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글리의 형제들 - 정글북 첫 번째 이야기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7
루드야드 키플링 지음, 크리스토퍼 워멀 그림, 노은정 옮김 / 마루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4

 


숲말을 잊은 채 살아가면
― 모글리의 형제들
 루디야드 키플링 글
 크리스토퍼 워멜 그림
 노은정 옮김
 마루벌 펴냄, 2007.5.19.

 


  길을 가다가 벌한테 쏘였습니다. 나도 쏘이고 일곱 살 아이도 쏘였습니다. 유채꽃 노란물결 그득한 논자락 옆을 걷는데, 갑자기 벌이 내 머리카락에 걸려 파닥거리면서 콕 하고 침을 쏩니다. 일곱 살 큰아이 머리카락 사이에도 벌이 걸립니다. 큰아이더러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이르고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에 따라 머리카락을 헤집어 벌을 겨우 꺼내어 날립니다. 그런데 이 벌이 다시 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옵니다. 얘야, 어쩌다 네가 내 머리카락에 걸린 듯한데 다른 데로 가야지, 머리카락 사이는 거미줄과 같아서 이런 데에 끼면 네가 괴롭단다.


  한 마리를 빼내니 다른 벌이 내 머리 둘레로 윙윙거리면서 또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머리통을 제법 세게 쿡 쏩니다. 야야, 참 아프구나, 네가 말벌이 아닌 꿀벌이니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네가 침을 쏘며 내 뒷덜미에 침이 박힌 줄 느끼겠네. 너희는 너희 침을 이렇게 쏘면 어찌 살려고 그러니. 어쩌면 너희가 부러 침을 쏘아서 내 몸 어딘가 아픈 데를 고쳐 줄 마음이니.


.. 달빛은 늑대 식구가 오순도순 사는 굴의 저 안쪽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 “이 밤중에, 알몸으로 쫄쫄 굶은 채 혼자서 우리한테 온 아이예요. 게다가 우리를 겁내지도 않잖아요!” ..  (8, 21쪽)

 


  시골에서 경관사업을 한다면서 유채씨를 논마다 잔뜩 뿌립니다. 봄이 되어 유채씨는 싹을 트고 이곳저곳 노랗게 꽃물결이 춤춥니다. 지난해까지는 유채꽃 사이에 벌집을 놓은 사람이 없었는데, 올해에는 누군가 벌통을 되게 많이 갖다 놓았습니다. 게다가 마을 어귀 버스 타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논에 벌통을 놓았어요.


  이 벌은 우리 집까지 드나들곤 합니다. 마을 이웃집에도 이 벌이 드나들 테지요. 우리 마을에서 벌통을 놓았을까요. 다른 마을에서 벌통을 놓았을까요. 유채꿀을 얻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왜 마을사람이 뻔히 지나다니는 길목에 벌통을 놓았을까요.


  곁님이 큰아이 머리에 박힌 침을 둘 뽑고 벌을 쫓아냅니다. 처음에는 조금 부었으나 붓기가 차츰 가라앉습니다. 하루가 지나니 아픈 자리는 많이 가라앉지만 그래도 따끔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두서너 방을 쏘였으니 이만큼이지, 벌떼가 달려들어 쏘면 어마어마하겠다고 느낍니다. 벌떼가 달려들면 그야말로 어디 냇물을 찾아서 뛰어들든지, 도랑물에 고개를 처박든지 할 노릇이네 하고 느낍니다. 조그마한 벌이지만, 벌 한 마리가 쏘는 침이 아프고, 벌떼가 달려들면 어떤 사람도 꼼짝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 이런 규칙이 생겨난 것은, 인간을 죽이면 코끼리를 타고서 총을 쏘아대는 백인들과 징을 든 갈색 피부의 사람들 수백 명이 횃불과 불화살을 갖고 정글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글의 모든 것이 고통을 받고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 아빠 늑대는 모글리에게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과 정글에 있는 것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 모글리에게는 풀잎의 바스락거림, 훈훈한 밤공기의 숨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올빼미의 울음소리, 나무에 내려앉은 박쥐 발톱에 나뭇가지가 긁히는 소리, 웅덩이에서 튀어오르는 갖가지 작은 물고기들의 텀벙거리는 소리도 모두 의미 있는 것이었어요 ..  (13, 31쪽)

