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1919 - 신문기자, 100년 전으로 가다
오승훈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인문책시렁 129


《백투더 1919》

 오승훈·엄지원·최하얀

 철수와영희

 2020.4.11.



식민지 조선에선 쌀값 폭등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와중에 일본 동경에서는 ‘돈까스·카레라이스·오무라이스’라는 화양절충 요리가 군부대와 대학을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잇따라 관련 음식점들도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67쪽)


총독부가 한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한 건 식민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친일파들의 존재가 긴요했기 때문이었다. (95쪽)


민중의 고통을 자기 일로 여기며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여전히 공무원이나 교사·변호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어찌 보면 ‘충성스러운 신민’ 말고는 다른 길이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194쪽)


세브란스병원 견습 간호사 노순경(17)은 동기인 김효순(17)·이신도(17)와 종묘 앞에서 만세운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붉은 글씨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만들어 시위를 주도했다가 8호 감방에 끌려왔다. (352쪽)


만세운동의 큰 물결을 이끌어 간 이들은 역시 농민이었다. 조선총독부 자료를 보면 3·1운동 피검자 1만 9525명 중 직업별로는 농업이 55.3%로 가장 많다. (357쪽)



  어린 날을 보낸 인천에서는 새벽부터 비둘기나 갈매기 소리를 들었습니다. 1980년대를 돌아보면, 그무렵 나라 곳곳에서 무슨 자리를 꾀할 적마다 ‘평화 상징’이라며 비둘기 날리기를 으레 했고, 그때 풀려난 비둘기는 마을이며 골목 곳곳을 떼지어 날아다녔습니다. 바닷가에 살았으니 갈매기야 고개 들어 하늘만 보면 언제나 보았어요. 철 따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나 오리떼도 흔히 보았습니다.


  작은아이를 충청도 멧골에 살며 낳았는데, 이때에는 골짝물 소리를 하루 내내 들었어요. 바람이 불어 골짜기 나무를 살랑이는 소리하고 어우러진 물소리는 작은아이를 재우기에 매우 좋았고, 어른으로서도 마음을 달래는 고즈넉한 소리물결이라고 느낍니다.


  요즈막에 전라도 두멧시골에서 지내며 하루 내내 멧새 노래를 듣는데,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때에는 해거름부터 한밤까지 개구리 노래잔치를 듣습니다. 쉴새없이 노래하는 멧새하고 개구리를 곁에 두면서 생각하지요. 쉰 해 앞서도, 백 해 앞서도, 오백 해나 즈믄 해 앞서도, 만 해나 십만 해 앞서도,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바로 이 멧새·개구리 노래를 언제나 함께했으리라고.


  2019년에서 백 해를 거슬러 올라가서 1919년은 어떤 나라였을까 하고 헤아린 이야기를 담은 《백투더 1919》(오승훈·엄지원·최하얀, 철수와영희, 2020)를 읽었습니다. “신문기자, 100년 전으로 가다”란 이름으로 여민 이야기이기에, 시골사람 눈도 아니고,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눈도 아니며, 1919년 3월 그날을 지식인은 어떻게 바라보았나 하는 눈길로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도라에몽 주머니나 책상서랍이 있다면, 2019년을 사는 몸으로도 1919년으로 거뜬히 찾아가서 몸으로 겪고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만하겠지요. 도라에몽 주머니나 책상서랍은 만화책에나 나오는 일이라 여길 테지만, 2019년에 1919년을 그리며 옛 신문을 뒤적여 ‘어제를 오늘 새롭게 읽을’ 적에도 꿈으로 엮는 이야기이기는 매한가지예요.


  지난날에 누가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역사책은 흔히 독립운동을 ‘이끈’ 사람들만 다룹니다만, ‘한’ 사람들은 거의 못 다루거나 안 다뤄요. 조선왕조실록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라를 ‘이끈’ 사람들은 다루지만,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좀처럼 못 다뤄요.


  오랜 나날을 거슬러서 오늘을 새로 읽는다고 한다면, ‘3·1운동 피검자 1만 9525명’이라는 숫자보다는 ‘어느 책에도 신문에도 이름이 안 적힌’ 돌이순이 이야기를 다루어 보면 어떨까요? 시골돌이하고 시골순이로서 이 나라를 바라보고, 흙을 짓는 흙돌이랑 흙순이로서 굽이치는 물결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엮어 볼 만하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백투더 1919》를 읽노라면 1919년 그무렵에 ‘공무원이나 교사·변호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바라는 지식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땅을 가꾸고 숲을 돌보는 사람은 이 길을 고스란히 이었겠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지식을 익힌 이들은 ‘돈을 잘 벌고 자리를 잘 지키는’ 도시 일자리를 바랐다지요.


