말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역사뿐 아니라 웬만한 인문책도 으레 다른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엮곤 합니다. 다른 이가 먼저 갈무리한 책이나 자료가 없다면 인문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할까요?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나라일을 갈무리했고, 조선 무렵에는 임금 언저리 하루살이를 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이든 조선 무렵이든 이 나라를 아우르는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를 갈무리한 자취는 없다시피 합니다. 흙살림을 한 해 내내 지켜보면서 갈무리한다든지, 이 흙살림을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통틀어서 갈무리하는 자취는 아예 없다고 하겠지요. 아이를 돌보며 사랑한 여느 사람들 집살림을 갈무리한 적도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앞으로 쉰 해쯤 뒤에는 2000∼2020년을 어떠한 나날로 이야기하는 역사책이 나올까요? 1980∼2000년을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는 오늘 어떤 역사책으로 다루는가요?


  어린이 역사책 《조선의 문을 열어라》(손주현 글·이해정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는 고려란 나라에서 조선이란 나라로 넘어선 뒤에 ‘왕씨 어린이’가 맞닥뜨리는 나날을 짚습니다. 고려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책은 꽤 드물기에 차근차근 눈여겨보는데, 이 책도 ‘왕씨 언저리’에서 머물 뿐, ‘왕씨가 아닌 사람들’이라든지 ‘임금님하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던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까지는 짚지 못해요.


  조선은 이씨 나라가 아닙니다. 고려는 왕씨 나라가 아닙니다. 조선이든 고려이든, 또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나 부여란 나라도 몇몇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로 이야기할 나라는 아니에요. 보금자리를 가꾸고 마을을 이루며 아이를 즐겁게 낳아 돌본 수수한 사람들이 바탕이 되기에 흐를 수 있는 터전입니다.


  들꽃 같은 사람들은 ‘인구 몇’이라는 숫자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들꽃은 들꽃입니다. 다 다른 들꽃이요 저마다 아름다운 들꽃이에요. 《조선의 문을 열어라》를 읽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서니 ‘고려 옷차림’을 버리고 ‘조선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줄거리가 얼핏 나옵니다. 그런데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나 ‘발해’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예전 옷차림을 버리고 고려 옷차림이 되어야 한다고 나라에서 윽박지르지 않았을까요?


  먼먼 옛날을 다루는 이야기라면 책이나 여러 자료를 돌아보기도 해야겠습니다만, ‘책에도 자료에도 남지 못한’ 숱한 사람들 눈빛이며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글줄에만 적힌 삶이 아니거든요. 오늘을 짓고 모레로 나아가는 길에 되새기는 어제라는 살림빛이 역사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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