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 - 430일간의 모유 수유 모험 일기, 결국은 해피 엔딩!
최아록 지음, 정환욱 감수, 김연희 팁 / 샨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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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아기를 낳아 돌본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삶이 녹아든 이야기로 배우면

한결 좋고,

그러고서 책도 읽으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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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5


《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

 최아록

 샨티

 2020.11.25.



  《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최아록, 샨티, 2020)를 읽으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은 어버이한테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물려받는 때가 아닌, 누리그물에서 이모저모 스스로 그때그때 찾아서 보는 때인 만큼,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길도 글이나 책으로 만나겠네 싶어요.


  책 한 자락입니다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곧장 배울 뿐 아니라 훨씬 깊고 넓게 익힐 만한 젖물림입니다. 어머니가 아기한테 ‘밥을 먹이는’ 살림을 놓고 ‘젖먹이기’나 ‘젖물리기’라 합니다. 그저 보면 ‘먹이기’이나 곰곰이 보면 ‘물리기’이거든요.


  한자말이라서 ‘수유’를 안 써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왜 먼먼 옛날부터 “젖을 물린다”고 했는지 혀에 이 낱말을 얹고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물리다 = 물려주다’이고, ‘물림 = 물(흐름)’이에요. 이어서 흐르는 숨결에 사랑을 담습니다. 그래서 젖을 물린다고 합니다.


  말씨로 ‘젖물리기’가 무언지 읽어내어도 어떻게 아기를 안아서 사랑하면 즐거운가를 온몸으로 깨닫고 온마음으로 움직일 만해요. 여기에 ‘아이를 낳아 돌본 삶을 누린’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는 ‘책으로 쓰자면 100이나 1000이 될 만한 이야기’를 언제나 새롭게 들려줄 만해요.


  글님으로서도 처음이요, 이 책을 쥘 아기 어머니로서도 처음일 ‘젖물리기’라 한다면, 또 곁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면, ‘젖 = 밥’인 줄 생각하면 좋겠어요. 어른은 밥만 먹나요, 아니면 물도 마시나요? 아기한테 젖만 물리면 아기도 힘겹습니다. 아기한테 틈틈이 물도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야 해요. 그리고 아기가 크는 동안 당근이나 무나 감 같은 열매를 물려 주면 좋지요. 플라스틱 젖꼭지가 아닌 열매를 물려 주셔요. 배춧잎이나 시금치도 좋습니다. 이렇게 해야 아기는 ‘앞으로 맞아들일 밥이란 살림’을 혀로 입으로 손으로 몸으로 배웁니다.


  사내인 저더러 아기를 낳고 돌보는 길을 어떻게 다 아느냐고 묻는 분이 둘레에 제법 많은데, 저로서는 두 할머니한테서 듣고 보고 배웠으며, 곁님이 가르쳐 주기도 했고, 스스로 이모저모 찾아내고 살펴서 두 손에 그득히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맡아서 늘 하다 보니 어느새 삶으로 녹아들었습니다. 책도 좋지만,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는 살림이면 됩니다.


ㅅㄴㄹ


내가 하도 쩔쩔매니까 시어머니가 와서 수유하는 걸 잘 보시곤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어. 아기를 바짝 당겨서 안는 것과 젖을 깊이 물리는 것. 이 두 가지를 고치니까 젖 통증이 줄어들도 바다다 편안히 젖을 먹기 시작하더라. (33쪽)


몇 모금 마셔 봤는데 ‘어?’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소∼하면서 달달∼한 깊은 맛이 감동적이다. (43쪽)


아기랑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 우선은 엄마가 즐겁고 편안한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엄마가 편안하면 아기도 자연스러게 편안해질 테니까. (98쪽)


아기가 밤에 자다가 잠깐 깨서 울 때 무조건 젖을 물리지 말고 등을 톡톡 두드리면서 달래거나 보리차를 조금 먹여서 재워 보라고 하더라.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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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도우미 재미난 책이 좋아 10
다케시타 후미코 지음, 스즈키 마모루 그림, 양선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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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8


《고양이 도우미》

 다케시다 후미코 글

 스즈키 마모루 그림

 양선하 옮김

 주니어랜덤

 2010.9.20.



