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할머니
베스 크롬스 그림, 필리스 루트 글, 강연숙 옮김 / 느림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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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4



할머니는 아이를 사랑하셔

― 겨울 할머니

 필리스 루트 글

 베스 크롬스 그림

 강연숙 옮김

 느림보 펴냄, 2003.11.28.



  할머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아이는 할머니를 사랑하지요. 할머니는 아이를 아끼고, 아이는 할머니를 아낍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할머니이기 앞서 어머니였을 적에 어떠했을까요. 아주 마땅히, 어머니로서 아이를 사랑했겠지요.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듯이, 아이는 어머니를 사랑했겠지요. 그러니, 어머니로서는 이녁이 사랑하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어떠할까요? 이녁 아이한테서 느낀 사랑에서 차츰차츰 자라서 새롭게 무르익는 사랑이 태어나겠지요.



.. 여름 내내 할머니는 깃털을 모아요. 눈처럼 하얗고 달처럼 빛나는 깃털을요 ..  (9쪽)




  그림책 《겨울 할머니》(느림보,2003)를 읽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필리스 루트 님은 어떤 글로 사랑을 들려주고 싶었을까요. 베스 크롬스 님은 어떤 그림으로 사랑을 밝히고 싶었을까요.


  ‘겨울 할머니’는 겨울을 부르는 할머니입니다. ‘겨울 할머니’는 아이들한테 겨울을 선물하는 할머니입니다. ‘겨울 할머니’는 아이들을 비롯해서 모든 숲짐승과 숲나무와 숲목숨한테 겨울을 선물하는 할머니입니다.


  겨울에는 하얗게 쌓이는 눈과 함께 포근히 쉬도록 이끄는 할머니입니다. 겨울에는 아이들이 눈을 뭉치며 까르르 뛰놀도록 베푸는 할머니입니다. 겨울에는 숲동무 누구나 새근새근 잠들면서 새봄을 기다리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할머니입니다.



.. 할머니가 이불을 털면 아이들은 집 밖으로 뛰어나와요. 아이들은 입을 벌리고 차가운 눈송이가 혀에 떨어지기를 기다리지요 ..  (14쪽)





  ‘겨울 할머니’가 있듯이, ‘봄 할머니’가 있습니다. 겨울 할머니가 겨울일을 마치고 새근새근 잠들면서 쉬면, 봄 할머니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씩씩하게 일해요. 봄 할머니가 허리를 토닥이며 잠자리에 쉬러 가면, 여름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싱그럽게 노래하면서 새롭게 일합니다. 그리고, 가을 할머니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할머니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로 자라거나 아버지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면서 씩씩한 어른으로 우뚝 섭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되거나 아버지가 되면서 빙그레 웃음짓는 삶노래를 부릅니다.


  겨울 할머니는 그저 눈을 베풉니다. 눈을 어떻게 뭉치라고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겨울 할머니는 찬찬히 눈을 선물합니다. 눈놀이를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눈을 받으면서 웃습니다. 아이들은 그예 눈을 맞으면서 하하 호호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눈과 함께 기쁘고, 아이들은 겨우내 볼과 손발이 꽁꽁 얼면서도 웃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 할머니는 깃털 이불을 마지막으로 한 번 턴 뒤, 촛불을 끄고 침대에 올라가요. 그때, 소나무에 있던 바람이 “쉿!” 조용히 하라고 속삭여요 ..  (28쪽)





  할머니는 아이를 사랑하셔요. 아무것도 내걸지 않으면서 사랑하셔요. 할머니는 이웃을 사랑하셔요. 이래야 사랑하거나 저래야 사랑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누구나 사랑하셔요. 이쪽 나라만 사랑하거나 저쪽 나라는 미워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지구별을 사랑으로 얼싸안으려고 하셔요. 할머니는 총이나 칼을 들지 않아요. 할머니는 전쟁무기나 군대를 몰라요. 할머니는 전투기나 잠수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오직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으로 짓는 삶을 생각하며, 사랑으로 부르는 노래를 생각해요.