 

 


  지구별에는 온갖 목숨이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사람은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뭇목숨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별임자’인 듯 여깁니다. 어쩌면 사람은 ‘별임자’일 수 있습니다. 지구별에는 따로 임자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별임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별임자는 어떤 몫을 맡을 때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사람은 지구에서 별임자다운 삶을 가꾸거나 꾸린다고 할 만한가요. 사람은 지구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리거나 일구는가요.


  사람은 사람끼리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이웃인 사람을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오순도순 아기자기한 삶을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꿈을 빚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지구별에 평화를 내리누르는 전쟁이 자꾸 불거지거든요. 지구별에 사랑을 가로막는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자꾸 춤추거든요.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이 끔찍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디나 경쟁이요 피튀기는 싸움터와 같습니다. 갖가지 위계질서와 신분질서가 득실거립니다. 사람은 스스로 사람다움을 잃기도 하고 잊기도 하며 저버리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목숨’이나 ‘따사로운 숨결’을 잃거나 잊거나 저버리곤 합니다.


.. “난 정글을 본 적이 없었어. 그저 인간들이 쇠창살 너머로 던져 주는 고기를 먹고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밤, 나는 내가 흑표범 바기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노리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앞발을 들어 엉성한 자물통을 단번에 부수고 뛰쳐나왔어.” ..  (40쪽)

 


  루디야드 키플링 님이 쓴 글에 크리스토퍼 워멜 님이 그림을 넣은 《모글리의 형제들》(마루벌,2007)을 읽습니다. ‘정글북 첫 번째 이야기’라는 이름이 붙으며 나온 그림책인데, 2007년에 첫째 권이 나왔으나 2014년이 되도록 둘째 권이 나오지 못합니다. 키플링 님이 선보인 이야기에 새빛을 드리운 워멜 님 그림이지 싶은데, 한국에서는 이 같은 그림이 사랑받기 어렵기에 둘째 권이 못 나오는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어느새 숲도 들도 자취를 감출 뿐 아니라, 냇물도 바닷물도 제 빛과 숨결을 잃으니 이러한 책이 사랑받기 어렵지 싶기도 해요.


  아이들은 도시에서 들빛을 보지 못해요. 아이들은 시골에서도 숲빛을 누리지 못해요. 요즈음 아이들은 풀을 베거나 나무를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불을 때거나 밥을 짓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소를 몰지 않고 닭을 치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나무를 타거나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별을 보거나 햇볕에 까맣게 타지 않습니다.


.. “정글이 내게 문을 닫아 버렸으니 나는 너희의 말과 우정을 잊어야겠지. 하지만 나는 너희가 그리울 거야.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나는 진짜 너희의 형제였어. 너희는 나를 배신했지만, 나는 어른이 되더라도 인간의 편에 서서 너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  (56쪽)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숲말’을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일찍부터 영어를 할 줄 알고 한자를 읽을 줄 압니다. 들이 베푸는 노래를 듣지 못한 채 크는 아이들은 ‘들놀이’를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게임을 할 줄 알고 손전화를 솜씨 잇게 다를 수 있습니다. 냇물과 바닷물을 벗삼아 놀지 않는 아이들은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을 읽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상표와 캐릭터와 연예인과 스포츠를 훤히 뀁니다.


  숲말을 잊은 채 살아가면 숲을 모릅니다. 숲을 모르는 사람은 숲을 쉬 망가뜨립니다. 밀양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송전탑을 때려박기만 하는 사람은 숲을 모를 뿐 아니라, 숲을 사랑하지 않아요. 숲을 모르면서 안 사랑하니, 숲을 가꾸지 않아요. 숲에서 누릴 푸른 바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꿈을 꾸면 즐거울까요. 어른들은 앞으로 어떤 사랑을 속삭이면 즐거울까요. 아름답게 살아갈 지구별은 누가 어떻게 가꿀 수 있을까요.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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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아이 미나
에릭 바튀 지음, 이수련 옮김 / 달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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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3

 


맑은 노래가 흐르는 밤
― 새들의 아이 미나
 에릭 바튀 글·그림
 이수련 옮김
 달리 펴냄, 2003.12.5.