  《고양이 도우미》(다케시다 후미코·스즈키 마모루/양선하 옮김, 주니어랜덤, 2010)는 얼핏 보면 ‘고양이를 맡아서 함께 지내는’ 이야기 같으나, 곰곰이 보면 ‘아기가 아이로 자라고, 푸른 나날을 지나며 어버이 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같은 길타래를 풀어내는구나 싶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기기만 해도 반가운 씨앗이요, 환한 곳으로 태어나기만 해도 고마운 아기요, 꼼틀꼼틀 꼼지락꼼지락 놀면서 자라기만 해도 기쁜 숨결이요, 서고 걷고 뛰고 달리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눈빛이요, 조잘조잘 수다에 노래를 터뜨리기만 해도 아름다운 몸짓입니다. 이밖에 무엇을 바라야 할까요?


  누구나 꿈꾸고 춤추고 웃고 떠들면서 뛰놀 만한 터전이어야 마을이며 나라이리라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보고 헤아리고 지켜볼 만한 삶터여야 보금자리요 나라이지 싶습니다. 배움책을 외워야 하는 배움터가 아닌, 살림길을 꽃피우는 슬기로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을 나눌 배움터여야지 싶어요. 줄세우기가 없는 어깨동무를 익히고 마음껏 생각날개를 펴도록 이끌어야 어른이라고 봅니다.


  그나저나 집안일은 누가 할 적에 아늑한 집이 될까요? 우리는 돈을 바깥에서 얼마나 벌어야 할까요? 바깥에서 기운을 다 빼는 바람에 집에서는 뒹구는 몸짓이라면, 집이란 어떤 자리가 될까요?


  이웃나라에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 나라에서는 “부지깽이도 거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지깽이’가 삶자리에서 사라졌을 테지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이모저모 바라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그저 아이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싶은 자리일 뿐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이모저모 해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사랑을 바라보고 물려받고 새롭게 가꾸면 됩니다.


ㅅㄴㄹ


산더미처럼 쌓인 빨랫감도 빨아야 하고, 이불도 널어 말려야 했어요. “아휴, 바쁘다, 바빠. 어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네.”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어요. (4∼5쪽)


고양이 도우미는 정말 미안한 듯 말했어요. “손이 조그매서…….”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주머니는 고양이 도우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어요. (17쪽)


아주머니는 고양이 도우미가 와 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태 집안일은 모두 나 혼자 했어. 다들 바쁘다면서,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 (31쪽)


고양이 도우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시…… 실은, 빨래는 못해요.” “부엌일이랑 청소는? 또 빈집 보기는?” “그것도 잘…… 못해요.” “다림질 같은 건 아예 못하지? 심부름도?” “네, 아무것도…….” 웅크리고 앉아 있던 고양이 도우미는 갈수록 풀이 죽었어요. (50쪽)


아주머니는 식사 준비를 했어요. 연어도 먹음직스레 구워서 상을 차렸어요. 고양이 도우미는 옆에서 바라보기만 했어요. 해낙낙한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지요.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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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しれおてつだいねこ #わたしおてつだいね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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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마리 개
앙드레 알렉시스 지음, 김경연 옮김 / 삐삐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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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푸른책시렁 159


《열다섯 마리 개》

 앙드레 알렉시스

 김경연 옮김

 삐삐북스

 2020.9.1.



  《열다섯 마리 개》(앙드레 알렉시스/김경연 옮김, 삐삐북스, 2020)에는 열다섯 마리 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개를 놓고서 ‘마리’로 묶어도 될는지 살짝 아리송합니다. 처음에는 틀림없이 ‘그냥 개’였을 테지만, 어느 날부터 ‘사람마음이 스며든 개’가 되었거든요.