  할머니를 사랑하는 아이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들은 손에 손에 즐거운 노래를 꼬옥 쥡니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기쁜 웃음을 맞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얼굴로 사랑스러운 하루를 누리고 싶습니다. 4347.7.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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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1
이루리 지음 / 북극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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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4



그림책으로 삶을 읽기

―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이루리 글

 북극곰 펴냄, 2014.6.18.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두 아이를 재웁니다. 한여름입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함께 자리에 눕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속삭이며, 나긋나긋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두 아이를 눕히고 들려주는 이야기와 부르는 노래는 언제나 같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면서도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빛은 늘 다릅니다.


  곰곰이 생각하지요. 왜 날마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에도 늘 다른 느낌일까 하고.


  아이들 팔다리와 몸을 천천히 주무릅니다. 오늘 하루 개구지게 뛰논 만큼 팔과 다리와 온몸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듯이 천천히 주무릅니다. 긴 밤 푹 자고 일어나서 새롭게 맞이할 아침에 다시금 기운을 내어 즐겁게 뛰놀기를 바라면서 주무릅니다.


  아이들 몸을 다 주무르고 두 아이 사이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켠 다음 노래를 부르면, 이 노래는 늘 내 마음에 먼저 스며드는구나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는데 왜 내 마음에 먼저 스며든다고 느낄까요.


  지난 일곱 해를 돌아봅니다. 아마 지난해에는 지난 여섯 해를 돌아보았을 테고, 그러께에는 지난 다섯 해를 돌아보았을 테지요. 이듬해에는 지난 여덟 해를 돌아볼 테고요. 아이하고 부르는 노래는 아이가 마음으로 담기를 바라는 빛이면서, 나 스스로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동안 마음으로 담기를 바라는 빛입니다. 내가 날마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하루요 나한테도 새로운 하루입니다. 스스로 입으로 읊는 말은 스스로 가슴에 담는 생각이 되면서, 스스로 가장 밝은 꿈을 심는 셈입니다.



.. 생명이 고귀한 까닭은 무엇보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누군가의 엄청난 노고와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형제도 친구도 모두 인간의 운명을 함께 나눌 친구입니다 … 마치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숲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별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가 《눈 오는 날》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  (19, 87, 417쪽)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를 들려주다 보면, 나는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두 아이를 모두 재우고서 조용히 일어나 글을 쓸 생각이지만, 늘 아이들보다 살짝 일찍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새 똑 끊어지더니 먼저 숨을 고르게 쉬면서 잠들면 이윽고 따라서 잠듭니다.


  때때로 큰아이는 자다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납니다. 뭔가 하고 옆에서 화들짝 놀라 일어납니다. “모기 있어.” 한 마디를 하며 이불을 끌어당깁니다. “아, 그래. 모기.” 엄청난 꿈이라도 꾸었나 하고 놀란 마음을 달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어디 모기 소리가 들리나.


  모기 소리가 들리면 옆방 불을 켭니다. 팔을 옆으로 뻗습니다. 모기야 모기야 내 팔에 내려앉으렴. 모기는 앵앵거리면서 내 팔이 아닌 아이들 몸 가운데 구석진 데에 내려앉으려고 합니다. 나는 모기 소리를 찾아 이리저리 살피며 내 팔이나 다리를 다시 뻗습니다. 이제 모기가 내 팔이나 다리에 내려앉으면 몇 초쯤 기다립니다. 그러고 나서 세차게 찰싹.


  한 차례에 잡히는 모기가 있고, 열 차례 넘게 쳐도 안 잡히는 모기가 있습니다. 오늘 밤은 어쩐지 모기 한 마리가 안 잡힙니다. 한 마리하고 한참 실랑이를 합니다. 그러나 모기는 끝끝내 잡히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찰싹 내리쳐서 잡았는가 싶더니 이불에 톡 떨어집니다. 얼른 모기를 줍습니다. “자, 모기 잡았어.” 하고 큰아이한테 말합니다. 큰아이는 다시 깊이 잠듭니다. 손에 쥔 모기는 아직 안 죽었습니다. 통통한 모기 한 마리가 바들바들 떠는 기운을 느낍니다. 손가락으로 꽉 눌러서 죽이려다가 차마 죽이지 못합니다. 부엌에서 물을 틀어 개수구로 모기를 빠뜨립니다.