 


  하얗게 핀 딸기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서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아, 새가 한 마리 있구나. 사람이 있으니 날아갈 법하지만,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 옆 풀밭에서 마른 가지를 밟아 두둑두둑 소리가 나지만, 새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노래를 부릅니다.


  딸기꽃하고 새소리가 곱게 어우러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들딸기는 자동차 오가는 길가 아닌 한길에서 떨어진 풀숲에서 넝쿨을 뻗어 꽃을 피웁니다. 멧새는 자동차 다니는 길에서 사뭇 떨어진 풀밭에서 자라는 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은 딸기꽃 내음을 퍼뜨립니다. 바람은 멧새 노랫소리를 실어 나릅니다.


.. 긴부리 영감은 동전 몇 푼을 받고 사람들에게 새들을 보여줍니다. 지휘봉을 휘두르며 새들에게 노래를 시켜요 ..  (4쪽)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재우려고 쉬를 누입니다. 두 아이 오줌으로 꽉 찬 오줌그릇을 들고 뒤꼍으로 나옵니다. 어느 나무 둘레로 뿌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감나무 둘레에 뿌립니다. 그리 멀지 않은 논에서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요즈막에 노래하는 개구리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일 테지요. 알을 낳아 올챙이가 깨기를 기다리는 개구리이겠지요.


  지난주에 신안에 살짝 다녀왔습니다.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은 사월 첫 주에도 제비가 날아다닙니다. 제비가 벌써 찾아오나 하고 놀랍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제비가 찾아오는 시골이 있고, 늦게라도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 시골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비가 도무지 찾아갈 수 없는 도시가 있을 테며, 용케 도시에까지 찾아가는 제비가 있어요.


  그나저나, 제비가 꽤 많이 찾아갈 듯한 신안인데, 곳곳에 ‘헐린 제비집 자국’이 있습니다. 신안 분들은 제비를 썩 달가이 안 여기는 듯해요. 헐고 다시 헐고 또 허는가 싶어요. 그래도 제비는 씩씩하게 집을 다시 짓고 또 지으며 새로 짓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을 허물어 괴롭히고 들볶아도 씩씩하게 집짓기를 잇습니다.


.. 긴부리 영감과 궁중 대신은 밤새도록 으리으리한 성과 황금마차를 꿈꾸었어요. 그러는 동안 미나는 울고 있었어요. 긴부리 영감이 새장 속에 미나를 가두고 마른 빵 한 조각과 물만 조금 넣어 주었거든요 ..  (10쪽)

 

 


  우리 집 섬돌에 아침마다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날마다 쓸고 치워도 아침마다 섬돌에 새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지푸라기가 왜 있나 아리송했는데, 이내 깨닫습니다. 우리 집 처마에 아직 제비가 찾아오지는 않았으나, 참새와 딱새가 제비집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지내요. 참새와 딱새가 지푸라기를 물어다 나르며 조금씩 떨어뜨리지 싶습니다. 가만히 올려다보니 마루문 위쪽 바깥 등불에 허술하지만 조그마한 새집이 새로 생기려 하더군요.


  너희한테는 그곳이 새로운 집으로 알맞다 싶으니? 그런데 너희도 이 집에서 얹혀 지내며 알 텐데, 곧잘 바깥불을 켜잖아? 바깥불을 켜면 갑자기 환하니까 깜짝 놀라지 않니? 등불 밑이 따뜻해서 괜찮으니?


  생각해 보니, 읍내 버스역 바깥 등불에도 제비집이 있습니다. 어쩌면 새들은 바깥 등불을 퍽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 되면 등불이 따끈따끈하니까 꽤 지낼 만하다 여길 수 있어요.