  겉모습으로는 개이니 “열다섯 마리 개”라 할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사람을 ‘마리’로 세지 않듯, 사람하고 같은 마음이 된 개라 한다면 더는 ‘마리’로 셀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조용히 돌아봅니다. 저는 어느 때부터인가 개도 고양이도 닭도 소도 ‘마리’로 세지 않습니다. ‘마리’는 ‘머리’하고 말밑이 같으니 나쁜 낱말은 아닙니다만, 사람이 아니라는 눈길로 가르는 뜻을 품은 낱말이에요.


  개도 고양이도 겉모습이 사람이 아닌 개요 고양이인 만큼 개랑 고양이를 ‘마리’로 세어도 되겠지요. 둘레에서 그렇게 세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저로서는 다 다른 겉모습이되 다 같은 숨결이 흐르는 사랑이라는 눈길로 바라보려 할 뿐입니다. 이러면서 짐승한테 ‘마리’란 말을 안 써 버릇하고, 두 아이를 건사하는 어버이입니다만,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높임말을 써요. 때로는 아이들하고 저하고 말을 트면서 이야기하고요.


  개라는 마음이 아닌 사람이라는 마음이 스며든 개는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어느 개는 재미나거나 새롭게 삶을 바라보면서 보낼 수 있다고 여기고, 어느 개는 끔찍하면서 싫다고 여기면서 몸부림을 칩니다. 어느 개는 사람하고 말을 섞으면서 밥그릇을 챙기고, 어느 개는 사람하고 말이 아닌 마음을 나누면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겉모습으로 입은 몸뚱이로서만 사람이 아닌, 마음으로 싱그럽고 아름답게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우리가 걷는 길은 어떤 무늬요 빛깔이며 결일까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짝짓기랑 돈벌기랑 힘얻기랑 이름내기랑 배움쌓기에 매인 목숨일까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곱고 슬기로우면서 참하게 짓는 숨빛일까요?


  사람 사이에 말이 흐르지만, 막상 겉에서 맴돌며 마음으로 와닿지 못한 채 부스러지곤 합니다. 사람하고 나무 사이에 말이 흐르지 못한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나무랑 말을 섞고 마음을 나누곤 합니다.


  무엇이 사람다운 길일까요? 무엇이 개답고 고양이다우며 나무다운 삶일까요? 사람은 마음을 품으면서 얼마나 빛날까요? 마음으로 빛나는 삶이라면 무엇을 한복판에 놓고서 하루를 맞이한다는 뜻일까요?


 ㅅㄴㄹ


“만약 동물이 인간의 지능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헤르메스가 말했다. (17쪽)


이렇게 조심하는 것은 인간들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꼭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6쪽)


고양이나 다람쥐, 생쥐나 새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매즈논은 분명 그들과 소통하려고 애를 썼을 거다. 어떤 종이든 소통을 해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69쪽)


“주인이 아니라면 너를 고통스럽게 할 거야. 어느 날 넌 고통을 받을 거야. 상대가 누군지 아는 게 언제나 더 낫지, 안 그래?” “네 생각은 이해해. 하지만 이 인간은 주인이 아니야. 난 니라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렵지 않아.” (111쪽)


이미 창백한 존재들이 크림을 발라 더 창백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벤지는 경악했다. 하얀색에 지위를 가져다주는 뭔가가 있는 걸까? (172쪽)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프린스는 사랑했고, 그 답례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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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 - 히말라야 마르디 히말 트레킹기
옥영경 지음 / 공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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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책

인문책시렁 147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

 옥영경

 공명

 2020.5.20.