.. 치히로의 언어는 산문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이며 어린아이가 들려주는 속삭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치히로의 그림에는 스케치가 없습니다. 실존하는 만물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치히로는 수채화 물감의 농담만으로 사물과 인물의 입체감을 살립니다. 또한 여백을 최대한 활용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  (56, 129쪽)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누린 삶을 이야기하는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북극곰,2014)을 읽습니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아버지는 많지만,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려는 아버지는 드문데, 이루리 님은 아이하고 도란도란 그림책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그림책을 누리면서 ‘아이한테만 읽히기에는 많이 아쉬운 작품’이 많다고 느껴, 이렇게 ‘아버지 이웃’을 비롯해서 ‘어버이 이웃’ 누구하고나 나누고 싶은 그림책 이야기를 조곤조곤 펼칩니다.


  마땅한 이야기이지요. 그림책은 아이만 누리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주 어린 아이부터 누리는 책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삶을 맛보거나 헤아리거나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부터 읽는 책입니다.


  만화책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만 보는 책이 만화가 아닙니다. 아이들도 쉽게 알아듣거나 알아차릴 수 있게끔 이야기빛을 베푸는 책 가운데 하나가 만화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어린 아이들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엮은 책이 그림책인 터라, 그림책은 ‘가장 쉬운 인문책’입니다. 그림책은 ‘가장 너르거나 깊은 역사책’입니다. 그림책은 ‘가장 사랑스럽거나 즐거운 이야기책’입니다.




.. 레이먼드 브리그스가 이렇게 그림책에 대한 통념을 깨뜨릴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근본적인 동기를 늘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은 원래 별처럼 아름답고 자유롭고 즐겁게 태어난 게 아닐까요 … 아침 햇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깨어납니까?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은 언제입니까?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지는 해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은 있나요 ..  (139, 218, 321쪽)



  어느 책을 읽더라도 우리들은 삶을 읽습니다. 그림책에서든 만화책에서든 어른문학에서든 늘 삶을 읽습니다. 책을 빚은 사람들이 이룬 삶을 책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삶은 ‘사랑’과 ‘꿈’입니다. 왜 사랑과 꿈인가 하면,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삶은 언제나 사랑과 꿈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 돈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과학기술이나 전쟁무기를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총칼이나 탱크나 전투기를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골프장이나 발전소나 공장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자가용이나 고속도로나 시멘트를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아파트나 국회의원 자리나 부동산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것은 예나 이제나 사랑과 꿈입니다. 아이가 어른한테서 물려받을 것은 이제나 예나 꿈과 사랑입니다. 그림책은 한결같이 사랑과 꿈을 노래합니다. 그림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과 꿈을 보듬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는 아이와 나눌 사랑과 꿈을 읽으려는 사람이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을 적에는 어버이 스스로 새롭게 가꾸거나 일굴 사랑과 꿈이 어떠한 빛인가 하고 되새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이라는 책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대목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치히로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몹시 불친절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놀랍게도 독자들은 토토의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56쪽).”와 같은 글월인데, ‘몹시 불친절하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을 제대로 읽는다면, 또는 어린이 눈높이로 읽는다면, 또는 사랑과 꿈이라는 눈길로 읽는다면, 이때에도 ‘몹시 불친절하게 보일’까 궁금합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빚은 그림에 “귀를 기울이면 놀랍게도” 토토가 어떤 마음인지 느낄 수 있다고 이루리 님 스스로 덧붙입니다. 곧,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은 ‘몹시 불친절’한 그림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천천히 차근차근 가만히 읽으면 마음 깊이 환하게 피어오르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그림을 바라보면서 섣불리 ‘몹시 불친절’하다는 투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울는지 글쓴이 스스로 되새겨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그림책은 똑같은 틀로 굽는 붕어빵이 아니에요. 그림책은 다 다른 작가가 모두 똑같은 줄거리나 얼거리로 짜야 하는 붕어빵이 아닙니다. 붕어빵을 같은 틀로 구워도 다 다른 맛이 나기 마련인데,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바탕으로 다 다른 사랑과 꿈을 보여주는 그림책이 다 다른 빛일밖에 없어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라면, ‘마음을 활짝 열고 다 다른 빛’을 넉넉히 끌어안으면 됩니다.