.. 공연을 본 왕이 물었어요. “도대체 뭐가 특별하다는 게냐? 내 정원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훨씬 좋은걸. 춤을 추고 싶으면 무도회에 가면 되고!” 왕이 새장을 열자, 새들은 미나를 등에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요 ..  (16쪽)

 


  그림책을 읽습니다. 작은 새들이 나오고, 작은 새와 함께 지내는 ‘미나’라는 작은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에릭 바튀 님이 빚은 《새들의 아이 미나》(달리,2003)입니다. 작은 아이 미나는 작은 새만 한 몸피입니다. 어쩜 이렇게 자그마한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엄지 아이보다는 크지만 주먹 아이보다는 작아요. 작은 아이는 새들과 함께 맑은 눈빛과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작은 아이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즐겁게 춤을 춥니다. 새들은 미나가 추는 춤을 보면서 한결 즐거이 노래를 불러요.


  그러나, 돈을 바라거나 이름값을 거머쥐려는 어른들은 작은 새들과 작은 미나를 괴롭힙니다. 따사롭게 아끼지 않습니다. 새들이 들려주는 고운 노래를 살가이 듣지 못해요. 미나가 보여주는 어여쁜 춤사위를 기쁘게 누리지 못해요. 새노래를 돈으로 팔면 즐거운가요? 새춤을 돈으로 팔아야 보람이 있나요?


  맑은 노래가 흐르는 밤입니다. 밝은 노래가 감도는 낮입니다. 맑은 노래가 흐르면서 별빛이 속삭이는 밤입니다. 밝은 노래가 감돌면서 햇빛이 웃는 낮입니다. 다 같이 자동차를 멈추고 컴퓨터를 끄면서 풀노래를 들어요. 풀숲에 깃드는 풀벌레 노래를 듣고, 나무 우거진 숲에 깃드는 멧새 노래를 들어요.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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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못 분도그림우화 20
이반 간체프 / 분도출판사 / 198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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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2

 


보배는 늘 내 곁에 있어요
― 달못
 이반 간체프 글·그림
 이미림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3.8.5.

 


  아침밥을 안칩니다. 밥물이 제법 끓을 무렵 국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그릇을 둘 챙겨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그릇 하나에는 네 식구가 먹을 풀을 뜯습니다. 그릇이 수북합니다. 사월 팔일 아침볕은 곱고, 사월 팔일에 돋는 풀은 싱그러면서 먹음직합니다. 풀을 뜯는 손에 풀물이 들고 풀내음이 뱁니다.


  그릇 하나를 다 채운 뒤, 다른 그릇에는 쑥을 뜯어서 담습니다. 오늘은 신나게 뜯어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릇이 넘칠 듯하면 꾹꾹 누릅니다. 넘치도록 뜯은 쑥을 뜯고 더 뜯습니다. 뒤꼍으로 가서 쑥을 더 뜯습니다. 우리 집 둘레에서 나는 쑥을 골고루 뜯습니다.


  볕이 드는 자리에 따라 쑥빛과 쑥내음이 다릅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라고 쑥이 더 잘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늘진 자리에서는 그늘진 자리대로 쑥이 돋고, 볕바른 자리에서는 볕바른 자리대로 쑥이 돋아요.


.. 높은 산 위, 기암괴석이 얼키설키 어우러진 어느 깊은 골짜기에 못이 하나 있읍니다. 골짜기가 어찌나 깊은지 그 속은 언제나 깜깜한데, 오로지 못만은 환하게 말갛고 못가에 보석들이 반짝입니다 ..  (2쪽)

 


  올들어 첫 쑥버무리를 하기로 합니다. 쑥을 듬뿍 넣은 달걀말이를 할까 생각하다가, 달걀말이는 다음에 하자고 생각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쑥을 조금씩 넣다가 나중에는 왕창 넣습니다. 밀가루 반죽은 살짝 묻은 쑥을 미리 달군 냄비에 놓습니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처음에는 쑥버무리를 자주 뒤집습니다. 이러다가 눌러붙지 않겠다 싶으면 뚜껑을 닫고 다른 풀을 손질합니다. 날로 먹을 풀은 예쁜 그릇에 담아 밥상에 얹습니다. 두 아이가 배고프다고 부릅니다. 미리 썬 오이와 무를 내줍니다. 오이와 무를 얼른 다 먹은 두 아이는 더 달라고 합니다. 이제 그릇에 국을 떠서 두 아이 앞에 놓습니다. 국을 마시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른 풀을 밥상에 올립니다. 하나는 그대로 먹고, 하나는 된장으로 비벼서 먹습니다.