  오늘 우리는 어떤 앞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만할까 궁금합니다. 백 해 앞을 돌아보았다면, 백 해 뒤를 내다보면 어떨까요. 2199년에도 아직 ‘안정적인 직업’만 바라보는 우리 모습일는지, 그때에는 어깨동무하면서 들숲바다를 푸르게 돌보는 싱그러운 모습일는지, 슬쩍 엿보고 싶습니다. 어제를 보며 오늘을 배우고, 오늘을 살며 모레를 그리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되도록,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 어른들이 다같이 힘쓰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담은 교문 -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학교 공간 혁신
배성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배움책

맑은책시렁 230


《꿈을 담은 교문》

 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3.15.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교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교문이 쉼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고요. 그다음에 앉아서 쉴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 교문이 이정표이자 쉬어 가는 고갯마루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지요. (43쪽)


그래도 제자들이 해결책을 내놓아요. 교문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 아이들과 의논했습니다. (129쪽)


명령하는 것보다 공간을 바꾸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조심조심 걸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예요. 한창 뛰어놀 나이잖아요. (145쪽)


조달청에서 납품하는 학교 책걸상에도 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오히려 국가 안전 기준이 더 강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가격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152쪽)


조사를 해 보니, 유해 성분 없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요 … 안전한 제품은 생산이 제대로 안 되니까 구입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정부가 물건을 살 때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154쪽)



  며칠 앞서 읍내에 볼일을 보려고 시골버스를 타고 가는 길입니다. 이웃 면소재지를 지나가는데 그곳 중학교 푸름이가 잔뜩 시골버스에 탑니다. 몇 아이는 쇠돈을 집어던지듯 넣고, 몇 아이는 버스칸을 오락가락하면서 떠들고, 몇 아이는 발을 앞자리까지 뻗으면서 까불거립니다. 한두 아이가 아닌 모든 아이가 까불질을 하는데, 이 아이들 가운데 몇쯤 앞으로 이 시골에 남아서 보금자리를 가꿀 생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곧 여름인데, 시골 고등학교 들머리에 지난가을께 내건 걸개천이 그대로입니다. 이 걸개천에는 큰고장 어느 큰일터에 뽑힌 아이 이름을 큼직하게 새겼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뿐 아니라 이웃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거나 이름난 큰일터에 들어간 아이들 이름을 크게 내붙이더군요. 자랑할 일인가 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이란 터전을 사랑으로 돌보며 보금자리를 슬기로이 가꾸는 아이들 이름을 보람차게 내건 시골은 여태 본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 안 들어가고서 숲살림을 익힌다든지, 학교는 손사래치면서 사랑살림을 배우는 어린이나 푸름이 이름이라면, 더더욱 학교 들머리에서 이 이름을 보기 어렵겠지요? 교육청이건 군청이건 똑같을 테고요.


  초등학교 샘님으로 일하는 분이 엮은 《꿈을 담은 교문》(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을 읽으며 여러모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첫째, 학교 들머리를 처음부터 새롭게 바라보고서 이 얼거리를 손질하려는 뜻을 품는 어른이 있어서 놀랍습니다. 둘째, 학교 얼거리를 손질하는 일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이야기한 다음, 이 학교 모든 아이가 함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틈을 내려는 생각을 하는 어른이 있기에 놀랍습니다. 셋째, 제가 살아가는 시골 군청이나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이만한 생각을 하는 샘님을 아직 못 보았는데요, 앞으로는 있을는지 없을는지 가물가물하구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책을 엮은 배성호 샘님 한 사람이 대단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분이 어른으로서 샘님이란 길을 가기 앞서 이끌고 가르친 어진 어른이 있었겠지요. 뜻을 함께하는 슬기로운 동무하고 이웃이 있었을 테고요.


  혼자서 갈아엎거나 바꾸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조그맣게 가꾸는 손길이라면, 어느새 한 사람 두 사람 곁에 서면서 함께 걷는 발걸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른끼리 하는 일이 아닌,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스스로 앞장서서 어깨를 겯는 살림길이에요.


  첫걸음이 대수롭다고 하는 옛말처럼, 배움자리라면 들머리가 더없이 대수로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네 배움자리는 들머리에 뭘 세우거나 내걸까요? 배움자리를 오가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들머리에서 날마다 무엇을 볼까요? 배움자리를 오가는 길목에 나무를 우거지게 가꾸는 곳이 더러 있습니다. 오가는 길뿐 아니라, 울타리를 나무로 겹겹이 싸고, 옆이나 뒤에는 푸르게 우거진 숲이며 골짜기를 둔 배움자리도 있지요.