  한편, “얼핏 보면 원작 《슈렉》은 영화 〈슈렉〉보다 과격하고 비교육적입니다. 하지만 그림책 《슈렉》은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포함한 모든 독자에게 평생 철학적인 숙제를 던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265쪽).”와 같은 글월은 앞뒤가 어긋납니다. 아니, 그림책을 읽으면서 ‘과격’이라느니 ‘비교육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바로 “철학적인 숙제를 던지며 성장”한다고 덧붙이니, 더더욱 어수선합니다. 사람들한테 생각을 깊이 하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라면 ‘교육을 하는’ 그림책이지 ‘비교육적’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일은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만날 적에 ‘제도권 사회를 만들고 이 틀을 붙잡으려는 어른으로서 바라보는 눈길’은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제도권 틀이 없어요.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금을 긋지 않고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제도권 틀이나 금긋기나 편가르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한테 사랑과 꿈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면서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즐기고, 저 그림책은 저렇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요. ‘교육’이나 ‘교훈’이나 ‘감동’이라는 이름도 모조리 내려놓고, 그림책을 그림책으로서 마주하면서 이 책들마다 서린 빛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으로 삶을 읽습니다. 이웃이 누리는 삶을 읽고, 동무가 가꾸는 삶을 읽으면서, 내가 아이하고 새롭게 가꾸는 삶을 읽습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꾸고, 꿈으로 삶을 짓는 슬기로운 눈빛을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7.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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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레 할머니의 비밀 꼬맹이 마음 42
우에가키 아유코 글.그림, 서하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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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3



사랑으로 짓는 삶

― 스미레 할머니의 비밀

 우에가키 아유코 글·그림

 서하나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11.5.17.



  우에가키 아유코 님이 빚은 그림책 《스미레 할머니의 비밀》(어린이작가정신,2011)을 읽습니다. 아이들한테 읽히기 앞서 아버지가 먼저 읽습니다. 방바닥에 모로 누워서 천천히 살피며 읽는데,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옆에 달라붙습니다. 뭐야 뭐야 하면서 이 더운 여름에 두 아이는 찰싹 붙습니다. 나도 읽을래 나도 보여줘 하는 말에, 보고 싶으면 같이 보면 되지 하고 이야기합니다.


  일본사람 우에가키 아유코 님은 1978년에 태어났다 하고, 이 그림책은 일본에서 2008년에 처음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린이가 서른 살 무렵에 내놓은 그림책입니다. 서른 살 나이에 ‘할머니 이야기’를 그리다니, 재미있네, 하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린이는 서른 살 나이에 아이를 낳았을는지 모르고, 서른 살 무렵에 어릴 적 일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사랑과 할머니한테서 이어받은 생각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일구던 삶을 이웃하고 나누고 싶었을는지 모릅니다.



.. 스미레 할머니는 바느질을 잘하기로 소문났어요. 옷은 물론 앞치마며 쿠션, 커튼까지 뭐든지 잘 만들어요 ..  (3쪽)





  그림책에 나오는 ‘스미레 할머니’는 바느질을 잘 한다고 합니다. 아마, 바느질뿐 아니라 뜨개질도 잘 하시리라 봅니다. 게다가, 밥하기라든지 빨래하기라든지, 집안을 건사하는 모든 살림을 잘 하시리라 봅니다. 그림책을 펼쳐도 알 만하거든요. 스미레 할머니가 지내는 집을 보면 아주 깔끔해요. 책도 가지런하면서 알뜰히 있고, 온 집안에 따사로운 기운이 감돕니다.


  그러니까, 스미레 할머니는 못 하는 일이 없는 분입니다. 스미레 할머니 손에 닿기만 하면 무엇이든 반짝반짝 빛이 나리라 느껴요. 스미레 할머니가 살그마니 쳐다보기만 해도 무엇이든 새롭게 빛이 나리라 느껴요.


  이리하여, 숲속 개구리는 스미레 할머니를 부릅니다. 도와 달라고 합니다. 직박구리도 스미레 할머니를 부르지요. 나비도 스미레 할머니를 불러요. 모두모두 할머니 손길을 기다리고 바랍니다. 모두모두 할머니 손길을 받으면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참말 그래요. 예부터 우리 겨레도 이런 말이 있는걸요.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또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할머니나 어머니가 약사나 의사는 아닐 테지만, 할머니나 어머니는 언제나 아이를 따순 사랑으로 보듬습니다. 그리고, 따순 사랑은 늘 아이들을 살찌웁니다. 따순 사랑으로 쓰다듬는 손길이 아픈 곳을 말끔히 낫도록 이끕니다.