  이동안 쑥버무리가 천천히 익습니다. 당근을 동그랗게 썹니다. 쑥버무리 올릴 네모낳고 커다란 접시 둘레에 당근을 올립니다. “냄새 좋아요. 얼른 먹고 싶어요.” 일곱 살 큰아이가 노래합니다. 그래, 그렇게 노래하는 마음에는 맛난 밥이 들어가서 몸을 튼튼하게 살찌우리라 생각한다, 함께 잘 먹자.


  접시를 ⅔쯤 채울 무렵 쑥버무리구이, 또는 쑥버무리튀김을 밥상에 올립니다. 어떤 맛일까? 나도 아직 모릅니다. 올해 처음 마련한 쑥버무리이기에 무척 궁금합니다. 아무튼, 두 아이는 풀이 가득한 밥상맡에서 밥을 잘 먹습니다.


.. 복돌이는 외토리가 되었읍니다. 혼자서 양들을 돌보았읍니다. 그래도 복돌이는 만족해 하며 살았읍니다. 양유가 넉넉히 나므로 치즈를 만들어서 읍내에 나갈 때 내다 팔아 그 돈으로 자기하고 양들이 먹을 소금을 샀읍니다. 절로 열린 능금이랑 배랑 산딸기랑을 따다가 겨울에 먹을 쨈도 고아 놓고, 양파랑 콩이랑 푸성귀는 손수 심었지요 ..  (10쪽)

 


  이반 간체프 님 그림책 《달못》(분도출판사,1983)을 읽습니다. 1983년에 한국말로 나온 작은 그림책인데,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습니다. 1983년이면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무렵입니다. 그때에 누군가는 이 멋진 그림책을 사랑스레 누렸겠지요. 1985년이나 1987년에 이 그림책을 알아본 어버이는 이녁 아이한테 이 예쁜 그림책을 즐겁게 읽혔겠지요.


.. 복돌이가 흘낏 뒤돌아보니, 멋지되 큼직한 은빛 여우 한 마리가 있었어요. 여우는 먹을 것이 있으면 좀 주겠느냐고 물었읍니다. 그리고 “그러면 큰 비결을 하나 가르쳐 주지.” 하고 보답을 약속했읍니다. “내가 가진 것은 얼마든지 줄게.” 소년이 말했읍니다. “많지는 않아. 빵 조금하고 치즈하고 그리고 양파 몇 개야.” ..  (14쪽)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책이지만, 헌책방 책시렁에서 더러 만납니다. 다만, 판이 끊어진 그림책이니 자주 찾아보거나 쉽게 만나지는 못하리라 생각해요. 나는 이 그림책을 2000년 언저리에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아이가 없이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했어요.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그림책을 눈여겨보았고,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작은 그림책이 몹시 즐겁다고 느꼈어요.


  열 몇 해 앞서는 그저 ‘좋은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일곱 살 네 살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은 새롭게 마주합니다. ‘이 그림책에 담은 넋은 무엇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림책 《달못》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고 곱씹습니다.


  달못에서 반짝이는 보배에 눈이 멀어 목숨을 잃은 바보스러운 임금님과 신하들? 달못에서 반짝이는 보배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깊은 두멧자락에서 조용히 양을 치면서 숲밥을 먹고 숲노래를 부르는 착한 아이?

 


.. 또 한 번 복돌이는 아름다운 보석을 몇 개 주워 왔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양마다 하나씩 목고리에 매달아 주었읍니다. 그래서 다시는 양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 빛이 밤에도 양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거든요. 나머지 보석들은 창틀에다가 얹어 두었읍니다 ..  (26쪽)


  보배는 늘 내 곁에 있어요. 나는 우리 시골집에서 날마다 뜯는 풀이 보배입니다. 마당에서 개구지게 뛰놀다가 대청마루에서 쿵쿵 소리내며 뒹구는 두 아이가 보배입니다.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사랑하는 곁님이 보배입니다.