  배움책 《꿈을 담은 교문》은 들머리 하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폅니다만, 우리가 들머리를 비롯해 모든 자리를 차근차근 바라보면서 가꾸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다면 아름답겠지요. 아파트 사이에 배움자리를 두렵니까? 숲이나 바다나 들판 곁에 배움자리를 두렵니까? 배움자리 앞에 온갖 가게가 늘어서는 마을이 되도록 하렵니까? 배움자리가 살림자리 품에 고이 안기도록 하렵니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배움자리에서 꿈이며 사랑을 즐거우면서 상냥하게 지켜보거나 배울 만한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유루시아 지음 / 인디펍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배움책

푸른책시렁 157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유루시아

 인디펍

 2020.4.5.



멀리서부터 부르길래 반가워서 부르나 했더니, 친구랑 학교에 오면서 사소하게 다툰 이야기를 이르려고 벼른 만큼 큰 목소리로 불렀던 것일 때도 있습니다. (21쪽)


쉬는 시간은 참 짧습니다. 어린이들끼리 놀이 한 판 하기에도 짧고, 나 역시 숨을 천천히 돌리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싶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시간입니다. (30쪽)


너희 얼굴을 보고는 솔직히 너무 웃겼어. 대피 훈련을 무슨 재미난 에피소드나 소풍쯤으로 여기는 듯한 너희! (54쪽)


나는 너무 많이 웃어 줄까 봐, 너무 ‘허용적인’ 교사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의무감에 휩싸여서, 자주 웃어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63쪽)



  어른이란 나이라면 누구나 ‘살아온 나이’가 있습니다. 다섯 살도 일곱 살도 아홉 살도 살았어요. 열세 살도 열다섯 살도 스물네 살이며 서른일곱 살도 살았겠지요. 다만, 먼저 살았기에 더 잘 하지는 않고, 더 잘 알지도 않아요. 그저 먼저 살아 보았을 뿐입니다.


  먼저 살아 본 어른이라면 ‘지나온 나날을 되짚을’ 겨를이 있고, ‘나는 그때 무엇을 했을까 하고 되새길’ 틈이 있으며, ‘그때 그곳을 살아온 하루를 곱씹어 오늘 그 나이를 살아가는 뒷사람한테 새롭게 들려줄 말을 생각할’ 짬도 있어요.


  대구에서 초등교사로 일하는 어른 한 분이 쓰고 그린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유루시아, 인디펍, 2020)을 읽습니다. 이 책은 ‘아홉 살 어린이’를 교사로 맡아서 돌보는 나날을 보내면서 스스로 남긴 글하고 그림을 묶습니다. 말하자면 교사일기입니다.


  오늘은 교사 자리에 섭니다만, 교사가 아닌 아홉 살 어린이였을 분은 그때 어떻게 하루를 맞이하면서 누렸을까요. 오늘 아홉 살을 살아내는 어린이한테 우리 어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앞길을 꿈으로 즐겁게 그리도록 북돋우는 말 한 마디에 눈짓에 생각을 보여줄 만할까요.


  교사일기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은 아홉 살 어린이가 얼마나 티없이 속내를 드러내면서 마음껏 놀고 배우려 하는가를 그립니다. 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너무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는가’를 돌아보고 ‘좀더 느슨하게 마주해도 즐겁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한둘도 여럿도 아닌 다 다르’면서 재미나겠다고 헤아립니다.


  가만 보면 교사로서 가르치는 길도 다 다를 만해요.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어른이 다른걸요. 다 다른 어른하고 다 다른 아이가 만나서 늘 다르게 배우고 가르치는 하루가 흐르니, 배움터라는 곳은 참으로 배우며 노래하는 즐거운 이야기밭이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 코로나 시대, 새로운 교육을 위하여 코로나19 3부작
인디고 서원 지음 / 궁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시렁 156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2020.4.24.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매번 이런 식이었습니다.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금씩 바꿔 가며, 늘 ‘대입’에 맞춰져 있는 획일화된 교육으로, 이번 해에는 누구를 더 유리하게 대학에 가게 해줄지 수 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38쪽)


여러분이 지금 당장 바꾸고 싶은 공간은 어디인가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바꿔 보고 탈바꿈한 공간의 특징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이 글로 표현해 주세요. (95쪽)


저는 청소년들이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가 사회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48쪽)


지구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과학 시간도 필요하지만, 큰 지구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149쪽)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기존의 틀에서는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292쪽)



  찔레나무에 아직 꽃망울이 맺히지 않을 즈음 어떤 나무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시큰둥하게 지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미일까 하고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테며, 굵직굵직 가시를 보고서 싫다고 꺼리는 사람이 있어요.