.. 연못에 도착하자, 아기 개구리가 수련 잎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할머니, 제 침대가 찢어져 버렸어요. 고칠 수 있을까요?” “그럼, 그럼. 쉽지. 한번 고쳐 보자꾸나.” ..  (10쪽)



  스미레 할머니네 손녀는 할머니가 손수 떠 준 옷을 입고 춤춥니다. 손녀는 가게에서 사 입는 옷도 좋아할 테지만, 무엇보다 할머니가 손수 떠 준 옷을 몹시 좋아하리라, 아니 사랑하리라 느껴요. 할머니가 손수 떠 준 옷을 입으면서 하늘하늘 날아오를 테고, 할머니가 손수 떠 준 옷에 서린 사랑을 담뿍 받아먹으면서 날마다 즐겁게 노래할 테지요.





.. 할머니와 친구들은 거미가 살고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로 갔어요. 직박구리가 부탁했어요. “거미야, 실 좀 나누어 주렴.” ..  (25쪽)



  사랑으로 짓는 삶입니다. 사랑으로 짓는 옷입니다. 사랑으로 짓는 밥입니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언제나 ‘짓는’ 삶입니다. 삶짓기를 합니다. 그렇지요? 집짓기·밥짓기·옷짓기예요.


  사람들은 집과 밥과 옷을 지으면서 사랑을 짓습니다. 권력을 짓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전쟁무기는 짓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흙도 지어요. ‘농사짓기’라고 하지요. 흙을 지어서 열매를 지어요. 흙을 지어서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는 숲을 지어요.


  이리하여, 사람들이 글을 익혀서 쓸 적에도 ‘글짓기’인데, 그만 한국에서 글짓기는 뒤틀리고 말았어요. 사람들을 짓누르는 감옥과 같은 얼거리인 입시지옥에서는 글을 짓는 삶이 ‘시험점수 높이기’나 ‘반공 웅변’ 따위로 뒤바뀌었거든요.


  글을 ‘짓는’ 삶이 사그라들면서 사람들은 자꾸자꾸 ‘짓는 삶’과 멀어집니다.


  사랑짓기·꿈짓기·이야기짓기·노래짓기처럼, 차근차근 삶을 아름답게 짓는 길로 나아가야 할 텐데, 이렇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꾸자꾸 쳇바퀴만 돌아요. 다달이 돈을 벌어야 하는 굴레에 스스로 갇혀요. 돈벌이 쳇바퀴에 스스로 갇히다 보니, 스미레 할머니처럼 옷짓기를 즐기지 못합니다. 스미레 할머니처럼 옷짓기를 즐기지 못하다 보니, 딸아들한테뿐 아니라 손녀한테도 옷을 손수 지어서 선물하는 사랑을 누리지 못해요.



.. “고마워요, 할머니!” 손녀가 원피스를 입고 빙글빙글 돌았어요. 수를 놓은 실이 반짝반짝 빛났지요. 마치 빗방울이 튀어오르는 것 같았어요 ..  (30쪽)



  글을 지어 책을 짓습니다. 책을 지어 도서관과 책방을 짓습니다. 도서관과 책방을 지어 마을을 짓습니다. 마을을 지으니 지구별을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한 꿈터로 짓습니다.


  노래를 지어 춤을 짓습니다. 춤을 지어 이야기를 짓습니다. 이야기를 지어 사랑을 짓습니다. 사랑을 지어 아이를 낳고, 사랑으로 지은 아이와 하루하루 오순도순 지내면서 꿈을 짓습니다.