나는 공급자와 수급자가 서로 공정하자는 ‘공정여행’보다는 여행자는 여행하는 곳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책임여행’의 의미를 더 선소한다. (36쪽)


그때 그 비행기를 타서 지금 여기 있고, 그때 그 버스를 타지 않아 지금 여기 있으며, 지나간 모든 그때가 지금 여기 이르게 했다. (44쪽)


관광객들에게는 입장료를 받지만 현지 사람들은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 지정 건물과 건물 사이로 장을 보러 가고, 장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50쪽)


산을 내려오면 한 생을 건넌 것만 같다. 고생스러운 산일수록 아득한 세월이 흐른 것만 같다. 아스라한 시간일수록 그 시간이 사람에 이른다는 건 뜻밖이기도 하고 한편 헤아려지기도 한다. (167쪽)


계단, 계단, 계단.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이제 끝이겠다, 그러고도 돌계단은 계속된다. (244쪽)



  어느덧 사람하고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오늘날이 됩니다. 2019년 겨울 무렵까지 이런 흐름을 내다본 사람은 드물었을 수 있고, 머잖아 이런 흐름이 오리라 여긴 사람이 많았을 수 있습니다. ‘비대면’이니 ‘언택트’이니 갑작스런 바깥말이 춤추는데, 돌림앓이판 한 해가 무르익는 동안, 이 나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도무지 안 헤아리는 길로만 치닫습니다.


  아이들을 배움터에 안 가도록 하면 끝나지 않아요. 앞배움길(대학입시)에 맞추어 배움틀을 고치면 되지 않습니다. 정작 바라보아야 할 곳은 잊거나 등돌리네 싶어요. 12월 3일에 드디어 뭘 했대서 배움길이 될 턱이 없습니다. 아이들 앞삶에는 마침종이(졸업장)가 아닌 살림을 사랑하는 손빛이 대수롭거든요.


  그동안 이 나라와 삶터는 ‘배운 사람이 덜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고 들볶아 피를 빨던 틀’이었습니다. 이러했기에 누구나 배우도록 하는 일이 뜻깊고 값졌어요. 그런데 애써 마을사람이 땅을 내놓고 등짐을 져서 배움집을 세우고 보니, 이 배움터에서 쓰는 배움책은 마을살림이나 흙살림이나 숲살림하고 동떨어진 줄거리였어요. 배움터를 다닌 어린이·푸름이는 하나같이 서울바라기가 되고, 어느새 마을이며 시골을 떠났습니다. 배움터를 다니는 사람이 늘자, 이제 ‘더 배운 사람’은 ‘새로운 굴레와 수렁과 덫’으로 사람들을 옥죄는 틀을 마련하지요.


  배움숲 ‘물꼬’를 가꾸는 분이 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 공명, 2020)를 읽습니다. 흔히 ‘자유학교 물꼬’라 하는데, 멧자락에 깃든, 또는 멧자락이 품은 물꼬란 곳은 ‘배움숲’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싶어요.


  그래요. 배움숲입니다. 이제는 ‘터’를 지나 ‘숲’으로 살 때예요. 텃힘을 부리는 틀은 내려놓고서 숲을 노래할 줄 아는 싱그러운 마음을 북돋우는 길로 갈 때입니다.


  물꼬지기 옥영경 님은 물꼬 배움살이를 쉴 적마다 등짐을 꾸려 안나푸르나 멧길을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왜 굳이 안나푸르나일까 하고 묻는다면, 그곳이 마음에 끌렸기 때문이겠지요. 안나푸르나이든 티벳이든 부탄이든 방글라데시이든 인도이든 미얀마이든 안데스이든 얼마든지 찾아가서 걸을 만합니다. 아무 말 없이 멧자락을 타면서 하늘바라기가 되고 나무바라기가 될 만하지요.


  사람은 모여서 살아야 한다지만, 오늘날 서울이며 큰고장을 보면 끔찍하도록 너무 몰렸어요. ‘모임’이 아닌 ‘몰림’이자 ‘쏠림’입니다. 알맞게 모이면 어깨동무나 두레가 되지만, 몰리거나 쏠리면 다툼이나 싸움이나 겨룸이 돼요.