  찔레싹을 보고는 맛나겠네 여기면서 바로 톡톡 훑어 냠냠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시 돋은 잎줄기를 어찌 먹느냐며 손사래치는 사람이 있어요. 이 가시 잔뜩 나무가 하얗게 꽃잔치를 벌이며 온통 달콤하게 감쌀 적에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요.


  언제나 새로 배웁니다. 날마다 싱그럽게 익힙니다. 겨울 가고 봄이 오다가 여름으로 접어드는 철을 배워요. 늘 새롭게 흐르는 철이지만, 이러한 철을 알아볼 겨를이 없이 바삐 몰아치는 곳에서 ‘철없이 가는 삶’을 지켜보고 배우기도 하겠지요.


  부산이란 고장에서 푸름이가 푸르게 물드는 책을 곁에 두면서 푸른길을 익히도록 이바지하려고 힘쓰는 ‘인디고서원’이 있습니다. 이곳 책집지기는 푸름이랑 배움벗이 되면서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2020)라는 책을 여밉니다.


 책이름을 그대로 옮긴다면 ‘배움길은 바른길로 나아간다’예요. ‘배우는 사람은 바르게 나아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배우기에 싱그러이 바른삶이 된다’는 얘기이고요.


  이때에 물어보기로 해요. 배우기에 바를 수 있을까요? 배우지 않는다면 바르지 않을까요?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른길을 걸을까요? 안 배우는 사람이기에 안 바르고야 말까요?


  학교를 오래 다녔기에 배운 사람이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녔으면 그저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입니다. 이런 졸업장이나 저런 자격증이 있으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거머쥔 사람입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그 사람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나 사랑이나 살림’인가를 밝히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이라 해도 다 다릅니다. 일본사람이라 해도 모두 달라요. 어느 나라 사람이기에 더 좋거나 나쁘지 않아요. 서울사람이나 시골사람도 매한가지입니다. 서울에 살기에 숲을 모르지 않고, 시골에 살기에 흙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이라면 서울에서도 숲을 알고, 스스로 안 배우려는 마음이라면 시골에서도 흙을 마구 다룹니다.


  돌림앓이가 퍼지기 앞서까지 끝이 없도록 입시지옥으로 내달린 이 나라를 들여다보기로 해요. 돌림앓이가 퍼져서 학교가 더는 아이들이 모이는 자리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에도 ‘배움길’ 아닌 ‘입시제도·학사일정’만 걱정하는 교육부 나리를 바라보기로 해요. 왜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하고 이야기할까요? 아니, 왜 이 책으로 우리한테 물어볼까요?


  배우는 척할 적에는 배움길이 아닙니다. 졸업장하고 자격증을 따는 길은 배움길이 아닙니다. 배움길은 살림길이요, 사랑길이며, 숲길입니다. 살림을 사랑하는 숲으로 나아가지 않고서야 배움길이 되지 않아요. 책읽기는 책을 읽는 길입니다. 책이어야 배우지 않아요. 꼭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교를 거쳐야 ‘배웠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대학원에 유학까지 마쳤다지만 어리석거나 엉터리이거나 어쭙잖거나 엉성한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학교 문턱을 안 디뎠어도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며 상냥한 사람이 퍽 많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에 설 적에 즐거이 노래하고 아름다이 춤추는 참어른이란 자리에 설 만할는지, 이제부터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보자기 파랑새 사과문고 91
윤소희 지음, 홍선주 그림 / 파랑새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9


《붉은 보자기》

 윤소희 글

 홍선주 그림

 파랑새

 2019.9.27.