  우리 곁에는 어디에나 스미레 할머니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루이틀 나이를 먹으면서 스미레 할머니가 됩니다. 4347.6.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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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28 00:1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 책 참으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딱 첫 장부터 스미레 할머니의 방 모습에 화르륵, 마음을 뺏겼구요.
제가 딱, 이런 방을 너무나 좋아해서요~ㅎㅎ

그림도 이야기의 빛도 모두, 참 예쁘고 아름다운 책이지요~?^^
그런데 이 책을 함께살기님의 고운 느낌글로 보니 한층 더 즐겁습니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이상하게도 직접 보았던 그림책의 그림들보다
함께살기님의 느낌글에 있는 사진으로 찍은 그림들이 더 아름다우니 신기합니다~*^^*

숲노래 2014-06-28 06:52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저는 그림책 여러 대목 가운데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면 즐겁겠구나 하는 느낌으로
사진을 찍으니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

때때로 절판된 그림책이 있기에,
절판된 그림책을 장만할 수 없는 분들로서
제가 찍어서 함께 걸치는 사진으로라도
이 그림책을 누려서
나중에 헌책방에서 기쁘게 찾아내시기를 바라기도 하고요.

스미레 할머니 그림책은
그야말로 '전체 화면을 그대로' 보여줄 때에
가장 고운 빛이 드러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더없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이 작가 분이 '할머니 나이'가 아닌
'서른 살 나이'에 알뜰히 그린 대목이
참으로 놀랍고 재미있어요.
 
순간 울컥 - 화가 이장미의 드로잉일기
이장미 글.그림 / 그여자가웃는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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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2



함께 놀면서 그림을 그려요

― 순간 울컥

 이장미 그림·글

 그여자가웃는다 펴냄, 2013.12.5.



  여름이 무르익는 유월 이십육일입니다. 신나게 뛰도는 우리 집 두 아이는 볼이 빨갛습니다. 이 여름에 땀이 나도록 뛰어놉니다. 에그 덥지도 않느냐. 물을 먹이고 낯을 씻깁니다. 그러고는 부채질을 해 줍니다. 아이들은 뛰놀 적에 부채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땀을 흘립니다. 아이들은 뛰놀면서 손부채질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깔깔 웃고 뒹굽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꼭 이 아이들처럼 뛰놀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보다 훨씬 개구지게 뛰놀았을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떠올리는 내 어린 날은 언제나 땀에 흠뻑 젖은 옷이었어요. 땀을 얼마나 흠뻑 흘리면서 뛰놀았는지, 나도 동무들도 한창 놀다가 옷을 비틀어서 땀을 죽죽 짜곤 했습니다. 나도 동무들도 새까만 머리에서 땀이 핑핑 튀었어요. 팔뚝과 허벅지로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신은 땀으로 옴팡 젖어서 미끌미끌합니다. 나중에는 신이 거추장스러워 양말도 신도 벗고는 맨발로 뛰놉니다. 온몸이 땀투성이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놀면서도 놀이를 그치지 않아요.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언제나 땀범벅이 되면서 놉니다.



.. 어느새 구름이 머리 위에 가득했다. 조카 정기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지인의 동네에서 우리 동네를 찾아온 환상적인 구름을 감상했다 ..  (25쪽)




  요즈음에는 땀범벅이 되도록 뛰노는 아이들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어렵습니다.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한다면 제법 땀투성이가 될 테지만, 운동경기가 아닌 놀이를 하며 땀을 줄줄 흘리는 아이들을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가 땀범벅이 되도록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볼 어버이가 무척 드물는지 모릅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고, 옷도 땀으로 축축해서 살갗에 찰싹 달라붙도록 뛰놀게끔 가만히 놓아 줄 만한 어버이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요즈음 아이들은 뛰놀 겨를이 없이 학원과 학교에 매달려야 해요. 요즈음 아이들은 어버이가 잔뜩 사서 안기는 그림책과 동화책을 들여다보느라, 또 만화책까지 보느라 너무 바쁩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 하고, 이것저것 만들기라느니 독후감이라느니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일’이 많아서 책상맡을 떠나기 어렵고, ‘일’에 치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인터넷게임이나 손전화게임을 하면서 짜증을 풀밖에 없습니다.



.. 깜짝 놀랐다. 일어나 보니 정기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의 말로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났단다. 따지고 보면 정기의 본격적인 방학은 오늘부터 시작이다. 학원까지 방학에 들어갔으니까. 소풍 가기 전날처럼 설레서 일찍 일어난 걸까 ..  (72쪽)





  이장미 님이 토막글과 함께 토막그림으로 빚은 그림책 《순간 울컥》(그여자가웃는다,2013)을 읽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입니다. 다만, 어린이가 읽는 그림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높은학년쯤이라면 읽을 만합니다. 꽤 재미있거든요.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으로 글과 그림을 펼칩니다. 틀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살아가려는 꿈을 글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참말 그렇지요. 울컥, 왈칵 하고 터져나옵니다. 글이 터져나오고 그림이 터져나와요. 이야기가 터져나오고 사랑이 터져나옵니다.