  온나라가 바글대지 않도록 서울을 치워야지 싶습니다. 집값 잡는 길은 쉬워요. 서울에 더는 새집을 못 짓게 하면 됩니다. 앞으로 서른 해쯤은 집짓기를 멈추고, 낡은 집은 허물어 숲으로 바꾸면 되어요. 알아서 서울을 떠나도록, 알아서 숲을 품도록, 우리 어른들부터 생각을 고치고 삶을 바꾸며 길을 틀 적에,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노래하는 살림꽃을 지피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거듭날 만하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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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
김재욱 지음 / 한솔수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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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50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

 김재욱

 한솔수북

 2020.8.25.



아빠와 함께했던 그 한 시간이 아이한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구나. 아빠한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는데 칭찬은커녕 틀린 걸 지적하고 반복이나 시켰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15쪽)


누나나 나처럼 아이도 지금 있는 이곳에서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힘이 들 땐 언제라도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 힘들다고 말을 해야 그 소리를 듣는 비둘기가 나타나는 법이다. (70쪽)


그런데 형님이 정색을 하는 거야. 나한테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고, 네 딸아이들한테도 그런 말 하지 마라”고 하더라고. (157쪽)


그러고 보니, 아까 수업 시간에 나한테 말했던 학생은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하면서도 무척 조심스러워 했지. 나는 그간 학생과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마음을 다른 어른들보다 잘 알며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오십보백보로구나. (190쪽)



  아이는 자랍니다. 아이는 크게 자라지도 작게 자라지도 않습니다. 저 스스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랐으니 이처럼 느끼고, 저 스스로 두 아이를 돌보는 나날을 보내면서 이 대목을 물씬 느낍니다.


  참말로 아이들은 ‘크게도 작게도’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늘 ‘아이로서’ 자라고 ‘아이답게’ 자라며 ‘아이스럽게’ 자라요.


  아이는 언제까지나 아이입니다. 저는 오늘 어른이란 몸이지만, 우리 어버이가 저를 볼 적에는 노상 아이입니다. 제가 갓 태어날 무렵부터 지켜본 둘레 어른한테도 저는 아이일 테지요. 우리 집 아이들도 그래요.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어른이란 몸이 되더라도 저한테는 한결같이 아이로 다가오겠지요.


  아이하고 보낸 하루를 담은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김재욱, 한솔수북, 2020)를 읽었습니다. 글쓴님은 열린배움터에서 젊은이를 가르치면서 집에서는 아이들을 마주한다지요. 그런데 책에 적은 줄거리로 보건대 글쓴님은 아이들하고 복닥일 틈이 퍽 적은 듯합니다. 아무래도 바깥일을 오래할 테니 아이들하고 적게 복닥일 테고, 여러모로 배움길을 꾸준히 나아갈 테니 아이들하고 조금 부대끼겠구나 싶습니다.


  늘 아이하고 살림하고 살아간다면, 아이를 다그칠 일도 닦달할 일도 없어요. 아이는 언제나 아이답게 차근차근 자라거든요. 어느 아이는 일찍 철들고 어느 아이는 늦게 철든다지만, 뭐 나이 마흔이 되어 철이 안 들어도 좋아요. 아이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하루를 누리는 마음이면 넉넉하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글쓴님 스스로 아이를 너무 서두르는 눈으로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느긋하게 가야지요. 널널하게 놀아야지요. 어린 나날 놀지 못한 채 배움터에 붙들려 열린배움터만 바라본다면, 아이스러움을 품은 상냥하면서 빛나는 어른으로 서기 어렵습니다. 놀지 못한 아이는 일하지 못해요. 신나게 놀지 못한 아이는 기쁘게 일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라지 않아요. 《아이를 크게 키운 고전 한마디》를 읽는 내내 이 책은 ‘아이를 돌본 옛말’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른인 글쓴님 스스로 다스린 옛말’ 이야기였다고 느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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