  하늘빛이 보배입니다. 싱그러운 물빛이 보배입니다. 꽃내음이 보배입니다. 예쁜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보배입니다. 산뜻한 초피나무와 모과나무가 보배입니다. 모두 보배입니다.


  멧새 노랫소리가 보배이고, 개구리 노래잔치가 보배입니다. 풀벌레 노래빛이 보배요, 아이들을 다독이며 재우는 자장노래가 보배입니다. 모두 보배예요. 언제나 보배입니다. 삶이 보배이고 사랑이 보배예요. 꿈이 보배이고 이야기가 보배입니다. 즐겁게 누리는 사월빛이 해맑습니다. 4347.4.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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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아빠
김장성 글, 김병하 그림 / 한림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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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1

 


새집과 까치와 나무
― 까치 아빠
 김병하 글
 김장성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2012.5.25.

 


  그림책 《까치 아빠》(한림출판사,2012)를 읽습니다. 김병하 님이 글을 쓰고, 김장성 님이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들이 까치집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무를 파내어 먼 데에 팔아치우면서 까치 식구가 겪은 고단한 하루를 들려줍니다.


  참말 그렇지요. 사람들은 까치집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까치집뿐 아니라 새집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 처마에 집을 짓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제비가 집을 지으면 둥지를 허물기 일쑤예요. 아니, 요즈음은 제비가 돌아오는 시골이 아주 적으니, 허물 제비집을 구경하기조차 어렵겠지요.


.. 공원 울타리 밖에 이런저런 나무들이 모여 있었어요. 키 큰 은행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있었지요. 까치집에는 물론 까치가 살았어요 ..  (3쪽)

 

 


  새가 없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벌레와 나비를 잡아먹는 새가 사라지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개구리가 없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작은 풀벌레뿐 아니라 모기도 파리도 잡아먹는 개구리가 없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이제 시골에서는 새가 콩을 파먹고 곡식을 쪼아먹는다고 싫어하지만, 새가 잡아먹을 애벌레도 풀벌레도 날벌레도 사라지니 콩이나 곡식을 쪼아먹으려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농약을 뿌려대어 새가 살아남기 어렵게 하니 어쩌겠어요. 멧돼지도 고라니도 이와 같아요. 숲에서 살기 어렵도록 숲을 망가뜨리니 숲짐승이 어떻게 하겠어요. 숲짐승은 그예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죽어야 할까요.


..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당신이 올 줄 알았어요.” 까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마음 다 알아요.’ 빙긋 웃으며 이제껏 물고 있던 벌레를 건네주었어요. 그러자, 집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어요 ..  (30쪽)


  그림책 《까치 아빠》는 까치 식구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애틋하게 그립니다. 새 한 마리쯤 쳐다볼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까치 식구는 당차게 살림을 꾸립니다.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는 나뭇가지 주워서 집을 짓기 어려웠을 텐데, 까치는 까치집을 어떻게 지었을까요.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 까치가 집을 짓기까지 얼마나 힘을 들였을까요.

 

 