.. 며칠 전부터 정희에게 합장을 하며 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마의 가운데 부분이 긁혀서 생긴 상처가 불상의 백호 같아서 장난스레 부르게 된 건데, 자꾸 부처님이라고 하니 자꾸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 책을 사 주시고 밥도 사 주셨다 ..  (102쪽)




  함께 놀면서 그림을 그리면 재미있습니다. 함께 놀면서 노래를 부르면 즐겁습니다. 함께 놀면 어느새 사랑이 싹틉니다. 아련한 첫사랑은 바로 놀이동무입니다. 애틋한 첫꿈은 바로 놀이터예요.


  함께 노는 두 아이는 때와 곳을 잊습니다. 함께 노는 두 아이는 때와 곳을 넘어서면서 꿈을 꿉니다. 두 아이한테는 돈이 대수롭지 않고 이름값이나 힘이나 부동산 모두 대수롭지 않습니다. 함께 어울리고 함께 마주하며 함께 웃는 하루가 대수롭습니다.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잘 그려야 그림이 아닙니다. 엄청난 작품이 되어야 그림이 아닙니다. 그림은 모름지기 삶입니다. 그림은 언제나 삶을 사랑하는 눈빛입니다. 그림은 한결같이 삶을 사랑으로 빚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 요즘엔 최첨단 전자제품보다 한 송이의 꽃이 핀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신기하다 ..  (171쪽)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한테만 그림책을 갖다 안기지 말고, 어른 스스로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그림책을 열 번 백 번 천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림책에 깃든 넋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을 바꾸어야지요. 쳇바퀴처럼 도는 삶이 아니라, 어른이 낳은 아이를 마음 깊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이 교육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떠넘기지 말아요. 아이 교육을 집에서 해요. 아이 교육을 교사나 전문가한테 맡기지 말아요. 아이 교육을 어버이 스스로 해요.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요. 아이와 함께 텃밭을 일구어요.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요. 아이 손을 잡고 들길과 숲길을 걸어요. 아이와 나란히 엎드려서 그림을 그려요. 아이와 빙그레 웃으면서 노래를 불러요. 아이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춤을 추어요.


  그러면 됩니다. 삶을 사랑하면 됩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은 어버이’인 바로 내 숨결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림은 바로 삶을 사랑하는 빛이 천천히 꽃처럼 피어나면서 태어납니다.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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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나는 누구와 어떤 따뜻한 그림백과 43
재미난책보 지음 / 어린이아현(Kizdom)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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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1



너와 나 사이에는 하나

― 따뜻한 그림백과 043 : 사이

 김경진 그림

 재미난책보 글

 어린이아현 펴냄, 2013.12.30.



  나는 어릴 적부터 ‘사이’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 둘레 어른들은 나한테 ‘사이’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떠올리는 어릴 적 삶은 국민학교(초등학교)부터인데, 이 언저리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둘레 어른들은 내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숨결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았아요. 내 둘레 어른들은 내가 수많은 목숨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인지 아닌지 가르치지 않았어요.



.. 세상에는 나와 남이 있어요 ..  (2쪽)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19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94에 대학교에 들어간 뒤, 1995년에 그만두려 했으나 이해에 군대에 간 뒤 1997년 12월 31일에 사회로 돌아와서 1998년 가을에 대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이동안 나는 학교라는 곳에서 사랑을 배우거나 꿈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꿈이나 사랑이라는 낱말은커녕 꿈이나 사랑을 가꾸는 ‘삶’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내가 꿈을 처음 생각한 때는, 아니 처음 생각한 때가 아니라 처음 느낀 때는 2006년입니다. 이때에 나는 이오덕이라고 하는 분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1월 1일부터 한 가지를 다짐했어요. 나한테는 운전면허증이 없어 늘 시외버스를 타지만, 이해 2006년에는 시외버스조차 안 타고, 또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가더라도 전철을 안 타고, 자전거만 타기로.