김부흥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신의 기록에 대해 짐짓 놀랐으나 이득원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이득원은 함께 하대업을 찾아가 사초 수정을 청탁하자고 김부흥을 설득했다. (46쪽)


“사초를 쓴 것이 네놈이냐?” 그제야 하대업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황송하오나, 전하께서는 어찌 열람이 금지된 사초를 보신 것이옵니까?” (56쪽)


‘사초를 내가 다 읽어 두었더라면, 이 머릿속이 이야기책들로만 꽉 차 있을 게 아니라 아버지의 사초 내용으로 꽉 찼더라면, 그깟 종이 뭉치 좀 없어진들 뭐가 걱정이겠는가. 잃어버리면 다시 쓰고, 빼앗아 가도 다시 쓰고, 불타 버려도 다시 쓰면 그만인 것을.’ (147쪽)


궁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잔혹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고, 애잔함과 비통함을 금치 못하며 써 내려갔다. 나쁜 짓을 일삼는 탐관오리들에 대해서도 그 탁하고 탐욕적인 마음의 가난함을 먼저 헤아렸다. 인덕이는 어째서 아버지가 그토록 목숨처럼 사초를 지켜야만 했는지 비로소 그 참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59쪽)


‘책쾌 아재, 아재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알게 될 거예요. 동휘야, 너희 아버지는 나쁜 탐관오리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165쪽)



  국민학교를 다니며 일기 숙제를 늘 해야 했는데, 그무렵 제가 쓴 일기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이야기는 없다시피 합니다. 학교에서는 일기에 이 글을 쓴 사람 하루만 쓰라 했으니 고분고분 따른 셈인데요, 어머니나 아버지나 집안이나 마을 이야기도 바로 ‘글쓴이인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인 줄 스스로 미처 헤아리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요.


  날마다 신문이 나오고, 방송이며 유튜브에 온갖 이야기가 흐릅니다. 나라에는 국가기록원이 있어요. 으레 정치·사회·스포츠·문화예술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 가운데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요. 국가기록원은 1955년 어느 날 작은고장 어린이 일기를 건사한 적 있을까요. 1975년 어느 날 시골 어린이 일기를 건사하자는 생각을 한 적 있을까요.


  어린이문학 《붉은 보자기》(윤소희, 파랑새, 2019)는 ‘조선왕조실록’을 엮는 바탕이 되는 ‘사초’를 쓴 사람을 둘러싼 줄거리를 다룹니다. 사초를 쓰는 사람은 임금을 비롯해서 임금집이며 나라에서 흐르는 온갖 이야기를 곰곰이 보면서 고스란히 담아내는 몫을 한다지요. 감추고 싶거나 부끄러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초를 쓰는 사람’은 이를 지우거나 감추거나 덜거나 손질하지 않으려고 애썼다지요.


  어린이문학 《붉은 보자기》는 ‘사초에 적힌 벼슬아치나 임금 자취’를 슬쩍 들여다본 벼슬아치하고 임금이 ‘사초를 쓴 사람’을 나무라거나 죽일 뿐 아니라 두멧시골로 내보내는 줄거리도 다룹니다. 스스로 했던 일을 감추고, 뭔가 잘못하거나 뒷자리에서 벌인 꿍꿍이는 모조리 지우도록 했다는 줄거리를 함께 다루는데요, 벼슬아치나 임금으로서 이들은 무엇이 부끄러웠을까요? 뭔가 잘못했던 일이나 꿍꿍셈이 부끄러울까요, 아니면 그무렵 이 나라를 이룬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제대로 모르면서 정치를 한 모습이 부끄러울까요?


  ‘어떻게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시시콜콜한 대목까지 다 알아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시시콜콜한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을 모른다면 무슨 정책을 어떻게 펼까요? 셈틀이나 손전화가 없는 가난한 어린이나 푸름이도 제법 있는데, 다짜고짜 누리맞이를 하면 가난한 아이들은 어리둥절하겠지요. ‘저소득계층·차상위계층’이란 이름이 아닌 ‘이웃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어떤 살림살이인가를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스스로 챙겨서 살피지 않는다면, 제대로 나라살림을 알차게 가꾸는 길을 안 가거나 못 가겠지요.


  대통령뿐 아니라 시장·군수이며 읍면동사무소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큰기업 꼭두머리도 만날 수 있겠지만, 작고 낮은 자리에서 수수하게 하루를 짓는 사람도 언제나 만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붓’이라면 정치·사회·스포츠·문화예술이라는 갈래만 다룰 노릇이 아닌, 신문사나 방송사 곁에 있는 작고 낮은 사람들 살림살이를 나란히 지켜보고 어깨동무하면서 담아낼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어린이문학 《붉은 보자기》에 나오는 ‘사초를 쓴 어른’은 임금하고 벼슬아치를 둘러싼 이야기를 아로새겼다면, 이 집안 딸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새로 쓸 만할까요. 구태여 임금이나 벼슬아치 이야기를 더 써야 할까요, 아니면 두멧시골이며 이 나라 골골샅샅에서 수수하게 삶을 짓고 사랑을 꽃피우는 이웃들 이야기를 처음으로 제대로 쓰는 붓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