  그나저나, 그림책 《까치 아빠》는 그림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까치는 틀림없이 우람한 나무 우듬지 가까이에 둥지를 짓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책으로 보면 나무가 그리 크지 않아요. 이렇게 나즈막한 데에 둥지를 트는 까치가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자꾸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한편, 수컷 까치가 ‘벌레’를 입에 물고 날아다니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까치가 입에 문 먹을거리는 ‘벌레’가 아닌 ‘지렁이’예요. 말과 그림이 안 맞아요. 까치가 지렁이를 찾아내거나 땅에서 파내어 물 수 있습니다만, 새는 지렁이만 먹지 않고, 나뭇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많이 잡아먹고, 풀벌레도 꽤 잡아먹습니다. 쉬 지나칠 수 있을 법한 대목이지만, 조금 더 찬찬히 살펴서 보듬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대목을 보면,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 파낸 나무를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어느 시골마을에 옮겨심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나무를 옮겨심을 수 있기도 할 테지만,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모습이로구나 싶어요. 시골에 나무가 없어 도시에서 파내어 옮길까요? 시골에서 파낸 나무를 도시로 옮겨심는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시골마을을 보면, 집집마다 ‘집나무’가 아주 드뭅니다. 마당에 그늘이 드리운다면서 집나무를 거의 다 베어서 없앱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숲정이를 찾아보기 퍽 힘들어요. 외려 도시에서 나무를 사다가 옮겨심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시골집 마당에 은행나무를 심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집에서도 은행나무를 심을 수 있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면서 여러모로 알쏭달쏭하고 아리송합니다. 은행나무를 아주 좋아한다면 이렇게 심기도 할 테지만, 글쎄요. 줄거리는 뜻있고 재미있으나, 그림 얼거리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4347.4.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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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참 멋지다
일론 비클란드 그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명아 옮김 / 북뱅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0

 


학교가 나아갈 길
― 학교 참 멋지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북뱅크 펴냄, 2014.1.25.

 


  아침에 고구마와 감자를 굽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으레 냄비 바닥에 물을 깔고 고구마와 감자를 삶지만, 우리 집에서는 물 없이 아주 작은 불로 오래도록 고구마와 감자를 굽습니다. 아주 작은 불에 오랫동안 굽는 고구마와 감자이니 다 익을 때까지 한참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언제 고구마와 감자를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부엌을 자꾸 기웃거립니다. 고구마와 감자가 익는 냄새를 맡으면서 군침을 삼킵니다.


  볶음밥을 할 적에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널따란 냄비에 물을 깔듯이 붓고는 자작자작 익힌 뒤 풀이랑 밥을 넣은 뒤 석석 비비고 섞은 뒤 간을 맞추어도 볶음밥이 되어요. 꼭 기름볶음밥을 해야 볶음밥이 아니고 물볶음밥을 해도 볶음밥입니다.


  집 둘레에서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 흙만 물로 헹구어 먹곤 합니다. 가끔 된장이나 간장으로 무쳐서 먹기도 합니다. 시금치를 먹더라도 굳이 데쳐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데쳐서 먹는다면, 풀을 데친 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여요.


.. 레나는 아직 여섯 살인데,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나도 학교 갈 거야.’ 레나는 날마다 이렇게 말하고는 정말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놀아요.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안다면 훨씬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예요 ..  (2쪽)

 


  아이들과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법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학교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가 드뭅니다. 학교에서는 어디나 학교버스를 둔다든지 시내버스(나 군내버스)를 타고 다니도록 이야기합니다. 자가용이 있는 집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태워 주기도 할 테지요.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는 버스를 ‘잘 타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어떻게 있어야 한다든지, 버스를 타고 내릴 적에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러 주지 못합니다. 더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가용을 몰 적에 어떻게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를 따라고 얘기하기는 하더라도, 자동차를 올바르고 즐겁게 모는 법을 이야기하지 못해요.


  학교에서는 입시지도와 취업지도를 합니다. 입시와 취업을 널리 살피는 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꿈과 아이키우기는 하나도 안 살피는 학교입니다. 성교육이나 피임법을 이렁저렁 비디오로 보여주는 학교는 더러 있을 터이나, 사랑을 참답게 이야기하거나 꿈을 밝게 노래하거나 살림살이를 알뜰살뜰 가꾸는 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아직 없다고 느껴요.


.. 교실에는 담임선생님이 계셨어요. 드디어 레나는 페터 선생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어요. 페터가 선생님께 말했어요. “레나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해서 데려왔어요.” “레나야, 어서 와. 만나서 반갑구나.” ..  (12쪽)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이야기를 집에서는 얼마나 가르치거나 보여줄까요.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사랑과 꿈과 살림을 집에서는 얼마나 가르치거나 보여주나요.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어떤 마음결과 손길일 때에 아름다운가를 집에서 얼마나 차근차근 가르치거나 보여주는가요.