  그렇지만, 2006년 한 해에 전철을 아예 안 타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섯 차례 탔지 싶어요. 시외버스는 참말 한 차례도 안 탔지 싶은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늘 자전거를 탔어요. 그리고, 한 해 내내 자전거로 움직이면서 깨달았어요. 아, 자전거로도 얼마든지 다닐 만하네 하고요. 자전거로 하루에 50킬로미터를 출퇴근하더라도 다닐 만하다고 느꼈어요. 2006년 이해에 나는 날마다 120킬로미터쯤 자전거로 달리면서 지냈어요. 2006년에 나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았고, 볼일을 보러 서울에 주마다 한 차례씩 자전거로 오갔습니다.



.. 남들끼리는 서로 싸워요. 우리가 조금 더 가지면 남은 그만큼 덜 가지게 되기 때문이에요 ..  (16∼17쪽)



  날마다 자전거로 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리면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이동안 아름다운 이웃도 만나고 끔찍한 이웃도 만납니다. 아름다운 이웃은 나한테 말없이 내가 자전거로 잘 달리도록 돕습니다. 끔찍한 이웃은 갑자기 내 자전거 옆이나 앞으로 끼어들면서 내가 죽을는지 모르도록 괴롭힙니다.


  이즈음 나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일부러 나를 치고 뺑소니를 친 자동차가 여럿 있어서 나는 ‘자동차에 치여 하늘을 붕 날다가 길바닥에 꽝 하고 떨어질’ 적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어요. 어깨뼈가 으스러지거나 무릎이나 손목이 나가서 꼼짝을 못할 뿐이었습니다. 2011년까지 여러모로 뒤앓이를 치렀어요. 어깨를 못 쓰고 팔을 못 쓰고 손목을 못 쓰고 무릎을 못 쓰는 채 지냈어요.


  그러면, 이제 내 몸이 나았을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2014년 요즈음에도 자전거를 탑니다. 요즈음은 내 자전거 뒤에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여서, 일곱 살 큰아이와 네 살 작은아이를 태우고 다닙니다. 샛자전거에는 큰아이가 앉고 수레에는 작은아이가 앉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다니면 무척 좋아해요. 두 아이는 모두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까르르 웃고 노래합니다.



.. 나는 사람들하고만 이어져 있는 건 아니에요. 내가 서 있는 땅, 내가 마시는 공기와 물,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도 이어져 있어요 ..  (25쪽)



  김경진 님 그림하고 재미난책보에서 빚은 글이 어우러진 《따뜻한 그림백과 043 : 사이》(어린이아현,2013)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이란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무엇일까요. 한자로 적는 ‘人間’이 아니라, 한국말로 적는 ‘사람’에서 사이는 무엇일까요.


  한국말에서 ‘사이’는 ‘틈’이요 ‘겨를’이며 ‘말미’입니다. 한국말에서 ‘사이’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빈 자리’입니다. 아니, 한국말에서 ‘사이’는 ‘쉼터’예요.



.. 모를 땐 남이지만, 알고 나면 모두가 우리예요. 세상에 남은 없어요 ..  (30쪽)



  너와 내가 쉽니다. 너와 내가 즐겁게 쉽니다. 너와 내가 즐겁게 웃으면서 쉽니다. 그렇지요. 쉬는 두 사람은 빙그레 웃을 뿐 아니라 밥을 나눕니다. 함께 쉬는 두 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쉬는 두 사람한테는 울타리, 이른바 국경이나 경계가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한테는 ‘사이’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사이를 아껴야지요. 우리는 서로서로 사이를 보듬으면서 아름답게 살아야지요. 너와 나는 남이 아닙니다. 너와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남일는지 모르나, 이렇게 말하려 하면, 네가 보기에 내가 남이 될 테지요.


  너와 나를 가르려 하면 서로 ‘적’이 되어요. 너와 내가 하나인 줄 알면 서로 ‘삶’이 되어요. 삶이기에 사이입니다. 삶이기에 사이이면서 사랑입니다. 삶이기에 사랑이면서 사이요 꿈입니다. 어버이와 아이 사이에 아름다운 빛을 노래하는 그림책이 있으면 참으로 따사로우리라 생각합니다.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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