  밥짓기를 학교와 집에서 얼마나 가르칠는지요. 밥짓기를 학교와 집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면 스스로 살림을 어떻게 돌볼 만할까요. 옷짓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바느질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버이가 되면 집살림을 어떻게 보살필 만할까요. 집짓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집안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거나 집 얼거리를 슬기롭게 살피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아이는 나중에 이녁 보금자리를 어떻게 보듬을 만할까요.


  아침에 마당에서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사월로 접어들어 통통하게 물이 오른 돌나물을 톡톡 끊고 부추잎을 툭툭 뜯습니다. 곧 꽃이 필 초피나무 야들야들한 잎도 탁탁 땁니다. 초피잎을 따면 손과 몸에 초피내음이 짙게 뱁니다. 싸아하고 퍼지는 냄새가 향긋합니다. 갓잎을 뜯으면 갓내음이 온몸으로 퍼지고, 쑥을 뜯으면 쑥내음이 온몸으로 번져요.


  교육은 언제나 삶으로 이루어지겠지요. 삶은 언제나 교육일 테지요. 교육은 아침저녁으로 차려서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에서 태어나겠지요. 아침저녁으로 아이와 함께 먹는 밥은 늘 교육일 테지요.


.. 이제 쉬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이 학교 마당으로 몰려 나가 놀았어요. 팔짝팔짝 뛰고 그물사다리에 기어올랐어요. 잉에가 레나에게 물었어요. “너도 우리랑 놀래?” “응, 좋아.” ..  (16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하고 일론 비클란드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학교 참 멋지다》(북뱅크,2014)를 읽습니다. 책이름이 참 착하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착한 책이름을 한국땅 어린이와 어른은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궁금합니다. 학교를 짓건 무엇을 만들건 모두 ‘멋진’ 곳이 되도록 하려는 첫마음이었으리라고 생각해요. 글을 써서 책을 내놓는 이들도 언제나 ‘멋진’ 마음밥이 되도록 하려는 뜻이었으리라고 봐요.


  그러면 요즈음 한국에서 학교란 어린이와 어른한테 ‘멋진’ 곳일까요. 멋진 배움터이자 삶터요 놀이터이자 만남터 노릇을 하는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서 멋진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가요. 어른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멋진 삶과 사랑을 들려주는가요.


.. 마지막 수업은 읽기 시간이에요. 레나는 아직 글자를 못 읽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레나에게 읽기 책을 한 권 빌려주었어요. 먼저 비르기타가 책을 읽었어요. “할머니는 다정하시다.” 하고 소리 내 읽었어요. 다음은 페터 차례예요. 그런데 페터는 자리에 앉아서 다른 생각에 푹 빠져 있었어요.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자 페터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아이쿠, 페터야. 거기 앉아서 꿈이라도 꾸고 있니?” 선생님이 물었어요. “아뇨, 어떻게 하면 둥그런 깡통을 만들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페터가 대답했어요. “그건 다음에 얘기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책을 읽자꾸나.” ..  (25쪽)


  그림책에 나오는 ‘페터’는 어른 동생 ‘레나’를 데리고 학교에 갑니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인 오빠가 여섯 살 동생과 함께 학교에 갑니다. 여덟 살 어린이는 담임교사한테 동생을 소개합니다. 담임교사는 여섯 살 어린이를 따사로이 맞이합니다. ‘네가 왜 학교에 오느냐?’ 하고 따지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요. 급식을 같이 먹고 수업도 함께 합니다. 여섯 살 레나는 오빠와 언니 사이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손을 번쩍 들고 ‘여섯 살 아이가 아는 이야기’를 대답하기도 합니다.


  어린 동생과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스스럼없습니다. 아마 모두들 집이나 마을에 ‘레나와 같은 어린 동생’이 있겠지요. 동무네 동생도 제 동생이요, 제 동생도 동무네 동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아낄 벗이고, 서로 어깨를 겯으면서 사랑할 이웃입니다.


  학교가 나아갈 길은 우리가 나아갈 길과 같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구어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면, 학교도 아름다운 배움터가 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터전이 될 노릇입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꿈꾸거나 바란다면, 학교도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살가운 터전이 될 노릇이에요.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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